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골칫거리가 된 체첸 대통령

이슬람교를 앞세운 체첸 독재정부

2018-05-31     안 르위에루 | 파리 낭테르대 교수, 오드 메를렝 |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두 차례 패배한 후, 체첸 반정부군은 대부분 지하디스트가 됐다. 이에 맞서기 위해 친 러시아 성향의 체첸 정부는 수피 이슬람교의 전통과 일부다처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테러 재발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질서 유지를 위해 러시아가 세운 현 체첸 정부는 크렘린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2015년 1월 11일, 파리. 4일 전에 발생한 테러로 목숨을 잃은 <샤를리 에브도>(프랑스의 대표적 풍자 전문 주간지-역주) 기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수백만 명이 함께 행진했다. 60여 개국의 정상들도 참가해 연대를 표시했다. 그리고 1주일 후 체첸 자치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서는 북캅카스 전 지역(체첸을 비롯해 아디게야, 다게스탄, 잉구세티아 등 북캅카스 산맥 북쪽에 있는 러시아연방 소속 자치공화국-역주)에서 온 100만여 명의 무슬림이 테러 후 처음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의 1월 14일 자 표지에 마호메트의 캐리커처가 실린 것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We love prophet Muhammad(우리는 예언자 마호메트를 사랑한다)’라고 적힌 하트 모양의 수많은 붉은색 풍선이 시위대의 머리 위에서 춤을 췄으며, 이 행사를 제안한 체첸 공화국의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은 ‘다시는 마호메트의 이름을 모욕하게끔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카디로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신경을 건드릴 것이 분명함에도, 러시아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숨김없이 표출했다. 미얀마 로힝야족(미얀마 서부에 거주하는 무슬림 소수민족-역주)의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그는 “모스크바가 로힝야 족을 박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악마들을 지지한다면, 나는 모스크바의 입장을 지지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연방정부에 대한 카디로프 대통령의 비판은 2000년대 중반 러시아와 체첸 정권이 맺은 협약의 유효성에 대해 의심하게 한다. 협약의 골자는, 모스크바가 체첸의 신정부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대신 체첸은 모스크바에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중반 제정 러시아의 강제합병과 소련연방 해체 시 독립운동을 펼쳤던 체첸 민족의 오랜 저항의 역사와 노선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두 번의 전쟁을 치른 후 체첸에 친 러시아 정권이 들어섰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체첸을 침공했다. 이것이 1차 러시아-체첸 전쟁(1994~1996)이다. 옐친 대통령은 소련을 붕괴시켰던 분리 독립운동이 이번에는 러시아연방을 해체시키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1차 체첸 전쟁이 끝나고 평화협정이 맺어졌으며, 정교분리를 천명한 온건파 분리주의자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샤밀 바사예프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런 상황임에도, 푸틴 대통령은 아무 증거 없이 몇몇 테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체첸에 물으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9월 2차 러시아-체첸 전쟁을 일으켰다. 두 번의 전쟁으로 체첸의 인구는 크게 감소했고(수만 명이 사망하고 25만 명이 난민이 됐다) 그로즈니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역이 참혹하게 파괴됐다.

푸틴 대통령은 온건 분리 독립세력과 협상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결과 일부 반군세력이 급진화돼 무장투쟁과 테러가 확산됐다. 또한 최근에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지하디스트 단체에 합류하는 반군들이 늘어났다. 2007년 국가 출범을 선포한 캅카스 에미레이트(북캅카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츠케리아 체첸 독립공화국의 후계 조직-역주)는 2015년에 이슬람국가조직(IS)에 충성을 맹세했고 이츠케리아 국가 설립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하디스트와의 동맹을 선택했다. 이츠케리아는 1세대 체첸 분리 독립주의자들이 세웠으나 얼마 가지 못했던 공화국(1991~1994, 1996~1999)의 이름이다. 

‘반테러 작전’은 2009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하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반군과 연방군 사이의 무력충돌은 몇 년 전부터 체첸 내부의 충돌로 전환됐다. ‘체첸 문제화하기’란 현지인을 탄압하는 ‘더러운 일’을 현지 정부의 손에 맡기는 모스크바의 전략을 말한다. 러시아는 2000년 2월 그로즈니를 탈환하고 몇 개월 후 이슬람 율법가인 아흐마드 카디로프를 임시 행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2003년 대선에서도 카디로프를 지지했다.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그의 아들인 람잔은 아버지의 개인 경호부대를 지휘했는데 2004년 아버지가 암살당하자 권력을 장악하고 2007년에 공식적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는 연방군을 오래 주둔시키는 것보다 체첸인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팍스 카디로프스카(Pax kadyrovska)’를 주창했다. 

