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스 클럽, 부르주아의 새로운 코드
2018-07-31 로라 랭 | 언론인
오래전부터 정치세력들은 신체 운동과 결부된 가치들, 즉 운동에서 경쟁이 중요한가 연대가 중요한가, 또는 결과를 중시할 것인가 노력을 높이 살 것인가, 혹은 개인주의의 지배인가 단체정신의 함양인가 등의 주제로 설전을 벌여왔다. 그러나 고급 스포츠클럽들의 급성장세를 보면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몸에 대한 열풍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앞으로는 기량과 건강함이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패션 및 문화 전문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가 올해 “파리에서 가장 섹시한 스포츠클럽”(1)으로 선정한 ‘블랑슈(Blanche)’는 고객들에게 “아름다운 정신과 몸의 균형”을 약속한다. 블랑슈는 파리 9구의 역사적 기념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저택에 자리하고 있으며, 럭셔리 피트니스클럽의 선두주자 벵자캥(Benzaquen) 일가가 가장 최근에 개장한 클럽이다.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정면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 기둥, 볼록거울, 프레스코화 및 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장식물들과, 강철, 콘크리트, 화강암 등이 우아한 대조를 이루는 최신식 디자인이 눈에 띈다.
2009년 벵자캥 일가가 파리의 몽토르게유(Mon-torgueil) 구역에 개장한 두 번째 클럽 ‘클레이(Klay)’처럼, 블랑슈도 회원 수를 2,500명으로 제한해 운동공간이 붐비지 않도록 함으로써 회원들의 편의를 보장한다. 그러나 더 효과적으로 회원을 걸러내는 장치는 바로 연회비 1,810유로다. 1985년 벵자캥 일가가 파리 16구에 문을 연 클럽 ‘켄(Ken)’은 가입비로 최소 연 4,40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한편 피트니스클럽 체인인 클럽메드 짐(Club Med Gym, CMG)에서는 평균 이용료가 800유로를 웃돌지만, 저가 클럽인 네오니스(Neoness)는 ‘한산한 시간대’를 이용하면 120유로만 지불하면 된다. 이처럼 블랑슈나 클레이 같은 클럽들이 세운 장벽은 사회계급의 구분을 합리화함으로써 몸과 관련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고급 클럽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은 회원들의 ‘세련됨’을 높이 평가한다고 흔쾌히 답한다. “여기 회원들은 남한테 잘 보이려고 안달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공간 면에서 여유롭고 빛이 잘 드는 ‘안락한 시설’도 덧붙였다. 그리고 공들여 작업한 ‘고급스러운’ 장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 가령 클레이에서는 메탈 소재로 마감한 들보, 대형 유리창, 첨두홍예를 십자형 벽돌로 장식한 천장 등을 볼 수 있다. 아르튀르 벵자캥은 “우리는 영화 <페임(Fame)>이나 <록키(Rocky)>를 뒤섞어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업계에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본명인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를 따서 클럽 이름을 ‘클레이(Klay)’로 지었다. 그렇게 권투, 자기극복, 기량 향상, 땀 흘리기 등을 통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갔다”고 설명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법한 ‘기념비적’ 사진
피트니스클럽 블랑슈는 “균형, 조화, 행복을 아우른다”는 개념을 일찍이 고취시킨, 음악전문 출판인 폴 드 슈당의 고급스러운 저택이 위치한 ‘블랑슈’가(街)의 고상함과는 무관하다. 물론 블랑슈는 매력적인 곳이다. 이를테면 건물 지하에는 아르튀르 벵자캥이 ‘명상의 동굴’이라 일컫는, 작은 인피니티 풀(수영장의 물과 주변이 시각적으로 경계가 없는 듯 보이게끔 설계한 수영장-역주)이 있다. 화강암으로 가장자리를 마감한 풀 안에는 제트스파가 장착돼 있고, 빛우물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블랑슈의 소유주 벵자캥은 전문가답게 “무중력상태에 있는 것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보면 몸에 힘 빼기가 쉬워지고, 더 깊은 심호흡이나 호흡정지 등의 훈련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은 사진이 가장 멋지게 나오는 포즈이기도 한데, 매거진 <베니티 페어>는 블랑슈를 소개한 기사의 ‘포텐셜 인스타그램’ 코너에서 이 수영장을 사실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평가했다.