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만의 사필귀정, BP는 재수가 없었을 뿐
지난 4월 20일 뉴올리언스 앞바다에서의 원유 시추 플랫폼 폭발로 유출된 기름띠를 브리티시페트롤륨(BP)이 깨끗이 제거하는 날이 올 리는 만무하다. 이번 유출로 멕시코만 해수의 40% 정도가 위험에 처할 전망이다. 홀로 피고인석에 선 BP는 수익의 일부를 에스크로 계정(미국 법률 용어로, 특정물을 제3자에게 기탁하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된 경우 상대방에게 교부할 것을 약속하는 조건부양도증서를 말함)에 예치했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소송이 과연 60년 이상 모든 규제에서 벗어나 있던 석유업계의 일탈에 관한 진상을 밝혀줄 것인가?
원유 유출 차단 작업과 루이지애나 연안 기름띠 제거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4월 20일 사고로 죽은 인부 11명의 가족, 해양오염으로 인한 수천 명의 피해자, 그리고 연안 노동자나 자연보호단체 대표들의 법정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앞서 살펴봤듯, 트랜스오션은 술책을 쓰며 자기 정당화에 들어갔고, 플랫폼 사업자인 브리티시페트롤륨(BP)은 반발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다른 ‘메이저’ 정유업체들은 BP 쪽을 나 몰라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원유 유출이 ‘피할 수 있는’ 사고였으며, 자신들이라면 “이 유정에 대한 시추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1) 1차 재정적 피해 규모 산출을 기다리면서, 백악관은 제3자가 주관하는 배상금 예치 계정인 에스크로를 위해 올해 BP의 이익 배당을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합의안을 준비하고 있다. 정유업체들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결정한 6개월간의 해양 시추 유예 조치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정상 체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정상 체제란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체제에 불과하다.
사고 시추업체가 웬 자축 파티?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버지니아주 레스턴시는 환경 재앙이 벌어진 멕시코만에서 수천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선박 및 법인 등록처인 IRI(International Registries, Inc)의 사무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규모는 작다. IRI의 사업은 그리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자사의 기업 고객에게 법규가 더 느슨한 한 나라에 선박 ‘주소지’를 올려 해양 규제를 피할 것을 제안한다. 그 나라가 바로 태평양 중심에 위치한 인구 6만2천여 명의 마셜제도공화국이다. 이 분야에서 IRI는 세계에서 경험이 가장 많은 회사임을 자부한다. IRI는 시추뿐 아니라 운송까지 관할한다. IRI의 고객 가운데에는 트랜스오션뿐 아니라 BP도 포함돼 있다.
2009년 마셜제도의 해양 등록대장은 유조선 총 221척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대형 정유업체들의 나라인 미국에 등록된 것보다 네 배나 많은 것이다. 파나마나 라이베리아처럼 마셜제도 또한 ‘비밀 관할 지역’을 제시한다. 편의 선적(세제 규칙이나 선원 자격 등 해운 관계 규칙이 엄격하지 않은 나라에 편의상 선적을 두는 행위-역자)을 제공하는 마셜제도공화국은 조세피난처와 역외 금융센터 구실을 한다.
마셜제도의 등록대장에 편의 선적을 올리고 이곳에 합자조합, 유한책임회사 등을 세우려고 반드시 현장을 방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몇 통의 서신이나 팩스,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본지의 취재를 통해서 확인됐다.
“본국의 규제 장애를 벗어나려는 한 고객의 대행 업무”라는 구실로, 본지는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 사고 이후 IRI 사무국과 접촉을 시도했다. 첫 번째 전자우편을 통해 우리가 안 사실은 마셜제도에서 합법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 이에 소요되는 총경비가 650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상대는 우리에게 “연간 갱신 비용으로 450달러가 더 들어간다”는 점을 명확히 짚어주었다.
회사 정관은 “고객이 분명히 요구할 경우에만” 공시되며, 우리는 곧바로 마셜제도 관할 지역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으며, 영업 기밀 유지 수준도 비할 데가 없다.
