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위로부터 시작된 여성 해방

2018-06-28     플로랑스 보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드디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정상 국가가 됐다!” 리야드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여대생 나자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여성인권 문제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사우디 왕국은 변화를 알리는 여러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여성이 고위직에 임명되고 30년 만에 남녀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상업 영화관이 개관됐다. 이미 군대와 경찰에서 여성을 모집하고 있으며, 공공장소에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이 허용되고 기도시간에 의무적으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정책도 폐지됐다.(1)


“30년의 요구가 지난 2년 동안 이뤄졌다”

매주 금기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에게 자동차 운전을 허용한 것이다. 여성도 올해 6월부터 남성 ‘보호자’의 동의 없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살만 국왕(81)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작년 9월에 발표한 대규모 경제사회 개혁 정책의 일환이다. 사우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꼭 입어야 하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긴 옷인 아바야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에 한 성직자가 라디오에 출연해서 ‘정숙하게’만 입는다면 꼭 아바야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으며, 몇 주 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 순방 중 한 인터뷰에서 아바야 착용이 무슬림 여성의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사우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적수인 이란과 차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의 지위 향상은 왕세자의 홍보 전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유럽의 거대 홍보대행사(퓌블리시스, 이마주 7, 에딜 컨설팅)가 왕세자를 돕고 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왕세자를 비롯해 사우디 왕가의 추락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다.(2)

그렇다면 사우디 여성들은 이 같은 변화를 반기고 있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있지 않고 사회가 매우 분화돼 있기 때문에(3천만 인구 중 1/3이 외국인이다)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청년층은 변화를 반기는 듯하다. 그런데 사우디 국민의 70%가 35세 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세계가 여성의 지위만으로 사우디를 평가하는 것에 지쳤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호다 알 엘라시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세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행동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고유의 전통을 가진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리듬에 맞춰 변화할 권리가 있다!” 그녀는 입법권을 가진 국정자문회의 마즐리스 알 슈라(Majelis Al-Shura)의 30명의 여성 위원 중 한 명이다(총 위원 수는 150명으로 선출이 아닌 국왕의 지명으로 임명된다. 여성 위원은 2013년 처음으로 임명됐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요구했던 것이 지난 2년 동안 다 이루어졌다. 엄청난 변화다.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 것이다.” 사우드 왕립대학교에서 교육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는 파와지아 알바크르 교수의 설명이다. 알바크르 교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여성의 운전금지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1990년 11월 6일 리야드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던 47명의 여성 선각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피부로 느낀 실제적인 전환점은 2년 전 ‘선행 권장과 악행 방지를 위한 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한 것이다. 위원회 소속의 ‘무타와(Mouttawa)’라 불리는 종교경찰은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맞게 행동하는지 단속했었다. 알바크르 교수가 덧붙였다. 

“우리의 일상이 바뀌었다. 전에 여자들은 거리에서 서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이제 여성들의 삶은 훨씬 편해졌다.” 

여성 엘리트들의 다음 목표는 남성 보호자 제도의 폐지다. 샤리아법에 규정된 것으로 사우디 여성들을 영원한 미성년자로 남게 하는 이 제도는 2017년이 돼서야 완화됐다. 이제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남편, 아버지, 남자 형제 심지어 아들이나 남성 친척)의 동의 없이 행정업무를 볼 수 있고 창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권 신청, 결혼 등에 있어서는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

