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가 권리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2018-06-28     제롬 라미 |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

리모주대학교, 발대학교, 바르셀로나대학교 등이 동물법 과정을 개설했다. 동물법 학과가 속속들이 생기는 현상은 동물권 관련 문제가, 특히 부국 내에서, 점차 제도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부부가 이혼할 때 기르던 개는 누가 키울 것인가? 떠돌이 암소가 끼친 피해는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멸종위기동물을 위협한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외에도 다양한 물음에 대해 법적 근거가 있는 답을 하려면 프랑스에서는 민법, 형법, 농업법, 환경법 등 7개 법을 참고하게 되는데, 그 조항들이 통합돼 기실 동물에 대한 법을 이룬다. 산재하는 법 규정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 일관성 있는 법규범 자료집을 마련하기 위한 ‘동물법’이 태동하기 시작했다.(1)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에서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동물보호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 동물보호에 대해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에 관한 논의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이론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고대로부터 관련 논의가 있어 왔다며 기원전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가 집필한 작품 중에서 이성과 공격성과 욕망이 뒤섞인, 인간과 다른 종 사이에서 ‘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또 투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1567년 11월 1일 자 교황 칙령인 ‘양 떼의 안녕을 위해(De salute gregis dominici)’를 언급한다. 교황 비오 5세는 이 칙령을 통해 ‘경기장에서 황소나 야생동물을 쫓는 행동’은 ‘기독교적 연민과 자비에 반하는 일’로서 여기에 동참한 이들은 파문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신과 신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공공장소에서 동물학대를 금지한 첫 번째 사례다.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들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동물의 지위에 관심을 가졌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 서문에 ‘동물의 타고난 감각을 우리와 비교해보면, 그들도 자연법 앞에 평등한 개체이며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적었다. 여기서 ‘자연법’이란 국가가 마련한 ‘실정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연, 더 나아가 존재에서 비롯된 법의 총체를 지칭한다. 몇 년 후,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도덕 및 입법 원리 서설』(1789)에서 고통을 감지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관련 논의를 심화시켜 동물에게 ‘권리에 대한 권리’를 인정했다.(2)
 
19세기 초가 돼서야 동물에게 가하는 잔혹한 행동을 처벌하는 첫 번째 법이 등장했다. 영국에서는 동물학대방지협회(SPCA, Society for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가 설립되기 2년 전인 1822년에 마틴 법이 제정돼 동물학대 행위를 금지했다. 뒤이어 독일에서 동물학대 금지법이 마련됐다. 프랑스에서는 1846년이 돼서야 동물보호단체(SPA)가 창설됐고 1850년 7월 9일 제정된 그라몽 법의 단일 조항에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과도하게 가축을 학대하는 행위를 저지른 자는 5~15프랑의 벌금과 1~5일의 구류로 처벌한다’고 명시됐다. 그런데 이 법은 1848년 2월 혁명 이후 민중이 과격한 행동으로 격앙되지 않도록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됐기에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3)
 
그러나 19세기에 최상위층(빅토리아 여왕도 영국 SPCA에 가입하게 된다)을 필두로 한 사람들의 인식은 동물학대 금지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투우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았는데, 이는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위를 금지하는 형법 조항에서 해당 항목이 ‘꾸준히 이어진 지역 전통임을 입증할 경우, 투우 경기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됐기 때문이다. 동물 생체해부도 끔찍하게 여기기는 했으나, 이를 제재하는 법이 제정되지는 않았다. 
 
20세기 후반에 법적 근거자료가 쌓이면서 동물 고유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대중의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1978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공포된 ‘세계 동물권리 선언’은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모든 동물의 삶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죽여야만 할 때는 순식간에 처리해 동물이 불안함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 거두고 있는 동물은 관리와 관심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등 동물의 권리에 대한 기본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이 선언도 법적인 강제조항이 없어 상징적인 문서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 조인돼 2009년 발효된 유럽연합(EU)의 운영에 관한 리스본 협약은 다르다. 이 협약 제13조에는 ‘농업, 어업, 교통, 국내시장, 기술 연구 및 개발, 지역권 등의 분야에서 EU 정책을 작성 및 시행할 때 EU와 회원국은 감각이 있는 존재로서 동물의 복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그래서 회원국은 자국 법제를 이 조항에 맞춰 개정했다. 
 
