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를 붕괴시키는 ‘이상한 개혁’

2018-05-31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비효율적인 공공서비스 부문을 개혁하겠다는 취지로 공무원 12만 명 감축과 국철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 공무원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공무원 감축과 계약직 확대 등에 반대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전역에서는 기차, 비행기, 학교 등 공공 서비스가 파업 노조원들의 시위로 중단돼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편집자주

 
양측의 전력이 불균형한 의례적인 ‘전투’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정부는 현대화를 들먹이며 전후(戰後)에 구축된 공공 시스템을 없애고, 이를 버팀목 삼아 미래에 승리를 거머쥐려는 수순을 밟는다. 정부와 노조의 전투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서 공공 시스템이란 일반 사회보장 제도, 연금, 공무원 신분 등에 힘입어 임금 노동자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피할 수 있는 국영 부문을 말한다. 
 
신문 사설들은 너도나도 ‘개혁의 교육’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규제 완화는 꼭 필요하기에 ‘불가피하며’(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국회 절차를 건너뛴 행정부의 ‘정치적 용단’ 때문에 ‘결정적’이고, 남들보다 덜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특권’을 평준화하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다.” 1995년 10월, 당시 우파 정부의 총리였던 알랭 쥐페가 사회보장 개혁을 시도하면서 쓴 이 각본은 개혁 반대파들(좌파)에게 의례적이면서도 정교하게 계산된 역할을 맡긴 셈이다. 즉 반대파들은 정부가 개혁하겠다는 ‘특권’이 실제 평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언론이 개혁을 떠벌리지 못하게 하며, 공공서비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공공서비스, 보호할 가치가 남아있는가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보호한단 말인가? 1995년 12월 12일, 철도 노동자들과의 연대 파업 당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공공서비스의 파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25년 뒤 이 공익제도들은 망가졌고, 폐허나 다를 바 없게 됐다. 한쪽에는 재정경제부가, 다른 쪽에는 그랑제콜 출신의 무수한 기업들이 포진한 국가의 ‘오른손(피에르 부르디외는 국가를 시장 권력이 포섭해 관리하는 국가의 오른손 즉 경제부처나 고위 관료와, 국민 복지를 위해 지출하는 국가의 왼손 즉 노동, 의료, 교육, 복지 등으로 분류했다-역주)’이 그 임무를 완수했다. 수차례 개혁과 민영화를 거듭한 결과, 전체 고용에서 공공부문(1)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5년에 19%에서, 2015년 말에는 79만 1,000명의 잔류 노동자를 포함해 5.5%로 곤두박질쳤다. 1980년대 중반 공공부문은 국가재정의 25%를 창출했으나, 이 수치는 3년 뒤 6% 미만으로 떨어졌다.(2) 정부 부처들은 곳곳에서 민간기업들이 시행하는 회계 요구와 경영 압박을 도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국유철도(SNCF) 개혁에서 사람들이 기존 제도의 보호에 반대하기를 바랄지 모른다. 하루가 멀다고 반복되는 고장 탓에 누구나 불만을 토로하는 그런 서비스를 지키자는 말인데, 이처럼 근본부터 엉망인 국유철도 시스템이란 어차피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마크롱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간호 인력과 환자들은 병원이 그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고, 노인요양시설도 불안하다고 경고한다. 학생과 교사들은 학교와 대학이 쇠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행객들과 철도 노동자들은 프랑스 국유철도가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자기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공서비스는 겨우 버티면서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공서비스라는 존재는 더는 바람직하지도, 여론에 호소할 만한 힘도 없다. 
 
예산제약과 민간병원과의 경쟁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국립병원은 사회보장 예산에 따라 환자 수를 조절한다. 이 말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병원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다. 비판 정신을 가진 인재를 길러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다지겠다는 목표로 세워진 대학은 이제 수지타산을 맞추고 노동시장의 요구에만 맞춰가는 형편이다. 보편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프랑스 우정공사(우체국)는 아마존의 용역회사로 전락했다. 프랑스 우정공사에서 독립한 뒤 민영화된 프랑스 텔레콤은 이제 국가 기반시설을 구축하겠다거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상품 판매나 시장 점유, 주주 만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 진입한 프랑스 전기공사(EDF)는 영국의 민간 기업을 인수했다. 프랑스 국유철도(21면 브누아 뒤퇴르트르의 기사 참조)의 경우 수익성 높은 고속철도 여객 노선을 고수하다 이 노선을 이용한 화물 운송을 포기해야 했고, 기존 노선들은 등한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TGV가 inOUI(이누이)라는 새 이름으로 고객 여러분에게 새로운 약속을 전합니다”(3)라는, 흔해빠진 광고 문구를 철도 이용객들에게 뿌려댔다. 
 
