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추구하는 것

2018-07-31     니콜라이 코자노프 |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
러시아 정부는 2015년 9월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단행하기로 하면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목숨을 부지하고 영토 대부분을 수복할 수 있게끔 했다(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 왔다). 러시아 정부는 서구,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이란까지, 역내 모든 관련국과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자국이 표방하는 정치적 해법을 관철하려 노력하고 있다.

본래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에 나설지는 불투명했다. 시리아 사태 초기(2011~2012년)만 해도 러시아 정부는 외세개입만 없다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혼자서도 능히 폭풍우를 잘 견뎌 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내전이 심화되면서 환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러시아는 시리아가 ‘국제사회’와 타협안을 도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알 아사드 개인과 시리아 국가를 서로 구분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몰락 이후 리비아가 빠져든 혼돈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시리아 국가체제를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알 아사드가 시리아의 국가체제 붕괴를 막을 능력이 있다는 확신만은 잃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알 아사드 개인을 영원히 신임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하디스트로부터 시리아를 지켜야 한다?

사실 러시아 정부는 알 아사드를 전적으로 신임한 적이 없다. 러시아는 2000년 시리아 집권 직후 알 아사드가 프랑스 등 유럽국과의 관계증진에 발을 벗고 나섰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리아군의 레바논 주둔이 불씨가 돼 유럽과 관계가 틀어진 후에야 비로소 알 아사드는 러시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뿐만 아니라 1990~2000년대 러시아의 군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고 시리아로 도주한 체첸 반군을 체포하기 위한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시리아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니 러시아는 시리아와의 협력관계에 여전히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2016년 7월 한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동맹을 저버릴 정권은 신임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 이집트를 상대로 소련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7월, 당시 안와르 알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수천 명의 소련 군사고문단을 추방하는 것으로 친소관계 청산을 본격화했다.

2015년 9월 시리아 반군이 급진세력과 결탁해 점차 세를 불려 나가자 러시아는 알 아사드 정권의 생존을 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이 금방 붕괴할 가능성을 차차 우려하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기술·경제적 지원은 그저 정권의 수명을 연장할 뿐 생명을 구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에게는 직접적이고 지속성 있는 군사개입이 다른 두 시나리오보다 더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가령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번번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군사개입에 나서며 알 아사드를 지원하거나, 혹은 알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도록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해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러시아 지도자들의 선택에는 리비아나 이라크의 사례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두 국가에서 정권 몰락이 그다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들은 시리아마저 역내 지하디스트의 온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5년 9월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가 지하디스트의 온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국제사회’를 향해 경종을 울렸다. 처음에 이 같은 경고는 서방세계가 중동지역에서 트러블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일종의 비방전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2015년 러시아의 우려는 정말 현실이 됐다. 유럽, 러시아, 캅카스, 중앙아시아 출신의 많은 전투원들이 대대적으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국가조직(IS)이나 기타 이슬람 조직에 합류하면서 세를 확장해 나간 것이다. 

2015년 러시아 정보기관과 여러 개인분석가들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캅카스 북부와 기타 러시아 지역, 해외 체첸공동체 출신의 러시아어권 전투원 약 1만 2천 명이 알 누스라 전선, 아흐라르 아쉬샴(시리아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등 각종 이슬람조직에 합류해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이들 무장조직에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나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에 속했던 중동아시아 국가 출신자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IS나 알 누스라 전선이 내세우는 대의에 동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훗날 자국에서 벌일 전투에 대비하는 훈련 차원에서 시리아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결심한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현 정권이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모든 조직을 공습의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나 서방 세계가 ‘테러리스트’로 분류하지 않은 세력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그런 사실을 부인했고, 현재까지도 IS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만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공습을 통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 첫째, 시리아 정권이 장기 존속할 가능성을 높였다. 둘째, 서방 군대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못하게 막아 그들이 시리아 내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직접적인 군사개입에 나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군사적 노력에 협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국이 현 시리아 정권과 함께 IS 격퇴전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음을 널리 홍보하며 알 아사드를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한편 러시아는 라타키아 시 동남부에 위치한 흐메이밈 러시아 공군기지를 모든 공군병력을 전개하는 주요 기지로 삼아, 시리아와 관련한 그 어떤 의사결정도 자국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음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등 외교적인 위상도 강화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을 긴급히 구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야심 찬 목표를 추구했던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해외 무장 세력은 제외) 간에 국가 대화를 주선하며 내전 종식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럼에도 화해 추진 과정에서 자국이 원하는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주력했다.

