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사’정부로서의 토탈

2018-07-31     알랭 드놀 | 철학자

국내와 국외에서의 행태가 다른 토탈. 국내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계약을 따내고, 자사의 투자를 보호하며, 공공정책의 향방을 지휘한다. 반면 정부의 비호에서 벗어난 국외에서는 대부분이 외국인인 자사 주주들의 이익을 더 보호한다. 그런데 왜 프랑스 정부는 이토록 토탈에 한결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토탈은 여전히 프랑스 기업일까? 

 
2017년 7월, 토탈은 이란과 최초로 천연가스사업 본계약을 맺었다. 이후 이란에 대놓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 6개월 만에, 토탈은 10억 달러에 달하는 초기 투자금 손실을 보았다. 지난 2018년 5월,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소식을 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가길 바라는 기업이 있다면 이에 대한 보장을 제공할 것”(1)을 유럽연합에 촉구했다. 그러나 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무력함을 보여줬을 뿐이다. 지나칠 정도로 미묘한 그의 발언은 미국의 결정에 저항할 수 없다는 절대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 법률에 의하면, 미국이 적대시하는 국가와 교역하는 해외기업이 미국의 서버를 이용하거나 달러로 교역하는 경우 해당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할 수 있다.(2) 토탈 또한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토탈의 자금 조달 거래량 약 90%가 미국 은행을 통해 이뤄지며, 전체 주식 중 30%가 미국발이다. 6.3%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는 미국 래리 핑크 CEO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기도 하다.(3)
 
더욱이 토탈은 멕시코만의 심해 개발사업 및 텍사스와 오하이오의 셰일가스 생산사업에도 참여 중이다. 오죽하면 자사의 운명과 미국의 운명을 혼동할 정도일까.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 전 토탈 회장의 2013년도 TV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의 머릿속에 있는 ‘미국’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사와 대립할 수 있는 당국 기관을 가리키는지, 미국의 경쟁사들을 가리키는지 혹은 자사인 토탈을 포함해 미국에서 자원을 채굴하는 기업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말이다.(4)
 
또한, 토탈이 이란 문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순응하는 것은 과거 미국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긴장 상태를 기억하기 때문일 수 있다. 1996년에 미국은 기업들의 대(對)이란-리비아 교역을 금지하는 ‘이란-리비아 제재법’을 제정했다. 이후 당시 토탈의 근동지부 책임자였던 마르주리와 신경전에 돌입한 미국 정부는 현지 대리인에 대한 뇌물 수수 혐의로 마르주리를 제소할 근거를 찾아냈다. 이에 토탈은 그 같은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3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러시아의 방대한 가스개발사업에 발을 들인 토탈은 술래잡기를 계속하고 있다. 2016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교묘히 피해갔다. 토탈은 중국자본의 손을 빌려 달러화를 통하지 않고 야말 LNG 사업에 착수했던 것이다.(5) 심지어 뮈리엘 보젤리 기자는 마르주리 전 회장을 죽음으로 몰아간 2014년 10월의 - 공식적으로는 - 비행기 사고가 사실 반대세력의 테러공작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달러화, 특히 석유사업 분야의 헤게모니를 수없이 비판했다. (…) 그는 석유를 기타 외화로 구입하는 방안을 공공연히 언급해왔다.”(6)
이처럼 토탈은 미국 내 영향력이 상당한데도, 전 세계를 상대로 자사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데는 여전히 프랑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토탈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1999~2000년 무렵의 일이다. 경쟁업체 엘프아키텐과 벨기에의 페트로피나, (토탈이라는 브랜드명을 소유한) 프랑스 석유회사(CFP)의 전신이 합병돼 탄생한 이후, 토탈과 프랑스 정부는 이해가 충돌하지 않는 한, 한목소리를 내곤 했다. 토탈의 파트리크 푸야네 현 CEO는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토탈에는 국적이 있다. 우리는 유일한 비(非)앵글로색슨 계열 대기업이다.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의 상임회원국이며, 생산국들은 토탈의 가스석유사업을 주권의 영역으로 여긴다. 토탈은 프랑스가 이 생산국들과 상부상조하며 유지해온 관계에 참여하는 셈이다.”(7)
 
심지어 때로는 토탈의 CEO가 프랑스 정부보다 앞서나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푸야네 토탈 CEO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동이 끝난 후 러시아 측의 보도자료에 인용된 발언을 믿는다면 말이다(푸야네 CEO는 국가정상급의 귀빈에게나 어울릴 법한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다). “토탈이 민영기업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최대기업이며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 자체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8) 이와 비슷한 사례를 곁들여보자면, 프랑스는 어느 유엔 총회 당시 프랑스를 대변할 인물로 어느 다국적기업 직원을 대표로 파견한 바 있다. 그리고 마르주리 회장이 사망했을 때 언론에서는 고인을 가리켜 “오르세(프랑스 외교부)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고 묘사했다. (<L'Expansion>, 2014년 10월 21일)
 
