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자기 땅의 이방인들

2018-07-31     앨리 혹실드 |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U.C.버클리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 좌파를 지지해온 앨리 혹실드는 정치적 ‘이상(異常)’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일례로 미국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 속하며, 기름유출 사고까지 있었던 루이지애나 주에서 대다수 주민들이 사회보장금 지급과 환경보호에 반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 같은 모순에 대한 해석이 도널드 트럼프가 루이지애나 주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를 거두기 직전에 발표됐다.


깊고 심오하며, 우리의 감정이 상징적인 언어로 반영된 표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판단을 유보하고, 사실을 교묘하게 비껴간다. 그리고 우리를 자극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규정한다. 또한 정치의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에게, 한 걸음 물러서서 상대편 진영이 어떤 주관적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연구해보기를 권한다. 

나는 내가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희망, 공포, 자부심, 수치심, 원한, 불안을 보여주고자 은유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재구성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그들의 경험에 일치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는 연극 작품과 비슷하게 몇 개의 막으로 구성된다.
당신은 마치 성지순례 행렬처럼 언덕의 꼭대기까지 길게 이어진 줄에서 참을성 있게 당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줄의 중간쯤에 서 있는데, 주변에는 당신과 같은 백인에 기독교인들로 가득하다. 당신보다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있다. 대부분 남성이고, 교육 수준은 대졸자부터 전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까지 다양하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모든 이들의 목표인 아메리칸 드림에 도달할 수 있다. 줄의 저 아래에는 유색인종에 가난하고, 대부분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겁이 난다. 당신의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당신은 당연히 그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 역시 오랜 시간 기다렸고 열심히 일했으며, 줄은 이제 막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조금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다. 당신은 불안을 인내로 억누르고 있지만, 점점 초조해진다. 그리고 당신 앞에 서 있는 이들이 누군지, 특히 이미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한 이들이 누군지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결국 성공에 대한 꿈이다. 당신의 부모보다 더 좋은 환경을 누리고 싶다는 희망. 당신의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보다 잘살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찌 보면 단순히 돈, 물질만을 향한 것이 아닌, 원대한 꿈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기 위해 당신은 고된 노동, 해고 위험, 독극물 노출을 견뎌냈다. 당신은 힘들고 어려운 시험을 당당히 통과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당신이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일종의 명예훈장과도 같다. 

날은 계속 더워지는데, 줄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후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임금은 몇 년간 제자리걸음이고, 앞으로 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임금은 사실상 점점 줄었고,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당신의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신세다. 대다수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시도를 아예 중단했는데, 자신들에게는 그런 자리가 결코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평소 불만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 그나마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과 교회를 무척 돕고 싶다. 그들이 당신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줄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토록 큰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줄 한가운데서 영원히 움직일 수 없을 듯하다.

당신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기독교적 윤리가 떠오른다. 당신은 성실함, 일부일처제, 이성 간의 결혼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그것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별거, 심지어 이혼도 경험했다. 좌파 지지자들은 당신의 생각이 고루하고, 남녀 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가치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들은 관용을 이야기하지만, 당신은 공립학교에서 아침 기도와 국기에 대한 경례로 하루를 시작하던 어린 시절이 참 좋았다고 회상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시간이 선택과목으로 밀려나기 전의 이야기다. 

‘새치기꾼들’이 내 권리를 훔쳐가고 있다

그런데 저기를 보라! 사기꾼들이 당신 앞으로 새치기를 하고 있다. 당신은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앞서 나갈 동안 당신은 점점 뒤로 밀리는 듯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들은 도대체 누군가? 그들 중 일부는 흑인이다. 연방 정부가 도입한 소외계층 우대 프로그램에 따라, 그들은 대학교 입학 시에도, 고용 시장에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때도, 무료 식권을 받을 때도 더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 여성, 이민자, 난민, 공무원들, 끝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 앞으로 밀려든다. 당신이 낸 세금은 평등주의 실현이라는 미명 하에 당신의 통제도 허락도 없이 이곳저곳으로 빠져나간다. 과거에 당신이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도 그와 같은 혜택이 존재했으면 좋으련만, 당신이 어렸을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젊은이들만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부당하다.

오바마는 또 어떤가?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백악관에까지 입성한 걸까? 가난한 이혼녀의 혼혈아가 세계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이 되다니, 당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혜택받은 계층이지 않느냐고 모든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상황에서, 오바마 같은 사람이 거둔 성공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버락 오바마가 컬럼비아 대학처럼 수업료가 비싼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혜택 덕분이었을까? 아버지가 상수도 관리 기사에 불과했던 미셸 오바마는 무슨 돈으로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학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연방 정부가 이 모든 금액을 지불했던 것임이 틀림없다. 미셸은 끊임없이 화내는 대신 그녀가 누린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화를 낼 권리가 없다.