가령 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 푸틴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IS 격퇴를 위해 반테러 연합을 결성하고, 시리아 영토의 완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요건 중 하나였다. 더욱이 러시아는 시리아의 현 국가체제를 존속시키는 한편, 기존의 헌법 테두리 안에서 정권을 쇄신하자고도 주장했다. 2016년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현 정권과 ‘건강한’ 야권 세력이 권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말하자면 더 이상 알 아사드 축출이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에 국민 대화를 열기 위한 선결 조건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6년 12월 알레포 탈환은 러시아가 자국이 시리아와 역내 정세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자신하는 계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미국의 정치 환경이 변했지만 러시아는 이런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2017년 러시아는 주요 목적 중 하나를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시리아 정권이 생명을 부지하고 일부 영토를 회복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목표를 완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위태로운 정치적 협상과정을 모두 끝내야만 비로소 자국 군대를 완전히 철수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스타나(초기 회담이 열린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라고 불리는 새로운 평화회담이 추진됐다. 이로써 UN이 주도하는 제네바 평화회담과는 별개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 휴전을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란과 터키의 대표단(기존의 회담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역내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들)이 직접 대화에 참여하자 시리아 내전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2017년 말 IS 주요 거점이 몰락함에 따라 러시아도 전략적 변화를 도모했다. 12월 푸틴 대통령은 일부 러시아군의 철군을 명령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환상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IS가 와해되기는 했어도 완전히 궤멸한 것은 아니었고, 내전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알 아사드 정권의 존속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군사적 지원을 지속해야 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푸틴은 시리아에 자국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기를 원했다. 더욱이 현 단계에서는 전투 현장에 그다지 많은 군사를 투입할 필요도 없었기에 한층 더 지속적인 군대 주둔을 희망했다. 러시아는 일부 군대를 송환했지만 어디까지나 병사들을 교체해 현재 실정에 맞게 군을 재배치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더욱이 과거 러시아 철군 발표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러시아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또다시 파병 규모를 증강할 수 있었다.
 
트럼프와 만족스러운 거래를 성사시키다

러시아의 철군계획은 군사적 성격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2018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몇 가지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지속하거나 혹은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권이 자국 외교정책의 결실을 과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 바로 중동이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시리아 북동부에 미군을 장기 주둔할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한시적으로만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재 러시아 외교관들에게 최우선 대화 파트너는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시리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의 외교관이다. 2017년 10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머무는 동안, 러시아는 그가 제네바 회담에서 알 아사드에 적대적인 반정부 통합 그룹을 결성하려는 시도를 독려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아프린과 이들리브, 그 외 미래 긴장완화지대(안전지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자 이란, 터키 정부와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정말 러시아가 협력국들과의 약속을 지킬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양국 정부를 안심시키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가령 2017년 11월 1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란군의 시리아 주둔이 정당함을 역설했는데, 이란의 입장에서 이는 러시아가 이스라엘만큼이나 이란과의 협력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로 간주됐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2018년 1월 초 터키군이 아프린 지역에서 쿠르드·아랍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군사작전을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암묵적인 합의 하에 터키에 자국 영공을 개방하며 군사작전을 허용했다. 사실상 터키는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 외곽지대에 위치한 최후의 반군 거점인 구타와 이들리브 지역으로 진군하는 것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아프린 지역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행동권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터키군의 군사작전이 성공으로 끝나자, 러시아는 터키를 쿠르드·아랍연합군을 지지하는 프랑스 등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나 미국에게서 더욱 떼어놓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2018년 4월 비록 미국·영국·프랑스가 시리아 군사시설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기는 했어도, 러시아는 유럽연합이나 미국 모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사실상 러시아의 전술가들은 유럽연합도, 미국도 시리아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실질적 의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푸틴과 트럼프가 2017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아태평양 정상회의에서 만났을 때 러시아는 미국에게서 원하던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즉 미국이 알 아사드를 시리아의 적법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시리아 영토의 완전성 유지라는 원칙을 준수하게 하는 한편, 제네바 평화 프로세스를 지속해서 지지하게 만든 것이다.
그 대신 푸틴 대통령은 역내 대(對)테러전에 앞장서며 미국 대통령과 보조를 같이하기로 했다.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완전한 승리를 이룰 때까지 IS 격퇴전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말하자면 미국이 시리아 내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때만, 러시아도 시리아의 미래를 놓고 베트남 정상회의에서 다뤄진 사안 이상의 논의를 펼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러시아와 미국은 시리아에서 직접적인 충돌만은 피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전선을 계속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2018년 2월 시리아 정부군 편에 서서 전투를 벌이던 러시아 용병들은 쿠르드군이 장악하고 있던 유전을 점거했다.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펼쳐진 데이르에즈조르 시 인근에 자리한 이 유전은 쿠르드군의 장악 아래 미국의 에너지 회사 콘티넨털오일사가 개발 중인 곳이었다. 

물론 러시아 정부는 그런 군사작전을 결코 승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지네와 관련이 깊은 러시아기업 유로폴리스, 그리고 시리아가 주동한 일이었다. 러시아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용병업체는 용병들이 이 지역 유전을 ‘탈환’하면 그 대가로 시리아 석유 사업권을 넘겨받기로 시리아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 유로폴리스가 이들 유전에서 추출한 원유의 4분의 1을 나눠 가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그 이후 공격에 대해서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흐메이밈 기지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은 쿠르드와 미국의 전투원들로부터 유전 지대 인근에 시리아군과 용병, 민병들이 집중 배치돼 있다는 정보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작전을 중단하기 위해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시리아 내에서 미국이 보이는 반응을 시험해보려 했다. 그리고 둘째, 쿠르드의 전투력을 확인해보기를 원했으며 셋째, 작전이 성공할 경우 해당 유전과 그로 인한 이익을 회수하며 시리아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쿠르드와 공조한 미 공군은 유전지대를 둘러싼 군사 작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러시아 군사들이 미국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성공적인 반격은 러시아가 버락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만은 단호하게 자국의 이익을 수호할 각오가 돼 있음을 분명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 비록 시리아에 S-300 지대공 미사일을 공급하기는 했지만, 2018년 2월 이후로 러시아가 가급적 미국을 최대한 도발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니리라.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4월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며 ‘레드라인’을 넘은 데 대해 미국·영국·프랑스가 공습으로 응수한 것은 러시아가 시리아 정세를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글·니콜라이 코자노프 Nikolaï Kozhanov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