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18-07-31     에블린 피에예 | 문학평론가

지역과 지역색을 옹호하는 것은 오랫동안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돼왔다. 전통 예찬자 즉, 땅의 한 부분이 가진 확고한 특성을 예찬하는 이들은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행하는 지역 평준화에 적대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사에 많은 애착을 가진 이들은 개인의 독특한 특성들이 사라진 추상적인 시민의 개념도 적대시했다. 지역 옹호자들은 지방이 지닌 고유성을 근대성(modernité)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혁명과 뒤이어 등장한 ‘자코뱅’ 공화국이 상징하던 것이 바로 이 근대성이었는데, 이것은 각 지역의 결합체들이 모여 구성된 국가 정체성에서 떨어져 나온 개념이다. 어떤 지역에 속한다는 것의 의미는 기억과 연결되고 전통의 가치를 지녔으며, 또한 감동적인 인간 진리와도 같다. 1940년 6월 25일, 필리프 페탱 원수도 자신의 연설에서 같은 맥락으로 “대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군주제의 부활을 표방하는 우익사상단체-역주)의 창설자이자, 1789년 혁명 가치에 반대하는 국민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인 샤를 모라스(1868~1952)(1) 그리고 서정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열광적인 소설가 모리스 바레스(1862~1923)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 관점을 받아들이고 이론화하여 외국인을 혐오하고 유대인을 배척하는 민족주의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외국이나 세계주의의 유해성을 규탄하기에 앞서, 바레스에게 이러한 향토 찬양의 일정 부분은 “데카당스(세기말적 문예사조의 명칭, 전통의 부정과 탐미적 경향을 특징으로 한 퇴폐주의 문학-역주), 산업사회 그리고 부르주아 가치에 대한 거부”이자 “삶에 중요성을 주는 감정들에 대한” 추구였다.(2) 오늘날에는 정확히 새로운 ‘데카당스’에 대한 거부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된 자유주의의 치명적인 영향력에 반대한다고 간주되는 새로운 버전의 지방 회귀가 생겨난다. 새로운 데카당스는 금융 자본주의의 결과로 야기되는데, 금융 자본주의는 삶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경우 니힐리즘(모든 것이 무/無라는 주장으로, 절대적 진리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일종의 허무주의-역주)이라 단죄하며, 각자를 무력한 고독에 놓이게 한다. 과연, 이 반체제 신지방분권주의에는 오래된 모순들이 모두 사라졌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신지방분권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수는 많고, 이들은 모든 분야에서 존재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옛 고문이자 1980년대에 극우 주간지 <미뉘트>의 기자로 활동했던 파트리크 뷔송도 이러한 회귀를 기쁘게 환영했다. 그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대격동”, “전통적 마을과 세계적 마을의 대결” 그리고 “공동체 연대의 힘”에서 태동했으며, “계약에 의한 사회성”과는 반대로 자연적이라고 설명했다.(3) “영혼 없는 기술 그리고 규제 없는 시장이라는 이중 제국”을 거부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자연보호주의자’ 기독교인들의 잡지 <리미트>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모두를 위한 데모(LMPT)’협회의 영향력 안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들, 지방 정착, 고향에 뿌리내리기 그리고 성장이 둔화하는 어딘가의 보존”과 보호에 호의적인 입장을 드러낸다.(4) 이 때문에 이들이 ZAD활동가들을(5)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쥘리앵 쿠파와 타르낙 그룹(6)이 연관된 ‘보이지 않는 위원회’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 그리고 세상’,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없다. 다시 어찌할 수 없이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이 작은 부분에는 ‘나와 나의 것들’만 있을 뿐이다.” 바로 “여기, 지금, 익숙해진 이 도시 안에서, 이 나이든 상록수 세쿼이아 나무 앞에” 공동체의 경험이 살아있는 것이다.(7) 실현가능한 혁명적 운동의 도구들을 재발명하고자 하는 경험담 모음집 ‘성좌’도(8) “박탈에 대항하는 계승, 뿌리 내리기 그리고 영토의 파괴에 반대하는 여행” 이야기들을 제안한다. 장클로드 미셰아부터 미셸 옹프레까지 다른 지방 옹호자들도 당연히 존재하고, 이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뿌리’ 되찾기의 중요성이고, 이 중요성은 무엇보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반동적 우파에게 내재된 질문이자, 이들의 정반대 쪽 끝에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놀랍게 받아들여지는 질문이다. 

