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기술’이 쏘아올린 과소비의 욕망

2010-07-12     세드리크 고사르

에너지 효율 높아지면 사용량 늘어나…리바운드효과
자본은 원가 줄여 생산량 증대…소비자도 구매 늘려

지난 6월 초, 미국 에너지혁신위원회(AEIC·빌 게이츠와 제너럴일렉트릭 사장 제프리 이멜트가 설립한 정책제안기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청정에너지 개발 예산을 세 배 이상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그 이유 중에는 이 분야에서 중국에 뒤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포함됐다. 그러나 우리 기대와는 다르게 ‘녹색기술’이 항상 환경에 좋은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수도 회사 같은 곳에서 고객에게 환경보호를 위해 전자우편 청구서를 신청해달라고 독려하는 경우가 많다. 공급업체로서는 종이를 절약할 수 있을뿐더러 비용을 절감해 서비스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환경보호는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그러나 그렇게 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도세가 내린 김에 잔디밭에 물을 듬뿍 주고 일주일에 여러 번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한 경험은 없는지. 결국 환경보호라는 본래 목적은 실종되는 것 아닌가? 경제학자들은 이 패러독스를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라고 부른다. 이 패러독스가 ‘녹색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원문 보기>>

수도세 내리면 잔디밭에 물을 준다

프랑스에서는 3500만 대의 전기계량기가 ‘스마트 계량기’로 교체될 예정이다. 시범도시 리옹에서는 전력공급 업체들이 (소비자의 동의하에) 전력 사용량을 초 단위까지 원격 측정할 수 있는 계량기를 설치할 것이다. 공급업체들은 스마트 계량기 설치로 검침 인력이 불필요해지면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해 전기 공급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1) 겨울이면 전기 난방 온도조절 장치 앞에서 식구들끼리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은 어디에 쓰이게 될까? 프랑스전력공사(EDF) 연구팀의 비공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기세가 내리면 일반 가정에서는 난방 온도를 더 높인다고 한다. 부유층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절약된 비용을 좀더 성능 좋은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는 별 부담 없이 더 많이 소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난방 온도를 만족스러울 만큼 올린 뒤에도 남은 돈은 다른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플라스마 TV, 항공여행, 스마트폰 등). 결국 환경보호라는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적응행동 때문에 기술혁신으로 가능해진 환경보호 효과가 반감되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지속 가능 발전’ 공식 홍보물이 그토록 ‘소비자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기업과 정치인들은 기술혁신이 21세기 여러 가지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것 같다. 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의 새로운 장을 열고, 고용을 창출하고, 예산 적자를 메워주고, 불평등을 해소해줄 뿐 아니라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연자원을 보존하면서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략(2)- 에너지와 원자재 소비, 폐기물 처리 등- 에서 신기술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정보기술(IT)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에너지 절약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3)

IT가 접목된 에코테크놀러지와 갈수록 싸지는 전기 생산 비용 덕분에 ‘친환경 생산자’는 부품에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대나무 등을 사용한 ‘친환경’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출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비교적 합법적인 방식으로 전자폐기물을 수입해 유럽 기준에 맞춰 처리하는 외국 시설들을 지원해주기도 한다.(4) 판매업자들의 경우 새 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중고 전자제품을 보상해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는 휴대전화, 노트북컴퓨터, TV 등을 손쉽게 구입하고 원하는 곳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르몽드 마가진> 2010년 4월 30일자). IT는 심지어 ‘온라인 장례식’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언론은 “자원 절약이라는 차원에서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반기고 있다(<르몽드> 2010년 4월 17일자). 이 경우엔 최소한 리바운드 효과를 염려할 일은 없을 테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친환경 기술’의 기적적 효과는 리바운드 효과로 반감돼버린다.

기술혁신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착각

경제학자들은 리바운드 효과를 세 종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직접적 리바운드 효과’라고 부르는 것으로 직관적으로도 쉽게 파악된다. 요컨대 기술혁신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줄면 가격도 하락한다. 문제는 여기서 절약된 비용이 같은 종류의 에너지원을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자동차다. 구식 자동차를 연비가 좋은 최신형 자동차로 바꾼 운전자는 비용 대비 주행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더 자주, 더 멀리 차를 움직이게 된다.(5) 또 다른 전형적인 예는 주택 난방이다.

프랑스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주택과 서비스 산업이다(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3%. 2위 교통, 3위 생산업). 그중 3분의 2가 난방에 들어간다. 여기서도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에너지 공급과 온도 조절 기술의 발달로 1㎡당 필요한 난방 에너지가 1973년 365kWh에서 2005년 215kWh까지 줄었다. 반면 1970년부터 지금까지 난방 에너지 사용량은 20%가량 증가했다. 에너지 절약분이 리바운드 효과에 의해 상쇄된 것일까? 그렇게 볼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1986∼2003년 에너지 절약 정책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주택의 평균 실내 온도는 19℃에서 21℃로 상승했다(실내 온도가 1℃ 상승하면 에너지 소비량은 10% 증가한다). 많은 가정이 편리한 장치 덕택에 부담 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난방기를 돌린다. 아파트 중앙난방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은 아파트 적정 평균 실내 온도를 19℃로 규정해놓았다. 그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인체 건강에도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피부질환, 발한, 과호흡증후군 등).