하지만 그것이 갈등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반정부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목소리도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철권통치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지만 갈등은 속에서 곪아가고 있다. 올해 1월 9일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얼’의 체첸 책임자인 요윱 티티에프(Oyoub Titiev)는 자신의 차에서 마리화나가 발견돼 체포됐다. 매우 낯익은 사건 조작이다. 티티에프의 체포는 수많은 협박, 괴롭힘, 암살에 이르는 기나긴 사건목록 중 하나에 불과하다. 2009년에 역시 메모리얼의 간부인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가 암살당했고 2006년에는 체첸에서 자행되는 고문을 취재하고 있던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피살당했다. 메모리얼은 체첸을 ‘러시아 내에 있는 독재국가’라고 부른다.  

체첸은 프랑스 3개 도(道)를 합한 크기의 작은 나라지만 러시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0년대에 일부 러시아 군인과 경찰은 체첸에서 사용했던 소탕 작전이나 포위 작전 같은 기술을, 일반 범죄자 체포에도 활용했다.(1) 게다가 러시아 언론은 체첸인 전체, 나아가 북캅카스인 전체에 낙인을 찍고 있다. 이에 체첸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들이 ‘체첸 증후군’이라 불리는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러시아 내에 외국인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이전에도 외국인 혐오가 러시아 사회 내에 잠재해 있었으나, 식민지와의 갈등 문제로 더 심해진 셈이다.

현재 가혹한 독재정권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러시아 전역 그리고 외국에까지 하수인들을 보내 반정부주의자들을 위협하고 제거하고 있다. 2015년 2월 발생했던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보리스 넴트소프(러시아 야당 지도자이자 전 부총리)의 암살이 좋은 예다. 결과적으로 체첸 문제는 러시아 정부가 반테러법과 ‘극단주의’ 방지법을 악용해 독재적인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2016년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를 14세로 낮춘 바 있다.

2007~2015년 러시아 정부는 그로즈니를 품에 두기 위해 연평균 600억 루블(약 1조 1,200억 원)을 썼다.(2) 연방 예산으로 지은 번쩍번쩍한 새 건물과 반군을 소탕했다는 정부 발표의 이면에 정부의 권력 남용은 일상이 됐다. 2017년 말 기괴한 실종사건이 여럿 발생했다.(3)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종자의 수가 수백 명이 넘는다. 이들 모두, ‘치안요원’이라고 신분을 밝히며 “반정부 동조자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복면을 쓰고 무장한 이들이 집으로 들이닥친 후 사라졌다. 독재정권을 SNS에 비판한 네티즌, 블로그에 이츠케리아 체첸 공화국을 언급한 블로거 등 거의 모든 체첸인들이 공포 속에 살고 있다. 

2014년 아슬란 마스하도프 내각에서 부총리를 했던 루슬란 쿠타예프는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죄목은, 공개적인 기념을 금지하는 정부 정책을 위반하고 1994년 2월에 스탈린이 시행했던 강제이주정책 70주년을 기리는 콘퍼러스를 개최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거짓 이유로 체첸인 전체를 일주일 만에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주하는 동안 많은 체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체첸 정부는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탄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체첸인들의 사생활에까지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자들은 일터나 학교에서 스카프로 모발을 가려야 하고 남자들의 수염 길이도 제약된다. 정부는 이혼한 부부에게 공동생활을 명령하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했다. 

“하라면 해야 한다. 거부는 생각도 못 한다”

독재만으로 체제를 지속시킬 수는 없다. 정권은 정통성이 필요하고 그래서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겨야 한다. 4월 16일이 체첸어(語)를 기념하는 국경일로 정해졌고 최근 몇 년 동안 체첸 민족의 우수성을 찬미하는 박물관이 여러 곳 개관했다. 산악마을의 성벽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그로즈니 국립박물관에는 전통악기와 전통의상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맞서 싸웠던 역사는 찾아볼 수 없고, 철저하게 모스크바에 대한 충성심만 있는 곳이다. 민속기념품 전시에 국한된 체첸의 정체성은 러시아의 과도한 애국주의와 궤를 함께한다.(4)