이 정체성은, 뷔송이나 ‘성좌’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마르틴 하이데거의 다소 조심스러운 비호를 받는 공동체의 정체성일 것이다. 이 공동체는 “어떤 지역이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지역에 속하는” 곳이자, 과거가 메아리치는 곳, “애착, 구성, 관계의 집합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삶에 존재한다는 사실이”(9) 명백한 공동체이다. 하나의 민감한 공동체와 연관된 이 정체성은 추상적인 나라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 주장되고, 구체적인 정체성들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지역들이나 결합 부족들의 정체성 말이다. 그러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전통적으로 극우파들이 보편주의에 부여하는, 하지만 일부 급진 좌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관계에서의 분리라는 개념”에 대한 공격을 뜻한다.

“모든 애착에서 자유로운 주체,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주체, 하지만 결국에는 세상에서 절단된 주체라는 시각”을 만들어낸 “서양 세계의 인류학”은 강력히 규탄된다.(10) 바로 여기에서 반‘서구’ 본질주의를 배경으로 이성, 보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뒤섞인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집단의 정체성만이 존재하고, 환경과 가까운 곳에서만 진정함이 있으며, 감정 안에서만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다.(11) 즉, 소속된 모든 곳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소위 문명이라는 질병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12) 어쨌든, 이것이 바로 데카당스에 대한 해결 방법이다. 서로 닮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움직임 안에서 마침내 사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해결책인 것이다…. 진정으로, 대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걸까?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작가 겸 문학평론가. 저서 『반역자들의 예언』(2002), 『세계를 조종하는 리모컨』(2005) 등이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업

(1) ‘2018 국가 기념서(국가 기념 고등위원회에서 매해 국가적으로 기릴만한 기념일들을 선정해 책으로 발표함-역주)’에 등재된 열등감의 상징이자 유태인배척주의자인 샤를 모라스 관련 내용은, 연이은 항의로 인해 현재 삭제된 상태다. 반면, 프랑수아 미테랑이 그토록 애정 했던, 역시 유명한 유태인 배척주의자이자 지방 애호가였던 소설가 자크 샤르돈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남아있다. 
(2) Zeev Sternhell, ‘Maurice Barrès et le nationalisme français(모리스 바레스 그리고 프랑스 민족주의)’, Pluriel, Paris, 2016 (초판:1972).
(3) Patrick Buisson, ‘La Cause du peuple. L’histoire interdite de la présidence Sarkozy(국민의 입장. 사르코지 대통령 임기에 대한 금지된 이야기)‘, Perrin, Paris, 2016.
(4) Louis Gibory, ‘Aéroport de Notre-Dame-Des-Landes, un enjeu de société(노트르담데랑드 공항, 사회 쟁점)’, Limite, 2016.1.27, http://revuelimite.fr
(5) 노트르담데랑드의 ‘보호해야 할 구역(ZAD)’에 찬성하고 공항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활동가들
(6) 2008년 가을, 철도의 가공 전차선들이 훼손된 이후 “테러 행위 준비 목적의 범죄자 집단 참여” 혐의로 기소된 청년들. 이들은 2018년 4월 무죄 석방됐다. 
(7) Comité invisible, ‘Maintenant(지금)’, La Fabrique, Paris, 2017.
(8) Collectif Mauvaise troupe, ‘Constellations. Trajectoires révolutionnaires du jeune XXIesiècle(성좌. 젊은 21세기의 혁명적 여정)’, L’Éclat Poche, Paris, 2017 (초판: 2014).
(9) Comité invisible, ‘Maintenant(지금)’, op. cit.
(10) Collectif Mauvaise troupe, ‘Constellations(성좌)’, op. cit.
(11) Cf. Jean-Luc Chappey, ‘Constellations: Radicalités irrationnelles (성좌: 비이성적 급진주의)’, Agone, n° 61, Marseille, 2017.
(12) Collectif Mauvaise troupe, ‘Constellations(성좌)’,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