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전문가의 진짜 이름 ‘로비스트’

2010-07-12     서배스천 존스

 2009년 12월 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노동자를 만나고 경제위기에 대한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을 방문 중이었다. 같은 날 저녁,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톰 리지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뉴스 전문 채널 <MSNBC>(<CNN>과 <폭스뉴스>의 경쟁사)의 <크리스 매슈와 하드볼을>에 출연해 자신의 경제 플랜을 소개했다. 리지는 백악관이 제시한 ‘잡다한’ 경기부양책 중에서 무엇보다 세금 감축과 중소기업 대출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는 독특한 제안 하나를 내놓았다.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을 ‘집어치우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혁신적’ 계획이 석탄과 천연가스 채굴과 더불어 고용 창출과 수출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원문 보기>>

TV에 출연해 충고를 던지는 전 주지사는 중립적인 해설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미국 최대의 원자력회사 엑셀론의 이사 자격으로 53만659달러의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다. 토크쇼 진행자가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이 방송이 나가기 직전, 같은 채널에서 방영된 프로에는 ‘NBC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는 퇴역장군 배리 매카프리가 출연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3년에서 10년까지’ 더 연장돼야 하며, 따라서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에도 시청자는 그가 미국의 메이저 민영 군사기업 중 하나인 딘콥에 소속돼 2009년에만 18만2309달러의 연봉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가 TV에 나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연장을 주장한 시점은 딘콥이 미군으로부터 59억 달러에 달하는 5년짜리 계약을 따낸 직후였다.

단골 출연자 이력을 말하지 마라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MSNBC>에는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전문가’가 두 명이나 출연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미 2003년에 <더네이션>은 매카프리가 군사기업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양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이 기업들에 유리한 발언을 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2008년에는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바스토우가 펜타곤이 전·현직 장교들을 TV에 출연시켜 어떤 식으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지를 기사화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2009년에는 블로거들이 <MSNBC>의 <케이스 올버맨과 함께 카운트다운을>에 출연하는 <뉴스위크> 기자인 리처드 월프가 ‘기업 홍보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업계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송 프로그램에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인물이 출연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2007년부터 최소한 75명에 이르는 로비스트 혹은 기업 대표가 <MSNBC> <폭스뉴스> <CNN> <CNBC>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등에 출연했지만- 이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파함으로써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방어해주고 대가를 챙긴다- 이들의 경영활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채널들에 겹치기로 출연하며 수십 번, 때로는 수백 번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다국적기업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TV 프로 고정 출연이 대중과의 접촉을 늘릴 뿐 아니라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인들로부터 관심과 호의를 이끌어낼 좋은 기회가 된다. 케이블 TV 처지에서도 방송 시간을 채우고 엘리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이 만든 방송윤리 준칙을 어기면서까지 이들을 출연시키는 실정이다.

기업의 대변인들이 마이크를 잡고 싶어하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1996년 <폭스뉴스>와 <MSNBC>가 전파를 내보내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하루 24시간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듯 내보내는 ‘정치 해설’을 위해 민간 기업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출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해보고 싶다면 TV를 켜보기만 하면 된다. 지난 2년간 집중적으로 다뤄진 두 가지 시사 문제, 즉 경제위기와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해 이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2008년 대규모 경기침체가 미국을 덮치고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려고 준비하던 시기, 중립적인 해설자로 분장한 로비스트와 기업의 대변인이 연달아 TV 화면에 등장했다. 그중에는 ‘휘트먼 인사이트 스트라티지스’의 사장 버나드 휘트먼도 끼어 있었다. 이 회사는 고객에게 ‘구체적인 목표에 따른 효과적인 로비 활동, 홍보, 선전을 돕는’ 전략 컨설팅 업체다. 올리비&매더 같은 로비회사나 홍보대행사들이 주요 고객이다. 다국적기업 고객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연방정부에 로비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한때 클린턴의 홍보 담당으로 일한 휘트먼은 TV에 출연할 때마다 단지 해당 분야의 저자로만 소개된다. 그의 책이 마지막으로 나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정경유착이 화면을 삼켰다

‘휘트먼 인사이트 스트라티지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AIG도 이 회사의 고객사로 소개돼 있다. AIG가 “대중 상품을 개발, 테스트, 출시하고 개선하는 일을 도울 뿐 아니라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나갈 수 있게 조언해주는 파트너”라고 자사를 선전하고 있다. 유튜브에도 휘트먼의 TV 출연 동영상이 100여 개나 올라와 있다. 그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고객사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9월 18일 <폭스뉴스>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토론 상대로 출연한 휘트먼은 “AIG를 모른 체하는 존 매케인 후보는 오늘날의 세계화된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1)

휘트먼은 2009년 3월 25일 또 한 번 <폭스뉴스>에 등장했다. 이번에는 AIG 임원 보너스와 관련된 스캔들 때문이었다.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위기에서 구제된 AIG가 임원들에게 4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제공한 일이 밝혀져 물의를 빚던 때였다. 휘트먼의 임무는 흥분한 대중을 진정시켜 이성을 되찾게 돕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임무였을 것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일단 한발 물러선 뒤 덧붙였다. “일단 장본인들이 사실을 인정한 마당에 분노, 박탈감, 히스테리 같은 반응을 자제하고 경제가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AIG가 휘트먼이 대표로 있는 기업의 고객사라는 말은 쏙 뺐다.

