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유해폐기물 공포 재점화

2018-06-28     엠마누엘 하다드 | 언론인

폭우가 여전히 몰아치는 가운데 베이루트 북부의 주크 모스베 해변을 뒤덮은 쓰레기 ‘카펫’ 위로 여명이 떠 오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이 환경·보건재앙은 끊임없는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곳에 끝없이 펼쳐진 쓰레기가 기독교 카테브 당이 관리하는 산촌지역 강줄기에서 밀려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베이루트 북부의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 쓰레기가 해변으로 다시 밀려왔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해변 한쪽에서 재개발 중인 매립장만이 여러 해 동안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대란을 해결해주리란 기대를 떠안고 있다. 


“사실상 쓰레기는 사람들이 더럽힌 산촌에서도 배출되고, 황급히 만든 해안 쓰레기 매립장에서도 바다로 유출된다.” 환경단체 ‘리사이클 레바논’ 창립자 조슬린 케디는 딱 잘라 말했다. 런던에서 요리 블로거로 활동하던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회단체 ‘타라앗 리하트쿰(악취가 난다)’에 가담했다. 2015년 8월 설립된 이 단체는 “여름 열기에 부패한 쓰레기가 대량으로 쌓이는 것은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장장 8개월간 지속된 대규모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정부는 마침내 비상대책을 내놓았다.(1) 베이루트에 해안 쓰레기 매립장 3곳을 신설하고, 소각을 통한 쓰레기 에너지화 사업을 추진하고, 관련 운영을 분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슬린 케디는 2015년 12월부터 주말마다 자원봉사단과 함께 주크 모스베 해변을 청소한다. 악천후가 발생할 때마다 해변은 다시 쓰레기로 뒤덮인다. 모든 환경운동가들이 겪는 ‘시지포스의 돌’과 같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돌을 굴리는 이들의 손길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도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들을 내놓았다. ‘리사이클 레바논’과 같은 시기에 창설된 청년단체 ‘리사이클 베이루트’는 시리아 난민들을 고용해 매달 100여 톤의 쓰레기를 분리수거 및 재활용한다. 지아드 아비차커 ‘시더 인바이로멘탈’ 소장은 ‘쓰레기 제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기물부터 플라스틱까지 베이트메리 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전량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점차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지만은 않을 생각이다. 

레바논 내전 때 쌓이기 시작한 쓰레기 산

이 문제의 기원은 레바논 내전(1975~199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수도 연안을 따라 임시로 지어진 무허가 쓰레기 매립장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근처 고급 호텔의 이름을 따서 노르망디, 다른 하나는 부르즈 하무드라고 불렀는데 이곳은 1915년 대학살을 피해 도망쳐온 아르메니아 난민의 캠프였다가 하나의 지역으로 형성된 곳이다. 폐차, 배터리, 의료폐기물 등 온갖 쓰레기들이 이곳에 투척됐다. 분쟁이 끝나자 ‘솔리데레’는 노르망디를 매립해버렸다. 솔리데레는 라피크 하리리 총리의 주도하에 1994년 5월에 설립된 베이루트 개발·재건 회사다.(2)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은 전쟁 이후 혼란 속에서 1990년대 말까지 사용됐다. 15층 건물과 맞먹는 45m 높이의 이 쓰레기 산은 1997년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이날 아크람 체하예브 환경부 장관은 7개년 비상계획을 발표, 이 무허가 매립장을 베이루트 남부 나메 지역의 위생매립장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쓰레기 산은 현재까지도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1987년, 청색 드럼에 담긴 다량의 유독물이 버려진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린피스에 의하면 그해 “이탈리아에서 레바논으로 각종 크기의 유해폐기물 1만 5,800드럼 및 20컨테이너가 반출됐다. 그러나 이탈리아 회사가 레바논 상인들에게 지급한 대금의 일부를 우파 정당 ‘레바논 군대(LF)’의 민병대가 뇌물로 받고 이를 은폐시켰다.”(3) 유해폐기물은 전국 곳곳의 공장과 채석장으로 확산됐다. 쓰레기 매립장에도 분명 일부가 유입됐을 것이다. 이에 항의가 빗발치자 이탈리아 정부는 유해폐기물 전량 회수를 지시했으나, “1988~1989년 베이루트 항구에서 선박 4대에 실린 양은 겨우 5,500드럼에 불과했다. 몇몇 컨테이너를 비롯해 1만 드럼 이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레바논 해안에 방류됐다.” 

