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

2018-06-28     마이클 J. 글레넌 | 플레쳐법학외교대학원 교수

미국 좌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정보국’라는 뜻밖의 아군을 얻었다. 정보국는 현직 대통령과 러시아 간의 공모 의혹을 수사하며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니고서야, 이런 주장에 동조하기란 힘들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미국인들이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자긍심을 이어가기에 다소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담론이 단지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이제 헌법에 보장된 권력 통제 기제(견제와 균형)에 따라 국가 안보기관들이 집권층의 위협에 저항력을 갖췄다며 흡족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볼 때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탈을 막아주는 방호벽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처음부터 관료주의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1801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행정부 소속 공무원은 132명에 불과했고 대통령 비서실도 개인 비서 한 명뿐이었다. 또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측근들도 정당이 조직되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헌법이 제정되고 4년 후인 1791년에서야 공화민주당이 등장했다. 정치 질서가 점차 자리 잡으면서 의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진영에 속하는 후보자가 당선돼야 이득을 보게 됐다. 이때부터 행정부가 잘못을 저질렀을때를 대비한 단 하나의 헌법적 해결책인, (그러니까 입법부가 정부 구성원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탄핵은 대통령의 친구나 지지자들이 저지른 각종 범죄를 처벌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19세기 말 특별검사 제도가 도입됐다. 삼권분립을 방해하는 이해관계가 의심될 경우에 법무부를 대체하는 독립 검사를 두는 것이다.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의 재임 기간, 위스키 생산업자와 재무부 공무원 및 정치인들이 공모해 공공자금을 유용한 ‘위스키 링’ 스캔들의 수사를 이끌기 위해 1875년 존 B. 헨더슨이 첫 번째 특별검사로 임명됐다. 2017년 5월에는 로버트 뮬러가 특별검사를 맡아 트럼프 대통령 대선 캠프와 러시아 정부 간 공모 의혹을 수사했다. 1881년에는 윌리엄 쿡 특별검사가 우편사무 관련 부패사건을 수사했고, 1905년에는 프랜시스 헤니 특별검사가 석유사업권 분배에서 뇌물수수 의혹을 밝히려 했다. 또한 1973년 5월에 임명된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백악관이 연루된 정치스파이추문 ‘워터게이트’를 수사하다가 10월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해임당했다. 실상 특별검사 제도도 완전한 대책이라 볼 수는 없다. 특별검사의 임명 과정이 법무부의 재량에 달려있으며, 특별검사를 파면할 수 있는 헌법적 견제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행정부의 독립성은 양날의 검이다. 행정부의 독립성이 특별검사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독립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국가안보 관련 관료들에게도 크게 환영받고 있다. 그동안 그들은 설사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더라도, 그 의사를 행정절차의 처리 속도를 늦추는 식의, 지극히 수동적인 방법으로 표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식 비판과 여론을 이용해 반대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출할 수 있게 됐다.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 유착 의혹에 대해 수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서슴없이 밝혔다. FBI와 CIA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필립 머드도 코미 전 FBI 국장의 처신을 옹호했다. 
 
“정보부의 보복수단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대통령이 국장을 협박해 수사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재고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온 지 13개월이 됐지만 저희는 (FBI가 창설된) 1908년부터 여기 있었으니까요. 게임을 시작하고 싶다면 좋습니다. 어차피 이기는 건 저희일 테니까요”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제연합(UN) 대사를 역임한 서맨사 파워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전직 CIA 국장(2013~2017)인 존 브레넌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이라고 (지난 3월 17일에) 트윗을 남겼다. 척 슈무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정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복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1)
 
이런 발언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물론 헌법에 선출직의 전횡을 막는 권력 견제장치가 있긴 하지만 국가안보 관련 공무원들은 그런 장치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 시민들은 국가정보기관이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들을 신뢰한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혐오한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내 적의 적이라고 해서 그가 반드시 내 친구라는 법은 없다. 정보기관을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위한 보루로 삼으려면 미국의 근현대사에 무지해야 한다. 아이다호 주의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처치 위원회’의 보고서를 열독하면 기억을 환기할 수 있다(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프랭크 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처치 위원회가 구성돼 CIA, NSA, FBI의 불법 사찰활동을 조사했다-역주) 
 
1976년 발간된 이 보고서(2)에는 각종 음모가 담겨 있다. 이런 음모들은 독불장군 카우보이들이 저지른 우발적인 해악이 아니라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고 있는 정보부의 책임자들이 정교하게 기획한 작업들이다. 정치학자 록 존슨의 표현을 빌자면, “몇십 년 동안 정보부는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자들을 상대로 꼼수를 부리며”,(3) 암암리에 활동하는 요원들이 어떻게 자유와 안보 사이의 균형을 깨트려왔는지 보여줬다. 
 