AIG와 관련해 비슷한 인물이 또 있다. 친공화당으로 알려진 경영·홍보 컨설팅 회사인 DC 내비게이터스에서 일하던 론 크리스티는 2006년부터 2008년 9월까지 AIG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그 기간에 AIG가 DC 내비게이터스에 지급한 대가만 59만 달러에 이른다. 큰 성공에 힘입어 론 크리스티는 컨설팅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따라서 2008년 9월 18일 <MSNBC>의 <… 하드볼을>에 그가 출연한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사회자 크리스 매슈는 론 크리스티를 ‘공화파 논객’으로 소개한 뒤 그 직전에 있던 경제위기와 관련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비꼬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는 사회자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끼어들어 부시가 “시장 상황과 돈의 흐름을 잘 아는 똑똑한 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를 재무부 장관에 앉힌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전 골드만삭스 CEO 헨리 폴슨은 구제자금을 투입해 AIG를 구해낸 장본인이었다. AIG가 도산할 경우 골드만삭스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크리스티는 폴슨을 재무부 장관에 앉힌 것은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절한 인물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AIG를 위해 활동한 사람들 중에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도 있었다. 2008년 말, 구제금융으로 기사회생한 AIG는 ‘민감한 사안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인기 홍보대행사 버슨마스텔러에 의뢰했다. 이 회사는 2009년 4월 부시 행정부에서 홍보 보좌관으로 일한 다나 페리노를 고용했다. 한 달 뒤, TV 카메라가 결코 낯설지 않은 페리노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른바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발언했다.

그리고 2009년 7월, 페리노는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아침 방송 <머니 포 브렉퍼스트>에도 등장했다. 사회자는 그녀가 버슨마스텔러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잠깐 언급했을 뿐 AIG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페리노는 한 토론자가 AIG가 경제위기 전부터 ‘지나친 규제’의 희생자였다고 말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금융 시스템 개혁 정책이 “위기가 올 때마다 과민 반응을 보이는 정부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소비자단체인 ‘공익조사그룹’(US PIRG)의 개리 캘먼이 지난 수십 년간 금융규제 조처가 오히려 후퇴해왔다고 지적하자, 페리노는 “경영자 중 그 말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반박했다.(2)

고객 잘못 티나지 않게 변명하기

의료보험 개혁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저널리즘과 로비 활동 사이의 경계는 다시 한번 모호해졌다. 공화당 대변인 테리 홀트와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존 베이너는 2003년부터 보험회사 ‘아메리카 헬스 인슈런스 플랜’(AHIP)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 홀트는 2007년 세 명의 공화당 동료와 함께 로비·홍보회사 HDMK를 설립했다. AHIP가 첫 고객사가 된 건 예정된 절차였다.

테리 홀트는 2009년 3월 15일 <MSNBC>에 출연한다. 사회자 데이비드 슈스터는 홀트를 단지 ‘공화당’ 소속이라고만 간단히 소개했다. 홀트는 이번에도 민간 보험회사의 외판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는 “오바마가 전반적인 의료보험 제도 개혁을 위해 1100만 명에 달하는 노인들로부터 메디케어(퇴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의료보험) 혜택을 빼앗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의보 개혁에 대한 이런 비난은 덜 기만적인 편에 속한다. 그로부터 7개월 뒤, AHIP는 여러 주에서 의보 개혁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삽입된 광고를 내보냈다. “메디케어 혜택을 받는 노인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더 적게 주는 것이 과연 공평한 처사인가?”

테리 홀트는 안티 오바마 캠페인의 일환으로 여러 차례 <CNN>에 출연했다. <CNN>은 홀트가 보험회사와 맺고 있는 관계를 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9년 9월 14일 방송된 토크쇼 <더 시튜에이션 룸>에서만은 예외였다. 며칠 뒤, 이 뉴스 전문 채널을 둘러싸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레그 사전트’라는 블로거가 <CNN>의 단골 초대 손님인 정치평론가 알렉스 카스텔라노스가 AHIP의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그중에는 앞서 언급한 ‘1천만 명의 노인’을 겁주는 광고 역시 포함됐다. <CNN>에 출연해 의보 개혁을 공격할 때마다 카스텔라로스는 ‘공화파 정치평론가’라는 직함으로만 소개된 터였다.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은 홀트는 <CNN>이 자신의 AHIP 소속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건 단 한 번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한 프로듀서가 그에게 보험회사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최대한의 투명성이 보장돼야만 TV 출연 또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을 상대로 발언하는 자리에서 대중이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소속됐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다. 따라서 나는 나를 초대하는 언론사에 내 프로필을 정확히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 프로필에 대한 판단은 언론사 몫이다.”

