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정치 꿈꾸는 캄보디아 총리

선거 직전 해산된 야당과 환상에서 깨어난 청년층

2018-07-31     크리스틴 쇼모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경제성장과 중국의 투자 열기로 한껏 고무된 캄보디아가 정치라는 장애물에 부딪혔다. 야당은 해산됐다. 총선 전날, 33년 전(1985년~)부터 국가의 수장을 맡아온 훈 센 총리는 왕조를 이루려는 야망을 애써 감추려 했다. 


해 질 무렵이면 프놈펜은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은 왕궁 근처 왓 보툼 공원에 모여 경보를 하거나, 줌바댄스 또는 체조 수업을 하곤 한다. 보파(1)는 몇 주 전부터 공원 모퉁이에서 칵테일을 판다. 매일 오후 5~6시면 간이 바를 설치하고, 자정쯤 문을 닫는다. 바 운영은 성공적이다. 손님들의 평균 연령은 25세를 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가 여기 온 이후 바가 두 개나 더 생겼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톤레사프 호(‘큰 호수’) 건너편 원단공장에서 비서로 일하는 보파는 월급 외에 바 운영으로 부수입을 얻는다.

도시의 삶은 전율할 정도로 요동친다. 크메르 루주세력(1975년부터 19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한 급진적인 공산주의 세력)이 도시 주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던 과거의 상처는 희미해졌다. 만남과 휴식을 위한 공간들이, 다양한 계급의 지갑 사정에 맞춰 계속 문을 열고 있다. 보파는 이런 소비현상이 청년들의 깊은 불안을 덮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파는 아직 20대로, 전쟁도, 크메르 루주도 겪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 10년 전부터 연평균 경제성장률 7%로 변화하는 프놈펜을 지켜봤음에도, 자국의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보파는 7월 29일로 예정된 선거에 대해 불안을 표했다. “투표를 해야 할지,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는 변화했는데 정권은 굳어있다”

제1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은 이번 투표에서 제외됐다. 지난 11월 대법원의 결정으로 당이 해산된 것이다. 법관들은 캄보디아 구국당이 “현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혁명”을 조장했다고 판단했다. 2017년 9월 3일 한밤중에 체포된 켐 소크하 구국당 대표는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당원 118명의 모든 정치활동은 5년간 금지됐으며, 의원 55명 중 절반은 해외로 도피했다. 삼 랭시 전 대표는 조작된 혐의로 기소당할 것을 염려해 2015년부터 망명 중이다. 1979년 크메르 루주 체제 종식 뒤, 정권을 장악 중인 현 총리의 캄보디아 인민당(CPP또는 캄보디아어로 KPK)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 캄보디아 구국당이었다.(2) 

야당이 44.5%의 득표율을 얻은 2013년 총선거와 2017년 6월 지방 선거(43.8%)에 참여했던 유권자(660만) 중 300만 표가 이번 해산으로 사라졌다.(3) 이런 정치상황에서 삼 랭시의 캄보디아 구국당과 켐 소크하가 이끄는 캄보디아 인권당의 통합을 비롯해 새로운 유권자 세대가 출범했다. 한 평론가는 “캄보디아 구국당의 득표수 증가세를 볼 때, 캄보디아 인민당은 7월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구국당의 해산은 정부에 있어 “안정과 평화”의 동의어다.(4)

차기 총리직에 재출마한 훈 센 총리는 자신과 국민들을 갈라놓은 원인인 세대 간 갈등을 겪고 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평화와 함께 자랐다. 대부분 30세 이하인 이들은 어릴 때부터 캄보디아 내 비정부기구(NGO)나 사립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자유롭게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바깥세상의 정보를 얻어왔다. 그러나 지난 5월 2일, 정부가 국내외 인터넷 연결을 통신부 내부로 단일화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들의 자유는 위협받게 됐다. 30세 이하의 청년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젖어있는 세대다. “사회는 변화했는데 정권은 굳어있다”고 이 청년 평론가는 평가했다.

