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레드셔츠 그래도 ‘사람’을 외친다
[타이 분쟁 현장 르포르타주]
타이의 아삐찻뽕 위라세타꾼 영화감독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난 5월, 수도 방콕에서는 ‘레드셔츠’와 정부군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숨지고 부상자는 1천 명을 넘어섰다. 시위가 대규모 충돌로 치달은 원인은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는 레드셔츠에 있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정부군이 진압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상황에서 타이의 반정부 시위대인 ‘레드셔츠’(공식 명칭은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역자)의 멤버인 램(가명)은 캠프 안의 돗자리에 앉아 조용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젠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가 이해한다. 더 이상 우리가 설명할 것도 없다. 2006년 쿠데타의 주역인 ‘옐로셔츠’(친정부의 민주주의민중연대(PAD)-역자)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왕비여, 영원하소서!”
날카로운 표정으로도 알 수 있듯이, 램은 직선적인 지식인 운동가다. “지난 3월 방콕 시내에 입성할 당시 레드셔츠의 목표는 의회 해산이었다. 하지만 4월 10일 군부의 학살(1) 이후 우리 목표가 바뀌었다. 그날로 타이 군주제의 가면은 벗겨졌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하다. 아직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같은 체급의 상대와 맞붙게 되겠지 생각하며 링 위로 올라선 순간, 눈앞에 마이크 타이슨이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말이다! 일단은 링에서 내려와 더 단련을 한 뒤 재도전을 해야 할 것이다. 왕이 바로 마이크 타이슨인 셈이다.”
“링 위에 오르니 타이슨이 있었다”
지난 5월 12일 저녁 무렵, 레드셔츠만큼 비타협적인 시위대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시위대의 거리 점거가 40일째를 맞았다.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의 사임뿐이다. 그는 2008년 12월 ‘사법 쿠데타’ 이후 총리로 선출됐다. 당시 `군주제 수호'와 `청렴 정치'를 부르짖으며 원외 운동을 이끈 옐로셔츠의 격렬한 시위로 헌법재판소는 탁신 계열의 ‘국민의힘당’(PPP) 소속 두 총리를 차례로 사임시키고 정당을 해산했다. 2008년 10월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탁신 전 총리는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다.
‘국왕 60년’보다 영향력 컸던 ‘탁신 6년’
햇볕에 피부를 그을린 잣 우본은 언성을 높여 자신이 과거 타이 국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축구클럽 리버풀의 깃발(빨간색) 앞에 선 그녀는 이곳에서 50밧(약 1.20유로)을 주고 구입한 UDD 회원증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예전에는 우리 마을 사람 아무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탁신 정권 이후부터 정치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정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마약 퇴치와 국민의 교육 수준 향상과 건강 증진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30밧(약 1유로) 의료보험제도와 마을당 100만 밧 보조금 지원, 농민 대상 무이자 융자 혜택 등 탁신의 사회복지 정책을 떠올렸다. 이 정책으로 탁신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녀를 비롯한 수만 명의 사람이 북부와 북동부 지역(이산)을 떠나 라차쁘라송 거리로 집결했다. 시위대의 점거로 거리 기능은 마비되고 수억 유로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라차쁘라송 거리는 평범한 곳이 아니다. 방콕인들의 자랑이자 타이의 경제적 상징물이다. 이곳에 위치한 수많은 대형 호텔과 화려한 쇼핑센터에는 평소 관광객과 사업가, 방콕 중산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는 `방콕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할 뿐입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레드셔츠 지도자들의 회의 장면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릴 위해준 건 탁신밖에 없었다”
정작 방콕인들은 이들의 외침에 귀기울이기는커녕 “이들이 일당을 받고 여기에 있다!”라고 말한다. 수십 개의 TV 방송과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 수천 개의 신문은 레드셔츠가 비양심적이고 비독립적인 시위대라며 이미지를 폄하했다. 하지만 UDD가 야당 푸에아타이당의 원외 세력인 만큼 야당이 UDD의 물자 보급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비록 탁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어떻게 그런 재벌이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모를 이 투쟁에 재산 일부를 투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3) 이뿐만이 아니다. 방콕인들은 레드셔츠를 배후의 조종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로 매도했다. 이미 옹졸해진 생각은 지난 몇 달간 도를 넘는 악의적인 흑색선전에 세뇌됐다.