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너지청의 2010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1달러 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1980년 대비 80%나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25% 증가하고 CO₂ 배출량이 165%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6) 지금까지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말짱 도루묵이 된 셈이다.

리바운드 효과 때문에 상당수 에너지 정책이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효율 등급제를 통해 기술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이다.(7) 문제는 최근에 지은 건물일수록 오래된 건물에 비해 점점 실내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열과 환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실내 온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려는 정책이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리바운드 효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다. 가령 에너지 가격을 10% 내린 뒤 시간당 kW 사용량이 2% 증가했다면 리바운드 효과는 20%가 된다.(8) 교통수단의 경우에도 최고의 연비를 자랑하는 자동차들이 등장하자 오히려 연료 사용량이 늘어났다. 연비가 좋아지면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한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연비의 리바운드 효과가 약 20~30%로 추정된다.

직접 리바운드와 간접 리바운드

영국에서는 2000~2010년 에너지 절약 정책이 시행된 뒤 약 30%의 리바운드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9) 리바운드 효과가 30% 이하가 되어야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의 리바운드 효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첫 번째 경우와 반대로, 소비자는 가격이 인하된 서비스에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절약된 비용이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소비로 이어짐으로써 사회 전체로 볼 때 상품 유통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단열이 우수한 창문을 구입해 절약된 난방비는 비디오게임기나 새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데 사용된다. ‘친환경 소비’를 격려하는 정책이 소비자에게 첨단 전자기계를 사도록 부추기는 셈이다. 인터넷 청구서 신청을 독려하는 편지를 받고 포인트를 얼마나 더 쌓으면 ‘공짜’ 휴대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는 소비자의 태도를 생각해보라!

소비자는 안락한 생활을 위해 에너지 사용량이 많고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가전제품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현재 난방 용도 이외의 가전제품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난방에서 절약된 에너지가 간접적 리바운드 효과에 의해 다른 가전제품(하이파이 오디오, 텔레비전 등)에 의해 소비되는 셈이다. 1973년 18kWh에 불과하던 가구당 가전제품 전력 소비량은 그 뒤 25년간 321kWh로 늘어났다.(10)

다양한 전자제품의 보급은 사회구조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세 번째 유형의 리바운드 효과는 이 과정에서 작용한다. 특정 자원의 이용 효율이 높아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그 자원과 관련된 활동이 급격히 증가한다. 자본과 우수 인력이 그 분야로 집중되므로 경쟁에서도 높은 위치를 점하고 경제 전체가 이 저렴한 자원을 중심으로 굴러가게 된다.

이 연쇄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가 석유다. 석유의 채굴과 생산이 시작되면서 사회가 기계화·산업화·도시화되고 자동차가 대량 보급된 과정을 생각해보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향상된 정보 전송, 저장 능력이 사회 전체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상자 기사 참조), 말 그대로 ‘석유 문명’의 일부가 돼버린 각 개인이 그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신제품 출시 주기 짧아져 자원 낭비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연료 문제>(The Coal Question)라는 저서에서 “강대국 영국에 필수 자원인 석탄이 20세기 말쯤 고갈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예견과는 다르게 아직 석탄이 완전히 고갈되지는 않았지만 ‘제번스의 패러독스’라고 알려진 그의 이론적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요컨대, 석탄을 효율적으로 소비할수록 그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선철(銑鐵) 1t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석탄의 양이 줄어들면 철강산업은 더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원가 절감으로 생산량이 늘면 결과적으로 증가한 이윤과 더 많은 석탄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배당금과 임금이 상승해 주주와 노동자의 소비도 증가한다. 한마디로 에너지 가격 하락이 ‘잠재적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 새로운 소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가 시간을 줄여 추가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11) 단기적으로는 효율성 향상으로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폭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원으로서의 화석연료와 함께 오늘날 모든 경제 부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 중 하나가 IT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IT는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고 기술혁신 주기를 단축시키며 규모의 경제를 발전시킨다.(12) IT 덕분에 상당수 생산자가 예전보다 손쉽게 기술혁신을 이룰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상품과 서비스는 순식간에 구식 취급을 받는다. 제품 수명이 길어지고 수리가 용이해지는 대신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원자재 수요량이 급증하게 된다.