캄보디아의 모든 전쟁에서 살아남은 훈 센 총리는 33년 전부터 지켜온 자리를 “적어도 10년은 더” 지키기를 원한다.(5) 총리는 국민들이 자신의 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면, 내전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위협한다. 1979년 1월 7일 ‘해방’의 날,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군에게 패배한 기억들이 광고판과 포스터에 넘쳐난다. 캄보디아는 결국 옛 크메르 루주의 간부, 즉 숙청을 피하고자 1977년 폴 포트(크메르 루주의 수장-역주)의 조직을 떠난 훈 센 총리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총리는 자신이 1998년 크메르 루주의 마지막 활동가들을 제거해,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 구원자라고 인정받기를 원한다(1993년 5월 23일에서 28일 UN이 개최한 선거 전날, 크메르 루주 활동가들은 1991년 10월 23일 파리에서 체결한 평화협정을 폐기했다). 이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며 총리와 그가 속한 정당에 힘을 실어줬다. 네트라 엥과 함께 캄보디아 청년 및 정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캐럴라인 휴스는(6) 이렇게 설명한다. 

“캄보디아 인민당과 훈 센 총리는 1990년대 이전에 출생한 세대에게서 정당성을 누려왔다. 이들에게는 전쟁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후에 출생한 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적어도 정부가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국민의 고충을 고려하지 않는다’. 훈 센 총리와 정부를 향한 비판이다. 물론 빈곤은 현저히 감소했지만(2007년에는 국민 중 47.8%가 빈곤층이었던 반면 2014년에는 13.5%(7)에 그쳤다) 불균형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농촌 주민과 미래가 막막한 청년들에게 강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8) 초등교육에 있어서는 진전이 이뤄졌지만, 30세 이하 국민들 중 46.8%만이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다.(9)

경작지 부족 때문에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고향을 떠나기도 한다. 캄보디아 도시계획부에 의하면, 농촌 가구 중 가족 구성원 한 명이 1년에 3개월 이상 집을 떠나 있는 가구가 22%에 달했는데, 이는 30세 이하 인구 250만 명에 해당한다.(10) 이들은 도시나 해외로 가는데, 최소 1백만 명이 국경 밖에 산다. 이들의 주요 행선지는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이 청년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버려졌다고 느낀다. 고학력자들도 부패와 족벌주의로 타락한 공공분야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캐럴라인 휴스가 설명한다.

보파의 표현을 빌리면, “조산사가 탯줄을 끊을 때부터 겪는 부패”는 대화에 끊임없이 등장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선정하는 부패 지표에서 캄보디아는 180개 국가 중 161위다. 많은 NGO들은 산림벌채와 토지독점, 그리고 경제·군사·가족의 이해관계가 뒤섞인 훈 센 총리 주변의 파벌을 규탄한다. 2016년 7월, NGO 글로벌 위트니스에서 발표한 보고서(11)는 총리의 자녀와 친인척 등 측근이 5억 달러(4억 3,000만 유로)에서 1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캄보디아 국민 1명의 월평균 수입(1,070달러)을 최소 46만 7,000년간 모은 금액에 해당한다!

‘재교육’을 위해 소환되다

이런 혼탁한 시기에, 우리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에 대해 발언할 때 비밀 보장을 부탁했다. 한 여성은 캄보디아 인민당 광고판에 신발을 던지고 있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가 수감된 적도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의 기자 두 명은 해외로 정보를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11월부터 간첩활동에 대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출자했고, 야당의 방송으로 간주되는 자유아시아방송과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내보내던 라디오 방송국 30개의 방송 송출도 금지됐다. <캄보디아 데일리>의 종이신문 발간은 중단됐고, <프놈펜 포스트>는 과거에 캄보디아 정부와 협력했던 홍보회사를 소유한 말레이시아 투자자에게 인수됐다. 이 두 영자신문은 그동안 캄보디아 왕국의 사회·정치 변화를 타협 없이 보도해왔다. 차크 솝헤압 캄보디아 인권사무소장은 지난 5월 켐 소크하 대표재판의 증인으로 프놈펜 법정에 출석명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력자들의 모임에서조차 소크하의 체포 사실이나 지난 11월 캄보디아 구국당의 해산에 대한 소식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2013년 6~12월, 캄보디아 구국당이 부정선거를 규명하고 재선거를 요구한 이후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정권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수만 명의 시위대와 섬유산업 파업자들은 어떻게 됐을까?(12) 캄보디아 구국당의 고문인 한 젊은 대학교수는 당 활동가들이 떠난 후 대중여론의 무력함을 지적했다. “대표 없이 어떻게 조직이 움직일 수 있을까요? 핵심지도자들은 체포가 두려워 해외로 떠났거나 묻혀 지냅니다.” 