(2) 아르튀르 벵자캥은 “우리는 유행을 뒤쫓지 않는다. 유행을 규정하고 싶다”면서 블랑슈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클레이나 블랑슈 같은 고급 피트니스클럽이 성장하면서 과거의 헬스클럽은 이제 스파, 헤어숍, 바,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생활공간들’에 자리를 내줬다. 사람들은 칼로리를 소모하러 이곳에 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하러 오거나 사업상 미팅을 잡기도 한다(레스토랑은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다). 블랑슈는 스카이라운지에 작은 영화관을 갖춰놓고 있고, 클레이에는 읽을거리나 예술작품이 구비돼 있다. 또한 스포츠클럽은 특별행사를 위한 행사장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2009년, 클레이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리복(Reebok)’의 운동화 ‘펌프’ 모델 출시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고, 더 최근에는 6월 말에 거행되는 “패션위크 기간에 맞춰”(이 기간에 의류업체들은 새 컬렉션을 선보인다) 클레이 개장의 9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저녁 제비뽑기로 뽑힌 행운의 당첨자는 클럽의 1년 회원권을 비롯해,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소유한 프로방스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로제 ‘마그눔 드 미라발’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스포츠와 이벤트의 접목 효과는 금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당첨자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연간 회원권은 흔쾌히 받았으나 와인은 정중히 거절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클레이의 회원들이 더 선호하는 단백질 스무디 음료를 제공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여하튼 스포츠클럽의 저녁 모임이 남는 장사임에는 틀림없는데, 요즘 미국에서는 클럽에서 기념일을 축하하는 회원들도 있기 때문이다. 회원의 지인들은 버피 테스트(몸을 쪼그렸다 곧게 폈다가, 팔굽혀펴기를 했다 다시 몸을 쪼그렸다 점프하는 동작을 차례로 반복하는 운동)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한편 스포츠클럽 ‘위진(프랑스어로 ‘공장’이라는 뜻-역주)’은 ‘스파숍으로 변질되는’ 것을 거부하고 ‘순수한 스포츠클럽’을 고집하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고풍스러운 특징과 세련된 디자인을 배합한 매력적인 클럽들의 틈새시장에서 클레이와 경쟁하면서 비등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위진의 설립자 파트리크 리초와 파트리크 졸리는 2004년, 오래된 페캉 정유공장 작업장에 개장한 오페라극장 지점을 시작으로 스포츠클럽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서 두 번째 지점은 보부르에 있는, 18세기 초 존 로(John Law,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은행가-역주)에게서 압류한 은행 건물에 개장했다. 리초는 건물 입구에서 공공투자은행 회장인 도미니크 케냐르와 인사를 나눈 뒤 “우리 클럽에는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많이 다녀간다”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위진은 은행 업계뿐 아니라 쇼비즈니스 업계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데, 리초는 위진을 안내하면서 “킴 카다시안과 카니예 웨스트가 파리에 왔을 때 우리 클럽에 들렀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17년 스포츠클럽에 가입한 인구는 독일 13%, 영국 14.7%, 미국 17.5%였으며, 프랑스의 경우 8.5%에 그쳤다.(3)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프랑스의 스포츠클럽 시장은 몇 년 사이 대도시에서 급성장했다. 리초는 “2004년 위진 오페라극장 지점을 개장했을 때 파리에 있던 클럽은 20개 남짓이었다. 현재는 300개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딜로이트 회계감사 및 자문법인’은 프랑스의 스포츠클럽 종사자 수를 2017년 약 5,700만 명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2016년 대비 4.7% 늘어난 수치다.