1988년, 레바논 보건부 장관의 지시 하에 3명의 과학자(피에르 말리셰프, 윌슨 리즈크, 밀라드 자르주이)가 작성한 보고서는 수백 개의 드럼 안에 치명적인 고농도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으며, 폭발 성분인 니트로셀룰로스와 수은, 비소, 납, 카드뮴 등의 유해 중금속이 가득 찬 드럼도 있다고 확신했다. 그해 레바논에서는 해수욕이 금지됐다. 1990년 국제해양기구(IMO) 보고서에 의하면, 유해폐기물을 비우고 드럼을 새로 도색한 뒤 음식물이나 식수를 담아서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판매된 사례도 있다. 군 정보기관이 발표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해폐기물 드럼을 사들인 공장들이 내용물을 골짜기에 쏟아낸 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야외에서 그대로 태워버렸다. 레바논 개발재건의회(CDR) 보고서에 의하면, 나머지는 케스루안 지역의 츠나니르 채석장에 보관돼 있거나,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과 베이루트 북부 연안에 버려졌다. 

1994년 8월 29일 밤, 케스루안 주민들은 환경부 직원들이 이브라힘 강 부근의 한 채석장에 유해폐기물 19드럼을 투척하는 현장을 적발했다. 사미르 모크벨 당시 환경부 장관은 여론의 ‘히스테리’라고 비꼬며, 이는 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침 샘플 채취를 허가받은 그린피스가 이탈리아발 유해폐기물과 동일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87년에 반입된 1만 5,800드럼의 일부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후 새로운 조사가 진행됐고, 군 첩보부에서는 다수의 환경부 직원이 당시 이탈리아 유해폐기물을 발주했던 당사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1995년 2월 초, 모크벨 장관의 측근이던 고문 두 명이 사임했고, 장관 본인 역시 같은 해 6월 개각 때 퇴출당했다. 

이제 환경범죄의 주범을 처단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995년 2월, 사이드 미르자 담당검사가, 유해폐기물이 전국에 퍼졌다고 방송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는 혐의로 피에르 말리셰프 박사를 기소한 것이다. 정작 유해폐기물을 수입했던 자들에 대한 기소는 중단됐다. 말리셰프 박사는 정직함의 대가로 2주간의 구금, 여러 번의 위협, 그가 운영하는 약국을 타깃으로 한 두 번의 폭탄테러를 당해야 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서 드루즈파 지도자인 왈리드 줌블라트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규탄했다. “유해폐기물은 땅에도, 바다에도 있다. 다른 모든 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레바논도 쓰레기장이다. 당국은 말리셰프가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한 것이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도 될 대안은?

2016년 3월, 이탈리아발 유해폐기물에 대한 공포가 재점화됐다. 내각에서 쳬하예브 환경부 장관(현 농업부 장관)의 신규 비상계획을 채택한 직후였다. 부르즈 하무드 ‘쓰레기 산’을 매립재로 활용해 베이루트에 건설 예정인 해안 매립장 3곳 중 2곳을 만들고, 4년 이내에 140만 톤의 추가 쓰레기를 수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시에는 쿠리건설이라는 회사가 덤프트럭 수십 대로 쓰레기를 실어 날라서 지중해 한가운데에 투척했었다. 2017년 6월 13일, 환경단체의 도움으로 현지 어부들의 시위가 수차례 지속되자, 타레크 카티브 당시 환경부 장관은 카메라 앞에서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4) “쓰레기가 투척된 것은 사실이다. 원래 방파제가 있었어야 했는데, 계약문제가 발생해서 설치하지 못했다.” 이어 그는 “어부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30년 묵은 ‘쓰레기 산’에 유해물질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레바논 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 정기적인 테스트를 해야 한다. 본지가 CNRS에 연락을 취했으나, 시험결과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회단체 ‘사하 울라드나’(우리 아이들의 건강)와 2017년 레바논 연안 수질조사 자료를 공유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러나 “CNRS는 정보를 공개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베이루트 미국대학 환경안보·화학과 학과장이자 사하 울라드나 회원인 사마르 칼릴은 말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교의 폐기물관리 전문 연구원인 일라이어스 아지는 다음과 같이 확신했다. “최근 분석 자료 중에는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의 무독성을 증명할만한 과학적 자료가 없다. 만약 화학오염이 발생했다면, 유해물질들은 이미 바다로 유출된 상태일 것이다. 이를 매립재로 사용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윌슨 리즈크는 이탈리아발 유해폐기물을 조사했던 세 명의 과학자 중 마지막 생존자다. 그는 말리셰프 박사가 확보했던,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에 유해폐기물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담긴 보고서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2016년 3월, 정부의 폐기물관리 계획에 반대하는 연합단체가 부르즈 하무드 매립재 활용 프로젝트 저지를 위해 고소장을 제출하자, 윌슨 리즈크는 30년 만에 관련 전문가 자격으로 법원에 소환됐다. 이제 70대 노인이 된 그는 “쓰레기 산의 각 높이마다 속성을 분석하기 위해 매립장 곳곳을 조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가망 없는 바람이었다. “판사가 공사를 중단할 것을 명령했지만, 정치인들의 압력으로 결국 작업이 재개됐다.”