현기증을 자아내는 공권력과의 공생관계
 
토탈과 프랑스 공권력의 공생관계는 때때로 현기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컨대 과거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외무부 장관의 부대변인이었던 로마릭 루아냥(Romaric Roignan)은 부대변인직을 사임한 후 토탈의 국제관계 부책임자가 됐고, 이후 주미 프랑스 대사관 고문직, 장마크 애호 국무총리의 고문직을 역임했다. 그 후 안니 지라르 개발-프랑코포니 담당 정무차관의 수석보좌관으로 일했던 루아냥은 최근 토탈의 개발생산 부서 팀장으로 되돌아왔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파트리크 푸야네 CEO는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국무총리의 기술고문(1993~1995년)으로 일했으며 이후 기술정보우편국 수석보좌관직,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프랑수아 피용 국무총리의 수석보좌관직, 2017년에는 그의 대선 캠프 보좌관직을 역임했다. 
 
또한 피용 전 총리는 총리직을 마친 후 국회의원으로 재선출되자 레바논 출신의 억만장자 투자자 파우드 마흐주미의 로비스트로 활동해 마흐주미와 푸야네 CEO, 푸틴 대통령 간의 만남을 주선했다.(9) 2009년 당시 총리였던 피용은 나이지리아에 자리한 토탈의 사업거점을 방문했고 나이지리아에 프랑스의 군사원조를 제안했다. 이는 군사 분쟁에 따른 나이저 삼각주 지역의 생태계 파괴에도 불구, 토탈이 점유한 사업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10) 그러나 오늘날 토탈은 ‘라프랑스 상가쥬(‘참여하는 프랑스’라는 뜻. 교육, 장애복지, 사회 원조 등의 분야에서 사회적 사업을 하고 있다-역주)’ 재단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이 재단은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시민사회에서 번듯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줬다.(11)   
 
이런 영향력과 2017년 1,700억 달러의 매출 달성에 힘입어 토탈은 대러시아 통상제재, 노동법 개정 반대시위, 프랑스의 차기 대선 등 전 분야에서 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주와 옥시타니 주의 지역산업 활성화 계획에 투자했고, 대학연구 프로그램을 재정지원 했으며,(12) 투자자를 찾는 기업들을 인증해주는 재단을 설립했고, 당뇨병 퇴치 운동에 참여 중이며,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회들을 후원 중이다.(13) 프랑스 남부 레랭의 요새화된 수도원과 브르타뉴 지방의 콩셰(Conchée) 요새 복원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마치 최상위 정부기관이 된 것처럼,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차원의 기후협정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기도 한다. 또한 토탈 재단에서 자사가 ‘해양 보건과 생물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밝힐 때면, 문화와 생태, 보건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제2의 프랑스 정부처럼 행동하는 이 기업은 다국적 주주들에 의해 경영되며, 그 가운데 프랑스는 그저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130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한 토탈은 점점 더 많은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석유와 비재래식 가스는 물론, 태양광 에너지, 첨단 저장 배터리, 농산연료, 전기 부문까지 영역을 넓혔다. 정유업의 경우 프랑스 본토에서는 차츰 손을 뗀 탓에 점유율이 80%에서 50%로 줄어들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새로운 거점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토탈의 사업거점 중 70%가 아시아와 근동에 자리한 상황이다. 이런 다각화처럼 자본 역시 분산돼 있다. 앞서 언급된 미국발 투자기금을 제외하고도, 토탈은 중국 당국, 카타르 정권,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캐나다 데스머라이스 가와 벨기에 프레르(Frère) 가의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조직(14)을 주요 주주로 삼고 있다. 그 외의 주주들은 영국, 벨기에, 스웨덴 그리고 다양한 조세 회피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15)
 
따라서 우리는 자국보다는 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에 어째서 프랑스가 이토록 충실한지 자문하게 된다. 토탈의 주주 중 오로지 28.3%만이 프랑스인이며 (기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투자자 가운데서는 그 비율이 16.7%로 떨어지니 말이다.(16) 사실상 프랑스 정부는 엘프아키텐과 CFP에서 손을 뗐다. 1986년 자크 시라크 행정부가 최초로 지분 매각을 시작해 1998년 리오넬 조스팽 행정부가 기업 청산을 공고히 했고, 2000년에는 이 두 회사와 페트로피나의 합병이 추진되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기업에서는 세 가지 노하우가 공유됐다. 먼저 1924년 프랑스 정부에 의해 설립된 CFP는 국제 석유 카르텔 시장에서 줄곧 발전시켜온 자사의 지식을 가져왔다. 한편 엘프아키텐은 20세기 말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벌인 신식민주의적 행태의 핵심적 수단으로, 첩보, 뒷거래, 부패, 폭력, 정치 조작으로 명성을 떨쳤다. 마지막으로 페트로피나는 다국적 거대 주주들을 통째로 데려왔다.
 
