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를 떠나는 대규모 엑소더스 물결

2018-05-31     장아르노 데랑스, 로랑 제슬랭 | 언론인

유럽연합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이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한 모든 나라들이 사상 초유의 인구 위기를 겪고 있다. 사망률을 앞지르는 출산율 감소는 물론, 대규모 인구 이탈도 심각한 문제다. 가장 대담하고 활동적인 세대가 대거 고국을 떠나면서 이들 나라들의 향후 경제 및 정치 전망에 어두운 먹구름이 끼고 있다.

 
1국 2체제로 분열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자치령, 스릅스카 공화국. 스릅스카 공화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바냐루카 시 한복판에는 2017년 10월 17일 임시로 ‘통곡의 벽’이 설치됐다. 올가, 페타르, 마르코, 고란, 스베틀라나…. ‘통곡의 벽’ 위에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백 개 이름이 빼곡히 채워졌다. 행사 운영자인 슈테판 블라지치는 단체 ‘리스타트(다시 시작하라)’가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외국으로 떠난” 친지들의 이름을 통곡의 벽에 새겨줄 것을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27세의 젊은 청년 블라지치는 이미 외국으로 떠난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고학력자조차도 무슨 일이 됐든 다 고국을 떠날 마음이 돼 있다. 고국에서 400유로를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월 1,000유로를 받고 서구 국가 마트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도 손꼽힌다.
 
엑소더스 물결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을 휩쓸었다. 25세의 파사 바라코비치는 보니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에 속한 도시 투즐라에 살고 있다(‘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국가는 두 지역, 즉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슬람-크로아티아계)과 스릅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으로 또다시 나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안에는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다수 거주해 비공식적으로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연방이라고도 불린다-역주). 오늘날 인구 이탈로 황폐해진 이 대규모 노동자 도시는 그동안 반민족주의 좌파의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심지어 내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1992~1995년)에도, 이곳에서는 이슬람계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이 평화롭게 모여 살았다. 전후 세대인 바라코비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과도기’로 인해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나라에서 성장했다. 사실상 과도기는 민영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조직적인 국가 자원의 약탈을 부추겼다. 
 
한편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각 공동체를 대표하는 민족주의 정당들, 요컨대 민주행동당(SDA, 이슬람계), 독립사회민주당(SNSD,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민주연합(HDZ) 등이 권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바라코비치는 이미 수차례 프랑스 브장송의 건설 현장에서 불법노동을 한 경험이 있었다. 때로는 월 300유로를 받고 주유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출퇴근하려면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한다. 점심과 담뱃값을 빼고 나면 사실상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다.” 그는 결국 독일에서 정식 노동허가서를 손에 넣기 위한 최고의 왕도로 통하는 사립 의료학교 등록을 결심했다. “학비로 2,600 보스니아 태환 마르크(약 1,300유로, 1유로=약 2마르크)를 지급했다. 독일어 수업료로는 465마르크, 독일어 B2 시험 등록비로는 265마르크가 들어갔다.” 
 
그는 현재 뒤셀도르프 병원이 약속한 노동허가서와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병원은 그에게 처음 몇 달 동안은 월 1,900유로, 이어 2,500유로의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정도 수입이면 부인과 6개월 된 어린 딸을 독일로 불러들일 수 있다. 그럼 이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는 영영 이별인 것일까? 바라코비치는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경찰인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까지는 계속 고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단 은퇴를 하시면 부모님도 함께 독일에 모실 작정이다. 투즐라에 가보면 민간이 운영하는 어학원들이 즐비하다. 외국인을 위한 한 독일어 수업반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문법 공부에 한창이었다. 
 
“벌써 3년 전부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에 약 12개의 학원을 운영 중인 바냐루카 글로사 어학원이 투즐라에도 새로 학원을 개원하려고 했다.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학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학생 수가 꽤 많은 편이다.” 
 
