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의 해피하지 않은 이야기

2018-06-28     김지윤 | <동물의 소리> 편집국장

휴가라 먼 길을 떠나 한밤중에 바닷가 한 기슭에 도착했다. 나는 케이지 사이로 코를 내밀어 바닷가의 낯선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수천 가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전에 맡아본 적 없는 냄새도, 아주 익숙한 냄새도 있었다. 냄새에는 금방 적응됐지만 문제는 소리였다. 서울 아파트 집보다 영혼이 떠드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이 근방에서 죽은 개들이 많은 모양이다. 개의 영혼은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냄새를 맡고 뛰어다니고 떠들어댈 뿐이다. 대개는 불만 많은 영혼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시끄럽다. 아마 이 근방에서는 불만 많은 개들이 많이 죽은 모양이다.


영혼들은 내 케이지로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대부분은 출신을 특정하기 어려운 잡종들이었다. 내가 이전에 살던 도시의 냄새가 그들을 자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꼬리를 흔들며 그들에게 인사했지만 영혼들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지 금세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영혼들이 차례를 기다리듯 한두 마리씩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자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키 큰 영혼 하나가 내게 다가오더니 케이지 앞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나는 코를 내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가 아주 옅었다. 오래된 영혼이라는 의미였다.

“친해지려고 하지마. 헛고생이야.”
나는 케이지 끝에 몸을 붙이고 앉았다.
“자네는 여기서 죽지 않을 테니까. 우리와 같은 상태가 돼도 자네는 다른 곳에 있을 거란 말이지. 그런 자네한테까지 정을 붙일 만큼 마음이 넉넉한 녀석은 여기 없다는 이야길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영혼들은 전에 알던 그 어떤 영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있는가?”
“해피. 해피라고 해요.”

나는 속삭이듯 대답했다.

“또 하나의 인간 같은 이름이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비웃는 투로 말했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니 개의치 말게나.”
“네. 괜찮아요.”
“근데 왜 그렇게 속삭이듯이 말하지? 인간들이 깰까 걱정되는가?”
“병이랬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나를 비웃었던 영혼이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여기는 누렁이.”

케이지 앞에 누워 있던 키 큰 영혼이 말해주었다.

“그따위 인간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누렁이요?”
“인간들은 우리 같은 잡종개를 색으로 구분해 부른다네.”
“색이 뭐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냄새 같은 거라 할 수 있네.”
“입 벌려봐.”

어느새 케이지 가까이 다가온 누렁이가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입을 벌려 보였다.

“병은 무슨.”
“수술인가?”
“맞네.”
“수술이요?”
“짖지 못하도록 만드는 수술 말일세.”
“내 성대를 찢어냈다고….”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병 때문에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보나마나 성(性)도 지워졌겠지. 성대를 찢어냈듯이 말이야. 그것도 병인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병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발정 나고 짖어대는 건 인간의 입장에서 성가신 일이니까”
“그런데 이곳에 왜 이렇게 영혼이 많죠? 이렇게 좁은 공간에?”

나는 말을 돌릴 의도로 키 큰 영혼에게 물었다.

“여긴 뜬장이 있던 곳이었네.”
“그게 뭐죠?”
“무식하긴. 가난한 개들이 모여 사는 곳을 부르는 말이야.”

누렁이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가난이 뭐죠?”
“너처럼 인간한테 속아 살아가는 개들은 모를 말이지. 너도 버려지고 나면 그땐 가난이 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야.”
‘나는 버려지지 않아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크게 내려 하자 목소리가 아니라 바람 새는 소리처럼 들렸다.

“인간과 함께 사는 개 중 자기가 살던 집에서 죽는 건 그나마 호사라고 해야겠군, 그런 호사를 누리는 개가 얼마나 되는 줄 아나? 열 마리 중 한 마리가 될까 말까 한다네.”
“그보다 한 해 인간으로부터 버려지는 개가 얼마나 되는지 아나?”

