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변덕
2018-06-28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에마뉘엘 마크롱은 거의 모든 프랑스 언론의 지지를 받아 수월하게 프랑스 대통령직에 선출된 후, 의회에 선거기간 동안 ‘가짜 뉴스’의 확산을 저지하는 법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벌써 다음 대선을 노리는 것인가? 조만간 표결에 부쳐질 이 법안은 자신들이 직면한 도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행정부의 무지를 드러내며, 이와 동시에 그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강압적 장치들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행정부의 무모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카탈루냐 독립투표, 이탈리아 오성운동 등 비이성적인 후보와 반체제적인 정당이나 운동의 승리를 두고, 이것이 특정 공작 세력에 의한 가짜뉴스 확산 때문이라고 여전히 (미미하게나마) 믿고 있다면 이는 통찰력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설득력 있는 자료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이 제조한 가짜 뉴스 덕분에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1년 넘게 혈안이 돼 있다. 마크롱도 동일한 유형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인다.
무의미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장치를 통해서 이 강박관념을 쫓으려고 할 정도다. ‘무의미하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5월 3일, 프랑스 참사원(le Conseil d’Etat)은 이 사안에 대해 “이미 프랑스 법에는 허위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조항이 몇 가지 있다”라고 상기시켰다. 그 예로 유언비어·비방·모욕·도발적인 발언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언론의 자유에 관한 1881년 7월 29일 법률’을 들 수 있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크롱이 추진하는 해당 법률안은 “허위정보를 구성하는 사실이 인위적이고 대대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사에게 48시간 이내에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참사원에서는 이를 두고 “적법하다고 하기에 민감하고, 더군다나 담당 판사는 매우 짧은 기한 내에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마크롱이 고안해낸 이 법적 장치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와 웹호스팅 업체들이 당국에 ‘협력할 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반인륜적인 범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특정한 인종이나 국적·종교·성별 등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역주), 아동 포르노’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재를 했지만, 이 법률안에 의하면 이제 그 대상이 모든 ‘허위정보’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의 억만장자 친구들이 장악한 언론이나 기만 광고, 공중파 TV 채널의 재정적 압박 등은 법안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왜 선거기간을 위해서만 이 법적인 도구를 마련해야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걸프 전쟁, 코소보 전쟁, 이라크 전쟁, 리비아 전쟁 등 거의 모든 전쟁에서 거짓이 난무하고 정보가 조작됐음을 목격했다. 이는 모스크바, 페이스북 또는 소셜 네트워크 때문이 아니었다. 거짓정보의 확산과 정보 조작을 한 장본인들은 <뉴욕 타임스> 등 서양에서 가장 큰 일간지들과 백악관, 유럽의 주요 수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을 이끄는 존재들이었다. 지난달 러시아 언론인의 허위 죽음을 발표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판사가 이 모든 거짓 뉴스를 유포하는 범인들을 잡아야 하는 날이 온다면, 적어도 그 진짜 범인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