중등교육기관의 독일어 교사이기도 한 알리사 카디치 원장이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독일국제협력공사(GIZ)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정부가 맺은 협약에 따라, 현재 일부 서방 기업은 향후 자사 직원이 될 사람들에게 4개월 반의 집중 어학 코스 수강료를 지원하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다. 특히 독일 기업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 현지에서 자사 직원을 직접 교육하려면 그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라예보 괴테어학원이나 외스테라이히(Osterreich) 어학원에는 매월 감독관들이 시험 감독 차 방문하곤 한다.” 물론 희망자들은 시시때때로 시장 상황에 따라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물리치료사가 간호보조사로 취직해 독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독일은 간호보조사 전문 자격증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 정부도, 연방 정부도, 이주 현황을 공식 집계하지는 않는다. 이주자들이 정식으로 이주 현황을 신고하는 일이 없어, 역내 모든 나라에서 정확한 통계수치를 집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투즐라 주 고용센터의 아드미르 흐루스타노비치 대표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은 실업률 통계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인구 이탈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의하면, 2017년 투즐라 주의 고용자 수는 9만 8,600명, 실업자 수는 모두 8만 4,500명에 달했다. 그러나 2017년의 실업 수는 과거보다 감소한 결과다. 2016년에는 실업자 수가 9만 1,000명에 달했다. 
 
“우리 센터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협약을 맺고 이 나라들을 위해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가 중개해서 이들 나라에 고용된 사람은 1,500명에 불과하다. 다른 이들은 통계수치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대개는 우리에게 신고도 하지 않고 해외로 이주한 사례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는 경제가 좋아졌다고만 말한다.”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다 지쳐 떠나다
 
사실 이주 물결은 정치 지도층의 입장에서도 그리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실업자 수도 낮춰주고, 사회적 긴장도 외부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개 해외 이주자들은 선거에서 분노를 표출할 가능성이 큰데, 일단 해외로 나가면 투표에 불참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주 희망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청년층, 고학력자, 그리고 고국에서도 꽤 쓸모 있는 기술 자격증을 소지한 부류가 주류를 이룬다. 
 
인구학자이자 진보당(보수) 부대표인 알렉산다르 차비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민자는 모두 세 부류로 나뉜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 일자리는 있지만 보수가 형편없는 사람, 나름대로 보수가 높은 괜찮은 직종에 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고국 상황을 염려하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같은 나라에서는 결코 자녀를 키우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바냐루카 소재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정치분석가인 타냐 토피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경우 교육 시스템이 매우 열악한 데다, 돈만 내면 학위를 내주는 사립대학이 만연해 있고, 무슨 일자리든 얻으려면 ‘돈’과 정치적 인맥이 필수 조건인 현실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사정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두 공화국 모두 비슷했다. 보스니아 좌파의 대표적 인물, 자스민 임마모비치 투즐라 시장은 “예전에는 일당체제임에도 학위와 능력에 따라 일자리가 배분됐다. 반면 지금은 민족정당이 세 개나 존재하지만, 각자 공동체 내에서 유일 정당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당을 통하지 않고는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다”고 개탄했다. 
 
투즐라 시민재단에서 일하는 야스나 야사레비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기며 고국을 떠난다. 조금의 변화도 꿈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2014년 2월 투즐라 시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무분별한 민영화를 규탄하는 이른바 ‘시민의회 운동’(1)의 진앙지가 됐다. 본래 시위는 몇 달째 임금체납으로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공장들에서 시작돼, 점차 사회 전체로 확산됐다. 시위는 금세 주 정부 인사들의 퇴진을 이끌어냈지만, 얼마 못 가 내홍으로 분열됐다. 
 
야사레비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4년이 분수령이었다. 시민의회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품었던 모든 희망이 물거품으로 변했다. 5월 투즐라에서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정부 당국이 속수무책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재앙이 또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고, 그때도 역시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 대체 그런 나라에 어찌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우리도 이 땅에서 살고 싶다. 우리는 이주를 원하지 않는다!” 시민의회 운동에 참여한 시위대가 구호를 연호했다. 2017년 4월 세르비아에서도 알렉산더르 부치치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반기를 든 많은 시위자들이 같은 구호를 열창했다. 몇 주간에 걸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순식간에 세르비아의 자유주의 전환에 따른 각종 문제점을 규탄하는 시위로 확대됐다. 2016년 마케도니아의 ‘색깔 혁명’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 운동을 주도했던 젊은이들은 앞다퉈 고국을 떠났다. 이들 세대의 이주 행렬은 변화에 대한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지게 했다.
 