2017년 11월 4일은 ‘민족 통합의 날’이다. 러시아 다른 지역에서는 그냥 지나갔지만, 그로즈니에서는 며칠 전부터 ‘하나 된 러시아’, ‘11월 4일 민족 통합의 날’, ‘우리는 하나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넘쳐났다. “당연히 11월 4일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한 대학교수가 행사 전날 우리에게 한 말이다. “아침 일찍 학생들과 만나서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참여 거부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1999년에 그로즈니에 폭격을 명령했던 장본인의 이름을 딴 블라디미르 푸틴 대로에 꽉 들어찬 군중의 물결 위로 푸틴 대통령과 카디로프 대통령 부자의 초상화가 둥둥 떠다녔다. 거리 곳곳에서 나란히 휘날리고 있는 체첸 깃발과 러시아 국기는 카디로프 대통령과 크렘린이 맺은 협약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듯하다. 모스크바와 잘 지내는 것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카디로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신망을 잃어 소수파가 된 과거 분리독립주의 정권보다도 더 많은 자치권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체첸은 러시아를 향해 충성 맹세를 하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힘을 과시하고 있다. 2014년 12월 카디로프 대통령은 ‘푸틴 보병대’를 과하게 무장시켜 열병식을 했다. ‘푸틴 보병대’는 크렘린을 위해 전 세계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직접 통제는 받지 않는다. 체첸 군대는 2008년 여름 러시아-조지아 전쟁(조지아가 친 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를 침공하자,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에 있는 자국민 보호 명목으로 개입해서 조지아와 전투하게 됨-역주) 당시에 남오세티야에 처음 시험 투입된 후 여러 해외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에서는 친 러시아 성향의 반정부군 편에서 싸웠고, 2016년 12월 시리아에 파병된 러시아 국방부 소속 체첸 헌병부대는 2018년 2월에야 귀국했다.  
체첸 사회에서 종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자 체첸 대통령은 이슬람을 적극적으로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 교통 표지판마저 종교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알라의 이름으로 허용 속도 준수. 시속 40km를 준수해 자신과 형제자매를 보호하자.’ 2017년 10월 그로즈니시 입구에서 우리가 본 표지판에 적힌 문구다.

체첸의 종교였던 수피파 이슬람은 스탈린의 탄압과 강제이주 정책으로 탄압을 받았고 걸프 지역에서 온 경쟁 교파가 교세를 확장하면서 많이 소외됐지만 2000년대 말부터 정치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5) 예배할 때 신의 이름을 읊조리는 ‘디크르(dhikr)’와 같은 수피 의식이 다시 도입됐고 카디로프 대통령도 디크르 의식을 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러시아의 다른 무슬림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엄격주의가 적용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법으로 금지하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있고, 정교분리 원칙이 연방헌법으로 명시돼 있는데도 여성들은 관공서와 직장에서 스카프를 써야 한다. ‘전통’이라고 불리고 민족주의가 가미된 체첸의 공식 이슬람은 정권에는 유리한 요소가 많다. 특히 북캅카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캅카스 에미레이트가 채택하는 정치적, 종교적 살라피즘에 대항할 수 있고 연방정부의 이념에 부합하는 엄격주의 이슬람을 추구할 수 있다. 

카디로프 대통령의 야심은 원대하다. 국내 정치를 위해 종교를 도구화하고 이제는 러시아 내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에 따른 마찰은 불가피했다. 2016년 여름 그로즈니에서 열린 국제 수니파 이슬람 회의에서 살라피즘과 와하비즘이 ‘길을 잃고’ ‘진실에서 멀어졌다’고 비난하는 율법 해석(파트와, fatwa)이 내려졌다. 이 결정은 수니즘을 공식교리로 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불편하게 했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모스크바로부터 주의를 받고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러시아가 아랍 국가들과 새로운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노력 중이고(카디로프 자신이 러시아와 아랍세계의 중재자 중 한 명이다.) 체첸도 아라비아반도의 투자자들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의 80%가 연방 예산이고 러시아가 지출을 줄이는 상황에서 3년 전부터 경제와 무역 교류를 늘려가고 있는 아랍에미리트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체첸에는 매우 중요하다. 체첸은 공무원 봉급에서 비공식적이고 의무적으로 공제해 조성한, 매우 불투명한 ‘카디로프 기금’으로 시리아 알레포에 있는 우마이야드 이슬람사원 재건에 1,400만 달러를 쾌척했다. 러시아 안보회의의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는 ‘국제 안보를 위한 공로’를 인정해 카디로프 대통령에게 훈장을 서훈하며 체첸의 ‘관대한 행위’에 화답했다. 

“가족에게도 내 생각을 숨겨야 한다”

체첸 정부는 사회가 안정됐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체첸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무장공격의 형태를 제외하고 체첸인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가족에게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 2017년 10월 칠흑 같은 밤, 안조르 N.이 차를 운전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에게 한 말이다. 

계간지 <도쉬>는 체첸 내 유일한 독립언론이다.(6) <도쉬>의 편집실은 모스크바에 있고 기자들은 끊임없이 탄압받고 있다. 철저하게 통제되는 인터넷과 SNS상에서 체첸인들의 불만족과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저항가들처럼 아이샤 이나에바를 비롯한 체첸인들이 주저하지 않고 카디로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2015년 12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아이샤 이나에바는 정권의 착취행위를 비판하며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문제의 발언만 삭제하고 국영방송을 통해 다시 배포됐다. 이나에바의 남편은 ‘부인 하나 단속하지 못한’ 남자라는 손가락질받으며 공개 비판을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공개비판은 점점 더 확산하는 처벌방식으로, 가족끼리 고발하게 하고 사회적 수치심을 느끼게 해서 결국 고향을 떠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공식 이슬람법에 부합하지 않는 종교 행위는 정치적 저항으로 여겨진다. ‘전통’ 이슬람 법학자이며 인권활동가인 젤림칸 P.(7)는 2016년 안전을 이유로 가족과 함께 체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90%의 체첸인은 국가 종교 지도자들의 교리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이슬람 사원으로 갈 것이다. 살라피스트 사원의 이맘, 캄자트 추마코프나 이자 체코에프의 설교를 들으러 국경(8)을 넘어 잉구셰티야에 가는 사람도 있다.” 