프로파간다의 달인들

그러나 언론사가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민주당 출신의 로비스트나 컨설턴트가 연이어 TV에 출연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험회사나 제약회사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리처드 게파트와 토머스 대슐처럼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도 예외는 아니다. 게파트는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지냈고, 1988년 대통령 선거 때는 후보 지명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조합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대슐은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고 당내 좌파를 대변하는 이가 특정 대기업을 옹호하는 포지션을 취하면 그만큼 파급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09년 9월 24일 <MSNBC>의 <모닝 미팅>에 초대된 손님 중에는 리처드 게파트도 있었다. 그는 다른 민주당원들이 목숨을 걸고 사수 중이던 공공 보험회사(Public Option) 설립안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회자는 게파트가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이 현재와 비슷한 의보 개혁안을 포기하던 당시 하원의원이었음을 상기했을 뿐 그가 자신의 회사 ‘게파트 거번먼트 어페어스’를 통해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를 컨설팅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게파트가 NBC/유니버설을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쏙 빠진 채였다.

토머스 대슐은 4개월간 TV에 세 번이나(2009년 5월 12일과 7월 2일 두 차례 <MSNBC>에, 8월 16일에는 <NBC>의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했다. 모두 의보 개혁과 관련된 주제였다. 이 전직 민주당 상원의원은 매번 의보 개혁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시청자는 그가 보험회사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을 고객사로 둔 로비회사 앨스턴&버드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정치인이자 로비스트인 그의 이중생활이 처음 문제시된 건(여기서도 초대 손님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가 돋보였다) 2009년 12월 8일 방영된 <MSNBC>의 <닥터 낸시>에서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항상 신경 쓰고 있으며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뒤,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대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보 개혁안을 거세게 비판했다. 그의 소속에 대해서는 물론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의보 개혁이 채택되기까지 거쳐야 했던 수많은 고난을 모두 토머스 대슐 같은 이들의 책임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방기관 설립안이 암초에 부딪힌 것을 다나 페리노 같은 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TV에 고정 출연하는 12명에 달하는 정체불명의 로비스트들의 발언이 언론과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들이 일시에 같은 말을 쏟아내면 중첩 효과에 의해 여론을 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3) <그림자 엘리트>(Shadow Elite)의 저자인 인류학자 자닌 웨델의 말이다.

방송사도 그들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TV에 반복적으로 출연해 교묘한 방법으로 특정 기업을 옹호하는 전문가들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이들이 각 방송사의 정책까지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보다는 상당수 방송사가 공공연하게 다국적기업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로비스트를 초대해 그들의 직함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은 채 방송을 진행함으로써 혼란을 조장하는 방송사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CNN>에서 4년간 <뉴스 나이트>를 진행하다가 해고된 애런 브라운은 현재 애리조나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이 프로듀서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는 압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험 없는 젊은 프로듀서들은 모든 종류의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초대 손님의 프로필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늉에 그치는 방송윤리 실천

브라운 교수는 이런 식의 수동적 태도가 방송 저널리즘 전반에 만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값싼 비용으로 방송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문가’와 ‘해설자’를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는 편이 아프가니스탄에 특파원을 보내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브라운 교수의 지적이다. “돈 없는 언론사들이 별수 없이 그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소속 다국적기업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언론사들조차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몇 달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긴 하다. <CNN>은 출연자가 어느 기업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밝히기 시작했다. <폭스뉴스>도 초대 손님의 소속 기업을 밝히기 시작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기업명만 제시할 뿐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는다.(4)

기업 대변인이 가장 선호하는 케이블 채널 <MSNBC>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1월 지적을 받은 <MSNBC> 책임자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NBC> 뉴스의 옴부즈맨이면서 <MSNBC> 방송윤리 감시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매코믹은 오래전부터 출연자의 중립 문제를 고민해왔다고 말했다(같은 그룹에 속한 <NBC> 뉴스와 <MSNBC>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그는 출연자에게 방송 투명성 원칙을 주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신뢰야말로 우리 방송사를 움직이는 핵심 원칙이다. 따라서 출연자 역시 자신이 어떤 이익집단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항상 협력사에 투명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고정 출연자든 보수 없이 출연한 전문가든 프로필을 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우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 방송 그룹은 10년 전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왔다. 1998년 10월에 제정된 <NBC> 방송사 내규는 한 항목을 통째로 할애해 ‘초대 손님/해설가/전문가/대변인’ 관련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청자는 우리 프로그램에 초대된 손님이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중략) 시청자는 관련 주제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재단 소속 아무개’ 식의 정보로는 충분치 않다. (중략) 마찬가지로 ‘NBC 컨설턴트 아무개’라고 밝히는 것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중략) 출연자 신분은 구두로 혹은 화면에 명확하게 명시돼야 한다.”

