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비친 파업

2018-05-31     사뮈엘 공티에 | 언론인

프랑스의 철도노조 파업이 시작되던 2018년 4월 3일, 베에프엠테베(BFMTV) 채널에는 몇 시간 동안 한 장면만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기차역 플랫폼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철로로 밀려 떨어진 여성”을 빨간 화살표로 가리키고 있는 영상이었다. 진행자는 전국자율노조연맹(UNSA)을 대표해 나온 출연자에게 “이 소동을 보셨습니까? 이런 상황이 석 달 동안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망자까지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다.


하루 전인 4월 2일 자 <르푸앙>지에 ‘파업으로 인한 사망자 집계는 굿 아이디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부터 쟁점화된 이 주제는 곧 방송가를 휩쓸었다. 국민전선(FN) 소속 에마뉘엘 메나르 의원이 뉴스채널 엘세이(LCI)의 ‘24h 퓌자다스’에 출연해 이번 파업으로 “두 명이 부상하고, 수없이 많은 불편이 초래됐다”고 하자, 진행자인 다비드 퓌자다스는 “그런 상황이 앞으로 석 달 간 총 36일 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당의 아드리앙 카텐느 의원을 향해 “승객들이 차창을 넘어 열차를 타고 있으며 두 명의 부상자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36일 동안 이 파업을 이어갈 준비가 됐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이는 곧 다수의 피해자를 낳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집권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당의 쥘 르 장드르 의원은 “이와 같은 부분파업은 이용객들에게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가 희생자들의 목숨을 단박에 빼앗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튿날, 뉴스 채널들을 통해 점화된 전국적인 논쟁은 계속해서 심화돼 갔다. CNews 채널의 토론 프로그램 ‘파업과 건강, 연관성은?’에 출연한 전문의 브리지트 밀로는 “열차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도착시각이 늦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 파업은 다각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무력감을 안겨줘 건강을 해칠 것이다. 수면에 영향을 주고 면역력을 저하하며, 기분장애를 일으켜 우울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자살을 결심하더라도 정작 몸을 던질 기차가 파업 때문에 더 이상 없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1995년 파업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 양태를 분석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장을 확증해주고 있다.(1) 당시 부르디외는 3개 채널의 뉴스방송과 3개의 시사방송 ‘프랑스 앙 디렉트’, ‘마르슈 뒤 시에클’을 분석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뉴스전문 채널만도 BFMTV, CNews, LCI, 프랑스앵포(Franceinfo) 등 4개나 되며(France24, Euronews, RT, i24News 등의 방송들은 비교적 덜 공개돼 있다), 틈틈이 르포와 전문가들의 발언, 논객들 간의 잡담 등으로 채워진 France5 채널의 일일 시사 토크쇼가 성공을 거두면서 LCI의 ‘24h 퓌자다스’ 등의 뉴스 채널 방송은 물론 카날플뤼스(Canalplus)의 ‘랭포 뒤 브레’와 같은 유사한 포맷의 방송들이 대거 생겨났다. 이제는 ‘마르슈 뒤 시에클’ 같은 방송이 하루에 무려 12번이나 편성돼 있는 상황이다.

부르디외가 ‘돌고 도는 정보의 순환’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거대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매일 각종 주제와 주장, 논쟁들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파업의 경우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 이후 이제는 폭력성에 대한 논쟁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시위 이후 한 방송 진행자는 “BFMTV를 통해 오후 반나절 동안 지켜보셨을 피해 상황에 대해 전해드리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러 기차역과 대학가, 또는 시위 행렬 속으로 보내진 특파원들은 “격분한” 기차 이용객들과 “분노한(점거 시위로 중간고사를 치를 수 없게 된 탓에)” 학생들, 그리고 “파손된 매장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점주들의 인터뷰를 모았다. 