2013년 집회에 참여한 시위대 및 구국당 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장 근로자나 지방에서 온 농부들이다. 지원체제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이들이다. 대법원에서 내린 캄보디아 구국당의 활동금지 결정은, 가장 격렬했던 활동가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례로, 콤퐁 스페우 주에서 일하는 이 젊은 초등학교 교사는 ‘재교육’을 받기 위해 주 교육청장에 소환되기도 했다. “그는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사회문제 관련 게시물들을 가지고 나를 비난했다. 그는 내게 ‘다른 쪽’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11월 이후, 공무원과 승려들은 특별감시를 받는다. 내무부에서는, 캄보디아 구국당 해산을 이유로 선거 보이콧을 요구하는 이들은 사법적 기소를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전보장’이라는 이유로 투표장에는 8만 명의 군 병력이 동원됐다. 

어떤 민주주의 영웅의 피살

“우리 세대는 자유의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이 공간은 정치의 금기 앞에 멈춰 선다.” 단편영화제 감독 겸 기획자, 숨 시텐의 체념 어린 말이다. 캄보디아 청년들은 젊음의 에너지와 재능을 다른 곳에 쏟는다. 10년 전부터 큰 성장을 보이는 디지털 스타트업이나 예술부문에 쏟는 것이다.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초브 테안리가 시리즈 <살아남기(Surviving)>에서 그린 인물들도 불안감을 드러낸다. 모두 발끝으로 서서 몸을 앞으로 내민 불안정한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 빠지기 직전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2015년에 이미 이 화가는 우리에게 같은 내용을 설명했었다.

이런 불안은 2016년 7월 켐 레이가 살해되던 때도 있었다. 명망 높던 정치평론가 켐 레이는 45세의 나이로 길 한복판에서 피살당했다. 그가 훈 센 일가의 재산을 폭로한 글로벌 위트니스의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쓴 다음 날이었다.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이 민주주의의 영웅을 추모했다. “그는 정파적 대결 정치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켐 레이의 친구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당(GDP)의 지도자 양 사잉 코마가 말했다. 켐 레이도 당 설립자 중 한 명이었다. 

이런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반부패 부서 설치 등 개혁에 착수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부정과 연관된 뇌물수수 관례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고, 공무원 임금은 지난 1월 6.8% 인상된 이후 4월에는 10.7% 인상돼 월 210.6유로까지 올랐다. 70만 섬유산업 노동자들의 임금도 129유로에서 최소 145유로로 고정됐으며, 종사자들은 출산 수당도 받게 됐다. 총리는 전통적으로 야당의 편이었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 지폐가 담긴 봉투를 나눠주는 만남과 연설의 자리도 늘려가고 있다. 그가 흔쾌히 등장한 페이스북에서도 1천만 명의 팔로워를 모았다(이 중 캄보디아 국민 1,600만 명). 