규제 피해 마셜제도로 몰려가다
우리 고객은 선박 한 척의 주소지를 마셜제도로 올리고 싶어했고, 그 선박의 규모는 BP 플랫폼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런 내용으로 전자우편을 보내자, IRI는 우리에게 1만5천 달러까지 올라가는 ‘지급기일 기재 장부’를 제시했고, 여기에 (등록t(2)당 15센트라는) 약간의 연간 수임료가 더해졌다. 영업 수완이 뛰어난 상대는 “15년 미만의 선박을 10척 이상 동시 등록할 경우” 50% 할인 혜택을 주겠다며 자진해서 한발 물러섰다. 매력적인 제의였다. 세금과 로열티 지급을 피할 수 있고, 노동법에서도 해방될 뿐 아니라,(3) 모든 환경 규제에서도 벗어난다. 세계 최대 원유 시추 하도급 업체인 트랜스오션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트랜스오션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보유 선박 83척 가운데 29척이 마셜제도에서 등록됐고, 나머지는 대부분 라이베리아와 파나마 깃발을 달고 항해 중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상 대리인은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가령 사고가 나서 당국이 우리 고객의 신원을 조사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상대는 즉각 우리를 안심시켜준다. “만일 당국이 주주와 회사 지도부 등과 관련한 추가 정보 공시를 요구하려고 우리 등록대장이나 관할 지역을 조사할 경우, 우리도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해주세요. 모든 업무 조직 및 운영을 해당 고객의 변호사와 운영진이 직접 담당하니까요. 이 말은 운영진과 주주들의 이름이 마셜제도에서 공개되지 않는 한 우리가 이를 밝힐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명단 공개는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4) 이윽고 우리는 마음을 놓았다.
IRI 같은 기업은 미국의 대외 정책이 빚은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이런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고 있으며, 석유가 중요한 지리·전략적 자원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1948년 스탠더드오일(5)과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국무장관의 지원을 받아, 라이베리아는 첫 ‘공개 해양 등록대장’을 만들었다. 이것의 관리는 뉴욕에서 스테티니어스 어소시에이트-라이베리아라는 기업이 담당한다. 역사가 로드니 칼라일에 따르면, 당시 라이베리아 해양법은 “스탠더드오일이 먼저 열람하고, 수정하고 승인했다”(6)고 한다.
1990년대 초까지, 라이베리아를 정유업체의 안식처로 만든 건 바로 (은행과 기업의 합병 및 매수를 통해 스테티니어스의 뒤를 이은) IRI였다. 하지만 내전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찰스 테일러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IRI에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부렸다. 이에 따라 전쟁 때는 물론이고 라이베리아 정부의 합법적인 소득에서 70%를 기여하던 이 회사와의 관계가 단절됐다. IRI는 마셜제도로 눈을 돌린다. 과거 일본이 점령한 마셜제도는 1947년부터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았고, 1986년에 독립했다.(7) 마셜제도로 눈을 돌린 IRI는 이곳에서 새로운 편의 등록 계획을 추진한다. 모든 고객을 마셜제도로 ‘전입’시켰고, 15년 만에 마셜제도공화국은 주요한 세금 및 규제 피난처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미국이 부추긴 ‘세금 엑소더스’
하지만 전세계 유조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여전히 라이베리아에 등록돼 있다. 이곳의 편의 선적은 이제 스테티니어스가 아니라 라이베리아 국제 선박 및 법인 등록처에서 관리하며, 워싱턴 교외 레스턴에서 13km 떨어진 버지니아주의 빈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총 등록t 9600만 이상의 선박 3100척 이상, 즉 전세계 선박의 10%가 라이베리아에 등록돼 있다”며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축하고 있다.(8)
존 크리스텐슨은 “라이베리아와 마셜제도의 해양 등록대장이 워싱턴에서 몇km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라고 지적한다. (영국의 조세 피난처인) 저지 섬의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이후 ‘조세정의네트워크’라는 국제단체를 설립한 존 크리스텐슨은 이런 상황에 모순은 없다고 설명한다. “라이베리아와 마셜제도의 두 등록대장은 미국 시민의 보호를 위해, 특히 바로 지금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를 우회하고자 미국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우리가 IRI와 주고받았던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IRI는 찬양 일색이던 어조를 갑자기 한 톤 내리고 싶어했다. “만일 외국 국기를 단 이동 해양 시추 플랫폼이 다른 나라의 영해에서 작업할 경우, 선주는 작업 허가를 받기 전 그 나라의 요구 사항 일체에 동의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마셜제도에 플랫폼을 등록한다고 해서 해당 플랫폼 사업자가 미국 법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과 관련한 공개 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원유 플랫폼에 대해 “어떤 감시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 광물관리국 청문회(9)를 통해 사업자와 소유주가 “자체적으로 확인을 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기준을 스스로 세운다”는 게 드러났다는 점이다.(10) 훙응우옌 해안경비 대위는 이렇게 요약한다. 규칙은 “산업 기준에 따라 구상되고, 산업에 의해 만들어지며, 제정 혹은 유지 때도 정부 감독 없이 산업에 의해 수립된다. 이게 좋은 것인가?” 광물관리국의 지역 본부장인 마이크 소셔는 순순히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몇 년 전 있었던 또 다른 조사에서는 광물관리국이 BP를 유전안전규정 준수 대상에서 제외해주었다고 밝혔다. 당시 내무부 총괄 감찰관이던 얼 드배니는 이 기관의 업무에 대해 “윤리적으로 무책임”하다고 규정했다. 에너지 부문의 기업들로부터 주기적으로 모종의 ‘선물’을 받은 건 아니었을까?(11)
업계 스스로 만들고 어긴 규칙
안전 면에서 산업 규제가 적용되면 대기업에 엄청난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바로 감시 기준, 특히 폭발 방지 시스템 등을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석유 및 가스 부문에 속하는 400개 기업의 대표가 소속된 미국석유협회(API) 같은 전문기구도 이를 거들고 있다.