한편, 소규모이긴 하지만 파리를 중심으로 최고급 스포츠클럽들도 증가했다. 예컨대 위진은 생라자르 역을 리모델링한 건물에 세 번째 지점을 준비 중이고, 벵자캥 형제는 라스파이가(街)에 네 번째 지점을 열 예정이다. 생마르탱 운하 구역에서 9월에 개점할 예정인 소셜 스포츠클럽은 파리 동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라 할 수 있다. 과거 열기구 제조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해 ‘몽골피에(프랑스어로 열기구를 뜻함-역주)’라는 이름을 붙인 이 클럽의 프로그램에는 “음악, 음료 그리고 사두근”과 “퀴노아, 환희 그리고 햄스트링”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일반 스포츠클럽과 더불어 전문 스포츠클럽들도 성행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100여 개의 크로스핏 체육관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체조선수 출신의 크로스핏 창시자인 그레그 글래스먼에 따르면 역도, 체조, 달리기를 혼합한 이 강도 높은 운동법은 “알려지지 않은 것뿐 아니라 알 수 없는 것”(4)에 대해서도 대비한다. 또한 ‘화이트칼라 권투(사무직 종사자를 일컫는 화이트칼라들끼리 하는 권투)’ 클럽은 기업체 간부들이나 관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프랑스의 권투 클럽 ‘템플 노블 아트(Temple Noble Art)’를 설립한 시릴 뒤랑은, 피트니스의 관점에서 “권투는 유산소운동, 다이어트, 근육강화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고 권투의 장점을 열거하면서 기존의 피트니스 개념을 전면 반박했다. 패기 넘치는 이 30대의 기업가는 “우리야말로 진정한 권투 클럽이다”라고 못 박으면서, “피트니스라는 편안한 영역에서 나와” 과감하게 링 위로 올라간 클럽 회원들의 ‘용기’를 칭송했다.
베르나르 타피가 에어로빅을 한다면
그 옛날 ‘바바쿨(Baba cool, 힌두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Baba와 시원하다는 뜻의 영어 Cool의 합성어. 폭력과 경쟁을 거부하는 사람을 일컬음-역주)’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요가 강습소들도 성황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하타 요가나 아슈탕가 요가에서부터 (종종 특허를 취득한) 좀 더 독창적으로 변형한 요가까지, 50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실내온도를 40℃로 높인 공간에서 하는 비크람 요가, 뉴욕 출신의 패션모델이 창시한 스트랄라 요가, 전직 무용수인 크레이지 호스가 개발해낸 전투 요가 등이 있다.
지난 3년간 몰입형 실내 사이클(Immersive indoor cycling)은 음향이나 조명을 나이트클럽처럼 바꾸고, 쓸 만한 실내용 헬스바이크를 실내 사이클로 재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체인으로 운영되는 스포츠클럽 ‘다이나모(Dynamo)’는 조명이라곤 한 곳에서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플래시가 전부인데, 어두컴컴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프로그램당 45분으로 운동이 진행된다. 40여 대의 헬스바이크가 DJ 겸 코치가 올라서 있는 단을 향해 늘어서 있는데, 이 DJ 겸 코치는 맥북과 헤드셋을 갖추고 페달 밟기, 팔굽혀펴기, 덤벨 들기 등을 지도할 뿐 아니라, 보다 마음수련을 강조한다. 어느 날 아침에 들른 파리 9구의 클럽에서 랩과 전자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코치 ‘존’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일곱 살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정신을 강화하려면 신체를 단련하라”고 권했다.
훈련을 통해 인간의 몸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 개념이 스파르타로 거슬러 올라가 계몽주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다뤄졌다면, 체육이라는 최초의 개념은 19세기에 인간의 신체활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발전했다. 스포츠사회학자 필리프 리오타르는 “체육은 남성과는 군사적 목적(프랑스에서는 19세기 말 프로이센에 대한 복수전)에서, 여성과는 보건위생적 목적(출산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한 준비)에서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프랑스에서 사설 스포츠클럽은 아주 최근에야 유행하게 됐고, 모든 스포츠는 오랫동안 치밀하게 조직된 단체가 관리해왔다”고 요약한다.
