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층에 약한 우크라이나의 눈가림식 경찰개혁

2018-06-28     세바스티앙 고베르 | 언론인

2017년 10월 31일, 우크라이나뇌물방지국(NABU) 조사원이 키예프에서 올레크산드르 아바코브(29세)를 체포했다. 군에 배낭을 납품하고 45만 유로(약 5억 6~7천만 원)를 횡령하는 데 가담한 혐의다. NABU는 NGO단체 및 서구 국가들이 추진한 반부패 캠페인의 일환으로 2015년 4월에 창설됐으며, 해당 분야에서 가장 독립성 강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아바코프를 체포하는 데까지는 NABU의 대대적인 작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 청년은 다름 아닌 세력가 아르센 아바코브 내무장관의 외동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포작전 개시 몇 분 만에 경찰과 국민군이 들이닥치더니 사무실 수색을 막고 NABU조사원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 방해공작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실각 4년 만에 만천하에 공개됐다. “정치인들이 개인적 이득을 위해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행태가 여전히 만연하다”고 무스타파 나옘 의원은 개탄했다. 그는 2013년 11월 초반 시위(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아자로프 총리에 반대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끈 주동자다. 며칠 후, 법원은 올레크산드르 아바코브를 보석금 없이 석방했다. 

그리고 11월 7일, 그의 아버지는 단 한 건의 불신임 투표도 없이 우크라이나 최고의회 ‘라다’에 살아남았다. 혁명 이후 최우선과제였던 국립경찰 개혁에 실패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리에서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악명 높은 사업가였던 그는 2014년 2월 내무장관직에 임명되면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에 이은 명실상부한 2인자로 올라섰다. 포로셴코 대통령 역시 내로라하는 재벌 출신으로, 혁명 직후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아바코브 장관은 경찰이 아들을 빼돌린 사건에 대해서는 얼버무리면서도 본인의 이미지가 ‘지식인 개혁가’로 비치길 원한다. 11월 11일, 그는 “경찰개혁이 현재 25~30% 진행된 상태”라며 기한 내에 달성시키겠다는 결심을 재차 밝혔다.(1) 그러나 반대세력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데니스 코브진 하르키프사회연구소장은 “우리가 2014년 당시 기대했던 개혁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며, 도보·차량순찰을 하며 거리치안을 유지하는 새로운 ‘순찰대’와 같은 눈가림식 정책 이면의 실패들을 지적했다. 

2015년 7월 4일, 눈부신 햇살 아래 우크라이나 정부는 키예프의 세인트-소피아 광장에서 경찰의 ‘새로운 얼굴’을 공개했다. 공문에 사용된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수백 명의 젊은 경찰들이 그들이 타고 다닐 신차 토요타 프리우스를 따라 길게 늘어선 채 엄숙히 선서를 했다. 이들 중 30%는 여성이다. 에카테리나 즈굴라제-글럭스만 내무부 차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맨 앞줄에 앉은 국내외 고위 관리들은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근 조지아 출신 개혁가인 그녀는, 부패로 악명 높은 본국의 경찰조직을 정화하고 현대화한 업적으로 유명하다. 미하일 사카쉬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조지아 출신들을 쫓아 그녀 역시 2014년에 우크라이나 정계에 뛰어들었다. 

