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가 말하는 합의의 철학
2018-06-28 기욤 퐁뒤
위르겐 하버마스는 유럽 철학사와 유럽철학이 오늘날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9년에 태어난 그는 분명 동시대 독일의 최고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은 연방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여정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두 권의 저서 『여정』 1권과 2권,(1) 그리고 2014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그의 전기(2)는 그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버마스의 전기는 성인전(聖人傳)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여정』 1권과 2권에서도 다뤄진 적 있는 그의 사상이 사회적·정치적 배경에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보여준다. 하버마스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중심적인 요소가 있다. 나치즘과 전쟁으로 얼룩진 그의 어린 시절, 탈나치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됐던 시대의 대학생활, 1960년대 반체제 운동가들과의 치열한 토론,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통일독일을 겪은 경험 등…. 『여정』 1권을 여는 크리스티앙 고스의 1971년 강연 원고는 이를 분명히 설명한다. 고스는 하버마스가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입장과는 거리를 뒀다고 주장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부르주아적 ‘합리성’이 산업 생산에 이득을 주는 과학‧기술을 정당화하는 지배의 도구”라며 비판했다. 이는 하버마스 사상의 변화에서 중요한 단계 하나를 밝히는 텍스트다.
이 책은 독일의 68혁명 경험과 기존의 사회 비판이 처한 한계에 대한 하버마스의 사유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합리화는 진화의 성격을 지닌다고 강조하면서 합리성이 지닌 정치 기준에 관해 묻는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합리성은 정치를 중심으로 한 모든 토론에서 상당수의 형식적인 규칙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합리성은 제기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풀려 말하고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기존체제에 비판적인 학생들은 민주적 토론과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제도를 거부한다. 반면에 하버마스는 이러한 규칙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며 상호주체성 이론과 토론의 윤리를 고안한다.
게다가 하버마스의 입장과 이론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시대적인 질문에 답하고 싶어 하는 지속적인 열망이야말로 그의 힘이 된다. 위에서 소개한 도서들의 지향점은 단순히 설명에 그치지 않고 하버마스의 사상이 지닌 현대적인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현재 시각으로 볼 때, 어쩌면 하버마스의 사상에는 부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소재에 사로잡힌 나머지, 지나치게 성급하게 일반화한 듯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는 헌법만을 보고 유럽통합 계획을 무한정 옹호한다. 문제는 이 헌법이 아직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사회학자 볼프강 스트렉(3)이 비난했듯, 하버마스는 유럽 자본주의의 경제적 현실을 모르고 성공적인 상호소통의 과정으로만 보는 면이 있다.
하버마스의 철학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비판 철학이 사라져가는 역사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비판 철학은 점점 형식주의로 변해간다. 힘의 관계를 미화하는 상호이해를 추구하며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은근히 옹호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프랑스 지성계가 겪었던 활발한 비판철학 시대와의 비교연구가 인상적이며, 그 시대가 현재에 남긴 흔적을 역사적으로 연구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글·기욤 퐁뒤 Guillaume Fondu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ürgen Habermas, 『Parcours 1 1971~1989(여정 1권. 1971~1989)』, 『Parcours 2 1990~2017(여정 2권. 1990~2017)』, Gallimard, 파리, 2018
(2) Stefan Müller-Doohm, Jürgen Habermas. 『Une biographie(위르겐 하버마스 전기)』, Gallimard, 2018
(3) Wolfgang Streeck, ‘What about capitalism? Jürgen Habermas’s project of a European’, 2018년 1월 30일, https://wolfgangstree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