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사라진다

2018-05-31     필립 데스캉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오랫동안 유럽은 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이민을 오는 이들이 많은 지역이 됐다. 특히 서유럽의 경우 인구유입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유럽의 중부와 동부에서는 발칸반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인구유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9~11면 기사 참조). 

헝가리에서는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로 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12면 기사), 독일의 일부 지역은 공동화 현상까지 겪고 있다(13면 기사). 의학의 발전 덕분에 수명이 길어졌지만, 수명연장의 꿈이 실현되자 생활조건과 환경의 악화 문제가 곧 대두됐다(14면 기사). 결론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유럽의 인구 수는 전반적으로 크게 증가했고,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활발한 인구 이동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랑, 삶, 그리고 죽음에 관련된 문제….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출산율, 혼인율, 출생률, 사망률 등의 인구통계학적 수치와 용어는 바로 현시대의 이야기, 고민거리, 변화를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유럽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유럽의 인구는 1993년 이래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몇 년 후면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유럽 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인구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1)

변곡점은 1989년 말,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을 때였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독일의 재통일이라는 강력한 사건을 계기로 노동과 부가 재분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서유럽의 인구 변화에 미쳤던 영향보다 더 날카롭고 뚜렷한 영향을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미쳤다. 1950년과 1970년 사이, 두 개의 거대한 지정학적 시스템이 공존하게 되면서 엄청난 수준의 집중 현상이 일어났다. 지역과 관계없이 유럽 전역에서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해 출생률을 크게 밑돌게 됐으며, 수명은 급격하게 길어졌다. 동유럽 인구는 서유럽 인구를 서서히 따라잡아, 1950년에는 두 지역 간 인구 격차가 6천만 명이었지만 1989년에는 3천만 명으로 줄어들었다.(2) 

그리고 상황은 전반적으로 뒤죽박죽이 됐다. 출생률과 사망률이 엇비슷해지면서 인구통계학적 과도기가 끝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크게는 동유럽의 경제적·사회적 변동 때문이었다. 당시의 프랑스 인구와 우크라이나 인구를 비교해보면 알 수가 있다(9면 ‘역사의 평행이론’ 기사 참조). 1989년까지는 양국의 인구 증가 곡선이 평행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 이후 프랑스의 인구는 9백만 명이 늘었고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그만큼이 줄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30년 동안 인구변화 양상에 따라 유럽의 국가들은 3개의 그룹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그룹은 유럽 북서부의 국가들(북유럽, 영국, 베네룩스 3국, 스위스, 프랑스)로, 출생이 사망보다 언제나 더 많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그 이후

그리고 이런 자연적 증가에 전입·전출에 의한 사회적 증가까지 합치면, 그 수치는 두 배로 늘어난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국가들의 총인구는 1989년 이래 1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출산율이 유럽 평균을 웃도는 이 국가들도 인구 노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1945년과 1965년 사이의 인구급증과 수명연장이 주된 원인이다.

두 번째 그룹에 속한 국가들은 독일과 남부 유럽으로, 자연 증가는 ‘0’이거나 마이너스이지만 유입되는 인구가 많은 덕분에 플러스로 유지되고 있다. 독일은 1960년대 말부터, 그리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는 1970년대 초부터 출산율이 급락해, 지금은 가임 여성 1명 당 출산율이 1.4~1.5명 선이다. 이는 세대교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점인 2.1명보다 낮다. 독일은 주변국들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끌어들인 덕에 인구감소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지도 참조). 독일의 경우 1987년 이후 전입/전출에 의한 사회적 증가는 누적 분까지 합쳐 무려 1천만 명에 이른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1980년대 초 출산율 급락 현상을 겪었고 1990년대부터는 외국인들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덕분에 스페인의 인구는 6백만 명이 증가했다. 이 외국인들은 모로코, 라틴 아메리카, 중부 유럽 출신이 대부분이고, 영국과 독일의 퇴직자들을 포함해 해외 이민을 떠났다가 스페인으로 되돌아온 역이민자들도 상당수다. 영아사망률, 수명 등 몇몇 지수들을 보면, 이 세 국가는 1970년대 중반까지 독재정권 하에 있었던 탓에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비해 뒤처져 있다가 그 이후부터 발전이 진행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0년대 말까지는 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가 그 이후에는 이민을 오는 수가 크게 증가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져 인구 노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공산주의에서 가장 힘든 것은 
공산주의가 끝나는 것”

세 번째 그룹에는 러시아와 그 주변국들을 제외한 유럽 중부 및 동부의 국가들이 모두 해당된다.(3) 이 그룹에 속한 국가들은 자연적 증가도, 전입·전출에 의한 사회적 증가도 모두 마이너스다. 이런 농담이 있을 정도다. ‘공산주의에서 가장 힘든 것은 공산주의가 끝나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루마니아의 인구는 3,200만 명이나 감소했다. 1987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인명손실은 루마니아의 주변국들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1987년에 비해 몰도바는 -16.9%, 우크라이나는 -18%, 보스니아는 -19.9%, 불가리아와 리투아니아는 -20.8%, 그리고 라트비아는 무려 -25.3%의 인구감소를 겪었다. 만일 프랑스의 인구가 1987년 이후 1/4이 줄어 현재 4,100만 명에 불과하다면 과연 어떻겠는가?