노동자들을 자살로 몰아간 ‘헌신 윤리’
 
사회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 기업 논리는 공공서비스 사용자들의 입장과 배치된다. 또한 이런 기업식 정책 결정은 수백만 공무원들의 저항에 부딪힐 만큼 극단적이었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우체국, 학교, 병원, 공공 노인요양시설(Ehpad)의 민영화가 끼친 악영향은,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온 힘을 다한 (대부분 여성인) 노동자들의 헌신 덕택에 오랫동안 가려질 수 있었다. 관련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공공서비스라는 그들의 임무를 잊어버리라고 강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공공서비스를 보호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 다니엘 리나르의 설명에 따르면 공무원 신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가 중요하고 고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맡은 일을 잘하려는 의지와 책임감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화주의 정신을 실현하고 공익을 수행한다는 인식을 가지며 ‘공공서비스를 위해 봉사할 것’을 자처한다.”(4) 이런 ‘헌신 윤리’가 바로 프랑스 텔레콤 노동자 10여 명을 자살로 몰아갔으며, 파리 원호의료센터(AP-HP, 파리와 일드프랑스 지역을 아우르는 공공 보건시설-역주) 직원들의 생을 마감케 했다. 국가의 오른손(우파의 시장논리)이 공공서비스 사용자나 생산자로 하여금 어떻게든 공공서비스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상황에서, ‘공공서비스를 보호하자’는 슬로건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일자리, 경제·사회적 보장, 교육, 연금, 건강, 여가활동, 교통, 에너지 전반에 대한 접근성 등 이 모두가 의미하는 거대한 인프라를 단순히 서비스라고만 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권리다. 어떤 것은 헌법에 명시돼 있고, 어떤 것은 법을 통해 얻어낸 이 공공서비스는 민주주의라는 케이크 위에 놓인 체리처럼 국가나 기업가가 우리에게 베푼 것도, 양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다시 말해 공동체는 서비스의 제공을 보장하고, 그 효과를 담보하며, 서비스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현행 헌법에서도 재차 채택한 1946년의 프랑스 헌법 전문은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한다. “모든 재화와 기업은 그 이용이 국가적 공공서비스의 성격 및 독점적 성격을 띠거나 그런 속성이 있는 경우 공동체의 재산이 돼야 한다.”(제9조)
 
개혁주의자들이 망가뜨린 공기업을 보호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불가침 권리에 따라 모든 경우에서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기초부터 재건하자는 요구는 화합과 결집이라는 중대한 덕목을 세운다. 무엇보다 이런 요구는 사용자와 공기업 직원, 대도시 및 소도시, 교외, 시골, 프랑스 해외 영토 거주자들의 공통 이익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10여 년간 방어적 투쟁만 해오느라 몹시 빈약해진 사회운동에 긍정적 목표와 파급 효과를 불러온다. 즉 미래에도 통용될 제도의 토대를 다시 세우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5) 첫술에 배부를 것을 기대할 만큼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개개인이 결집함으로써 여러 사회집단을 충분히 응집시킬 세 가지 원칙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서비스를 재건할 세 가지 원칙은?
 