2016년 3월 6일 총리는 “페이스북은 내가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그리고 직접적인 요구들을 들을 수 있게 해줬다. 덕분에 나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적었다. 사실 <프놈펜 포스트>에 의하면 총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계정들 중 1/5만이 캄보디아 계정이었다. 다른 계정들은 필리핀, 미얀마 그리고 브라질 등에 등록된 것이다.(13)

훈 센 총리 자녀들의 부상

청년층에 대한 개방적 이미지를 심기 위해, 훈 센 총리와 캄보디아 인민당은 자녀들을 승진시키고 있다. 총리의 장남 훈 마네트 장군은 군 참모총장으로 승진했다. 막내아들인 36세의 훈 마니는 국회의원으로 캄보디아 청년연맹 연합(UYFC)의 회장을 맡았다. “청년들의 주의를 여가활동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정치적 질문을 교묘히 피하고 답변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칼럼니스트가 비판했다. 캄보디아 청년연맹 연합은 매해 크메르 새해(4월 중순)를 맞아 앙코르 상크란타 축제를 개최한다. 수천 명의 회원들이 전통 놀이와 춤에 참여한다. 크메르 문화와 자긍심을 고무시키려는 것이다. 

농촌에서 쓰이는 전형적인 체크무늬 스카프인 크라마 착용은 필수다. 2013년부터 축제 기획을 맡아왔던 티트 찬다라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들이 앙코르에서 전통 복장을 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의 안정을 도모한다. “우리는 약하고 분열된 캄보디아는 원치 않는다. 막대기 하나는 부러질 수 있지만, 여러 개는 부러지지 않는다.” 바탐방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이 청년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는 정기적으로 훈 마니 회장과 친분을 쌓는다. “나는 그가 훈 센 총리의 아들임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우리와 정말 친하게 지내고, 나는 그를 형처럼 생각한다.” 정치에 대해서는? 캄보디아 구국당의 해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해, 스웨덴 룬드대학교의 아스트리드 노렌-닐손 동남아시아학 교수는 비판했다. “크메르의 자긍심을 고무시키는 이런 방식은 청년층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곧 국가를 공격하는 것과 동일시되는 체제를 만들고 있다.” 닐손 교수에 의하면, 이는 2012년 노로돔 시아누크왕의 사망 이후, 왕가 정통성을 얻기 위해 총리가 펼치는 책략이다.(14) 평민에서 왕이 된 스데잇 칸(Sdech Kan)을 총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연설과 영화들, 구국당 해산 2주 뒤에 총리가 개최한, ‘평화’를 위한 호화로운 행사…. 닐손 교수는 많은 사례를 들며, 이에 대해 “정권의 전제주의적 일탈에 신성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 계승이라는 개념을 주입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태국을 따라 지난 2월 채택한 ‘국가모독죄 처벌법’은 강력한 탄압용 무기다. 캄보디아 구국당의 옛 당원 두 명이 이미 체포됐는데, 총리의 전제주의에 대한 노로돔 시아모니 왕(캄보디아 국왕)의 무력함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왕정을 전제주의 정권으로 연결시키고, 왕정의 독립성을 약하게 만든다”고 아스트리드 노렌-닐손 교수는 결론지었다. 그녀는 이 법을 통해, 훈 센 총리의 자녀들에게로 권력이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총리는 자신이 차기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왕조의 야망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없다.  


글·크리스틴 쇼모 Christine Chaumeau 
기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업

(1) 대부분의 경우 익명을 요구했다.
(2) Francis Crémieux, ‘La difficile reconstruction au Cambodge(캄보디아의 어려운 재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80년 7월호.
(3) 2013년 7월 28일 총선에서 캄보디아 인민당은 3,235,969표를 얻었고, 캄보디아 구국당은 2,946,176표를 얻었다. 2017년 6월 4일 지방 선거에서는 인민당은 3,540,056표, 구국당에 3,056,824표를 기록했다. 
(4) ‘Strengthening the rule of law and liberal democratic process’, 장관회의, 프놈펜, 2018.2.8.
(5) Kong Meta, Andrew Machemson, ‘Hun Sen repeats vow to serve 10 more years, noting ‘it could be more’’, <The Phnom Penh Post>, 2018.3.8.
(6) Netra Eng and Caroline Hughes, 'Coming of age in peace, prosperity, and connectivity: Cambodia’s young electorate and its impact on the ruling party’s political strategies', Critical Asian Studies, Alexandria (미국), 2017.6.20.
(7) ‘Poverty and shared prosperity 2016’, World Bank, 제네바, 2017. 
(8) ‘Youth wellbeing policy review of Cambodi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Paris, 2017.
(9) ‘Labour market transitions of young women and men in Cambodia 2014’, 계획부 통계연구소 보고서, 국제노동기구와의 협력, 프놈펜, 2015년 6월. 
(10) ‘Migration in Cambodia: Report of the Cambodian Rural Urban Migration Project (CRUMP)’, 계획부, 프놈펜, 2012년 8월.
(11) ‘Hostile takeover The corporate empire  of Cambodia’s ruling family‘, Global Witness, 런던, 2016.7.7.
(12) Philippe Revelli, ‘La révolte populaire menace le pouvoir cambodgien(캄보디아 정권을 위협하는 국민의 분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4월호·한국어판, 2014년 8월호.
(13) Cf. Daniel Nass 그리고 Shaun Turton, ‘Only 20 per cent of PM’s recent Facebook 'likes' from Cambodia’, <The Phnom Penh Post>, 2016.3.9.
(14) Astrid Norén-Nilsson, ‘A Regal Crackdown’, 2018.4.13. 코넬 대학교에서 소개됨. 게재되지 않고 저자가 직접 내용 전달.