1950년대부터 피트니스의 효시인 아마추어 체육연맹은 수천 개의 지부를 통해 스위스식 스포츠 강좌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했다. 이것은 1936년 레옹 블롬이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선 뒤 시행한 스포츠 민주화의 정치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여가 및 스포츠 조직 제1 정무차관에 취임한 레오 라그랑주는 “프랑스의 젊은 대중들이 운동을 통해 기쁨과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5) 공공 수영장 및 경기장을 100여 개 세우게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공짜 문화’를 개탄하는 파트리크 리초는 “프랑스인들이 스포츠를 권리로 생각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고 토로하면서, 이는 “이름도 없는 매춘업소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경쟁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1980년대 초반에 리초와 졸리는 최초의 스포츠클럽(Gymnase Club, 이후 명칭을 클럽 메드 짐에서 CMG로 바꿈)을 설립해 (주로 남성들에게는) 근육강화 및 유산소운동 기계와, (주로 여성들에게는) 에어로빅 강좌를 제공했다. 사회학자 크리스티앙 보나는 “에어로빅 운동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피트니스의 상업화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사설 클럽에서 에어로빅을 하게 됐고, 더불어 에어로빅에 적합한 복장과 신발을 갖추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에어로빅은 1970년대에 여배우 제인 폰다의 비디오를 통해 유명해졌으며, 에어로빅에 주목한 미군 소속의 한 의사는 근육질의 여성도 섹시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마른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공을 세웠다.
이런 현상은 1980년대에 대서양 너머까지 전파됐는데, 이는 특히 프랑스2TV 채널에서 베로니크와 다비나가 진행한 에어로빅 프로그램인 <짐 토닉(Gym Tonic)> 덕분이다. 이 방송 덕택에, 1천만 명이 넘는 여성 시청자들이 일요일 아침마다 TV 앞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사학자 프랑수아 퀴세의 분석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시장 논리를 재편했던 1980년대 10년간 “스포츠와 자본의 극적인 합작”이 이뤄졌기(6) 때문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 합작은 1984년 6월 17일, 프랑스의 유명인사 베르나르 타피(아디다스의 소유주로 축구 구단 마르세유의 전 구단주이기도 한 기업가 출신 정치인-역주)가 <짐 토닉>에 출현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구체화됐다. 진행을 맡은 체육인 출신의 두 사회자가 “베르나르 타피, 당신은 터무니없는 속임수와 수단을 동원해 여러 회사를 거느렸던 명망 있는 사업가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초대 손님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렇게 답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스포츠맨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동료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스포츠는 심리 상태, 마음, 지적 능력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몸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소들은 우리 몸이 얼마나 건강한지 반영해주죠. 정신을 단단히 무장하고 싶다면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은 필수입니다.”
“건강은 새로운 형태의 부(富)”
오늘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형광색 레깅스 차림으로 에어로빅하는 사람들을 다시 본다면 민망할 정도로 촌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제인 폰다에게 열광했던 사람들 혹은 보디빌더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팬들이나 좋아했을 구시대적 운동법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다. 파트리크 리초는 초기의 에어로빅 열풍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에 살짝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스포츠클럽 풍경을 보면, 상황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더 고급스러워진 것인가?
유명 스포츠 클럽인 위진처럼, 또 다른 클럽인 클레이도 다수의 배우나 크리에이터, 예술가들을 영입하고서 흡족해한다. 이를테면 클레이에서는 미술관 팔레 드 도쿄에서 전시회를 연 바 있는 조형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토마 렐뤼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여하튼 스포츠클럽은 베르나르 타피처럼 몸과 ‘정신’을 함께 단련하려는 기업체 간부들이나 은행가들의 회원 가입을 통해 주로 수입을 충당하는 형편이다.
파트리크 졸리는 “오랫동안 피트니스클럽은 삶에 싫증을 느낀 엄마들을 위한 중산층의 소박한 공간으로서, 혹은 자연에서 즐기는 야외 스포츠나 경기처럼 ‘진짜 스포츠’에 대비해 체력을 기르기 위한 장소로 여겨질 뿐이었다. 피트니스가 그 자체로서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략 1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한다. 사실상 피트니스클럽이 걷기를 스텝 운동으로, 자전거를 헬스바이크로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스포츠들을 끊임없이 흡수해왔다면, 이제 건강 유지나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들은 실전 훈련으로 여겨진다. 2012년 리복은 “이제 피트니스도 하나의 스포츠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크로스핏 선수권대회를 창시했다.
처음 스포츠클럽이 생겨난 이후로 자기 관리는 점점 정교해졌다. 예를 들어 요가나 주짓수 같은 동양식 훈련법을 따르는 비교(秘敎)적이고 영적인 분위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동양적인 분위기를 배제하고, 미군식 신체 단련법으로 신병 훈련소에서 실시하는 군대식의 남성적 코드를 채택하는 방식도 있다. 여기서 경쟁은 의무이며, 각 스포츠클럽은 기술적(이고 언어적인)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다양한 운동법을 제시한다. 심지어 네오니스 같은 클럽도 40개가 넘는 운동법을 선보이고 있다.