첫 번째 원칙은 현대의 임금제도에 존재하는 최악의 단점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이 그들의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게 해주는 노동의 기본조건이다. 1990년대 민간기업 노동자들은 ‘신경영(네오매니지먼트)’의 타격으로 이 기본조건을 빼앗겼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이번에는 간호사, 학교 보조원, 교사, 우체국 직원, 철도 노동자 등이 이 기본 조건을 박탈당했다.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설정된 목표량, 팀의 축소, 노동현실을 전혀 모르는 관리자의 굴욕적인 명령은 이제 리들(Lidl, 독일의 세계적 할인마트 체인-역주)과 프리(Free, 프랑스 정보통신 업체-역주)뿐 아니라 공공 노인요양시설을 공략한다. ‘공공-민간’을 잇는 저 삭막했던 연결선은 이제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 곳에서 일하는 물류노동자는 저 곳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어떤 일을 겪는지 알기 때문에, 그 물류노동자는 이 사회가 선배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도록 한층 자발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각 부문의 조화 및 개발과 관련된다. 공공서비스를 재구축할 때는 광범위한 인프라와, 대도시 밖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건, 교육, 교통, 통신, 공익성을 목표로 한 디지털 데이터의 공유 같이 믿을 만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실험할 장소는 파리 11구(센 강 우안에 있으며,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의 하나-역주)보다는 비에르종(Vierzon, 프랑스 중부 상트르발드루아르 주의 중소도시. 경공업이 발달했으며, 도시 북쪽으로는 산림과 농장 등이 있다-역주)이나 생테티엔(Saint Étienne, 프랑스 남동부 르아르 주의 공업도시-역주)이 될 것이다. 주로 대도시 중심부 바깥에 거주하는 서민층은, 전후(戰後)에 구축된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공공서비스를 사회의 동력으로 삼았듯 공무원과 사용자 모두가 볼 때 ‘진정한’ 공공서비스를 이끌어갈 동력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이런 공익기관의 이상 및 재정, 즉 공유재산(권)과 관련된 사항이다. 여기서 공공서비스, 즉 공공차원과 국가차원의 서비스에 확실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고전적인 공식(국유화)이 등장한다. 1946년에는 당시 정권을 잡았던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복지 모델의 본보기로서 전기 및 가스 회사 직원, 광부, 공무원의 지위를 박탈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국가와 공익의 연결고리는 유명무실하다. 이제는 모든 공공서비스가 재정경제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좌우되기 때문에, 결국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전환을 기대하는 사회운동은, 당연히 국가가 보장하되 베르시(Bercy, 프랑스 재정경제부의 별칭-역주)와는 독립적이며, 사용자-노동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 ‘라 세퀴(la Sécu)’의 일반(의료)보험이 바로 그런 경우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나르 프리오가 설명한 것처럼 라 세퀴는 막대한 자원을 세금이 아니라, 사회분담금에서 끌어온다. 이 사회분담금은 재정부가 아니라 1946~1967년에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했던 자본에 귀속된다. 세금이 아니라 사회분담금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공공서비스, 기술관료가 아닌 생산자가 책임지는 사회화된 부(富), 문제가 생겼을 때 목소리를 내는 사용자들,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
 
사람들은 이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것이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공익을 재구축하는 것은 철도 노동자들의 지위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비현실적인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철도 노동자의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철도 노동자의 지위를 구제하는 최상의 방법은 그것을 일반화, 대중화하는 것이다. 즉 다수의 행복을 이끄는 임무를 공공서비스에 맡기는 것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역서로 『지도로 읽는 아시아』 등이 있다.
 
 
(1) 국가가 대다수 지분을 직접 보유한 기업 혹은 대부분 국가가 수장을 맡고 있는 집단에 속한 기업 전체.
(2) ‘Tableaux de l’économie française(프랑스 경제 지표)’, Insee(국립통계경제연구소), coll. <Insee Références(국립통계경제연구소 자료집)>, Paris, 2017, www.insee.fr
(3) www.oui.sncf/aide. 이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Laurent Bonelli et Willy Pelletier (편집), ‘L’État démantelé. Enquête sur une révolution silencieuse(해체된 국가. 침묵의 혁명에 관한 조사)’, <La Découverte-Le Monde diplomatique>, Paris, 2010.
(4) Danièle Linhart, ‘Comment l’entreprise usurpe les valeurs du service public 공공성 이름 아래 교묘해진 노동착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9월호·한국어판 2009년 10월호.
(5) Bernard Friot, ‘En finir avec les luttes défensives 방어적 투쟁을 끝내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1월호, 한국어판 12월호(‘기업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