그들을 카메라 앞으로 부르지 마라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명확성’이 출연자 신분을 가리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매코믹은 금전적 이해관계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이해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방송사 홈페이지에 출연자의 이력을 게시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믿는다.

매코믹과의 인터뷰가 있은 며칠 뒤, 1월 22일 <MSNBC>는 다시 한번 자사가 얼마나 ‘투명성’을 중시하는지 증명했다. <모닝 조>에 출연한 마크 펜은 의보 개혁안에 가혹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단지 ‘민주당 전략가’이며 클린턴 정부에서 ‘여론조사 책임자’를 지낸 적이 있다고만 소개됐다. 그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로비회사 버슨마스텔러의 CEO라는 사실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 회사에는 의료사업과 관련된 부서가 아예 따로 있다. 이 부서는 파이저나 엘리릴리 같은 거대 제약회사가 ‘긍정적 이미지 제고를 통해 영업이익을 높이도록’ 돕는 일을 한다.

로비스트가 전문가 행세를 하는 건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정치·언론 시스템이다. 방송사들의 이런 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요구가 끊이지 않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에 가장 민감해야 할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기자협회 윤리위원회 위원장 앤디 쇼츠의 지적이다.

전문가가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는 행태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미디어 비평가이자 뉴욕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제이 로즌은 이렇게 질문한다. “언론이 초대 손님의 신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무슨 주제로 얘기를 해도 언제나 여론을 호도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을 TV에 초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서배스천 존스 Sebastian Jones
이 글은 2010년 3월 1일자 <더네이션>에 게재된 기사를 전재한 것이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2008년 9월, 부시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은 여러 차례에 걸쳐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에 대한 구제 금융을 거절하고 AIG에만 손을 내밀었다.
(2) 버나드 휘트먼, 론 크리스티, 다나 페리노는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3) Janine R. Wedel, <Shadow Elite>, Basic Books, 뉴욕, 2009.
(4) 이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CNN>과 <폭스뉴스>는 답변해주지 않았다.


[박스기사] 프랑스의 사례

 

 


프랑스 언론에 초대받는 전문가는 중립적 발언을 하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민간 금융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몇몇 인물을 살펴보자.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유(1) 대학교수이며 프랑스 총리 직속 경제분석위원회(CAE) 위원장을 맡고 있다. <LCI> <유럽1> <르몽드>를 통해 규칙적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가 맡고 있는 직책들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 경제관측기관(Coe-Rexecode) 과학위원회 위원장, 모나코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뇌플리즈 OBC 은행 감독위원회 위원, 에른스트&영 프랑스의 전략자문위원, 헤지펀드 HDF파이낸스와 크레디 아그리콜의 경제자문위원, 프랑스 은행감독위원회(CECEI) 위원을 맡고 있다.

다니엘 코엔 대학교수이며 CAE 위원이다.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의 <마티날>이라는 프로에 고정 출연해 경제 현안을 분석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프랑스 앵테르>는 그가 라자르 은행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장폴 베트베즈 대학교수이며 CAE 위원이다. <라디오 프랑스> <RTL> <LCI> <르피가로> <레제코> 등에 금융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그 외의 시간은 자신이 이끄는 크레디 아그리콜 내 경제분석팀 일에 전념한다.

자크 미스트랄 CAE 위원이다. 공영 TV 채널과 <라디오 프랑스> <르몽드> 등에서 미국 경제 소식, 특히 금융위기와 은행 상황 등에 대해 해설한다. 그러나 이 언론사들은 그가 BNP파리바의 이사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장에르베 로랑지(2) 대학교수이며 CAE 위원이다. <TF1> <LCI> <퍼블릭 세나> <유럽1> 등에서 현대 경제 현안에 대해 해설한다. 이 언론사들 역시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소시에테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프라이비스 이퀴티 파트너스의 감독위원회 위원장, 금융회사 생토노래와 리스크 재단(AGF·아크사·그루파마·소시에테제네랄이 공동 창설)의 감독위원회 위원, 에라메트, GFI 엥포르마티크, BNP파리바보험, 파주 존, 와나두, 프랑스 이동통신사협회 등에서 이사를 지내고 있다. 프랑스 경제관측기관 과학위원회 위원, 부동산 대출 감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각주>
(1) 피에르 랭베르, ‘재판관 노릇까지 하는 피고의 오지랖’,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1월호.
(2)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