누렁이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물론 나쁜 인간도 있겠죠.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요.”
“10만 마리야. 한 해 10만 마리나 길가에 버려져. 인간에게 길든 개는 저 혼자 살아갈 힘이 없어. 상상이 가? 몇 년간 버려진 개들이 한 데 모여 있다고 생각해봐. 여기부터 줄 세우면 끝이 보이지도 않을 거야.”
“유기견 숫자만큼 인간들은 생명에 대한 의식도 버렸다는 게 슬프지만. 길든 개가 버려지면 얼마나 살아갈는지 걱정되네.”
“그렇지만 버려진 개들도 결국 인간의 보호를 받잖아요.”
“보호?”

누렁이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데리고 있다가 죽인다고 하던데. 안락사라는 명목으로 개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그렇게 죽임을 당해. 그것도 보호라고 부르나? 주사 맞고 죽은 개들은 영혼이 삐뚜름해서 영혼이 돼서도 영영 누워서 지내. 진짜 비극이야.”

누렁이는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인간이 언제 개를 가장 많이 버리는 줄 아나? 휴가철이야. 놀러 가야 하는데 개를 데려갈 수도 없고, 집에 방치해두자니 집에서 굶어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휴가지에서 개를 버리는 거야. 아무한테나 개를 키울 수 있는 권한을 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지. 독일 같은 경우를 볼까?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는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면 정부기관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받아야 해. 그 후에 개와 함께 살아도 좋은지 선별을 받게 되지. 그곳이라고 유기동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기견이 입양될 확률은 90퍼센트나 돼. 왜 그런 줄 알아? 인간 주도에 의해 일어나는 교배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야. 교배농장이 없다고. 개 농장이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어. 생각해봐. 인간 교배 농장이라는 게 생긴다면 인간들이 얼마나 기함을 하겠어?”

누렁이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키 큰 영혼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보호라는 이름으로 재롱을 부렸겠지. 성대를 빼앗겼고. 거세 수술도.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좁은 우리 안에 가둬놓고 버린 꼴이라니 쯧쯧.”
“아니에요. 내 가족이 피곤해서 잠시 깜빡했을 뿐이에요. 휴가로 낯선 곳에 와서 내가 다칠까 걱정했겠죠. 내일이면 날 꺼내줄 거예요. 내 가족은 날 사랑하니까요.”
“좋아. 그럼 이렇게 해볼까. 천으로 된 그 케이지를 한번 찢어봐. 물어뜯든 할퀴어내든 좋을 대로. 그리고 내일 아침에 너의 그 잘난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아니라니까요.”

나는 늙은 개의 기침 같은 목소리로 누렁이의 말을 끊었다.

“그쯤 하시게.”

키 큰 영혼의 말에 누렁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곳에 몇 마리의 개가 살다 떠났는지 아시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날 가족이 여행휴가를 떠났다네. 물론 그들이 반려견이라 부르는 개도 함께 데리고 이곳으로 왔지. 그때 이곳에 있던 우리 영혼들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챘고, 여행을 즐기는 그에게 경고했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았지. 가족을 사랑했으니까. 며칠인가 여행이 끝나고 가족이 돌아갔을 때 그 개는 여기 혼자 남았더군.”
“가족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하는 개도 많아요. 나의 어머니도 그랬어요!”
“자네 어머니는 진정으로 행복했나? 아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수도 없이 새끼와 생이별을 했겠지. 그러고서도 끝없이 꼬리를 흔들었을 거야. 그래야만 사랑받으니까. 그렇게 가족의 품에서 죽었다면 행복했기를 바라네. 진심이야. 하지만 그것이 자네 어머니가 선택한 삶인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를 떠올려보았다. 영영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의 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 이 친구는,”

키 큰 영혼은 턱짓으로 누렁이를 가리켰다.

“평생 말뚝에 묶여 살았다네. 나는 그때도 이미 영혼이 된 몸이었으니 그 모습도 지켜봤지. 물론 성질이 사나웠던 탓도 있었지만….”
“이봐!”
“그래, 그렇다고 묶여 사는 것은 부당한 일이지.”
“앞으로 여섯 걸음도 채 못 걸던 그 기분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이 친구가 그토록 사납게 굴었던 건 인간의 애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그때는 진정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일세.”
“그런데 왜….”