한편, 쿠리 건설의 매립장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인 투픽 카즈무즈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유해폐기물이 존재한다는 루머가 있던데 이를 증명할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을 불안하게만 만드는 이런 이야기는 불필요하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매립작업을 위해 바다에 쓰레기를 붓는 것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만약 다른 방책이 있다면, 한번 말해 보라!”

2017년 10월 27일, 내각에서는 그가 옳았음을 인정했다. 지속가능한 해결책으로 부상한 나메 매립장을 본떠서, 코스타 브라바(2015년 건설)와 부르즈 하무드, 이 두 해안 매립장을 확장한 후 소각장이 건립될 때까지 사용기한을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레바논 언론의 표현처럼 “새로운 쓰레기 왕들”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정책이다.(5) 새로운 쓰레기 왕 중 하나인 알-지하드 건설사는 코스타 브라바 매립장을 건설 및 관리하는데 5,95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1억 달러 규모의 확장공사를 따냈다. 하리리 가문의 측근인 지하드 알-아랍이 소유한 이 회사는 ‘코랄’ 퇴비화 공장의 현대화 계약을 두 차례나 따내기도 했다. 그런데 당사 책임자들은 본지의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쿠리 건설사는 부르즈 하무드 매립장 재개발 및 매립토 재활용 계약을 체결, 1억 900만 달러를 4년에 걸쳐 받았다. 2016년 이래 쓰레기 수집 및 관리에 총 6억 달러 이상의 국가예산이 투입됐다.

이 금액은 소각장 선택이나 덴마크 기술 적용 여부에 따라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덴마크에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컨설팅회사 ‘람볼’은 이를 레바논에 권장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의 85만 달러짜리 조사에 의하면, 연간 쓰레기 처리용량이 75만 톤인 소각장을 하나 건립하는데 5억 달러가 필요하다. 일단 해안에 매립하고 쓰레기장을 소각장으로 바꾸면, 오랜 숙원이던 ‘리노드(Linord)’ 부동산 개발사업도 빛을 보게 될 터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일라이어스 아지는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메 매립장을 2015년에 폐쇄한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리노드 사업 재개를 위해서다. 결국 베이루트 항구에서부터 드바예 매립지까지, 베이루트 북부 연안 전체가 매립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바다를 매립해서 얻은 땅으로 이득을 볼 것이다.” 

레바논에서는 사라지는 것도, 재활용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이 달러로 변할 뿐이다.  

글·엠마누엘 하다드 Emmanuel Haddad 
언론인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Liban: violences policières contre des manifestants’, <Human Rights Watch>, 뉴욕, 2015년 8월 22일.
(2) À propos de la vision néolibérale de Rafik Hariri concernant la reconstruction d’après-guerre, cf. Hannes Baumann, Citizen Hariri: Lebanon’s Neoliberal Reconstruction, C. Hurst and Co, Londres, 2016.
(3) Fouad Hamdan, ‘Toxic attack against Lebanon’, <Greenpeace Méditerranée>, 몰타, 1996년 8월, www.fouadhamdan.org
(4) LBC, 2017년 6월 13일.
(5) ‘Les nouveaux rois des déchets’, <Le Commerce du Levant>, 베이루트, 2018년 2월, www.lecommerceduleva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