‘셀카 경찰’이 냉각시킨 개혁에의 열기

이 수백 명의 젊은 경찰들은 심각한 논란거리였던 ‘DAI(도로교통 관리기관)’ 관료들을 대체해서, 수십 년의 잘못된 운영과 부패 및 폭력으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기존 시스템에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이날, 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선서를 마친 청년들과 포옹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고, 이들은 ‘셀카 경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도취감을 느꼈을지언정 이 감정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고 고브진 소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실망이 커지는 까닭은 혼동 때문이다. DAI 관료들은 오래전부터 1만 2,000명의 신병을 이끄는 형태로 계속 활동하면서, 모두가 폐지됐다고 믿었던 시스템을 영속시켰다. 사람들의 눈에는 새로운 순찰대가 12만 8,000명의 국립경찰에 섞여든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찰조직이 국민과 직접 대면하는 자리를 만들었지만, 엘리트 계층의 부패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개혁이었다. 오히려 정부가 기존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도 개혁 의지 없이 생색만 내도록 해줬을 뿐이다. 경제위기, 동부지역 하이브리드 전쟁(단순 재래전뿐만 아니라 심리전, 미디어전 등을 동시에 사용하는 전쟁형태-역주), 무기반출 증가 등과 함께 범죄율은 2014~2017년 사이 매년 15%씩 증가했다.(2) 게다가 “‘새로운 경찰들’이 심각한 범죄보다는 1984년 소련 구법으로 통제되는 사소한 위반행위를 처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개혁회생패키지NGO의 전문가 예브헨 크라피빈은 설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셀카 경찰’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경찰 내부에서도 불만이 급증했으며, 그 결과 현재 순찰대의 20%가 공석인 실정이다. 대부분이 공석의 이유로 업무가 과중하다는 점, 그리고 다른 경찰부서와 연대가 약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실효성 있는 법적 수단을 주지 않았다”고 안드리 코비린스키는 지적했다. 한때 순찰대로 근무했던 그는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2015년 개혁의 선의를 믿고 싶었지만, 결국 2016년 10월에 일을 그만뒀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지속적인 실질임금 하락 때문에 전 동료들이 과거의 부패 관행을 답습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셀카 경찰’이 촉발한 환멸감은 혁명 이후의 개혁 열기를 냉각시켰다. 포로셴코 정권의 권위주의가 점점 심해진다는 비판 속에서, 국내외 급진 개혁파 대부분이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즈굴라제 글럭스만 내무부차관도 2016년 5월에 사임했고, 같은 조지아 출신 카티아 데카노이제 역시 그해 11월에 국립경찰 수장 자리에서 1년 만에 물러났다. 사퇴 사유는 내각, 의회, 대통령의 ‘개입’이라고 밝혔다. 데카노이제 전 경찰청장은 여전히 급진적인 변화만이 우크라이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기존 시스템의 운행방식과 적폐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다른 경찰부서들, 검찰 그리고 법무부도 마찬가지다. 조지아가 그랬듯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맞이해야 한다.”

‘새로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열망들
 
2015년 여름, 시민 대표와 경찰들로 구성된 ‘재증명’ 위원회가 발족해 새로운 경찰조직에 남을만한 인재가 누구인지를 평가했다. 이에 6만 8,135명의 경찰들을 대상으로 충성도, 법 지식, 폭력행사 및 부패 이력, SNS상에 남긴 흔적 등을 검사했다. 그 결과 총 검사 인원의 7.7%에 해당하는 5,257명이 파면됐다. 우크라이나 역사상 놀랍고도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아르센 아바코브 장관이 내무부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보다 구수비대를 선택한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신호였다”고 코비린스키는 말했다. 

데카노이제 전 경찰청장이나 즈굴라제-글럭스만 전 내무차관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개혁 접근법의 정당성을 설명하거나 확실한 후속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이 조지아에서 추진했던 정책은 사카쉬빌리 대통령이 반대파를 물리칠 만큼의 과도한 힘을 내무부(필자와 확인 요망)와 법무부에 실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조지아 출신들’은 미국 대사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우크라이나 국립경찰 법안을 추진하려고 분투했다. 

비록 조지아 출신들의 정책적 시도가 지난 2월 폴란드로 추방당해 현재 네덜란드에 정착한 사카쉬빌리 대통령의 기상천외한 모험으로 축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구 국가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변화를 지지하고 있다. 서구 국가 및 IMF의 금융지원액은 350억 유로(약 43조 7~8천억 원)를 넘어섰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협력사업을 지원했다. 