저가 스포츠클럽들이 기본 강좌들을 제공하기 위해 줌바댄스, 바디펌프, 쉬뱀(Sh'bam) 등의 라이선스를 사들였다면, 고급 클럽들은 특허기술들을 독점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자기들만의 고유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과시한다. 뉴욕에서 반중력 피트니스(Antigravity fitness)를 도입한 클레이에서는, 기구를 이용해 머리를 아래쪽으로 하고 공중에 매달려 하는 요가를 할 수 있다.
클럽들은 자기들만의 창조적인 운동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위진의 ‘U 스트레칭’은 “근육 내 체온을 상승시켜주고, 신체의 서로 다른 조절 시스템에 신호를 보내는 방식(자기 수용성 감각)”이고, 클레이의 ‘호흡과 스트레칭’은 지압과 정신집중효과학을 혼합한 요법이다. 각 방식끼리는 무한히 접목될 수 있으며, ‘복싱요가’처럼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으면서 때로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운동법들이 한데 어울리기도 한다. 한편 운동이 개인화되면서 개인 코칭도 확산되고 있다. 위진은 40여 명의 트레이너 팀을 배치해, 시간당 평균 60유로의 특강을 제공한다.
수많은 운동법들이 기발하지만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덧없이 사라져갔는데, 여기서 눈여겨볼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운동의 목적과 관련이 깊다고 파트리크 졸리는 말한다. “1980년대에 이 업계를 움직인 힘은 미적인 측면이 컸다. 남성들은 울퉁불퉁한 이두근을, 여성들은 날씬한 허리를 원했다. 요즘에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두루 접근하는 건강 스포츠를 하고 있다.” 리초는 신규 회원의 신체 부위를 (수분량, 지방량, 비만도 등) 요소별로 분석해 위진의 의료 담당자에게 알려주는 ‘2만 9천 유로짜리 기계’를 공개했다.
벵자캥 역시 2000년대 초 켄에 불어온 고객층의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의 5대 사업가로 손꼽히는 폴-루 슐리처 같은 사람들이 사업상 자신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수영장 부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식사를 하러 오던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회원들은 평균 연령이 약 10년 젊어졌고, 오로지 자신의 몸과 건강에만 관심이 있다.”
이와 관련, 크리스티앙 보나는 “1960년대에 역학(疫學)의 전환기를 거치고 난 이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전염병이 아니라, 암이나 심혈관 질환에서 시작되는 만성질환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전염성이 없는 이 질병들은 대부분 소위 ‘건강에 해로운’ 행동들을 줄임으로써 피할 수 있었다. 즉 담배나 술을 줄이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01년부터 ‘국민건강 영양프로그램(PNNS)’은 ‘먹고 움직여라’나 ‘당신의 건강을 깨워라’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고자 한다.
벵자캥은 “자기 몸은 스스로 가꿔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언론에서 불안을 야기하는 연구들을 연일 보도하는 탓에, 앉아서만 생활하는 삶의 위험을 모르는 경우란 거의 없다. 2018년 6월 13일 자 <르몽드>지는 ‘일어나 걸어라!’라는 제목의 한 기사에서, “앉아 있는 생활이 목숨을 앗아간다”며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경고했다.
이처럼 미의 규범은 신체라는 외형에 건강이라는 욕구를 결합하기 위해 변화해왔다. 뷰티 저널리스트 발렌틴 페트리는 “1990년대에는 식욕부진에 걸린 듯한 영국의 톱모델 케이트 모스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라야 했다. 이제는 지젤 번천처럼 날씬하지만 활동적이고 탄탄한 근육을 지녀야 한다”고 갈무리했다. 브라질 출신의 패션모델 지젤 번천은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헬시 셀피(Healthy selfie,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셀카)’를 찍어 올리는데, 복싱 클럽이나 삼바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틈틈이 공유한다. 이제 파파라치가 조깅 중인 그녀를 불시에 습격할 일은 없을 듯하다.
