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브라질의 ‘우파’ 정치 테러

2018-05-31     안 비냐 | 언론인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의 빛나는 앞날을 예고했던 언론의 커버스토리는 아득한 과거의 일이 된 듯하다. 오늘날 브라질 국내 정세는 좌파 시의원 마리엘 프랑코 살인 사건과 같은 폭력의 물결에 요동치고 있으며 나아가 헌법 질서와의 충돌도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1984년 독재정권 붕괴 이후 획득한 권리들마저 위협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부터 국가 지도자를 직접 선택할 자유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의회에 의해 탄핵(좌파 진영에서 ‘의회 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있는) 된 이후 브라질에서는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끝나길 바랐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모습이다. 군부와 대농장주가 주먹을 휘두르며 영토를 지배하던 과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좌파 진영과 빈민층이 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 특히 헌법상 토지개혁에 의거, 재분배돼야 하는 무경작 농지를 찾아 농사를 짓는 이른바 ‘무토지 농민’들이 폭력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되고 있다.

5월 13일 브라질은 노예제도 철폐 130주년을 맞이했지만, 비극적인 과거의 상징인 가죽 채찍이 최근에도 방송 보도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3월 22일,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의 선거유세 버스가 남부 지역을 방문하길 기다리던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 소속 농민들에게 대농장주들이 채찍을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우파 정당인 진보당(PP)의 안나 아멜리아 레모스 상원의원은 농민들에게 “채찍을 든 가우초(목동)”를 보란 듯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정계에 몸담은 지난 50여 년 동안 브라질 전국을 다니며 한 번도 위험에 처한 적이 없었던 룰라 전 대통령(지난 4월 7일 수감됐다)도, 지난 3월 한 달 동안 몇 번씩 길을 가로막는 민병대와 맞닥뜨려야 했다. 트랙터를 몰고 손에는 돌을, 심지어는 총을 들고 나온 이들의 목표는 대선주자이자 수동적 부패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은 룰라 전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통해 민중을 선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 판결은, 좌파 진영이 반박하고 나섰으며 브라질의 국내 법률가 122명도 증거보다 판사의 결정에 기반을 둔 편파적 판결이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지난 3월 27일에는 룰라 전 대통령의 선거유세 버스를 겨냥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고, 경찰 조사 결과, 총알은 대지주 레안드로 보노토가 소유한 파젠다(대규모 농장)에서 날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레안드로 보노토는 1990년대부터 MST를 배척하고 국가기관인 국립농촌개혁연구소(INCRA)가 실시하는 토지수용 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온 인물이다.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룰라 전 대통령에게 가해진 공격들 전부가 MST를 반대하고 폭력을 행사해온 대농장주 연합에 의해 조직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농장주 연합 소속이자 리우그란지두술 주 농업연맹의 제데앙 페헤이라 대표는 위임식에서 “우리는 MST와 INCRA에 맞설 것이다. 이들의 토지 점거 목적은 오직 농업 생산자들의 소유권을 빼앗기 위함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페헤이라 대표는 2002년 당시 INCRA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농장에 방문하는 것을 거부해 ‘판결 불복종’ 및 ‘범죄 선동’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바로 다음 해에 제4연방 지방법원을 통해 무죄 석방된 바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바로 그 법원이다.

리우데자네이루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마우리시오 산토루는 분석했다. “브라질은 살인사건이 많은 매우 폭력적인 국가다. 하지만 역사상 콜롬비아나 멕시코와는 달리 이런 현상이 정치계에서 일어난 일은 없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버스 총격이 일어난 같은 달에 리우 시의 좌파 시의원 마리엘리 프랑쿠의 피살 사건도 있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은 브라질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브라질 사회 내의 폭력이 처음으로 상층부 정치인들에게 향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한편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폭력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브라질 주교단이 창설한 가톨릭토지위원회(CPT)의 조사에 의하면, 2017년 한 해 동안 살해당한 사회운동가의 수는 70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던 2016년의 61명을 넘어선다. 특히 지난해 살해된 70명 중 52명은 토지분쟁과 연관된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에 유료 경비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찰들