2014년부터 경찰을 공격하는 무장 저항이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2017년 3월 국가수비대원들이 공격받은 사건이 일어난 후 저항 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졌고 그 반작용으로 정권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도 커졌다. 메모리얼 단체의 티티에프 체포 사건이 연방 조사위원회로 이관됐고 티티에프가 체포된 후 발생한 잉구셰티야에 있는 메모리얼 사무실의 방화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체첸 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카디로프 대통령의 얼굴과 같이 실려 있는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문구가 더욱 공허하게 울렸다.  


글·안 르위에루 Anne Le Huérou  
사회학자, 파리 낭테르대 러시아학과 교수
글·오드 메를렝 Aude Merlin 
브뤼셀 자유대 정치학과 교수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Anne Le Huérou et Élisabeth Sieca-Kozlowski, ‘Un syndrome tchétchène?(체첸 신드롬?)’, dans Nathalie Duclos (sous la dir. de), ‘L’Adieu aux armes? Parcours d’anciens combattants(무기여 잘 있거라? 참전용사가 걸어온 길’, Karthala, coll. <Recherches internationales>, Paris, 2010.
(2) ‘La Tchétchénie en vingt faits(스무 가지의 사실로 알아보는 체첸)’ (러시아어), RBK, 2016. 2. 1, ,www.rbc.ru
(3) 미해결 실종사건 사이트 Kavkaz-uzel.eu. 참조
(4) Marlène Laruelle, ‘Le kadyrovisme, un rigorisme islamique au service du système Poutine ?(카디로프주의는 푸틴 체제를 위한 이슬람 엄격주의인가?’, Russie.Nei.Visions, n° 99, Institut français des relations internationales (IFRI), Paris, 2017.3.
(5) Ibid.
(6) Cf. www.doshdu.ru
(7) 가명처리 했음.
(8) 체첸과 잉구셰티야는 러시아연방에 소속돼있는 연방공화국이다. 지리적으로 인접국이고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는 체첸잉구셰티아 공화국을 결성하기도 했다.



 

박스기사

우호적 관계의 종말?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 공화국을 통치해 온 8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어떤 불만도 공개적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2014년 12월 4일 체첸 공화국의 수도인 그로즈니 한복판에서 이슬람 반군과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2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로부터 며칠 뒤, 체첸 당국은 연좌제 도입을 선언하면서 반군 가족들의 집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한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모든 국민들은 현행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그 사건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지, 2015년 4월 초에는 카디로프의 재임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푸틴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카디로프는 곧바로 대통령직 사퇴 의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슬람과 북코카서스 전문가 알렉세이 말라첸코는 말한다. “일종의 허세였습니다. 러시아에 달리 대안이 없다는 것과 체첸의 평화는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방편이었습니다.”

그 후 푸틴이 카디로프에게 체첸의 대통령직을 계속 맡아주고 연방 측(경찰, FSB/구 KGB 등)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연출됐고, 결국 카디로프는 체첸의 수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의 러시아 프로그램 총괄자인 타냐 록치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근 비판적인 의견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카디로프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체첸을 러시아연방 소속으로 유지하는 것)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입니다. 2014년 12월의 총격전은 반군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줬습니다. 그 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카디로프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체제에 반대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2007년부터 묵인해왔던 카디로프의 각종 만행, 대통령 부정당선, 연좌제, 체첸 및 해외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카디로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들입니다.”

푸틴은 카디로프 체제와 명목상 거리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내 몇몇 정부 부처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노력 중이다. 북코카서스 전문가인 에카테리나 소키리안스카야가 설명한다. “카디로프는 러시아에 적이 많습니다. 체첸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분리주의자 세력에 맞서 싸웠던 군부와 FSB는 러시아가 오늘날 체첸에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카디로프는 틈만 나면 체첸이 현재 전례 없는 자유와 독립을 누리고 있다고 떠벌리곤 합니다.”

체첸의 하급 군인들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카디로프 체제에 불리한 정보들을 외부로 흘리고 있다. 카디로프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권 수호자들이 모두 떠나버려 체첸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어진 지금, 이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글·레지 장테 Régis Genté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