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장주들을 위한 소소한 배려

2018-05-31     안 비냐 | 언론인

브라질리아 내 부촌에 위치한 근사한 저택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모임이 있다. ‘농산업의원단체’의 홍보 담당자는 “이 오찬회의 메뉴는 매주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메뉴’에는 요리 이름이 아닌 토론주제들이 나열돼 있다. 의회 내 대농장주 로비단체이기도 한 이들이 이후 의회나 대통령궁에 해당 내용을 상정하기 위해서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내 연구기관 ‘농업계를 지켜보는 눈동자’의 책임자 알세우 카스틸루는 “곧 원주민 관련법이나 토지 개혁 문제를 어떤 소스를 곁들여 삼켜버릴 것인지 논의하는 셈”이라고 비꼬았다. 2016년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 농산업의원단체는 유례없는 영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들의 무기는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을 가결한 의회 내 찬성표 중 절반이 이들의 것이었다는 데 있다. 테메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만큼(현재 테메르 대통령의 지지율은 5%를 밑돌고 있다) 대통령도 정권 유지를 위해 이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테메르 대통령 역시 이 화요일의 오찬회에 여러 차례 초대된 바 있다.

오찬회를 주최하는 ‘펜사르 아그로페쿠아리오’(IPA)의 주앙 엔리케 훔멜 대표는 현 정권의 지난 2년에 대해 “우리는 진심으로 매우 만족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고 말했다. 훔멜 대표가 “영리적 목적이 없는 브라질 내 주요 농업 단체 40개가 연합한 비영리 싱크탱크”라고 소개한 IPA는 농산업의원단체의 재원을 지원하고 있고 그들의 제안을 발전시키며 관련 법안을 분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현 정권의 ‘넘어야 할 장애물’과 관련해 지난 2년 사이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의 두 번의 후퇴”를 언급했다. 

첫 번째는 농업경영자들의 요구에 따라 ‘노예노동’이라는 기준을 없애려다 실패한 일이다. 결국 2017년 브라질 노동부는 파젠다(대규모 농장) 내 노동자들을 포함해 165개 기업의 노동자 2,264명을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두 번째는 아마존 내 가장 큰 보호구역 중 하나인 국립 구리·광물 보존지역(Renca)에서 추진하려던 광산개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일이다. 이처럼 테메르 정권은 두 번이나 국제적 압력에 밀려 뒷걸음질을 해야 했다. 훔멜을 비롯한 동료들은 이를 아쉽게 여기는 한편 테메르 대통령이 자신들의 로드맵 내 ‘우선 과제’ 17개 중 13개를 충족시켰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농업경영자들은 아마존 지역 내 농산업 영토 확장을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유연화’다. 특히 개발인가(광업·농업분야)를 위한 예비조사와 환경영향심사를 유연화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해외기업의 토지취득을 무제한으로 인정하는 법안 요구는 관철됐다. 결국 자신들의 사업에 채워진 “역사적 족쇄”들이 끊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족쇄란 원주민 및 킬롬볼라스(흑인 노예의 자손)들의 권리 보호와 브라질 내 토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개혁 의무를 의미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테메르 정부가 원주민과 킬롬볼라스에게 토지 권리를 보장해주는 규정을 완화하도록 개헌을 추진한 데 이어 핵심적인 관련 국가 기관인 국립농촌개혁연구소(INCRA)와 국립원주민재단(FUNAI)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메르 대통령은 집권 초기 소규모 농민 보호 정책을 담당해온 농촌개발부를 폐쇄했다. 뿐만 아니라 토지개혁 범위를 제한하는 새로운 법을 내놓았으며, 시장가에 비해 너무 낮은 금액으로 불법 매매된 토지를 합법화해주는 법도 마련했다. 특히 이런 불법 매매는 파젠데이로스(대농장주)들이 오래 전부터 흔히 자행해오던 편법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대학의 환경법 교수인 줄리아나 말레르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토지 소유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실패나 다름없다. 관련 규정도 완전히 바뀌었고, 앞으로 토지 소유 집중화 현상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한 대농장주 대상의 세금 환급 및 부채 삭감으로 인한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2년 전에는 ‘제1의 농업경영자’가 농업부 장관 자리에 앉기도 했다. 브라질 국내에서는 ‘콩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블라이루 마기 농업부 장관은 세계최대의 콩 생산기업인 그룹 ‘아마기’를 경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아마기는 조세회피 의혹을 다룬 ‘파라다이스 페이퍼’에서 프랑스의 곡물 기업 ‘루이드레퓌스’와 함께 케이맨 제도에 수익성 높은 기업을 세웠다고 언급된 적도 있다. 파라나 폰티피시아 가톨릭 대학의 토지법 교수 카를로스 프레데리쿠 마레스 데 소우자 필루는 “현 정부가 유전자 조작 종자 재배부터 화학비료 사용에 이르기까지 농산업 관련 환경규제를 모조리 풀어버렸다”면서 “기존의 법적규제도 매우 소극적인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생산국에서조차 금지된 농약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법으로 허락해주고 있는 판국”이라고 비판했다.

농산업의원단체는 전체 하원의원 513명 중 235명, 상원의원 81명 중 27명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통과될 경우 폭력문제를 더욱 가중시킬 위험이 있는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농업 경영자들에게 무기 소지를 허가해주는 법안이나 토지없는 농민 운동(MST)과 집 없는 노동자운동(MTST)을 ‘테러 단체’로 분류하는 법안 등이다.

또한 농업경영자들은 국립농촌개혁연구소와 국립원주민재단에 관한 국정조사위원회를 맡기도 했다. 해당 위원회는 사법부에 96명의 관련 인물들(인류학자, 국내외 NGO 대표, 검사,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이 “토지구획 및 인가와 관련해 사기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사법 조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브라질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인 레이자 케이로스 산투스는 “특히 사법 권력이 사회운동을 범죄로 만드는 큰 책임을 안고 있는 만큼, 만일 올해 선출될 의회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알력다툼이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이런 공격이 재개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테메르 정부가 농산업 분야를 위해 일하는 동안, 브라질 내에는 여전히 4백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반면 미경작 농지 상태의 대농장의 수는 6만 6천 개, 총면적은 1억 7,500만 헥타르를 넘어선다. 마레스 데 소우자 필루 교수는 “이것조차 실제보다 과소평가된 것이다. 경작지의 생산 활동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농민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의 극빈층은 2016년 1,334만 명에서 2017년 1,438만 명으로 1년 만에 11.2% 증가했다. 하지만 화요일마다 열리는 오찬회에서 이런 주제가 메뉴로 등장한 일은 없었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재 기자

번역·김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