한편, 마음이 급한 조지아 출신들과는 달리 ‘시민안보부문개혁 EU자문사절단’(EUAM)은 우크라이나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우도 묄러 EUAM작전부장은 “새로운 순찰대 창설은 단순한 소통전략이 아닌 필요한 조치였지만, 이때 채택된 방식을 보면 분규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경찰 현대화, 사법경찰 조직개편 등 한층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시절의 산물이자 명백한 문제들을 일으키는 구조가 “우리 우크라이나 동료들의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에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황을 개선하려면 “테이블 반대편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크라이나처럼 큰 나라에서, 더욱이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경찰인력 교체라는 조지아 출신들의 시나리오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EUAM은 우크라이나 경찰조직의 신구 대표들에게 교육, 세미나, 훈련, 시범사업 등을 제공하는 방법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새로운 경찰문화의 점진적인 출현을 유도할 방책이라는 것이다. 

반부패 투쟁, 침략에 맞선 전쟁만큼 중요

반면, 코르넬리우스 프리든도프 연구원은 EUAM이 ‘최우선과제와 또 다른 모델’을 제시하는 수많은 국제기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쟁은 우크라이나에 ‘임시방편적 제도’를 낳는 원인이 된다. 몰도바,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몇 년간 경찰개혁에 대한 파견지원이 이뤄졌던 지역만 봐도 개혁을 달성하려는 진정한 정치적 의지 없이는 ‘임시방편’만 무기한 연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가장 먼저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시의 부적절한 개혁 때문에 국가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패척결의 첫걸음이 돼야 할 경찰개혁은 과두정치 시스템의 근본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국가는 핵심기관을 통제하려는 정치-경제파벌의 싸움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최전방에 검찰(Prokouratoura)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5년에 검찰과 행정권을 분리하려는 개혁이 착수됐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임무를 맡은 NABU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빼앗지 않았다. 이우리 루트센코 현 검찰총장은 정치적 반대세력에게 압력을 가하고 포로셴코 대통령의 동맹세력에 대한 기소를 중단시킨 일 때문에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호르 코노넨코 의원 겸 사업가와 로만 나시로브 전 국세청장은 부패혐의로 정직처분을 받았지만, 소송은 중단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투자 지원에 나섰던 미국과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존 설리반 미국 국무부 차관은 2월 21일 키예프 방문 시 “우크라이나의 반부패 투쟁은 러시아 침략과의 싸움만큼 중요하다”고 표명했다. 그리고 반부패 전담 특별법원을 설립할 것을 권고했다. 현지 단체들도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금융지원을 잠정 중단한 IMF의 말에 의하면, 현재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반부패 특별법원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IMF는 “국제 전문가들이 자문 역할을 넘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초, 포로셴코 대통령은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해외 원조자들이 우크라이나 법원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이며, 오직 우크라이나 국민만이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3) 그렇다고 미국이 작년 12월 살상 무기 공급을 약속한 우크라이나 정권을 불안하게 할 정도로 서방의 압력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아르센 아바코브 장관은 대선 1년만에 우크라이나 독립 이래 가장 강력하게 내무부를 장악했다”고 세르히 레쉬첸코 의원은 말했다. 그는 본래 포로셴코 대통령 진영에서 뽑혔지만, 현재는 대통령에게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아바코브 장관은 (대통령의) 동맹자이자 잠재적인 라이벌로서 수직적 권력구조에서 강력한 존재로 부상했다.” 그가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수평적 권력구조”를 표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4) 민족주의자들의 무력행사와 급진파들의 폭력적 도발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말이다(여기서 민족주의자들은 아조프 해 전투에서 조직된 민족주의 분대로 돈바스 전선에서 활동하는 극우파로 구성된 군대식 조직이다. 그리고 지난 2016년 9월에는 급진파들이 야당 TV방송사 ‘인터’를 급습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다시 말해서 ‘셀카 경찰’의 수동성을 계산에 넣고, 음성적 비밀조직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글·세바스티앙 고베르 Sébastien Gobert 
기자, ‘달레코-블리스코 조합’ 공동설립자.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우크라이나 내무부 웹사이트, 2017년 11월 11일.
(2) Viktor Betchatniy, ‘Analyse criminologique du niveau de criminalité en Ukraine(우크라이나의 범죄자 계층에 대한 범죄학적 분석)’, <État et droit>, 2017년.
(3) ‘Transcript of interview with Petro Poroshenko’, <Financial Times>, 2018년 3월 6일.
(4) 논설위원 Serhiy Lyamets의 표현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