요즘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것이 유행이다. “건강은 새로운 부(富)”라는 문구는 이 시대의 상징적 신조가 될 것이다. 여성지 <엘르>는 “교정용 신발이라 해도 될 정도로 큼지막한 운동화에 패셔니스타들이 열광하다(2017년 11월 20일)”라고 썼다. ‘애슬레저(Athleisure, 운동이라는 뜻의 athletic과 여가라는 뜻의 leisure를 합성한 단어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의미)’는 지금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레깅스, 스포츠브라, 트레이닝후드, 조깅복이 거리는 물론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 런웨이를 휩쓸고 있다.
이제 이런 기능성 의류를 걸친 모습들은 운동시간 외에 직장이나 저녁 모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캐나다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은 2000년대 초, 두 벌에 100달러 가격으로 요가 레깅스를 유행시킨 업계의 선두주자다. 이후 유명 디자이너들이 스포츠브랜드 컬렉션에 합류하기 시작했는데, 스텔라 매카트니는 15년 전부터 아디다스 라인을 디자인하고 있다.
속도 다스리고, 영혼도 다스려야
‘칼로리는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체중은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라 빈곤의 상징이 됐다.(7) 이와 더불어 점차 경제가 자동화 및 3차산업화 되고 육체노동이 다소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강인하고 탄탄한 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국 특수부대에서 착안한’ 훈련 코스는, 하물며 전쟁도 자동화된 마당에 앞으로 전쟁에 나갈 가능성이 더 줄어든 기업체 간부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신체를 단련하는 운동은 “건강이라는 자본을 관리하라”는 명령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속을 다스리려면 유기농이나 글루텐프리 음식을 먹어야 하듯, 영혼을 다스리려면 ‘명상 바(Meditation bar)’에서 하듯 깊이 명상을 해야 한다. 라이스프타일 컨설턴트 앨리슨 베크너가 제시하는 요법에는, 의학적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고도의 전문적인 건강 관리법이 반영돼 있다. “신체활동으로는 축구와 테니스를 하고, 정서적으로는 승마를 즐기며, 영적으로는 요가와 명상을 한다.”(8)
1970년대에 시작된 탈정치화의 보편적 움직임 속에 나타난 이런 개인의 행복 추구는, 새로운 경제 상황뿐 아니라 실업 및 노동자들의 지위 하락이라는 위험요인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거나, 심지어 자신의 삶과 경력마저 갈고 닦으려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나은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잠재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만족한다. 전투적인 사회주의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자연적 원인』에서 이런 상황을 비웃듯 “나는 세상의 불의에 맞서 대단한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운동기구 위에서 몸무게를 10kg 조절할 수는 있다”(9)고 말한다.
그런데 자기 몸에 대한 이런 권한은 양날의 검과 같다. 철학자 이자벨 크발은 “우리가 자기 몸의 조각가가 될 수 있고, 자기 건강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건강이 나빠졌을 때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1970년대에 사회학자 크리스토퍼 래시가 『나르시시즘의 문화』(10)에서 진단한 것처럼 가부장주의적 제도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엄격하고 징벌적인 초자아”가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에런라이크의 저서에 열거된 몇 가지 희비극적 사례들이 짚어주듯이, 건강한 삶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착은 질병과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예방>이라는 잡지의 창립자이자 유기농식품의 옹호자였던 제롬 로데일은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72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한편 여성 전용 헬스클럽 체인의 소유주이자 원기 왕성했던 뤼실 로베르는 감자튀김이나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59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여기에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의 사례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채식주의, 자연요법, 명상의 절대적 옹호자였으나 56세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는 발암물질에서 기인한 암은 전체 암의 6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여하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면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어떤 사람의 몸을 보면 그 사람의 계급 파악이 대략 가능하다는 점을 합리화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우월하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우리는 자율규제 능력, 그리고 자신은 물론 심지어 고통까지도 제어하는 능력을 드러내는데, 이런 능력은 “자신의 미덕과 자기 초월을 입증해주는 바람직한 노력의 증거”로 여겨질 수 있다고 이자벨 크발은 지적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몸을 가지기 때문에, 비만은 게으름이나 의지부족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가난해서 뚱뚱한 게 아니라, 의지가 부족해서 뚱뚱하고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물을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연대의 원칙을 저버린 관점이다. 사회적 수준, 직업, 공공보건 시스템이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에런라이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추구한다. “건강은 개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견해는, 건강이 나쁜 사람은 혐오와 원망의 대상이 될 것을 의미한다.” 사회보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반론은 대개 이런 식이다. “담배를 피우고, 치즈버거를 먹는 한심한 작자들을 위해 왜 내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규칙적인 운동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는데, 사회적 계층 분류가 그것이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홀켓은 저서 『작은 것들의 총합』(11)에서, ‘가시적’ 소비재의 상대적 민주화가 미국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분석했다. 이제 중산층도 신용카드 덕분에 대형 자동차나 명품가방을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상류층은 자신들만의 사회적 지위를 다른 코드를 통해 찾아냈다. 이는 보다 교묘한 형태를 지니는데, 에코백이나 아몬드우유, 쿤달리니 요가(힌두 밀교파의 요가형태로, 성 에너지를 활용해 영적 완성의 도구로 사용한다-역주) 등이다.