발칸반도 내에서 이주의 역사는 매우 유서가 깊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구유고슬라비아 시절에도,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손님노동자’를 뜻하는 ‘Gastarbeiter’가 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이주의 길을 떠났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언어로는 ‘gastarbajter’라고도 옮길 수 있는 이 단어는 훗날 구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외국인노동자’(이주자)라는 의미로 통하게 된다. 한편 1990년대 내전도 대규모 이주를 부추겼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물론, 심지어 2013년 유럽연합 가입국이 된 이웃국 크로아티아에서도 역시 가족 전원이 함께 이주 길에 오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은 수도 자그레브와 일부 연안지대, 관광지 정도다. 연안지대에서 수 킬로미터만 내륙으로 들어가도 많은 지역이 인구 이탈로 인한 공동화 현상에 시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크로아티아 중부와 동부 지역이다. 
 
세르비아행 고속도로를 등지고 자리한 슬로베니아의 소도시 노바 그라디슈카의 한 고등학교는 이주의 심각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7~2018년 학생 수가 343명을 기록하며, 2012년 465명 대비 무려 27% 급감한 것이다. 릴리아나 프타슈니크 교장은 “동네 안에 극장이 1개, 병원이 1개, 유치원도 2개나 있지만, 문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시 안에 새로 조성된 산업단지에는 몇몇 기업이 입주했지만, 임금 수준이 너무나도 형편없다. “유럽연합에 처음 가입했을 때만 해도 상황이 나아지리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청년들은 더 이상 오지도 않을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데 완전히 지쳐버렸다.” 

고급인력 이탈, 채용난에 시달리는 기업들
 
이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까지 이주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프타슈니크 교장은 지난 학기, 한 미술 교사가 남편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새 선생님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바 그라디슈카의 인구는 1991년 1만7,071명에서 2011년 1만4,229명으로 감소했다. 이어 최근 5년 동안에는 이주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가령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활동인구가 줄어드는가 하면, 젊은 층의 대거 이주 가세로 인구의 세대교체도 멈춘 실정이다. 프타슈니크 교장은 “많은 이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부동산 매입 열풍이 불어 너무 많은 서구인이 이 땅에 유입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그런데 오히려 크로아티아인이 대대적으로 고국을 떠나가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반면 슬로베니아의 고숙련 인력과 유구한 산업 전통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그로 인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중소기업들이 이 지역에 대거 진출해 있다. 한편 이 지역의 경우, 최근 재택근무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가령 어학 능력자를 대거 필요로 하는 국제 콜 센터 조직이 대표적인 예다. 국경 반대편에 위치한 보산스카포사비나 주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가령 스릅스카 공화국에 속한 데르벤타 시는 수년째 높은 기업설립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많은 섬유업, 자동차 하청 기업들이 소규모 단위로 산업체를 이 지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특히 자그레브와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어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데다, 그야말로 노동권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임금은 절대 200유로를 넘는 법이 없고, 절대적인 유연성이 규범으로 통한다. 역내 정부들은 조세덤핑과 소셜덤핑을 불사하면서까지 외국 투자자 유치에 열을 올린다. 더욱이 해외이전도 기술 이전 없이 단기간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거부하는 노동자에게는 오로지 이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독일의 인력난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조짐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독일 기업은 물론, 주와 시까지 발 벗고 나서 발칸반도에서 직접 채용 홍보를 벌이곤 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의 언론매체는 주기적으로 채용과 노동비자 발급을 위한 초스피드 인터뷰 소식을 알리는 광고를 싣곤 한다. 가령 3월 초, 양로원 사업을 운영하는 바트 아이블링(바이에른 주)의 조지알베르크 호이저 그룹이 세르비아에서 여자 간호사와 의료기술자를 모집해갔다. 이 회사는 월 1,900~2,500유로의 급여와 정착비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2018년 4월 16일, 독일 전역에 거래망을갖춘 주방설비업체 퀴헨 악튀엘도 투즐라에서 주방설비 기술자 30명을 채용해갔다. 
 
때로는 현지의 에이전시들이 중개를 맡기도 한다. 가령 크로아티아 리예카에 소재한 RIA드리아 워크스는 덴마크에서 일할 벽돌공 자리를 알선하는 일을 맡았다. 아드리아해 북부에 위치한, 비교적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이 음산한 산업도시에서는 또 다른 알선업체인 리예키 우슬루즈니 세르비스가 역내 호텔에서 일할 세르비아인 여성 청소노동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의료, 건설, 호텔,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는 이주의 물결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도 한다.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인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 일을 하러 떠나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인은 주로 독일을 행선지로 삼는다. “독일인은 스위스에 가서 일하려나.” 바냐루카에서 만난 블라지치가 농담조로 말했다. 
 