나는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해 누렁이를 흘깃 보았다. 의외로 누렁이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인간에 의해 산채로 매달아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검게 태워 죽임을 당했지. 복날이라 인간의 몸보신이 되는 날이었거든. 그러니 그때까지만 사육되는 식용견이라는 존재지. 여기 있는 영혼의 대부분은 그때 죽었네. 어째서 이렇게 많은 개들이 그날 죽었는지 몰라. 인간들의 미신 때문이었겠지. 아무튼 그렇게 죽었네.”
“뭐, 그렇게 됐어. 근데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누렁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동물의 5대 자유라는 걸 규정하고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물이 누려야 할 배고픔, 불편함, 질병, 두려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하지만 이 땅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개들을 생각해봐. 과연 몇 가지나 누리고 사는지.”
“그렇지만….”
“들어봐. 너는 지금 그 좁은 우리 안이 편안해? 가족이 너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나가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나? 이 땅의 개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자유를 강요받고 있어. 목줄에 묶인 개들에게 자유가 있기는 하나? 그런 환경에 두려움을 느껴 짖거나 웅크리거나 안아달라고 달려가면 어떻게 하지? 목젖을 잘라내고 거세 수술을 시키지. 그리고 싫증나면 버려.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너 정도면 아주 호사를 누리는 편이야. 식용 개를 기르는 사육장 얘기를 들어봤을지 모르겠군. 그곳의 철장에서는 더위도 추위도 피할 수 없고, 짐승의 사체나 인간이 먹고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갈아서 먹이라고 주지. 그곳에 갇혀 사는 개들은 죽지 않기 위해 그나마도 먹는 거야. 뜬장에서 평생을 갇혀 살아온 개들은 발바닥이 갈라지고 기형이 생겨 제대로 걷지도 못해. 오직 복날만을 위해 길러지지.”
누렁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덴에도 동물보호의 기본 원칙이라는 게 있어. 그 첫 번째가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며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 개들을 순전히 인간들의 기준에서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고, 마음껏 짖지도,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하면서 동물복지를 실천한다고 떠들지. 안 그래?”

말을 한참 쏟아내던 누렁이는 뒤늦게 흥분이 가라앉는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가족이 너를 사랑한댔지. 그들이 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던가? 사랑을 갈구하는 건 아마 너였겠지. 너도 알 거야. 그들이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된 지금 버렸다는 걸.”

나의 가족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앞발을 내밀어 천으로 된 케이지의 그물에 발톱을 걸었다. 
금세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힘주지 않았다. 차마 그것을 끊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물의 소리>  부산에서 태동해 서울 강남구에 소재지를 둔 ‘강남좌파’ 동물권매체. 부산 금정산성 개농장 폐쇄, 부산 애니멀호더 누리마루 계몽(TV조선방영), 구포 개시장 L탕제원 고발(TV조선방영), 익산(군산, 김제) 유기견 보호소 동물보호법위반 고발 및 폐쇄조치, 전국의 유기견 구조, 치료 후에 개인입양을 주도 등 동물권운동을 열성적으로 지원하다가 동물권운동단체가 돼버린 동물전문매체. 웹사이트(www.an.or.kr) 와 네이버밴드 ‘동물의소리’를 통해 활동 중이면, 현재 개식용금지법 청원 중이다. 

글·김지윤
동물전문매체 <동물의 소리> 편집국장. 강이석 대표를 동물운동에 투신하게 한 인물.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15년 간 펫로스에 시달렸을 만큼 여린 감성의 소유자인 반면,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투사가 되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 동물과 인간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는 그녀의 2018년 목표는 개식용금지법의 발효다.  

자료제공·강이석
동물전문매체 <동물의 소리> 대표. 잊지 못할 도움을 준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동물운동에 투신하게 됐다. 2017년 11월,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동물운동가 개개인의 과도한 희생 없이도, 동물들의 삶과 죽음이 존엄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이를 위해 공공제도 개선의 필요성과 동물보호를 위해 대국민 홍보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동물보호 교과서 격인 ‘동물구조 매뉴얼’을 제작해 전국민에게 무료 배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