앞에서 열거한 것 외에 리바운드 효과를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은 단지 편안함을 얻고 더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13) 이런 경향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교통수단을 예로 든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좀더 빠른 수단, 개인적 이동을 보장하는 수단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공항에 미리 가서 길게 줄을 서야 한다든지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에서도 발견된다. 예전에는 우편으로 받아보거나 도서관에서 열람해야 했던 문서들을 지금은 인터넷에서 손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너무 많은 정보가 있다 보니 문서를 찾고 읽는 데 예전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르트무트 로자(14)의 말처럼,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 건 아닐까?

글•세드리크 고사르 Cédric Gossart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이와 관련해 유럽의 경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Mari Martiskainen & Josie Ellis, <The role of smart meters in encouraging behavioural change-Prospects for the UK>, Sussex Energy Group Working Paper, 2009 참조.
(2) ‘녹색 성장’, Patricia Crifo, 프랑스 경제자문위원회에 제출된 지속 가능 발전 보고서, 2009. ‘비물질적 자본주의, Maurice Lévy & Jean-Pierre Jouyet, <비물질 경제: 미래의 성장>, La Documentation française, 파리, 2006. ‘절대적 단절’, Tim Jackson, <성장 없는 번영: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 De Boeck, 2010.
(3)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IT 기술의 응용과 관련해서는, Gilles Berhault, <지속 가능 발전 2.0>, L’Aube Poche, 2010 참조.
(4) 위험 폐기물의 국제적 운송에 관한 법적 제약(바젤 협약)을 피해가기 위해 전자 폐기물이 중고 제품으로 위장돼 수출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환경오염물질 수출’, <Mouvements>, n°60, 2009년 10~12월호 참조.
(5) Steve Sorrell, ‘Jevons’ Paradox revisited’, <Energy Policy>, Elsevier, 2009년 4월.
(6)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EIA), Annual Energy Outlook, 2010,
www.eig.doe.gov/oiaf/aeo/index.html;
US EIA, ‘Annual history of CO₂emissions from 1949’, www.eia.doe.gov/environment.html.
(7) CREDOC,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 뉴스레터>, n°227, 2010년 3월.
(8) Fabrice Flipo & Cédric Gossart, <디지털 인프라와 환경: 리바운드 효과 억제의 불가능성>, Terminal, 파리, 2009.
(9) Terry Barker, Paul Ekins, Tim Foxon, ‘The macro-economic rebound effect and the UK economy’, <Energy Policy>, Elsevier, 2007.
(10) <에너지 백서> 2003년 11월 7일자. <INSEE Première>, n°1121, 2007년 1월호.
(11) Blake Alcott, ‘Jevons’ paradox’, <Ecological Economics>, Elsevier, 2005.
(12) Michel Gensollen, <2030년의 디지털 세계>, Réalités industrielles, 2009년 5월호.
(13) Horace Herring & Robin Roy, ‘Technological innovation, energy efficient design and the rebound effect’, <Technovation>, Elsevier, 2007.
(14) Hartmut Rosa, <가속화: 시간에 대한 사회적 비판>, La Découverte, 2010. 
 


[박스 기사] 친환경 자동차는 친환경적이지 않다?
 

1975∼2008년 프랑스 자동차의 평균 연비는 주행거리 100km당 8.6ℓ에서 5.4ℓ로 37%가량 향상됐다. 다양한 기술과 접목됨으로써 점점 정교해지는 전자식 연료 분사 시스템 등의 기술혁신 덕분에 더 효율적으로 자동차 엔진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위 자동차의 성능 향상만을 고려하지 않고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쾌적하고 안전한 자동차들이 출시되면서 프랑스인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자동차 구입에 지출한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 각 가구의 전체 지출 중 자동차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 전체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2001년 식비 비중은 14%)과 거의 비슷해진 걸 보면 이는 양적 증가일 뿐 아니라 질적 변화이기도 하다. 자동차 연비가 두 배 가까이 향상됨과 동시에 전체 자동차 대수도 약 2800만 대로 두 배나 증가했다. 기술 발달로 성능 좋은 자동차가 출시되자 자동차 구입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전체 주행거리 증가(+23.6%, 1990~2006년) → 석유 소비 증가(+2.5%) →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10%)로 이어졌다.(1)

 

최고 성능의 자동차 엔진 효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도 매년 석유 소비량이 27만ℓ씩 증가하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자 소비자는 기술혁신을 통해 연비가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친환경’ 자동차 개발 투자 덕분에 가능해진 비용 절감 효과는 자동차 대수 증가로 상쇄되고 있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구축된 문명은 도시를 변형·확장시키면서 대규모 쇼핑센터의 출현을 낳았다. 이는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다. 자동차 보급 확대가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를 심화하면서 사회 전체를 변형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정보 네트워크가 교통체증을 해소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을 품는다. 교통이 원활해지면 물론 시간과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도로 인프라가 개선되면 자연히 차를 몰고 나오는 사람들이 늘고 전체 석유 소비도 늘어난다. 결국 도로는 다시 정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거의 유일하게 CO₂ 배출량 감축에 실패한 부문이 자동차 산업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