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의 공포 마케팅

2010-07-12     브뤼노 티넬

공공부채를 양산하는 메커니즘은 고스란히 둔 채로 단지 공공부채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자크 아탈리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겐 앞으로 다가올 대규모 파산과 굶주림, 혼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긴축뿐이다. <<원문 보기>>

“10년 뒤에 재앙이 온다?”(1) 적어도 자크 아탈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서구 사회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상당수 국가들이 엄청나게 불어난 국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채무국들은 사력을 다해 디폴트(국가 부도) 위협에 맞서게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겁을 줘서 관심을 사는 것까진 좋다.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해 국가 파산 위험을 멋대로 부풀릴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아탈리는 전체 부채를 경제활동인구 수, 월평균 수입, 국가 세입 총액 등으로 나눈 결과를 제시한다. 경작 가능 용지 면적이나 가축 수 혹은 콧수염을 기른 사람 수 등으로 계산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탈리는 사람들을 겁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저서의 한 장(章)을 통째로 할애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파한다. 국가 디폴트, 유로화와 달러화의 몰락, 세계적 불황, 아시아 몰락 등 마치 성경의 한 구절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으면서 겁이 나기는커녕 지루함만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정확한 조사 자료를 제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로 포장한다. 그의 불완전한 주장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신념과 오류에 기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걸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령 그는 공공부채와 공공자산 가치를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서는 공공자산 평가액을 기준으로 실제로 비교통계 자료를 내고 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근사치는 분명 존재한다.

아탈리는 미래에 도래할 혼돈을 예견할 뿐 아니라 그것을 피할 방법도 제시한다. 그는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가 공공부채라고 역설한다. 별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공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아탈리는 “국가의료보험의 일부를 민영화하고 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전노 아르파공의 집사 발레르가 “적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몰리에르 희곡 -역자)고 말했다면, 권력자들의 편인 아탈리는 “적은 예산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자”고 외친다.

근거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공평해야 한다. 아탈리는 부동산 수익 징세와 상속세 면제 폐지, 부가가치세 인상, 소득세 항목 추가 등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재정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만이다. 또한 ‘세제 혜택 대상을 축소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결국 ‘혜택을 완전히 없애지 말자’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공공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공세가 심화되면서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는다는 구실로 긴축적 화폐정책을 폈고, 금리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금리생활자들의 배만 불려주었다. 이게 공공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근본적인 이유다.

문제는 투자 자산(특히 국채)을 소유한 사람들과 오직 월급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가 국채 이자로 이익을 챙기는 동안 봉급생활자는 직접세와 간접세를 낸다. 이렇게 걷힌 세금은 물론 투자자에게 이자로 지급된다.

사람들은 급격하게 늘어난 공공부채 때문에 다음 세대가 빚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엄밀히 말해 그럴 일은 없다. 문제는 공공부채가 소득재분배를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부자 위한 폐쇄회로 만들자는 것

세금이 인하되면 부유층은 여유자금이 생기고 저축액을 늘릴 수 있게 된다. 그중 상당 부분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에 투입된다. 정부로서는 세금이 내린 만큼 재정을 보충해야 하므로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채의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늘어나는 셈이다. <레제코>도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정부의 세금 인하 정책으로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3%만큼 세수 손실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축적된 손실로 국가 부채는 2009년 GDP의 77.6%에 달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금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이 비율을 20% 정도는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2)

오늘날 이처럼 거꾸로 된 소득재분배의 혜택을 입은 당사자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공공지출을 삭감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목적은 단순하다. 자신들의 자산 증식에 도움이 안 되는 세금 인상이나 인플레이션을 피하면서도 정부의 부채 상환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돈벌이에 필요한 비용을 다시 한번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재정 긴축이 실행된다고 해도 서구 선진국의 부채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 국가들은 대부분 같은 시기에 같은 정책을 펼칠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보면 재정 긴축으로 성장이 위축되고 세수도 줄게 될 것이다. 결국 공공부채는 오히려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아탈리가 계급 간 역관계를 문제 삼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지난 30년간 군주(들)의 보좌관 노릇을 해오며 중요한 경제·사회 정책에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그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책은 ‘정책 노선을 바꾸자’고 말하지 않는다. ‘더 멀리 가보자’고 권유할 뿐이다.

글•브뤼노 티넬 Bruno Tinel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이 글에 실린 자크 아탈리의 말은 모두 그의 최근 저서 <10년 뒤에 재앙이 온다? 공공부채: 마지막 기회>(Fayard·파리·p240·2010)에서 인용했다.
(2) ‘파빌라 칼럼’, <Les Echos>, 2010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