1956년부터 1971년까지 FBI가 주도한 코인텔프로(COINTELPRO, Counter Intelligence Program)는 ‘국가 전복을 도모’하는 개인과 집단(베트남전쟁 반대론자, 개인적 공권수호 운동가 등)을 색출해 제재하고자 운영됐다. 이때 FBI는 국세청의 도움을 받았고, 종교단체와 대학교는 물론 수많은 미디어 내부로 침투했다. 또 아프리카계 미국인 집단 내부에 폭력사태를 야기하거나 지도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고 익명의 투서 수백 통을 발송하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자살을 유도하기 위해 마틴 루터 킹에게 보낸 것도 있었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위법이었다. FBI 외부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승인한 흔적은 전혀 없으며 심지어 FBI 부국장도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했다.
 
무고한 사람을 투옥, 
고문해도 ‘국가기밀’이면 끝나
 
CIA도 1967~1973년 광범위한 첩보활동인 ‘카오스 작전’을 운영하며 평화주의 운동을 감시했다. 미국 법률상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조직 100개와 인물 7,200명을 요주의 대상 명단에 올리고 관리했다. 게다가 에이치티링구얼(HTLingual) 작전 차원에서 미국 시민이 수신하거나 발송한 국제우편물 수만 통을 개봉해 검열했다. 1952년 시작된 이 작전은 20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미국 의회가 설치했던 감독하부위원회도 이 작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70년대 초, CIA 국장과 FBI 국장은 이 작전이 중단됐다고 닉슨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착수된 섐록(Shamroc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NSA는 미국 시민이 수취 또는 발송한 국제 전보 수백만 건을 불법수집했다. 처치 위원회는 섐록 프로젝트가 ‘최대 규모의 통신검열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통신검열은 법적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았을뿐더러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는지, 더 나아가 인지는 하고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닉슨 대통령은 NSA라는 기관 자체도 막연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1973년 5월 16일, 대통령의 변호사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닉슨 대통령에게 (급진좌파 활동가를 대상으로 CIA, FBI, NSA가 공조하는) 휴스턴 계획을 승인할 경우에 NSA가 미국 시민을 불법으로 감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더니 닉슨 대통령은 “NSA가 뭐요? 무슨 일을 하는데?”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권력남용은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의회의 법리감독과 감시활동이 강화됐기 때문에 이런 일은 더 이상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낙관론은 근거가 없다. 
 
2015년 5월 연방항소법원에서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 감청 프로그램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사례와 같은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보통 법원은 국가안보 관련 프로그램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접수하지 않고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본질적인 면은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칼리드 알마스리는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했다. 알카에다 수뇌부로 오해를 산 독일시민권자 알마스리는 2003년 마케도니아에서 CIA에 체포됐다. CIA의 ‘비밀기’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송된 그는 몇 달간 투옥돼 고문을 당했다. 알마스리는 풀려난 후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사건 수사로 국가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CIA의 구금 및 취조 프로그램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를 진행하는 시점에 의회가 진실로 결연한 태도를 취한 것인가? 상원 정보위원회가 2014년에 발간한 6,000쪽에 달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수감자 ‘압박 취조 기술’의 심각성과 효용에 대해 의회와 백악관에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4) 하지만 이 보고서는 이런 방법이 적법한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를 어떻게 손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덧붙여 정보위원회가 현황 파악에 필요한 서류 9,400건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부됐다는 내용의 각주도 있다. 정보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해당 서류 열람을 요청하는 공문을 연속 세 번이나 보냈지만 한 번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보위원회는 요청을 포기하고 반발했다. 문제는 정보위원회가 의회에서 가장 위협적인 기구라는 점이다.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칭송되는 정보부의 실체다.
어느 날엔가 국가적 ‘위급’상황을 앞세우며 구태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정보부는 선출된 지도층의 결정을 감독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플로리다고등학교에서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크랜드 총기 사태를 막지 못했다고 FBI를 비난할 때, 우리는 대통령 자신은 어째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어쨌든 FBI는 법무부 소속으로서 법무부를 위해 일한다. M. 코미 전 FBI 국장도 “행정부에 속하는 기관으로서 우리는 대통령의 직속 관할”이라고 수긍했다. 유권자의 판단에 귀 기울이는 대신 대통령의 권위를 행사하려고 한다면 국가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은 자신이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글·마이클 J. 글레넌 Michael J. Glennon
미국 매사추세츠 주 메드퍼드 터프츠대학교 플레쳐법학외교대학원 교수, 저서로 『National Security and Double Government』(Oxford University Press, 2014)가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The Rachel Maddow Show’, MSNBC, 2017년 1월 4일.
(2) ‘Intelligence Activities and the Rights of Americans’, 상원 정부활동감독위원회, II권, 1976. www.intelligence.senate.gov 
(3) Loch Johnson, 『Spy Watching: Intelligence Accountability in the United States』,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4) ‘Study on CIA Detention and Interrogation Program’ (2014), 상원 정보위원회, www.feinstein.senate.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