민영화와 합병 이후에도, 이들의 오래된 관습 중 몇 가지는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예컨대 유가 책정과 광구의 할당 구조를 둘러싼 불투명성은 여전하니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특히 극심한 정치 지도자들의 커미션 지불 및 (비공식적인) 후견 행태는 ‘프랑사프리카(Françafrique: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프랑스어식 합성어로, 프랑스 아프리카 간의 은밀한 밀월관계를 의미-역주)의 종말’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이런 방식은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근대화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토탈은 다국적 기업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업이다. 자사의 이득을 위해 각국 정권과 협상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대적할 만한 견제세력이 없는 기업 말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이란과의 사례에서 토탈이 백기를 든 것은 원칙보다는 예외에 가깝다. 그렇지만 각국이 다국적 기업들에 맞서 싸울 만한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각국 정부들 또한 다국적 기업에 덜 관대하게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글·알랭 드놀 Alain Deneaunlt  
국제철학학교 교수. 저서로 『토탈은 무엇이 만들어낸 결정체인가? 다국적 기업과 법의 왜곡(De quoi est-elle la somme? Multinationales et perversion du droit)』, Ecosociété, 2017/ 『왜곡된 전체주의: 권력을 지닌 다국적 기업(Le Totalitarisme pervers. D’une multinationale au pouvoir)』, Rue de l’Échiquier, 2017.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Emmanuel Macron, EU-발칸 6개국 정상회담 보도자료, Sofia, 2018년 5월 17일.
(2) Ibrahim Warde, ‘부동산업자 트럼프의 국제법 다루기(Le diktat iranien de Donald Trump)’,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6월호‧한국어판 2018년 7월호. 
(3) ‘Évolution de la répartition des principaux actionnaires(주요 주주들의 분포 변화)’, Total.com, 2017년 12월 31일, Denis Cosnard, ‘Ces dix ans qui ont chamboulé les entreprises françaises(프랑스 기업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최근 십 년)’, <르몽드>, 2017년 2월 28일.
(4) Christophe de Margerie와의 인터뷰, ‘Le Grand Jury(대배심)’, <La Chaîne Info(LCI)>, <Radio Télé Luxembourg(RTL), <Le Figaro>, 2013년 6월 2일.
(5) Benjamin Quenelle, ‘Gaz: Total boucle le financement de son mégaprojet russe grâce à la Chine(가스: 토탈은 중국에 힘입어 러시아발 거대 프로젝트의 재정 조달을 마무리하다)’, <Les Échos>, Paris, 2016년 4월 29일.
(6) Muriel Boselli, ‘Accident ou attentat? J’ai enquêté sur la vie et la mort de Christophe de Margerie(사고인가 테러인가?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의 삶과 죽음을 취재하다)‘, <L’Obs>, Paris, 2016년 4월 22일.
(7) Adrien Schwyter, ‘Comment Total gère le risque géopolitique(토탈이 지정학적 위협을 관리하는 법)’, <Challenges>, Paris, 2016년 4월 7일.
(8) ‘Poutine rencontre pour la première fois le nouveau PDG de Total(푸틴이 토탈의 새로운 CEO를 처음으로 만나다)’, <Agence France-Presse(AFP)>, 2014년 11월 28일.
(9) Romain Herreros, ‘Selon Le Canard Enchaîné, François Fillon a touché 50,000 dollars pour avoir mis en relation un milliardaire libanais avec le PDG de Total et Vladimir Poutine(르카나르앙셰네에 의하면, 프랑수아 피용은 레바논의 억만장자를 토탈의 CEO와 블라디미르 푸틴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받았다)’, <Le HuffPost>, <AFP>, 2017년 3월 21일.
(10) ‘Fillon: la France prête à “assister” le Nigeria sur le plan militaire(피용: 프랑스는 군사적 차원에서 나이지리아를 ‘원조할’ 준비가 돼 있다)’, <LeMonde.fr>, <avec AFP>, 2009년 5월 24일.
(11) ‘Total, premier mécène de La France s’engage(토탈, ‘라프랑스상가쥬’의 첫 후원자)’, www.fondation.total.com
(12) Catherine Frey, ‘Les chercheurs de l’université de Reims choisis par le groupe Total pour débusquer le méthane(메탄을 추출하기 위해 토탈 사가 선택한 랭스 대학 연구자들)’, <L’Union>, Reims, 2016년 12월 19일; ‘Total et le CNRS planchent sur un drone capable de mesurer la qualité de l’air des sites industriels (토탈과 CNRS는 공업지대의 공기질을 측정 가능한 드론에 골몰하고 있다)’, <ITR News>, 2017년 4월 7일.
(13) ‘La Fondation Total mécène principal de l’exposition “Des animaux et des pharaons”(토탈 재단, ‘동물과 파라오’ 전의 주요한 후원자)’, www.louvrelens.fr
(14) ‘Évolution de la répartition des principaux actionnaires(주요 주주의 분포 변화)’, Total.com, 2017년 12월 31일, et Denis Cosnard, ‘Ces dix ans qui ont chamboulé les entreprises françaises(프랑스 기업들을 대폭 변화시킨 최근의 십 년)’, art. cit.
(15) LexisNexis WorldCompliance, 2016.
(16) ‘Document de référence 2017(2017년 보고자료)’, To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