BP가 대선 후보에게 주는 자금의 ‘프리미엄 신입 회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리처드 체니 부통령이 움직이는 국가에너지정책발전그룹의 (매우 은밀한) 압력 아래에서 부시 행정부 시절에 자리잡힌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2001년 1월, 부시 대통령 취임 일주일 뒤에 구성된 이 실무그룹은 8주 만에 에너지 관련 집행 명령 제13211호를 만들었다. 자연자원보호협의회(NRDC)에 따르면, 미국석유협회 문건의 기본 ‘골격’과 ‘결론’을 그대로 가져온 만큼 작업이 더욱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심지어 주요 단락 가운데 하나는 원본과 ‘거의 일치’했다.(12) 실무회의는 대개 석유 부문 주요 경영자들과 사석에서 만나 이뤄졌으며, 그 가운데에는 존 브라운 전 BP 최고경영자(CEO)도 포함됐다.(13)
실무그룹이 준비한 1만3500쪽 분량의 서류 사본을 얻은 자연자원보호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부 관계자가 수십억 달러의 기업보조금 계획과 보건이나 환경 관련 부문의 강도 높은 보호막 제거를 결정하는 동안, 에너지 부문 대기업들은 백악관 실무그룹의 펜을 쥐고 있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을 외치다
이런 호사를 누리던 시절, ‘비밀’이 보장되는 나라에 등록된 294개 자회사의 총수인 BP는 위험 요소를 줄이면서 시추 작업 하도급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트랜스오션으로부터 딥워터 호라이즌을 임대했고, 2013년까지 일일 임대료는 100만 달러로 계약했다. BP는 이런 식으로 해양 원유 분야에서 활동 부문을 넓혀갔다.
지난 4월 20일, 밀폐 작업이 필요한 유정 하나만 빼면 플랫폼 설치 작업은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었다. 이 플랫폼의 일일 소요 비용 앞에서 BP 지도부는 트랜스오션의 안전 절차를 무시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폭발 방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의식한 이들에게 목표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비운의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선거운동 구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페일린이 ‘연안 석유 시추(drill)를 통해 미국이 에너지 독립을 이뤄야 한다’며 내세웠던 구호-역자)에 따라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생태계가 복원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오션의 홍보부장은 ‘급한 치과 용무’로 우리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 5월 18일 BP 대표인 토니 헤이워드의 “이번 재앙으로 인한 환경적 영향은 아마 매우 경미할 것”이라던 공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잊혀질 듯하다.
글•카디자 샤리프 Khadija Sharife
<Aid to Africa: Redeemer or Coloniser?>(Pambazuka Press·Cape Town·2009) 공저.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Oil Executives Testify’,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2010년 6월 16일.
(2) 선박 탑재 용적을 정하는 단위. 1등록t은 2.83㎥.
(3) 프랑수아 뤼팽, ‘상업적 항해를 위한 산업적 좌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11월.
(4) 이 부분을 강조한 건 상대방이었다.
(5) 스탠더드오일은 이후 모빌오일, 이어 엑슨으로 거듭났다.
(6) Andrew Leonard, ‘The gulf oil spill spreads to the South Pacific’, Salon.com, 2010년 5월 13일, Rodney Carlisle, ‘The ‘American century’ implemented: Stettinius and the Liberian flag of convenience’, <The Business History Review>, vol. 54, n° 2, Bonston, 1980.
(7) 마셜제도의 콰절레인 환초에는 미군기지가 있으며, 자유연합협정 차원에서 군도는 미군의 보호와 (1990년부터 대략 10억 달러에 달하는) 상당한 재정 지원 혜택을 받고 있다.
(8) www.liscr.com.
(9) 내무부 내에서 광물자원 개발 감독과 관련 세금 징수를 담당한다.
(10) David Hammer, ‘Kenner hearing: Some coast guard oil rig safety regulations outdated’, <The Times-Picayune>, New Orleans, 2010년 5월 12일.
(11) Charlie Savage, ‘Sex, drug use and graft cited in Interior Department’, <뉴욕타임스>, 2008년 9월 10일.
(12) NRDC, ‘The Cheney energy tesk force’, 2002년 3월 27일 성명.
(13) 당시 BP의 경영자는 브라운 경이었다. 현재 그는 영국 부처의 예산 운용 타당성 검증을 담당하는 (주로 사장단 출신의) ‘현인’ 위원회를 이끄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