“나는 자유무역에 찬성한다”
2018-04-30 마르크스
보호주의와 자유무역 간의 대립이 다시 불붙은 상황에서, 마르크스가 자유무역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그의 저서에서 찾아내는 일은 흥미롭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는 힘 있고 부유한 자들이 가장 약한 이들을 짓밟고, 국가와 계층 간에 불평등이 증가하며, 경쟁을 보편화시키고, 삶과 생산방식을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자유’라는 추상적인 말에 속지 마십시오. 누구의 자유란 말입니까? 그것은 다른 개인에 대한 한 개인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노동자를 짓누르는 자본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는 자유경쟁을 기초로 하는 상태의 산물인데, 어떻게 아직도 이 ‘자유’라는 관념으로 자유경쟁을 제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미 자유무역을 통해 하나의 국가 내 다양한 계층 간에 연대가 싹튼 것을 봤습니다. 자유무역에 의해 지구상의 다양한 국가들 간에 확립될 연대도 이보다 더 깊지는 못할 것입니다. 범세계적인 착취를 보편적인 연대라고 지칭하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생각입니다. 자유경쟁으로 인해 한 나라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파괴적인 현상은 세계시장에서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나타납니다. (…)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유무역을 토대로 국제 분업이 생기게 될 것이고, 이분업에 따라 각국의 자연적인 우위에 알맞게 생산도 각 국가별로 할당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쩌면 여러분은 커피와 설탕을 생산하는 것이 서인도의 자연적 운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세기 전, 상업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을 때 자연에는 커피나무도, 사탕수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서인도에서 커피와 설탕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동인도가 더 저렴하게 생산함으로써 서인도의 이 정해진 자연적 숙명에 대해 이미 승리를 거뒀기 때문입니다. 즉, 서인도는 지금 자연적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이제 영국인들에겐 과중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어떻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희생을 딛고 부유해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떻게 한 나라에서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의 희생을 딛고 부유해질 수 있는지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호주의를 반대하며
여러분, 상업의 자유를 비판했다고 해서 우리가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고자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입헌제의 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구체제의 동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보호무역주의는 한 국가 내에서 대공업을 세우는 수단, 즉 그 국가를 세계시장에 종속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많든 적든 자유 무역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보호무역주의는 한 국가 내에서 자유경쟁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이 때문에 부르주아가 계급으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나라들, 예를 들면 독일 등에서 이들이 보호관세를 얻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호관세는 부르주아 계급에게 있어서 봉건제와 절대정부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자신들의 힘을 모으고 자국 내에서 자유무역을 실현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늘날 보호무역제도는 보수적이고, 자유무역제도는 파괴적입니다. 자유무역제도는 오래된 국민성을 와해시키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대립을 극단으로 몰고 갑니다.
한마디로 자유무역제도는 사회혁명을 앞당깁니다. 여러분, 저는 오로지 이 혁명적인 의미에서만 자유무역에 찬성합니다.
『자유무역에 관한 연설(Discours sur le libre-échange)』, 1848, in Œuvres I. Économie I(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865), p. 154-156.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 동맹의 요청에 따라 1847년 12월부터 1848년 1월까지 짧은 기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마르크스가 주로 집필했음)한 매력적인 문서로, 이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어판은 거의 배포되지 못했고 번역도 늦게 이뤄졌기 때문에 『공산당 선언』은 1848년 ‘민중의 봄’ 동안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많은 언어로 번역됐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운동의 참고 문헌이 됐다.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고 하는 유령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기조(Guizot),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해서 신성동맹을 맺었다.
정권을 잡고 있는 반대파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에 있으며, 자기보다 더 진보적이거나 반동적인 반대파들에 ‘공산주의’라고 낙인찍으며 비난을 되돌리지 않은 야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공산주의가 이미 유럽의 모든 정부로부터 하나의 세력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산주의자들이 전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견해와 목적과 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당 자체의 선언으로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맞서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작성하고, 이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와 덴마크어로 공표한다.
『공산당 선언』, 1848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65), p. 161.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를 만든다
부르주아 계급은 그들의 형상을 본뜬 세상을 건설한다. 『공산당 선언』에는 세계 역사에 대한 묘사가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진다. 여기에서 국가 간의 경계 안쪽에서 맞닥뜨리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계속 확장되는 부분을 보면, 이상하게도 현대의 문제를 보는 듯하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범세계적 시장을 만든다고 해도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세계 곳곳으로 확대되면서 자본주의 자체의 적도 늘어난다. 그 적이란 바로 ‘프롤레타리아’다.