리야드에 있는 사우드 왕립대학교에서 여성사를 강의하는 여성 해방운동가 하툰 알 파시 조교수는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사우디 여성들은 여전히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들도 압력을 받고 있다. 어떻게 행동하고 대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매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친정부 일간지인 <알 리야드>에 기고를 하면 인쇄돼 나올 때까지 3주를 기다려할 때도 있다고 한다. 남성으로만 구성된 신문사 경영진이 민감한 주제의 기고문이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종교계의 반응도 두려워한다. 종교계는 빈 살만 왕세자가 정권을 잡은 후 정권에 바짝 엎드려 있는 상태이지만 왕권의 중요한 동반자이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설 것이다.(3)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지만 한발 한발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승리다.” 알 파시 조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아직도 남성 중심적으로 행동하거나 자기 생각을 감추는 비겁한 남자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사우디인들은 현재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아니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누구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소셜 미디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우디에서는(93%의 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트위터를 비롯한 인스타그램, 스냅챗, 페이스북 등이 여론조사 기관 역할을 한다. 글로벌 미디어 인사이트에 의하면 사우디는 위에서 언급한 소셜 플랫폼의 방문자 수에서 2016년 세계 기록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자유의 공간인 소셜 미디어는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고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 정책을 반이슬람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덕분에 지금은 다른 목소리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했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악마로 취급받았다.” 하툰 알 파시 교수의 설명이다. 교수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현재의 변화가 ‘오로지 한 사람’에 의한 것이기에, ‘건강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한 사람이란, 다름 아닌 빈 살만 왕세자다. 왕세자가 멋지게(때로는 급작스럽게) 개혁 조치를 발표하지만 정치 분야에서의 개혁은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투표로 선출되는 이란과는 달리 사우디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을 수 없다. 왕가에 거의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다. 현재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더 경색돼 있고 공포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왕세자는 권력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가리지 않고 정적들을 체포했다. 2017년 6월부터 11월까지 여러 차례 체포 작전이 시행됐다. 트위터에 정치색을 띤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된 사람도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리야드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에 고위 인사들이 구금된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야드 남부에 있는 스와카(Swakah) 서민 시장에서 만난 여자들은 걱정이 많다. 모두 검정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망토)를 입고 히잡(얼굴을 내놓고 머리를 감싸는 가리개)이나 니캅(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리개)을 쓰고 본명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들은 변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도 반대한다.” 니캅을 써서 눈밖에 보이지 않는 60대의 할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장에서 22년째 옷을 팔고 있는 할머니는 ‘여자가 일하는 것은 이슬람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여자로서 지켜야 할 ‘정숙’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할머니는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더 큰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왕세자 만세!”

할머니의 상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25세의 누라 L.은 화장을 한 두 눈과 하얀 매니큐어를 칠한 손만 제외하고 온몸을 가렸다. 그녀 역시 여성들이 ‘운전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녀는 남편이 아침저녁으로 운전을 해준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는 서구인이 아니다.” 그녀는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남편이 아무런 문제 없이 동의해줬다. 일을 해서 돈도 벌고 나도 심심하지 않으니 좋다.”  

대학생의 60%가 여성, 야심 찬 사우디 여성들

스와카 시장에서 가까운 또 다른 시장 히잡(Hijab) 시장에서 만난 여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운전이요? 50대 아주머니인 입티삼 S.와 노르 K.는 니캅 속에서 웃었다. “우리는 30년 전부터 운전을 하고 있다! 베두인족 여자들은 운전을 한다. 멀리 사는데 운전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두 사람 모두 리야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마을과 캠프에서 살고 있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 일하는 것은 신의 선물이다. 선지자도 여자들에게 일을 하라고 격려했다.” 아이가 여덟인 과부가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는 “이슬람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또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못 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 4명의 아주머니들이 속옷 진열대에 둘러서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들에게 운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남자에게 여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자스민 D.와 마리암 N.은 히잡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종일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마리암은 의과대학생 약혼자가 있다. 결혼 피로연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리암이 니캅을 벗었을 때 지금의 약혼자가 그녀를 멀리서 눈여겨보고 마리암의 부모님에게 가서 결혼 허락을 받았다. “현재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운전면허를 따게 되면 우리들은 좀 더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암의 친구가 손으로 ‘V’를 그리며 웃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보호자 제도가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며 지지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미리암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피력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야심이 많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사우디 여성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보복이라도 하듯 남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한 젊은 여성 기업인의 설명이다. 사우디에서 여성 취학률은 97%이며, 전체 대학생 중 여성 비율은 60%를 차지한다. 사실 사우디에서 여성 해방은 압둘라 국왕 통치(2005~2015) 시절에 시작됐다. 여성들이 상업에 종사하게 된 것도 이때다. 주로 계산원이나 판매원 같은 소박한 일이었지만 사법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와하비즘(엄격하고 청교도적인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은 다른 이슬람 교파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을 샤리아법으로 금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해외 유학자금을 지원했는데 그중 30%가 여학생이었다. “덕분에 사고의 폭이 넓어졌고 청년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돼 있다. 경제 위기로 한 사람의 소득으로만 살 수 없어 여성들도 직장을 갖고 싶어 한다. 남편이나 아버지 남자 형제들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호다 알 헬라시 교수의 설명이다. 