프랑스에서 형법과 농업법을 비롯해 다양한 법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2월 16일 법이 제정되고서야 민법상 동물이 ‘동산’이 아니라 ‘감각이 있는 존재’로서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프랑스의 양면적 특성을 보여주듯 야생동물은 해당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여전히 환경법 제426-6조에 근거해 ‘유해 동물’ 목록을 작성하고 이에 해당하는 야생 동물은 제거한다. 이에 비해 다른 국가는 동물권 보호에 확연히 적극적이다. 1993년 ‘동물당’이 창당된 독일에서 동물 보호는 2002년부터 근본법에 포함돼 국가적 목표로 간주되고 있다. 또 독일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덴마크, 이스라엘, 이탈리아, 영국에서 동물 강제사육이 금지됐다. 또한 독일은 서커스에서 야생동물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고, 벨기에, 오스트리아, 그리스,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영국과 같은 국가는 모피 제작 및 매매를 금지했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등은 동물권 수호를 위한 경찰 조직을 운영한다. EU에 속하지 않는 스위스가 단연 돋보이는데 살아 있는 대하를 끓는 물에 넣어 데치는 일을 금지하고 동물의 존엄사 방법을 개발하며, 동물 스포츠 경기 중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동물을 철수시키는 등 동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인도의 경우(하단 ‘신성한 암소’ 박스기사 참조)를 예외로 삼는다면 동물권 확보 및 개선 노력은 대부분 서구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부국 내에서 동물의 고통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음을 보여준다. 동물법의 점진적 제도화가 이를 방증한다. 1977년 한 학생의 요청으로 미국 시턴홀대학교에서 동물법을 전문으로 하는 수업이 처음 개설됐다.(4) 그 후 미국 여러 대학으로 동물법 강의가 확대됐다. 프랑스에서는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를 모델로 삼은 스트라스부르그대학교가 2015년부터 ‘윤리와 사회’ 석박사통합과정에서 ‘동물법’과 ‘동물 윤리’를 전문과목으로 다루고 있다. 이듬해 리모주대학교는 ‘전문대 졸업 이상’ 또는 ‘열의가 있는’ 지원자를 상대로 한 ‘동물법’ 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이들을 위한 교재를 마련하고 동물보호단체 ‘3천만 친구들 재단’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 렉시스넥시스 출판사는 지난 3월 처음으로 관련 법령과 판례를 총망라한 천여 쪽의 ‘동물법 법전’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동물법 관련 수업을 편성함과 더불어 전문학술지도 속속 창간되고 있다. 미시건주립대학의 <동물법 저널>, <스탠포드 동물법 저널>, <동물법 리뷰>(1994년 창간) 등은 미국 캠퍼스에서 동물법이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2009년에 <반연간 동물법 전문지>가 창간돼 ‘학계 모든 전공의 법리학자는 물론 철학자와 과학자의 힘’을 모아 관련된 사회적 흐름의 추이와 이론적 논제를 다루려고 하고 있다.
 
잡지 제호를 살피다 보면 피터 싱어의 이름이 떠오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철학자인 그는 제러미 벤담의 견해처럼 고통을 받는지 여부를 도덕적인 근거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펼친 저서 『동물 해방』(1975)(5)을 통해 동물권과 동물윤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인간에게 동물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가 얼마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편익을 위한 꼼수’(6)라고 여겼다. 그 자신도 동물의 권리를 앞세우며 동물 보호를 주창하진 않았다. 게리 L. 프란치오네 미국 법학자는 동물을 인간과 동일하게, 그러니까 법인격을 갖춘 존재로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 하지만 캘리포니아 법원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2011년에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의 사진기로 셀카를 찍은 마카크원숭이 ‘나루토’의 저작권 소유 여부를 놓고 한 동물보호협회가 캘리포니아 법원에 전례 없는 소송을 제기했다. 몇 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법원은 지난 4월에 저작권 소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더 나아가 (인간을 포함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유기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법적 고찰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는 동물과 ‘복합적 공동체’(8)를 구성하고 있기에, ‘인간의 이익만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철학자인 코린 펠뤼숑은 모두를 위한,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기 위해 동물법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치 이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철학자인 윌 킴릭카와 수 도널드슨은 동물법이 난관에 봉착했으며, 사육되는 동물의 고통은 고려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인간과 동물 간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시민권 모델을 반려동물과 가축으로 확대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9)
 