박스기사

중국의 시간, 시아누크빌

시아누크빌의 건물과 토지 위에, 중국어로 ‘매매’, 또는 ‘임대’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있다. 타이만 연안에 위치한 캄보디아 항구도시는 몇 달 만에 중국 투자자들의 엘도라도가 됐다. 인디펜던스 해변에 건설 중인 블루베이의 38층짜리 빌딩 두 채는 주변 경관을 압도한다. 분양 사무실에 비치된 안내책자는 만다린어와 영어로 돼 있다. “첫 번째 타워의 아파트는 모두 판매가 됐고 두 번째 타워도 65% 판매 완료됐다. 고객들은 중국인, 캄보디아인, 싱가포르인이다”라고 빌딩 모형 앞에선 안내원이 설명한다. 해변에는 수영장과 수상 방갈로가 설치될 것이고, 중이층에는 카지노와 쇼핑센터가 예정됐다. ㎡당 가격이 2,500에서 3,500달러(약 2,150~3,000유로)에 이르는 1,450호의 아파트는 2019년 입주가 가능하다. 지금껏 이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호화아파트다. 
 
“중국인들은 이런 건물을 갈망한다. 고객들은 바다가 보이는 땅을 찾고 캄보디아인 소유주들은 더 높은 임대료를 받으려고 현 임차인들을 내쫓을 준비가 돼있다”고 부동산 중개업자 폴은 말한다. 2016년 10월 시진핑 주석의 방문 이후, 캄보디아 전역에서 중국인 방문객은 2017년 말 120만 명에 이르며(+46%)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1) 일주일에 한 번, 시아누크빌과 마카오 그리고 중국의 다른 7개 지역을 잇는 전세비행기도 생겼다. 시아누크빌은 해변뿐 아니라 24곳의 카지노로도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중국에서는 도박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30곳에 추가로 카지노 허가를 내줄 계획이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이런 투자자들의 출현을 반기는 이도,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소유주들은 기뻐한다. 자신들이 정한 값대로 팔기도, 임대하기도 한다”고 뚝뚝(동남아시아의 대중교통인 삼륜 택시-역주)을 운전하는 켕이 빈정거렸다. 한편, 대다수의 캄보디아인들은 이런 경쟁에 맞설 수 없다. 저예산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오츠테알 해변에서도 이런 경쟁은 마찬가지다. 철판 지붕 밑이나 모래밭에 앉아서 바다를 보며 먹고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자리에는 5성급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설 예정이다. 훈 센 총리의 측근이 경영하고 있는 강력한 캄보디아 재벌기업과 중국협력사의 합동투자로 인한 결과다.
 
도시에서는 이런 투자 열기에 대한 불평이 일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가 있다. 관광객들은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이 묵을 호텔-카지노로 이동한다. 그들은 절대로 우리 서비스를 구매하러 오지 않는다”고 현지 여행업자가 밝혔다. 건물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 인부 페아프는 “발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비싸진 물가뿐이다”라며 불만을 표했다.
 