이 인터뷰들은 뉴스를 통해 30분마다 방송됐고, 영상의 하단에는 아침엔 “SNCF(프랑스 철도공사) 파업 탓에 리옹역 열차운행 거의 없어”, 저녁에는 “SNCF 파업, 발길 돌리는 군중들” 등의 문구가 걸렸다. 또 다른 문구들을 빌리자면 이번 노동절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예정된 암흑의 화요일이었으며, 결국 마크롱 버스(2015년 당시 일명 ‘마크롱법’을 통해 생겨난 저가형 장거리 버스-역주)에 인파가 몰리고 있고, 대학가 반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아르케이 시험장 폐쇄, 중간고사 취소’, ‘파리 시내에서 폭력전’ 등이 이어졌다. 

게다가 “폭력 사태, 더 이어질 것”이라는 문구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도 적시된다. 빨간 화살표로 철도 파업의 피해자를 가리키고 있는 영상이나 시위 이후 진열창이 깨진 한 자동차 매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각종 텔레비전 채널들을 점령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박식한 논객들이 모여 논쟁을 이어갔다. 1995년만 해도 ‘에디토크라시(논객관료)’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들 역시 신문 사설들에만 매달리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발 빠르게 오가며 방송가 곳곳을 누비고 있다. 

대부분은 <르피가로>, <르 주르날 뒤 디망슈>(마크롱 대통령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BFMTV와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는 언론), <발뢰르 악튀엘>, <르푸앙>, <로피니옹>, <아틀란티코> 등의 파급력 있는 언론사 출신이며, 좌익을 대표하는 인물들로는 로랑 조프랭(<리베라시옹>), 프랑수아즈 프레소(<르몽드>), 마튜 크루아상도(<롭스>) 등이 있고 파트릭 르 이야익(<뤼마니테>)도 드물게나마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전문가 군단도 존재하는데, 아카데믹한 이름 뒤에 감춰져 있는 사측 압력단체 고등노동연구소(IST)의 소장이자 각종 방송에 다수 출연하고 있는 베르나르 비비에를 예로 들 수 있다.

‘인질극’ 또는 ‘파업문화’로 인해 
입은 피해는?