2014년, 29세 오랑우탄인 산드라는 아르헨티나 법원으로부터 ‘권리주체’로 인정받아 (재판 없는 구속을 금지하는) ‘인신 보호 영장’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1994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에서 지내온 산드라는 수줍음이 많아 담요를 쓰며 대중의 시선을 피해왔다.) 20년을 갇혀 보낸 후에야 자유권을 인정받은 산드라는 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을 떠날 수 있었다.  
 
 
글·제롬 라미 Jérôme Lamy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ean-Pierre Marguénaud, Florence Burgat, Jacques Leroy, 『Le droit animalier(동물법)』,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2016.
(2) Jeremy Bentham,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T. Payne and Son, 1789, p.cccix
(3) Jean-Yves Bory, 『La douleur des bêtes. La polémique sur la vivisection au XIXe siècle en France(동물의 고통, 19세기 프랑스 동물 생체해부 논란)』, 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2013, p.78.
(4) Joyce Tischler, ‘The History of Animal Law, Part I (1972-1987)’, <Journal of Animal Law and Policy>, vol. 2008, p.10.
(5) Peter Singer, 『La libération animale(동물 해방)』, Grasset, Paris, 1993.
(6) Peter Singer, 『Questions d’éthique pratique(실천윤리학)』, Bayard, Paris, 1997 (초판 1979).
(7) Gary L. Francione, 『Introduction aux droits des animaux(동물법개론)』, L’Age d’homme, Lausanne, 2015. ‘Pour l’abolition de l’animal-esclave(동물 노예를 해방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n°629, 2006년 8월호, p.20
(8) Corine Pelluchon, 『Manifeste animaliste. Politiser la cause animale(동물권옹호성명서 - 동물권 논의를 정치권으로)』, Alma, Paris, 2016.
(9) Will Kymlicka, Sue Donaldson, 『Zoopolis. Une théorie des droits des animaux(주폴리스 - 동물권에 대한 정치적 이론)』, Alma, Paris, 2016.
 

 

박스기사

신성한 암소

인도 헌법은 ‘중생(衆生)’을 긍휼히 여길 것을 모든 시민의 의무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는 동물복지의 모델로 여겨진다. 그러나 법조문이 항상 실천까지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저녁 무렵 나는 N박사와 환경부 건물에서 만났는데, 그는 환경부에서 동물복지 부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 그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동물관련 문제들을 설명하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엄청난 유기견의 개체 수라고 말했다(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결국 도축장으로 끌려갈 동물들이 언제나 트럭에 너무 많이 실려 운반되는 것도 큰 골칫거리라고 했다. 이동하는 동안 정차시간이 없고, 먹이나 물도 주지 않은 채 엄청난 거리를 주파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최장시간 동안 트럭으로 운반되고, 그렇기에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동물은 바로 인도 내에서 소위 ‘신성한 암소’로 일컬어지는 그 유명한 동물이 된다. 이들의 도축은 케랄라 주와 서벵골 주에서만 합법으로 인정되는데, 이 두 개 주는 인도에서도 공산주의 성향을 띤 곳이다. 황소, 물소, 암물소 도축 금지령이 내려지지 않는 한, 도축장에 암소가 있다는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다.

출처: 플로랑스 뷔르가, 『아힘사*. 인도에서 동물에 대한 폭력과 비폭력』, 인문과학출판사, 2014년.
* 인도 종교의 불살생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