레드셔츠를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표준말 타이어 대신 타이어와 라오어가 뒤섞인 방언을 쓰는 시골뜨기로 비하하고, 당장 다시 시골로 돌려보내야 하는 ‘미개인’, ‘야만인’ 무리로 묘사하고 있다. 위스콘신대학의 타이 역사학자 통차이 위니차꾼 교수는 “부유한 방콕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반녹(시골 사람)들이 더럽고, 못생기고, 상스러운 빈민 계층' 이미지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의 한 전형적인 도시 여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레드셔츠를 생각할 때마다 그들의 까맣고 더러운 피부와 추하고 거친 얼굴이 떠올라 무섭고 두렵다’는 글을 올렸다. 라차쁘라송에서 레드셔츠의 시위는 방콕의 가장 화려한 부분을 점거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결하고, 지저분하고, 상스러운 농민들- 세균들(4) -이 ‘천사의 도시’ 끄룽텝(방콕의 타이식 이름)을 침략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한 외국 학자는 “이산의 주민들이 없었더라면 방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온순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없었다면 경제성장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주입해온 자비로운 군주제와 불교의 조화로움에 대한 국가적 선전이 이 단순한 사실 이해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레드셔츠의 맹렬한 저항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비뚤어진 이념은 또다시 타인의 존재를 거부하며 소멸시켜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5월 3일에 만난 옐로셔츠의 책임자 수리야사이 카타실라의 생각은 물론 달랐다. 그는 레드셔츠를 탄생시킨 조직들을 언급했다. 이 중에는 ‘시암 레드’란 분파와 <부자를 위한 쿠데타>(5)를 출판한 뒤 추방당한 트로츠키주의자인 차이 웅파꼰 교수도 포함돼 있다. 또한 1932년 6월 24일의 ‘미완성 혁명’(쿠데타를 통해 입헌군주제 실시)의 정신을 계승한 ‘6·24 단체’도 있다. 정치잡지 <파 디아우 칸>과 독립 언론 <프라차 타이>의 사무실은 정부 검열로 봉쇄된 상태다. 이 다양한 조직들 중에는 예전 타이공산당(PCT)의 지지 단체도 포함됐다. 이들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마오주의의 무장 폭동에 동참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가 그 뒤 사면됐다. 과거 공산주의 단체들은 언론으로부터 자주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레드셔츠를 세균 취급하는 방콕인들
옛 공산당원 중 한 명으로 일부 레드셔츠들에게 은근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차란 디타피차이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레드셔츠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타이에서는 공산주의가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1970년대와 80년대 용어들도 이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투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수립을 위한 것이 아니다.”
22살의 타이학생연합(SFT) 사무총장인 아누티 데테바폰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예전 PCT 당원 중 일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마오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사회에 아직도 봉건주의적 속성이 남아 있다면 이 상황에서의 민주주의 혁명은 노동자, 농민, 프티 부르주아, 거대 자본가, 이 네 계급의 통합을 의미할 것이다. 여전히 사회가 봉건주의에 갇힌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유일한 방안이다. 타이는 여전히 입헌군주국가다. 이런 의미에서 탁신은 낡은 질서를 뒤집어엎은 기업가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주의자가 탁신을 지지하는 것이다. 군주제가 사라진 상황이었더라면 마오주의는 탁신에 저항했을 것이다.”
레드셔츠의 정치적 시위를 촉발한 배경에는 `프라이'(Phrai)와 `암맛'(Ammat), 이 두 단어가 버티고 있다. 그 의미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폭발력이 잠재돼 있다. 하나는 자랑스럽게 자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고, 다른 하나에는 다소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방콕의 오리엔트프랑스어학원(EFEO) 원장인 프랑수아 라지라르드는 “이 두 단어에 대해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적 의미의 ‘프라이’는 자유롭긴 하지만 부역의 의무를 졌던 타이 국민을 의미한다. 모든 프라이는(그 내부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다) 영주나 귀족에 종속돼 부역과 납세의 의무를 수행했다. 현재의 프라이는 레드셔츠의 주장대로 억압당하거나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암맛’은 중앙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직접적인 귀족 생활을 누린 왕실 사람들과 장관, 관료, 지주, 부유한 공무원을 의미했다. 즉, 모든 엘리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암맛은 부르주아 엘리트와 도시 엘리트, 즉 정부에 빌붙어 부를 취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레드셔츠의 비난을 받고 있는 유명한 타이 왕실의 자문기관이다.”