이런 소비 유행은 커리드-홀켓이 ‘출세지향적 계급(Aspirational class)’이라고 명명한 사회적 범주와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 언론인 토마스 프랭크가 미국을 대상으로 연구한 ‘전문가 계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계급은 월스트리트를 쥐락펴락하는 상위 1%도, 전용 요트나 비행기를 소유한 소수의 지배집단도 아니다. 이들은 ‘생태주의적’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월마트에서 카트를 미는 대중과 구분되는, 상위 5~10%에 해당하는 계층이다.(12) 어쩌면 이들 상위 1%보다도, 도시에 거주하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이 5~10%가 어떤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이동과 부의 재생산이 어떻게 될지 가늠될 것”이라고 커리드-홀켓은 판단한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시설을 포함해, 스포츠클럽을 점점 많이 찾는 계층은 생활이 여유로운 도시인들이다. 미국에서 상위 20%의 부유층들은 하위 20%의 빈곤층보다 일주일에 약 6배 운동을 한다.(13) 프랑스 전체 인구 중 매주 운동을 하는 비율은 약 35%이며, 초소형기업(TPE) 경영인의 경우 58%가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14)
스포츠클럽 이용률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긴 했으나, 사회계급의 하부에 주로 포진된 과체중이나 비만 발생률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아무리 저가 피트니스클럽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맥도널드 메뉴에 케일(녹황색 채소)을 추가한다고 해도 이런 추세를 뒤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글·로라 랭 Laura Raim
언론인
번역·조민영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On n’a jamais autant aimé suer qu’à Blanche, le club de sport le plus sexy de Paris”, <Vanity Fair>, 파리, 2018년 6월 7일.
(2) Ibid.
(3) ‘European health &fitness market’, rapport 2018, Europe Active-Deloitte, Bruxelles-Düsseldorf, 2018년 4월.
(4) Greg Glassman, ‘Understanding crossfit’, 2007년 4월 1일, crossfit.com
(5) Léo Lagrange, discours radiodiffusé(라디오 대담), 1936년 6월 10일.
(6) François Cusset, La Décennie. ‘Le grand cauchemar des années 1980(1980년대의 거대한 악몽)’, <La Découverte>, Paris, 2006년.
(7) Benoît Bréville, ‘Obésité, mal planétaire(비만에 시달리는 지구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9월호 참조.
(8) «Alison-Paris»,www.insideoutparis.com
(9) Barbara Ehrenreich, 『Natural Causes: An Epidemic of Wellness, the Certainty of Dying, and Killing Ourselves to Live Longer』, Twelve, 뉴욕, 2018년.
(10) Christopher Lasch, 『La Culture du narcissisme(나르시시즘의 문화)』, Flammarion, coll. 『Champs Essais』, Paris, 2008년(초판 1979년).
(11) Elizabeth Currid-Halkett, 『The Sum of Small Things: A Theory of the Aspirational Clas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년.
(12) Serge Halimi, ‘Le leurre des 99%(99%의 함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8월호 참조.
(13) Spin to separate’, <The Economist>, 런던, 2015년 8월 1일.
(14) ‘Sport and physical activity(스포츠와 정신 활동)’, Special Euro barometer 412, TNS Opinion&Social, Bruxelles, 201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