지난 4월 3일 기준으로 BFMTV의 일일 총 방영시간 18시간 중 파업과 그에 따른 피해를 다룬 내용은 총 11시간 30분으로 전체 분량의 85%(광고와 날씨예보 제외)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쏟아지는 파업관련 보도 속에서 신뢰를 잃은 기존의 개념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파업은 심각한 피해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질극’이나 다름없다고 보던 것이 올해부터는 ‘파업문화’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철도 개혁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인 2월 27일, 다비드 퓌자다스가 진행하는 LCI의 방송에서는 ‘프랑스를 멈추게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토론주제를 내걸었다. 방송에 출연한 한 기자는 증기기관차들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비록 조건들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 직원의 복지 혜택은 한 세기 이상 유지돼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통부 장관도, 철도개혁 관련 논쟁 초기부터 이 복지혜택 삭감에 대해 이념적인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당성을 보여주지 못했다.(2) 한편 1982년 노조주의에 반대하는 『항상 더!(Toujours plus!)』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프랑수아 드 클로제도 이 방송에 출연해 격분하며 “노조가 우리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몰아넣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철도노조 쉬드-라이유(SUD-RAIL)의 젊은 대변인 브뤼노 퐁세가 그를 향해 “인질납치범이란 말은 쓰지 마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이에 프랑수아 드 클로제는 “아, 그렇지요, 저는 인질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인질이 돼봤으니까요”라고 받았다. 그 뜻을 묻는 다비드 퓌자다스에게 클로제는 “저도 바타클랑 극장(2015년 파리 테러 사건이 일어났던 곳-역주)의 인질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인질납치범, 테러리스트, 그런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안단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후로 ‘인질극’이라는 표현은 자취를 감췄고(기차 이용객들의 인터뷰에는 가끔 등장하지만), 이제는 보다 고상한 ‘파업문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LREM당 소속 대변인을 통해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곧 방송가 전체로 퍼져나갔다. 물론 전문성을 갖추고자 ‘조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 4월 2일, 다비드 퓌자다스는 LCI의 방송에서 “파업문화, 그러니까 과연 파업에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라면서 방송에 출연한 기자에게 “손에 들고 계신 것이 흔히 볼 수 없었던 자료인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던졌다. 기자는 마치 비밀 보고서라도 되는 양 “굉장히 독특한 자료인 것이 사실입니다. SNCF의 웹사이트에서 찾아낸 통계자료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들이 얻어낸 전리품은 바로 “1947년 이후 근무가 이뤄지지 않은 날을 기록한 통계”로, 이를 통해 “파업이라는 문화가 존재해왔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측이 제시하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결론적으로 70년 전부터 현재까지 SNCF에 파업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자 퓌자다스는 “파업이 일어나지 않은 해가 한 번도 없었다면, 파업문화는 존재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는 이 문화로 인해 얼마나 피해를 보았을까? 경찰기동대(CRS)의 경우 사상자를 낸 ‘시방 지역에서의 시위’나 ‘말리크 우세킨 시위’ 등으로 고역을 치른 탓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았다.(3) BFMTV에 출연한 ‘보안 전문가’가 노동절 시위 이후 “파리 중심가가 엉망으로 훼손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실상 그 피해 규모가 매우 국지적이었다는 것(맥도날드 매장 한 곳과 자동차 매장 한 곳뿐이었다)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다원성을 보장이라도 하듯 반체제주의 인사들도 이런 방송에 초대되곤 하지만, 이브 칼비가 진행하는 ‘랭포 뒤 브레’의 4월 2일 자 방송 주제 ‘파업, 분명한 혼란’이나 4월 19일 자의 ‘대학가와 노트르담데랑드, 전국적 무질서’ 등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이들은 편파성이 분명한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또한 방송국들은 여론 전문가들을 통해 ‘국민’의 이름을 빌리고 있다. BFMTV 소속 여론조사 담당자인 베르나스 사나네스는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개혁에 대한 생각, 즉 개혁에 대한 찬반을 논해왔지만, 오늘날에는 파업에 대한 찬반을 논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주체가 여론조사기관인 만큼 이를 결정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지 않은가. <렉스프레스>지를 나와 방송가로 무대를 옮긴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도 지난 4월 4일 방송에서 “대통령이 논란 초기부터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강경함과 무기력함 중 어느 쪽을 의미하는 것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강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하며, 마크롱을 “적시에 전장을 휩쓸기 위해 뮈라 기병대를 대기시켰던 나폴레옹”에 비유하기도 했다. 철도공사 직원들은 워털루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올해에는 1968년 5월 혁명을 두고 빈정투로 한 말들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5월 혁명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알랭 페이레피트가 “5,000명의 학생들이 계속 공부하기를 원하는 다른 학생 60만 명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했었는데, 이번에는 CNews의 사회자 파스칼 프로가 파리1대학 톨비악 캠퍼스 점거 시위단 강제 해산 이후 “드디어, 소수의 개인들이 학업을 계속하기 원하는 다수를 가로막았다”고 말한 것이다.(4) 그는 “잠옷 차림의 시위대 학생들이 강의실을 떠났다. 투입된 경찰기동대가 학생들을 깨워 내보낼 때, 우리의 양심도 깨어났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있는 건 경찰일 지도 모른다.  


글·사뮈엘 공티에 Samuel Gontier
언론인. 저서로는 『Ma vie au poste: Huite ans d’enquête (immobille) sur la télé au quotidien(나의 붙박이 삶: 8년간(꼼짝 않고) 해온 매일의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La Découverte, Paris, 2016)가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 등이 있다.


(1) Pierre Bourdieu, ‘Sur la télévision: suivi de L’Emprise du journalisme(텔레비전에 대해, 저널리즘의 지배력)’, 『Raison d’agir』, Paris, 1996. / Serge Halimi, ‘Les médias et les gueux(미디어와 걸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6년 1월호.
(2) <Le Canard enchaîné>, Paris, 2018년 5월 16일. 
(3) 기동대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2명의 사망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2014년 시방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에 참여했던 레미 프레스와 1986년 파리 시위의 말릭 우세킨을 의미한다.
(4) ‘68, sous les pavés... les flics(68혁명, 보도블럭 아래에는... 경찰이 있다)’, David Korn-Brzora, <France 3>, 2018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