“봉건주의서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
현재의 이념적 재구성은 2008년 말에 시작됐다. UDD 지도자인 위라 무시카퐁, 자투폰 프롬판, 나타웃 사이크아가 <오늘의 진실>이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에게 논타부리에서 열릴 집회에 빨간색 옷을 입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그해 12월 나타웃은 의회에서 투쟁에 대해 첫 대표연설을 했다. “우리는 이 땅의 소금입니다. 우리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면서,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이 땅에 남겼습니다. 두 다리가 땅에 박혀버린 우리는 하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중략) 하지만 나는 레드셔츠의 힘을 믿습니다. 매일매일, 매순간 조금씩 성장해 우리 목소리가 저 하늘에 닿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6)
주민 스스로 조직 만들어 투쟁
방콕에서 남쪽으로 30km 남짓 떨어진 사뭇쁘라깐 지역의 서민 거리. 물과 식량의 저장고 옆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언제나 보초를 서고 있다. 이곳에는 레드셔츠의 전략적 거점인 라디오 방송사가 있다. 방송사 소유주인 피라 프린클롱은 푸에아타이당의 의원이다. 의자에 앉아 있던 피라는 웃으면서 “그렇다. 정부는 수백 개 방송사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방송도 중단시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감히 여기에서까지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없다. 만약 군경이 쳐들어온다면, 우리는 바로 신호를 보내고 그 즉시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와 우리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방송사는 정치적 프로그램과 지역 프로그램을 반씩 섞어 24시간 동안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그는 이어 “청취자가 직접 우리에게 각종 사안을 제보해준다. 시민이 정보 제공자인 셈이다. 이렇게 점차 시민과 라디오가 한식구가 돼간다. 하나의 조직망을 이룬 것이다. 진행자 대부분도 무료 봉사자다”라고 강조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의 라차쁘라송 거리. 레드셔츠 지도자들의 마음이 편안하다. 예전에 가수였던 아리스만 퐁그루앙롱은 청록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는 전의를 북돋우는 연설을 끝마치고는 달콤한 노래로 동료들을 깨운다. 이산의 전통 음악과 운율이 잘 맞는 리듬이 이어진다. 자투폰은 자신의 코이바 시가를 내려놓고 아리스만과 함께 타악기를 연주한다. 그들이 포옹을 한다. 정치와 공연의 조화, 불길한 소문에도 의연한 태도. 이것이 라디오 방송과 피플 채널이 거대한 화면과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타이 전국으로 내보내는 방송의 공식이다. 정보와 감동, 교리가 모두 담겨 있다.
타이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또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정당은 만들 수 없다. 군주제에 대해 이성적 비판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왕족모욕죄에 대한 고소·고발은 더욱 활개치고 있다. ‘공화국’이란 단어도 처벌 대상이다. 올해 82살의 국왕은 2009년 9월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고, 왕비는 2008년 옐로셔츠 시위대 부상자들을 방문해 옐로셔츠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낡은 돗자리 위에 앉은 램은 “레드셔츠를 비롯해 거리, 심지어 마을 단위로 주민이 스스로 조직을 만든 것은 타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라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여전히 대다수 농민이 군주제를 존중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멜론을 봐라. 멜론은 반으로 쪼개고 보면 양쪽이 똑같다. 하지만 포도송이는 다르다. 아주 맛있는 포도알도 있고, 맛없는 포도알도 있다. 심지어 다 썩어 말라 비틀어진 포도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포도알이 하나의 포도송이에 달려 있다. 이것이 레드셔츠의 모습이다.”
글•자비에 몽테아르 Xavier Monthé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블랙 토요일’. 팡파 다리와 코쿠아 교차로에 모인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군부대의 진압으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 폴 M. 핸들리, <왕은 절대 웃지 않는다: 푸미폰 아둔야뎃 평전>, Yale University Press, 뉴헤이븐(미국 코네티컷주), 2006.
(3) 2010년 5월 25일 법원의 탁신 전 총리에 대한 ‘테러’ 혐의 체포영장 발부로 탁신의 처지는 더욱 나빠졌다. 지난 2월 26일에는 타이 대법원이 탁신의 은행 계좌 내 463억7천만 밧(약 10억 유로)을 압수하라는 판결을 내려 탁신이 이에 반발했다.
(4) 통차이 위니차꾼, <세균들: 타이 정치체제의 빨간 간염>, 2010년 5월 3일, 뉴만달라 사이트.
(5) 자일즈 치 응파꼰, <부자들을 위한 쿠데타: 타이의 정치 위기>, Workers Democracy Publishing, 방콕, 2007.
(6) 아다돌 인가와니, <방송되지 않았던 연설>, 뉴만달라 사이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