운전, 직업, 복장,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하지만 가족, 계층, 지역에 따라 생각은 아주 다르다. 주말마다 만수르 가족의 여자들은 집 정원에 세워놓은 거대한 베두인 전통 천막에서 집안의 여자 어른들과 저녁 식사를 한다. 리야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동차 소음이 미치지 않는 조용한 곳이다. 인구 6백만의 리야드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 도시다. 아파트는 볼 수 없고 모래 색깔의 주택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작달막하고 모래 먼지가 쌓인 야자수 가로수가 거리에 심겨 있고 첨단 디자인의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수많은 미국식 쇼핑몰에서는 여자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부유하고 오래된 가문인 만수르 가족의 여자들은 보수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마땅치 않다고 한다. “그들은 사우디를 두바이로 만들려고 하지만 나는 우리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니캅을 벗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슬림이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50대의 아주머니가 말했다. 운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운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선택권을 갖는 것’이라고 만수르 가문의 여자들은 입을 모았다. 6년 동안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한 여성은 ‘비용이 들지만 피곤하지 않으니’ 운전사를 두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녀처럼 수천 명의 사우디 여성이 운전사를 두고 있다.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에서 온 무슬림 노동자들로, 이들은 적은 돈을 받으며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내고 있다. 그렇다면 보호자 제도는? ‘특정 나이가 지나면, 그러니까 21세부터는 보호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여자아이들은 엄마와 이모나 고모의 말을 듣지만 가끔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여대생들은 ‘2, 3년 동안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고 사우디로 돌아와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30세 이후에 결혼할 것이고 2~3명의 자녀를 낳을 것이다.’ 아바야는 어떻게 생각할까? ‘실용적이고 우아한 겉옷’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라는 수의사가 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수의사는 여성에게 금지된 직업이다. 대신 과학 분야 공부를 하고 말 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언젠가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경기에 나가는 것은 좋지만 TV나 신문과 인터뷰하는 것은 반대라고’ 한다. 그런 오빠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이다. 오빠 할 일이나 하라!” 남녀 불평등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전통 때문이지 종교 때문이 아니라’고 전통과 종교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누라의 사촌 리마는 아바야를 제작해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녀가 만드는 아바야는 현대적이고 색상도 다채로워 왕족이나 신부가 입는 드레스처럼 화려하다.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소셜 미디어 덕분에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그녀의 친구들도 온라인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은 특히 여성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사업으로 조리된 요리를 판매하는 친구도 있고 보석을 파는 친구도 있다.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있다. 대부분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말에 바틸 카페처럼 최근에 남녀가 함께 이용할 수 있게 된 곳에 간다. 남자들을 만날 드문 기회다.

리야드에서 서쪽으로 750km 떨어진 도시 타이에프는 리야드를 자유로운 도시로 보이게 할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다. 메카와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전 세계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제다와는 달리 매우 폐쇄적이다. 공공장소에서 남녀는 철저히 분리돼 있고 규정을 어기는 식당과 카페는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로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항상 감시자가 있다. 절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슬람학을 공부하고 있는 발랄하고 유쾌한 26세의 여대생 살와 M.은 말한다. “나는 운이 좋다. 아버지가 나를 믿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외출하려면 아버지에게 애원해야 한다. 허락을 받기도 힘들고, 때로는 맞기도 한다.” 많은 친구들이 남자친구가 있다고 한다. 부모들은 딸들이 학교에 갔다고 생각하지만 딸들은 운전사에게 ‘어떤 집 앞’에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혼전 성관계는 여전히 비난을 사지만, 흔한 일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 이상 임신중절은 금지돼 있지만,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피임약을 살 수 있다.

기혼자인 살와 M.에 의하면, “타이에프 여자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결혼한다.” 결혼은 대부분 중매에 의해 이뤄지지만, 일단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여자는 가정에서 권위를 얻는다. 자녀교육과 지출관리의 의무와 권한이 주어진다. “일부다처제(8~10%차지)는 미혼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종종 나오지만, 젊은 세대에서 일부다처는 드문 일이다. 수업이 없을 때 M.은 주로 TV 시청을 한다. 그녀는 터키와 인도 드라마를 좋아한다. “사우디 남자들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 성관계만을 원한다.” 사우디 남자들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가혹하다. 

중매결혼이든 연애결혼이든 현재 사우디에서는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다. 사회학자 무함마드 알 암리는 최근 ‘높은 이혼율로 무거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언론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M의 친구 카디자 S.(28)는 전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을 했다. 현재 오빠와 살며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다. 오빠가 그녀의 보호자다. “오빠가 걱정하는 것은 주위의 시선이다. 사우디에서는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 지가 매우 중요하다.” 두 친구는 종교경찰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그때는 적어도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들이 전화번호를 달라고 우리를 쫓아다닌다.” ‘여성의 인권이 보호받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타이에프에서 ‘여성의 인권이 보호받으려면 적어도 한 세대는 지나야 한다’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다. 

