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1일의 우화

2018-07-31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국제관계 역사에 관한 한 해석이 모든 서방국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이 해석은 관련 방법론과 함께 공식 종교가 됐다. 이 해석에 의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가 수도인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 8월 31일 시리아 공격계획을 철회하는 ‘실수’를 저질러 강력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소심함 덕분에 상당수의 민간인을 학살한 정부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시리아 정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구상의 유일한 정권은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역시 자신이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를 불안에 떨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1) 이런 역사적 재구성은 (뮌헨 협정이 나치의 또 다른 공격을 야기할 것이라는) 과거 윈스턴 처칠의 발언과 더불어 ‘예방 전쟁(Preventive war)’과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을 정당화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정보국의 유난스럽고 거짓된 분석에 기반해 단행됐던 아프가니스탄, 중동, 리비아에서의 모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그는 해외 영토에 반복적으로 군사적 개입을 하는 행위가 한 국가의 신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현재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부터 일단 끝내야 하지 않을까?”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부 장관마저도 시리아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2)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군사 개입을 반대한 ‘변호인단’의 일부, 즉 <뉴욕타임스>와 이 신문을 그대로 베끼는 모든 유럽 언론들은 평소에 대통령의 독단성을 즐겨 비난한다. 그들은 또한 “대통령은 반대파의 의견을 경청하고 법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어쨌거나 서방 세계의 시리아 공격은 결코 정당방위가 될 수 없으며, UN 측으로부터 어떠한 승인도 얻지 못했다. 서방 국가들의 여론이나 미 의회의 지지도 없었고, 심지어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의 경우에도 하원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처칠과 뮌헨 협정 외에 이와 비교할만한 다른 예도 있다. 1991년, 국제 사회는 UN 안보리 결의안을 내세워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도록 이라크 측을 압박했다. 이 목표가 달성된 직후부터 신보수주의자들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왜 사담 후세인을 끌어내리고 ‘끝장’을 보지 않았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그들은 이라크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그때 ‘회피’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발언을 지겹도록 되풀이했다.

2003년, 그들의 바람이 드디어 실현됐다. 처칠이 환생했고, 이라크는 점령됐고, 사담 후세인은 처형됐다. 그래서, 그 후 중동은 정말 천국이 됐는가?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François Hollande: “Quel est cet allié turc qui frappe nos propres alliés?”(프랑수아 올랑드: 우리의 동맹국들을 건드리는 터키 동맹국은 누구인가?)’, <르몽드>, 2018년 3월 12일.
(2) Jeffrey Goldberg, ‘The Obama doctrine’, <The Atlantic>, Boston, 2016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