고숙련 노동자가 워낙 대규모로 이탈하다 보니 현지 기업들의 경영난도 한층 가중되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상공회의소는 최근 능력 있는 간부급 노동자가 부족한 사태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미르사드 야사르스파히치 상공회의소장은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며 책임을 돌렸다. 2018년 3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직업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리예카(크로아티아의 서부 도시) 조선기술중등학교의 학생들은 선박건조 목공전문가, 전기기사, 난방설비전문가 등의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조선 산업의 전면적인 민영화가 크로아티아의 유럽연합 가입 조건으로 규정된 가운데, 한때 리예카의 영예로 통하던 ‘3마이(3-Mai)’ 조선소가 인수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적당한 임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역내 어떤 나라도 대대적인 인구 이탈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로는 이주 규모가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른다. 2014~2015년 겨울, 코소보에서는 불과 몇 주 만에 전체 인구의 7%에 달하는 1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등졌다. 얼마 전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에 협약이 체결되면서, 코소보인이 신분증만 있으면 자유롭게 세르비아에 입국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뒤였다. 금세 보이보디나행 시외버스가 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불법으로(코소보는 발칸반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솅겐 지역 내에 비자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한 국가다) 헝가리 국경을 넘어 독일로 넘어갔다. 유학이나 노동허가증이 없는 대부분의 코소보인들은 서유럽에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지만, 몇 개월 만에 번번이 추방당하기 일쑤였다. 특히 사재까지 탈탈 털어 먼 걸음을 한 빈곤층이 가장 먼저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2017년 9월 7일 다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세르비아로 몰려들었다. 코소보 당국이 몇 시간 동안 프리슈티나 버스터미널을 폐쇄해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부터 3일 전 코소보해방군 게릴라 출신의 정당들이 연정을 구성하면서, 좌파 정당 ‘베테벤도셰(자결운동)’(2)의 6월 11일 총선 선전에 힘입어 높아졌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2015년 봄에도 몬테네그로 북부에서 비슷한 대규모 이주 바람이 일어났다. 가난한 이 지역 주민들은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독일 북서부 지역 니더작센주에 가면 평온한 삶을 찾게 되리라 기대했다. 독일의 의원들은 발칸반도의 연방정부들을 상대로 최대한 많은 이주 희망자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가령 고슬라르 시장은 “우리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선 새 이민자의 유입이 절실하다”고 설명했고, 이 말은 금세 몬테네그로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3)

인구감여성의 낙태권 침해로 이어져
소, 
불가리아 서부 혹은 세르비아 남동부의 모든 지역에서는 출산율 저하와 이주 증가로 인해 공동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국립통계청에 의하면, 2002~2011년 세르비아를 떠난 이주자의 수는 16만 명에 달했다. 지역 인구가 현재 7천7백만 명에서 2030년에는 6백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평균 연령도 1995년 38.8세에서 2015년 42.7세로 점차 고령화되는 추세다.
 
자그레브 지리단과대학의 비좁은 사무실에서 만난 인구학자 스트예판 슈테르츠는 통계 자료를 죽 훑어보며 두 손을 비비 꼬았다. 길고 긴 통계수치를 읊기에 앞서 그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감소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다. 인구 문제는 모든 정부 정책의 기본 조건을 구성하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그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크로아티아의 경우, 출산율이 1인당 1.4명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가운데, 2017년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1,800명이나 더 많게 기록됐다. 외국으로 떠난 이주자 수도 7만~8만 명에 달했다.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 약 410만 명(4)의 2.2%에 달하는, 최소 9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 것이다. 
 
이주 물결은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개 가장 출산이 활발한 연령대가 가장 앞 다퉈 이주의 길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여파로 시름 하고 있다. 특히 1995년 여름, 20만여 명의 세르비아인이 원치 않는 이주의 길에 올랐다. 슈테르츠는 “이런 변화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10년 안에 전체 인구의 1/4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이 인구학자는 현재 강력한 출산장려정책의 시행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워킹맘을 보호할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 임신으로 인한 해고를 금지하고, 유연한 노동을 허용하며, 다자녀 가구에 가족수당을 지급하고, 인구 이탈이 심각한 지역에는 세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아마도 지금처럼 계속 동유럽의 활동인구를 흡수할 것이다. 따라서 인구 이탈을 상쇄하기 위한 세대교체가 시급하다.”
 