사우디의 현대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홍해에 인접한 제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 알 발라드 시장과 야외 조각, 세계 각국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인구 4백만의 거대 상업도시이며(그중 84만 명이 외국인이다) 메카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사우디에서 가장 매력적인(그리고 덜 보수적인) 도시다. 게다가 전설에 의하면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제다 역시 드넓은 도로와 셀 수 없이 수많은 쇼핑몰 리야드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사우디 내에서 이곳이 여성들에게 가장 자유로운 곳이다. 베이지, 파랑, 회색 등 아바야의 색상도 한층 다채롭다. 진주로 장식된 것과 지퍼가 달린 것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여자가 몸치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성형수술도 흔하다. 사회가 요동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우디인들은 제다에서 오랫동안 영화, 회화, 문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는 길을 모색했다.

상업 영화관이 30년 만에 재개관되기 석 달 전에 제다에 있는 아르밥 알 에라프 카페에서 파이자 암바 감독의 영화 <마리암>이 상영됐다. 스카프를 쓰고 학교에 가고 싶지만 법으로 금지돼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랍계 프랑스 여자아이에 관한 영화다. 아라밥 알 에라프 카페는 2017년 호주에서 살다가 돌아온 한 청년이 문을 연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약 60여 명의 남녀 청년들이 영화를 봤다. 파이자 암바 감독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놀랐다고 한다. “젊은 관객들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공유했다. “내가 히잡을 쓰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떠났다.” 반대로 “남자친구가 히잡을 쓰지 말라고 해서 헤어졌다.” 누군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자(사우디에서는 이슬람 외의 종교를 갖는 것이 금지돼있다) 20대 남자가 일어나서 “이 영화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첫 여성 관광 가이드인 아비르 아부슐레이만은 관광객이 많이 가지 않는 곳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알 발라드 관광 전문가다. 그녀는 서구 언론이 퍼뜨리고 있는 편견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운전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됐군요’라고 말하는데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우디가 단계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0년 전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2006년 출간된 라자 알사네아의 소설 『리야드의 딸들』(4)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4명의 여성이 자신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논란이 될 만한 것은 없고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는 여성의 일상을 그린 것에 불과하다. 원래 레바논에서 출간된 것인데 불법으로 사우디에 유통됐다. 2015년 출간된 『제다의 두 여자』(5) 역시 사우디 사회를 불편하게 했지만 검열을 받지는 않았다. 소설가이며 의사인 하나 히자지가 쓴 것으로 금기에 짓눌린 두 친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남성 독자들’도 포함해 많이 읽혔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 독자들이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비판했다. “독자들이 다른 결말을 원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미래를 기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리나 알 마에나는 여성의 운전허용은 매우 상징적인 조치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직접 운전하면 언젠가는 국가도 운전할 수 있지 않을까?” 거칠 것이 없는 40대 여성 알 마에나는 스포츠를 통해 여성해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녀는 12년 전, 여성에게 운동도 금지됐던 시절, 사우디 최초로 여성 농구 국가대표팀을 창설했다. 그녀는 현재 국정자문회의 위원이다. 1년 전부터 공립학교에서 여학생 대상으로 운동수업을 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사회가 좀 더 개방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 또한 이유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사우디 여성의 70%가 과체중, 40%가 비만이다.

사우디 사회의 현대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경제적 이유로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출했으며, 이 여성들을 과거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왕세자의 개혁정책에 민주주의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가 사우디에서 실시되고 있는 유일한 선거인 현실이다.(6) 40대 여성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왕세자가 부패와 싸우는 젊은 개혁가로 외국에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지금처럼 억압을 받은 때도 없었다. 여성으로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더 이상 두렵지 않지만 얼굴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은 더 두려운 것이 됐다. 독재국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사소한 차별일지라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우디에 전제정권이 들어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우디 정권이, 이란과 전쟁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온전한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급진적인 개혁을 해야 하는 것인가?  


글·플로랑스 보제 Florence Beaug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Vivian Nereim, ‘Saudi program calls for gender-mixing, no prayer closure’, <블룸버그>, New York, 2018. 5. 4.
(2) Gilbert Achcar, ‘Au Proche-Orient, la stratégie saoudienne dans l’impasse(중동의 키를 쥔 사우디의 딜레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3월호·한국어판 2018년 4월호.
(3) Nabil Mouline, ‘Petits arrangements avec le  wahhabisme(사우디왕국 내 탈(脫) 와하비즘의 열쇠)’, 프랑스어판 2018년 1월호·한국어판 2018년 3월호.
(4) Rajaa Alsanea, 『Les Filles de Riyad(리야드의 딸들)』, Plon, Paris, 2007.
(5) Hanaa Hijazi, 『Deux femmes de Djeddah(제다의 두 여자)』, L’Harmattan, Paris, 2017.
(6) 2015년 선거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피선거권을 가지게 됐다. 1,206개 의석 중 여성이 14개 의석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