이 지역은 1989년 이전에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출산율이 약간 더 높았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사망률은 높아지고 수명은 더 이상 늘지 않으면서 인구감소가 시작됐다. 해당 국가들의 의료 시스템은 전염성 질병에는 효과적으로 작용했지만, 심혈관성 질병과 암을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 다른 국가들과 보건 부문의 격차가 심해지자, 구소련 당국은 1975년부터 일부 자료의 공개를 중단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맞닥뜨리면서, 특히 남성들을 중심으로 모든 형태의 사망률이 치솟았고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사례들이 있는데, 동독지역의 경우 1990년 이후 3년 만에 경화증 환자와 교통사고 건수가 2배로 늘었고 여성 1명 당 자녀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수명을 포함해 많은 수치들이 서유럽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유럽의 중부 및 동부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젊고, 교육수준이 높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대담한 경향의 인구 계층이 대거 유출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동의 자유를 누리고 새로운 환경을 즐기면서, 많은 젊은이들은 예정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이민을 택한다.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와 빈의 경우처럼, 동일 노동에 대한 임금이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소셜 덤핑(Social dumping)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이런 유형의 이민은 아프리카에서보다 더 빈번하게 나타나, 세 번째 그룹에 속한 모든 국가에서 1987년 인구의 10% 이상이 이와 같은 이유로 본국을 떠났다. 특히 라트비아는 인구의 16%, 몰도바는 17.1%, 리투아니아는 17.8%가 여기에 해당됐다. 유럽 관련 정책에서도 소외되고, 해외기업들은 이주를 꺼리는 상황 속에서, 이 국가들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특이하게도 슬로베니아는 인구통계학적으로 두 번째 그룹에 근접해 있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충격요법이 아닌 점진적인 접근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체코의 경우도 일부 해당되는데, 체코는 1992년부터 서구의 전문가들이 강요한 임금 제한 정책을 폐지하고 중소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마지막으로, 알바니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바 등의 발칸반도 국가들에서 자연적 증가는 0보다 크고 사회적 증가는 0을 크게 밑돈다(알바니아의 경우 -37.6%). 그러나 최근에 출산율이 유럽 평균 이하로 내려가면서, 이 국가들도 조만간 세 번째 그룹에 속하게 될 전망이다.

출산율,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비례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높은 조기 사망률로 인해 인구 노령화가 늦춰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력 부족 현상, 퇴직자와 환자들에 대한 부담 증가 등 인구 노령화에 따른 문제들은 유럽 모든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3개 그룹의 상황은 각기 다르다. 인구 노령화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어 몰도바의 1인당 평균 자산은 룩셈부르크의 1/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출처: 세계은행).
세대 간 균형을 얻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해묵은 개념을 버리고 사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혼외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북서부 국가들). 인구통계학자인 알랭 모니에에 의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모든 정책들이 자녀가 있는 여성의 사회 활동을 권장하고, 가족의 미래를 침착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하며,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쓴다.”(4) 남부 유럽 국가들과 같이 남성들이 사적인 영역(자녀의 보호, 육아휴직,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출산율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1976년 독일민주공화국에서, 그리고 1980년대에 스웨덴에서 실행됐던, 단순히 출산율만 높이기 위한 정책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정책이 동반돼야만 부모는 원하는 자녀 수만큼 출산을 계획할 수 있다고, 인구통계학 관련 단체는 강조한다. “커플들의 자녀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은, 지속해서 유지돼 가족들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정책, 그리고 자녀의 양육 기간 내내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보장해주는 정책이다.”(5)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인구는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 혁명만 봐도, 당시 프랑스가 서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가 아니었다면 그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1789년의 프랑스 인구는 2,800만 명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의 인구를 합친 것(총 8백만 명)보다 3배 이상 많았고, 러시아 제국 전체 혹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인구의 총합에 맞먹는 수준이었다.(6) 같은 기간, 중국은 전 세계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인구보다 10배 이상 많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아시아 내에서만 유효했다.(7) 인구에 있어서 중국의 비중은 2세기 이전부터 절반으로 줄었지만,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은 여전하다. 

나폴레옹 전쟁, 이농(離農) 현상, 산업 혁명을 연달아 겪으면서 프랑스는 유럽국가들 중 최초로 출산율 하락을 경험했다. 인구의 해외유출이 거의 없었음에도, 1950년 프랑스의 인구는 유럽 내에서 5번째에 머물렀으며 이탈리아보다는 무려 4백만 명이 적었다. 그러나 오늘날, ‘비관주의자들’은 1970년대에 ‘화이트 페스트’, 즉 ‘아이 없는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었던 미셸 드브레(정치가)와 피에르 쇼뉘(역사학자)의 경고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프랑스의 인구는 현재 6,700만 명으로 유럽 내 3위로 올라섰고, 25년 후에는 독일의 인구보다 2배 더 많아질 전망이다.(8) 

2050년에는 지구상에서 유럽인들의 비중이 1/1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예측을 위한 예측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글·필립 데스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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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연합의 회원국들로 대상을 한정하면 인구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보다 좀 더 늦다. 별도의 언급이 없을 경우 자료출처는 프랑스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다. 
(2) 구소련, 알바니아,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3) Philippe Descamps, ‘La Russie en voie de dépeuplement(인구감소 중인 러시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6월호.
(4) Alain Monnier, 『Démographie contemporaine de l’Europe. Évolutions, tendances, défis(현대 유럽의 인구, 변화, 경향, 문제점)』, Armand Colin, Paris, 2006.
(5) Alexandre Avdeev(지도), ‘Population et tendances démographiques des pays européens(1980~2010)(유럽 국가들의 인구와 인구통계학적 경향)’, Population, vol. 66, INED, Paris, 2011.
(6) ‘La population de la France en 1989 et 1789(1989년과 1789년의 프랑스 인구)’, Population & Sociétés, n° 233, INED, 1989년 3월.
(7) Jean-Claude Casanova & Béatrice Dedinger, ‘L’Europe de 1800 à 2055 (1800년부터 2055년까지의 유럽)’, <Commentaire>, n° 161, Paris, 2018년 봄.
(8) UN, 세계인구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