대부분 카지노 직원이나 공사현장 인부로 일하는 1만 명이 넘는 중국 노동자들도 이곳에 정착했을 것이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난 1월, <프놈펜 포스트>가 밝힌(2) 내무부 수신 보고서에 따르면, 시아누크빌의 주지사도 정부에 다음과 같은 몇몇 파급효과에 대해 직접 경고했다. 마피아 조직원들의 범죄활동 증가, 주택의 증가가 물가에 미치는 악영향, 중국인들에 의해 그리고 중국인들을 위해 통제되고 만들어진 활동에 따른 국내 경제이익 부재 등이 그렇다.  
 
2016년 중국으로부터 캄보디아가 받은 원조액은 전체 해외 원조액 7억 3,200만 달러의 1/3에 해당하는 액수로, 중국은 북쪽의 위대한 이웃인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연합을 제치며 캄보디아의 주요 경제협력국이 됐다. 지난해 캄보디아와 중국의 양국 교역 금액은 50억 달러까지 올라갔고, 이 금액은 2020년까지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3)
 
새로운 ‘실크로드’의 일환으로 중국인들이 출자한 인프라도 넘친다. 공공토목사업부의 계산에 의하면 2,700km 이상의 도로가 정비됐다.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잇는 고속도로, 캄포트 심해 항구 그리고 수도 남부의 거대공항 사업이 공식적으로 계획돼 있다. 여기에 메콩강을 따라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댐도 여럿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중국의 국내 안전부에 ‘테러’와 사이버 범죄 퇴치를 위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몇 년 새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내에서 중국의 가장 훌륭한 지지자가 됐다.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야욕, 그리고 중국이 베트남 및 필리핀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산호초에 대한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계획에 항의하기 위한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의 성명발표 계획을 2012년과 2016년에 저지하기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확대됐다. 여기에는 캄보디아의 인권 문제에 대한 서구의 질책이 한몫했다. 2018년 3월 18일,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캄보디아의 주권과 이익 수호” 그리고 7월의 “선거시행”을 위한 자국의 캄보디아 지지를 재확인했다.(4) 미국은, 야당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캄보디아를 위협했다. 5월 초 유럽위원회에서는, 일부 물품들에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무기를 제외한 모든 것(EBA)’ 협정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섬유산업에 있어 엄청난 쟁점이었으나, 아직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태다.
 
캄보디아 총리는 서구 국가들의 충고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서방국가들은 총리에게, 크메르 루주가 서구의 가호로 UN에서 자리를 지켰던 1980년대의 모순적 상황을 연상시킨다. 또한 지난 2월 총리는 “중국 대표들은 나를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서구 국가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5) 
 
한편 중국이 크메르 루주 정권(1975~1979)이나 1979년 초반 베트남과 벌인 전쟁을 지지했던 사실은, 총리에게 돌이키고 싶지 않은 역사의 한 부분이다. 오늘날 두 협력자는 이 윈-윈 관계를 기뻐하고 있다. 또한 여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의 소크 에이산 대변인이 말했듯, 중국은 단일정당으로도 매우 잘 기능하고 있다. 그러니, 캄보디아라고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6) 

글·크리스틴 쇼모 
번역·김자연 
 
(1) 2018.1.24., www.xinhuanet.com
(2) Mech Dara & Alessandro Marazzi Sassoon, 'Preah Sihanouk governor bemoans Chinese influx', <The Phnom Penh Post>, 2018.1.29.
(3) ‘China, Cambodia vow to promote comprehensive 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in new era’, 2018.1.11., www.xinhuanet.com
(4) ‘Wang Yi meets with prime minister Hun Sen of Cambodia’,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2018.3.31.
(5) Hannah Beech, ‘Embracing China, Facebook and himself,
Cambodia’'s ruler digs in’, <The New York Times>, 2018.3.17.
(6) Ben Sokhean & Ananth Baliga, ‘CPP spokesman touts oneparty rule, points to China’'s example’, <The Phnom Penh Post>, 2018.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