부르주아 계급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 지배 기간,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대대적이고 거대한 생산력을 만들어냈다. 자연력을 제어하고, 기계를 사용하고, 공업과 농업에 화학을 적용하고, 증기선으로 항해를 하고, 철도와 전신을 이용하고, 전 대륙을 개간하고, 강에 운하를 개설하고, 땅에서 솟아나듯 인구가 증가했다. 이 정도의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 내에 잠자고 있으리라고 이전의 어느 세기에서 예상이나 했겠는가?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는 토대가 된 생산 및 교환수단이 봉건사회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목격했다. 이 생산과 교환수단의 발전이 일정 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에서 생산과 교환이 이루어지던 조건들,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구조, 한마디로 말해서 기존의 봉건적 소유 관계는 증가하는 생산력에 부합하지 않게 됐다. 이것들은 생산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지했다. 굴레로 변한 것이다. 이 굴레들을 깨야 했고, 이 굴레들은 깨졌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적합한 사회·정치제도와 함께, 즉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정치적 지배와 함께 자유경쟁이 자리를 잡았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공황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 및 교환조건, 부르주아적 소유관계, 즉 이토록 강력한 생산 및 교통수단을 나타나게 한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마법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마법사는 자신이 불러낸 지옥의 기운을 내쫓을 수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근대적 생산력이 근대적인 생산관계에 저항하는,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과 그 체제의 생존조건인 소유제도에 저항하는 역사였다.
상업공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공황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면서 점점 더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위협한다. 이런 위기에는 이미 생산된 제품뿐만 아니라 기존의 생산력까지도 대부분 파괴된다. 이 시기에는 다른 시기였다면 불합리하게 보였을 ‘과잉생산’이라는 사회적인 전염병이 유행하게 된다. 갑자기 사회는 순간적으로 미개한 상태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기근과 광범위하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 전쟁 때문에 사회에서 모든 생계수단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공업도, 상업도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에는 문명과 생계수단과 공업과 상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력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에 우호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력은 너무 강력해져서 부르주아적 제도가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생산력은 이 굴레를 뛰어넘자마자 부르주아적 사회 전반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부르주아적 소유의 존립을 위험에 빠뜨린다. 부르주아적 제도는 이 제도에서 생산한 부를 담기에 좁은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 생산력을 파괴하도록 강제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규 시장을 획득하고 기존의 시장을 보다 더 잘 활용함으로써 극복한다. 결국 이게 무슨 뜻일까? 부르주아 계급은 위기를 예방할 방법을 줄이면서, 보다 더 전면적이고 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를 준비한다는 의미다.
프롤레타리아여, 일어나라!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제를 타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무기는 이제 부르주아 계급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무기만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 즉 근대적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도 만들었다. 부르주아 계급, 즉 자본이 발달함에 따라서 근대적 노동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도 발달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일거리를 찾아야만 살 수 있고,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가시키는 때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상품처럼 자신을 한 조각 한 조각 팔아야만 한다. 그리고 기타 거래되는 모든 물품처럼 경쟁의 변동, 시장의 변동에 스스로를 맡길 수밖에 없다.
(…) 프롤레타리아는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그들의 존재와 함께 시작한다.
(…) 공업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수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나로 뭉쳐서 더 단단해진다.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 힘이 강해졌다고 느낀다.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거의 어디에서든 임금이 일률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프롤레타리아 내부에서 각자의 이해와 상황이 점점 더 평준화된다. 부르주아 상호 간의 경쟁이 증가하고 그로부터 상업공황이 발생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기계가 끝없이, 그리고 언제나 고성능으로 개선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노동자와 부르주아 간의 개별적인 다툼은 두 계급 간의 충돌로 점점 더 성격이 변한다. 곧 노동자는 부르주아에 대항해서 단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지키기 위해 뭉친다. 향후 투쟁을 위해서 대비책으로 지속적인 조합을 만든다. 투쟁은 봉기의 형태로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때때로 노동자가 승리를 거두지만, 이들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노동자의 투쟁이 가져오는 진정한 성과는 즉각적인 성공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동맹이 확대되는 것이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교통수단의 발달로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노동자들 간에 연락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서 동맹이 쉬워진다. 이런 노동자들 간의 연계는 동일한 성격의 많은 투쟁이 국소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던 것을 전국적인 투쟁으로, 그리고 계급투쟁으로 중앙집중화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중세의 시민이 지방도로를 통해서 단결하는 데 수 세기가 걸렸던데 반해. 근대의 프롤레타리아는 철도 덕분에 몇 년 만에 단결을 이룩한다.
(…) 오늘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모든 계급 중에서 프롤레타리아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대공업 앞에서 쇠퇴하고 소멸한다(…)
『공산당 선언』, 1848, in Œuvres I. Économie I(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65), pp. 168-171.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