여성들? 그녀들도 아무 죄책감 없이 당신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그룹이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일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아버지 세대는 운이 좋게도 사무실의 일자리를 놓고 여성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여성들과 소외 계층들 가운데서 필요 인원의 대부분을 채용하는 공무원은? 당신이 알기로, 공무원은 일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규제담당부서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는 한 여성을 예로 들어 보자. 자유로운 업무시간을 누리면서 정년까지 보장받으며, 은퇴 이후에는 넉넉한 연금까지 챙길 예정이다. 지금 아마도 그녀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자리에 앉아서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 혜택들을 어째서 그녀는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이민자들은 더하다. 비자나 영주권을 손에 든 필리핀인, 멕시코인,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들이 당신 앞에 새치기를 한다. 아주 최근에, 당신은 멕시코 출신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사솔(Sasol) 기업의 필리핀 배관공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직접 봤고, 이 때문에 존경스러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낮은 임금을 내세워 미국 노동자들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난민들은? 4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인들이 전쟁과 혼란을 피해 조국을 떠났고, 그중 일부는 그리스 해안 쪽으로 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만 명이 넘는 난민들을 미국 땅에 받아들이기로 했다(2/3는 여성과 아동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민 10명 중 9명은 젊은 남자 즉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다. 그들은 줄을 서는 예의 따위는 무시하고 당신이 낸 세금으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 분명하다. 당신 역시 홍수, 기름유출 사고, 화학적 공해를 참아내지 않았는가? 그때는 당신도 난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는 기름으로 뒤덮인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는 갈색 펠리컨마저도 당신을 조롱하는 듯하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새는 루이지애나 주의 공식 문장에도 등장하는 주조(State bird)로, 해안을 따라 위치한 맹그로브 숲에서 서식한다. 화학적 오염 때문에 오랜 기간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서서히 개체 수를 회복해 2009년에는 멸종위기동물 목록에서도 빠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석유시추시설이 폭발해 최악의 원유유출 사태가 벌어졌다. 펠리컨을 살리려면 오염되지 않은 물고기, 석유가 섞이지 않은 물, 깨끗한 맹그로브 숲, 침식되지 않은 연안지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갈색 펠리컨도 당신의 앞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새일 뿐이지 않은가!  

흑인, 여성, 이민자, 난민, 펠리컨까지, 모두 당신 앞을 지나쳐 간다. 그러나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든 것은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새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제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게임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당신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당신이 왜 그들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연민과 동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을 밀어내는 사기꾼들에게까지 아량을 베풀고 싶지는 않다. 공감을 강요하는 세태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각종 차별들. 억압받는 흑인들, 남성들에게 억눌린 여성들, 착취당하는 이민자들, 핍박받는 동성애자들, 절망적인 상황의 난민들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당신은 인간적인 공감의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특히 그 인간적인 공감이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이들에게 득이 된다면 더욱더 그렇다. 당신은 단 한 번의 투덜거림 없이, 당신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 그 이상을 이미 견뎌냈다.

이제 당신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 앞에 새치기하고 섰다는 것은, 배후에 힘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밀어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과연 누굴까? 보통은 줄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서, 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오가며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아메리칸 드림에의 접근이 공정한 조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바로 버락 후세인 오바마였다. 그렇다. 그런데 그는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기는커녕 그들에게 호의적인 인사를 건넸다. 당신에게는 절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던 공감을 그 사기꾼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사기꾼들과 한통속이었다. 줄의 이동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가 사기꾼들과 협정을 맺은 것이다. 

당신은 배신감을 느낀다. 자기방어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 대통령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엄청난 자긍심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향하는 줄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고, 또한 백인, 남자, 기독교인에 대한 무례하고 불손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당신이 그 무엇보다도 지키고 싶은 명예이자 가치이다. 오늘날에는 아메리칸 인디언, 여성, 게이이기만 하면 대중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낸다. 이런 다양한 사회 운동에서 소외된 그룹은 단 하나, 당신이 속한 그룹뿐이다.

당신이 설사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누군가 미국에 불만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불만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대통령 때문에 미국에 대한 자긍심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은 자기 땅에서 이방인이라 느끼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과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 

내가 만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흑인들의 이미지 중에,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모습은 없었다. 백인, 기독교인, 노인, 또는 루이지애나 주의 반동주의자들이 털어놓은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는 실질적인 트라우마에 기반해 있었다. 한쪽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국가적 이상, 즉 발전과 성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발전과 성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 있었다. 

미국인 10명 중 9명에 해당하는 ‘서민’ 계층에 있어서, 언덕의 보이지 않는 다른 한쪽에 위치한 꿈을 실현해 줄 기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동화, 기업들의 해외 이전, 다국적 기업이 가진 엄청난 권력으로 고장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서민 계층 안에서 백인과 비백인 사이의 경쟁은, 고용, 회사 내 직책, 생활 보조금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꿈을 실현해 줄 기계는 이미 1950년에 고장 났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글·앨리 혹실드 Arlie Hochschild
미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사회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Strangers in Their Own Land: Anger and Mourning on the American Right』(The New Press, 2016년)이 있다. 이 기사는 이 책을 발췌해 작성됐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