그럼에도 발칸반도 국가들은 인구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기껏해야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낙태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방안 정도에 그치고 있다. 3월 16일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의사들이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거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라고 말하며, “여성들이 세르비아의 시대적 요구를 이해해 달라”고 간청하기를 서슴지 않았다.(5) 한편 알렉산다르 불린 국방부 장관도 “세르비아의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투쟁에 군이 힘을 보탤 것”(6)을 약속하는가 하면, 문화장관도 출산 장려 캠페인 구호를 선정하기 위한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웃 국가 크로아티아에서는 매우 조직적인 보수 운동으로 조만간 새로운 낙태법이 1978년 법을 대체할 예정이다.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에게 ‘상담’을 의무화하고 중절 수술 전 일정 기간 숙려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대대적인 언론 보도 속에 진행된 이 출산장려 운동은 발칸반도의 인구 이탈을 부추기는 실질적 원인에 대한 모든 성찰을 어물쩍 넘겨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부정부패에 찌든 정치인들의 총체적인 무능력이나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든 발칸 반도 국가에 강요된 신자유주의 해법 등의 문제는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현 정부의 행보는 인구 급감 현상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해외 산업체의 국내 이전으로 이 지역에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주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투즐라 어학원에서 만난 카디치는 이렇게 증언했다. “독일에서 4년간 살았다. 그곳의 현실도 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어쨌든 현 인구 이탈 현상을 막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모두가 앞 다퉈 고국을 떠나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 나라를 떠나는 최후의 1인이 돼 마지막 불을 끄고 발칸반도를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글·장아르노 데랑스 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슬랭 Laurent Geslin
<르 쿠리에 데 발캉> 기자. 공저로는 『강들이 만나는 곳. 유럽의 변경, 발칸반도에서 캅카스까지(Là où se mêlent les eaux. Des Balkans au Causase, dans l'Europe des confins)』(la Découverte·Paris·2018)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ean-Arnault Dérens, ‘마침내 하나가 된 보스니아. 다름 아닌 민영화에 맞서(La Bosnie enfin unie. contre les privatisation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3월호. 
(2) Jean-Arnault Dérens, ‘코소보에 등장한 급진적 민족주의 좌파(Essor d'une gauche souverainiste au Kosov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2월호·한국어판 2018년 1월호. 
(3) ‘몬테네그로 북부의 대규모 인구 이탈: 니더작센주, 새로운 약속의 땅(Grand exode du nord du Monténégro: La Basse-Saxe, nouvelle terre promise’), <Le Courrier des Balkans>, 2015년 5월 6일.
(4) 크로아티아 통계청 수치, www.dzs.hr. 2018년 통계청 기준으로는 약 416만 5,000명으로 세계 129위
(5) ‘세르비아: 출산장려 정책이냐? 여성의 권리냐?(Serbie: politiques natalistes vs. droits des femmes?)’, <Le Courrier des Balkans>, 2018년 3월 30일.
(6) <B92>, 2018년 3월 21일.
 
 
박스기사 
 
역 피라미드형
 
 
 
인구 모형은 국가마다 뚜렷하게 구별된다. 북유럽 및 서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출생률이 사망률보다 높고(양(+)의 자연증가율), 유입인구가 유출인구보다 많다(양(+)의 순이주율). 프랑스의 인구 피라미드는 베이비붐 1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대략 70대까지의 연령분포가 거의 같아지면서 방추형이 됐다. 
독일의 인구 피라미드는 아랫부분(유소년층)이 현저하게 좁고, 10세 이하 인구가 50대 인구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출생률 감소는 2000년대부터 심화됐으나, 강력한 이민정책을 시행한 결과 이민자의 출산으로 다소 보완됐고, 2015년 이후 크게 증가했다. 
불가리아의 인구피라미드도 마름모꼴인데, 1990년대부터 출산율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불가리아의 인구 자연증가율이 마이너스인 이유는, 아마도 해외이주 인구가 많아 공식집계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크로아티아의 순이주율은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 이동을 보여준다. 1991년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와의 1차 전투 때 피란을 떠났다가 전쟁이 끝난 후 귀향했다. 1995년에는 크로아티아군이 ‘폭풍 작전’을 펼쳐 크라이너(Krajina) 공화국을 되찾은 뒤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를 떠났다. 2013년 유럽연합 가입 이후에는 출산율 감소와 해외 이주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번역·조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