파라 주 가톨릭토지위원회의 변호사인 조제 바티스타 아폰수는 폭력 상황에 대해 지적했다. “노동자당(PT, 좌파)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폭력은 더욱 심각해졌다. 대농장주 연합들이 재구성됐으며 이들과 경찰과의 유착 관계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파라 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미 지난해만 해도 살인사건이 21건을 기록했을 정도다.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피해자 중 농민 10명은 빈민농민연맹(LCP) 소속으로, 2017년 5월 24일 파우 다르쿠 지역의 산타 루시아 대농장을 점거한 이후 고문 및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1996년 엘도라도 도스 카라자스 지역에서 일어났던 MST 소속 농민 19명에 대한 경찰의 학살사건 이래 가장 심각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산타 루시아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29명의 경찰이 기소됐으며, 피해자 부검 결과 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치명적인 부상 외에도 다수의 골절이 발견돼 피해자들에 대한 고문 행위가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들은 진술 당시 일부 농민에 대한 체포영장을 가지고 해당 농장을 방문하자 농민들이 자신들을 향해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경찰 두 명이 감형을 대가로 범행을 자백했고 생존자들의 진술을 인정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카우다스 검사는 “감식 결과 농민들이 총을 발포한 일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경찰 측의 진술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마존 유역에 위치한 파라 주에서는 이런 종류의 갈등이 오래전부터 지속해 왔다. 특히 산타 루시아 농장은 바빈스키 가가 소유한 11개의 농장 중 하나인데, 해당 농장들의 총면적은 4만 헥타르, 즉 파리 면적의 4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사회운동가들은 바빈스키 가의 가장이었던 오노라토 바빈스키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해당 농장들의 경작활동이 잘 이뤄졌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5,694헥타르에 달하는 농지가 무경작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산타 루시아 농장에 대한 점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반면 산타 루시아 농장을 상속받은 아들 바빈스키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화려한 밤 생활만을 자랑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법원에 농장을 점거한 농민들을 쫓아 달라고 요구했고, 법원 측에서 해당 농장의 경작 활동 증빙을 요청하자 한 달이 지나서야 증빙 서류 몇 가지(소 1,700마리 구매 확인서, 가축 75마리의 백신 접종 확인서 등)를 제출했다.

결국 농민들에 대한 추방 명령이 내려졌지만 농민들은 같은 농장을 세 차례 점거하고 나섰다. 그 중 마지막으로 농장을 점거했던 이들이 지난해 살해된 것이다. 레오나르도 카우다스 검사는 “현재 이번 사건을 사주한 인물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파라 주에서는 경찰이 시간외 근무로 파젠데이로스(대농장주)들의 경비(보안)를 봐주는 일이 흔하다”라면서 조사 결과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파라 주의 경찰들은 광업 기업에도 돈을 받고 경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바르카레나에 위치한 다국적 광업기업 노르스크 하이드로의 경우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 보호 단체 ‘카인키아마’로부터 독성 폐기물을 불법 배출하고 있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아 왔다. 무려 40개국에 진출해있으며 노르웨이 정부가 지분의 34.3%를 보유 중이기도 한 이 기업의 경우 자사 소개에 의하면 바르카레나 지역에 “세계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정제 공장”을 두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23일, 카인키아마가 또다시 해당 알루미늄 공장의 불법 폐기물 투기 사실을 고발했다. 노르스크 하이드로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보건 당국에 의해 불법투기 사실이 확인됐다. 카인키아마 측에서 불법폐기용 하수구를 증거로 제시했고, 결국 해당 공장은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로부터 2주 후인 3월 12일, 카인키아마의 지도자 중 한 명인 파울루 세르지우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런 살인 사건은 3개월 동안 두 건이나 벌어졌다.

실제로 카인키아마 측은 올 1월 이후 브라질의 경찰 기관 중 하나인 군경찰관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혀 왔다. 파라 주 군법원의 아르만두 브라질 검사는 설명했다. “즉각 파라 주 치안국에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에 대한 보호를 요청했지만 자신들 소관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치안국에서는 이 단체 지도자들이 토지를 침입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마치 연관성이 있는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침입 논란은 입증된 바 없는 일이지만, 살인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경찰이 해당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조사를 통해 밝혀지기는 하겠지만 과연 이 살인사건을 어떻게 달리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후로도 적어도 3명의 카인키아마 소속 여성 회원들이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받지 못한 상태다. 사실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보호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효력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 정책을 통해 보호받고 있는 대상자 683명 중 대부분은 확인 전화 외에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경찰의 보호를 받는 대상은 단 14명에 그친다. MST의 변호사 네이 스트로제이크는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전례 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 3월에는 점거 농민들에게 바이아 대농장주 소유의 비행기가 독성 물질을 공중에서 살포하기도 했다. 또한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는 대다수 우리 운동가들은 잘못된 혐의로 인해 수감된 상태다. 이들을 빼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27일에는 파라 주의 조제 아마루 신부가 체포됐다. 경찰은 그가 성추행, 자금세탁, 토지침략 등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5년 대농장주에 의해 살해된 도로시 스탕 수녀와 함께 투쟁해왔던 인물인 아마루 신부의 체포 소식에, 그가 지역 빈민들을 보살폈던 것을 아는 모든 이들은 이를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루벤 시케이라 가톨릭토지위원회 회장은 설명했다. “이는 종교인들의 활동을 저지하려는 새로운 전략이다. 도로시 스탕 수녀 피살 사건의 경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바람에 대농장주들 역시 억압을 멈춰야 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명예를 파괴하는 것이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의 사회운동을 저지하는 방법이 되는 셈이다.”

아마루 신부를 고발한 주체가 전부 그의 투쟁 대상인 대농장주들이었음에도, 사법부는 결국 그의 구속을 결정했다. 게다가 이미 수차례 살해 위협을 받았던 그가 가게 될 곳은 사회운동가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지역인 파라 주에 위치한 교도소로, 심지어 도로시 스탕 수녀를 살해한 장본인이 수감된 곳이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법부의 입장이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재 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