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리얼해서 조국 인도에서 금지되다

영화평 <가비지>

2018-07-31     전찬일 | 영화평론가
가끔씩 충격을 넘어 삶의 어떤 전환점으로 남을 ‘단절적 영화’와 조우한다. 지난 5월 14일 만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그 경우였다. 두 달 하고도 십여 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자장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한 편의 영화가 그 목록에 합류했다. 올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12일∼22일, BIFAN) ‘금지구역(Forbidden Zone)’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인도영화 <가비지>(감독 Q)가 그 주인공이다. 하드코어 스릴러라는 장르적 그릇으로, 인도 사회의 이면·폐부를 통렬하게 까발린 문제적 ‘극한 영화(Extreme Movie)’다.  

사실 <가비지>는 <버닝>처럼 세계영화역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 걸작은 아니다. 그렇기에는 영화가 날것 그대로, 지나치게 거칠고 직접적이다. 극한영화답게 자극적이며 더러는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단적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파노라마 섹션에서 첫선을 보인 올 베를린영화제에서도 미국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전문지인 버라이어티 지는 “오늘날의 인도사회에 대해 심오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확신할지언정, 여권 신장을 꾀하는 리벤지 스릴러로 가장한 짜증스러운 고문 포르노”라고 혹평했다. 촬영은 불쾌하고 플롯도 지루하고 따분하다면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영화 전문 사이트 www.imdb.com의 네티즌 평점에서도 30여 명이 10점 만점에 종합 평균 5.8점밖에 부여하질 않았다. 

사정은 BIFAN의 네티즌 감상평도 매한가지다. 고작 7명이 참여해 5.57점을 줬을 따름이다. 그중 한 명은 1점을 주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사회고발 영화면 공감을 일으키는 게 첫째, 그냥 자극적인 언어와 장면들만 있다고 해서 사회고발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제목 그대로 쓰레기”라고. 영화 못잖게 통렬하다. 

위 혹평들에 정색하고 반박을 가하거나 그럴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지나치게 표피적·외연적·기표적으로만 독해한 감이 없지 않다고. BIFAN의 프로그램 노트에도 나와 있듯 <가비지>는 무엇보다 남-녀의 이야기다. “당사자의 동의나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화상 또는 영상”이나 “금전을 노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동의 없이 유포되는 일반인 음란물”(다음 백과 참고)을 가리키는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가 돼 가족과의 연락도 끊은 채 도심에서 시골로 도망쳐온 여인 라미(트리말라 아디카리 분)와,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이나 경제적으로 궁핍해 먹고 살기 위해 관광용 미니버스를 운전하는 파니슈와르(틴마이 다나니아), 그리고 마치 가축처럼 쇠사슬에 묶여 파니슈와르의 노예인 듯 연명하는 불가촉천민 여성 나남(사타루파 다스)이 그 남녀들이다.    

이 중심인물들의 단순 소개만으로도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한국영화와 일본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개인적으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을 매우 좋아해 가명 Q도 그에게서 따온 것” ―무라카미 류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공포물 <오디션>(1999) 등으로 국내외에 두터운 마니아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다카시 감독은 2001년에 <비지터 Q>를 선보인 바 있다― 이라는 감독 코식 무케르지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도에 여성 인권은 없다”(매일경제 2018년 7월 23일 자 인터뷰 참조)는 사실쯤은 익히 보고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게다가 <가비지>가 취하는 영화의 형식적 틀은 극한 영화이지 않은가. 

그 세 캐릭터를 매개하는 영화적 장치는, 1890년대 출현 이래 줄곧 영화라는 매체의 으뜸적 두 자양분이라 할 폭력과 섹스이다. 따라서 충격적 자극과 일말의 선정성은 대본에 촬영까지 손수 한 감독이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위 프로그램 노트에서 <가비지>가 “인도,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여와 남의 관계를 ‘폭력’이라는 필터를 통해 재구성한다”고 진단한 것도 꽤 적절하게 비친다.  
<가비지>의 고육지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물론 영화를 보는 이들이 알아서 판단할 몫이다. 상기 혹평자들처럼 악평에 열을 올린다 한들 그 역시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내게는 <가비지>의 폭력·섹스들이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기는커녕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게 다가선다. 이 영화에서의 폭력은 여느 액션영화에서의 활극적 폭력과는 무관하다. 그 주체들이 누구건 일방적이며 가해적이다. 섹스도 대체로 눈요깃거리용과는 상관없다. 여느 섹스영화의 판타지나 스펙터클 따위는 부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공간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라미의 섹스 동영상이다. 감독은 시종 두 남자와 섹스를 나누는 라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해 보여준다. 

그 클로즈업들은 그 섹스동영상을 보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파니슈와르의 이미지들과 겹치며, 더 나아가 그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우리네 관객들의 시선들과도 겹친다. 그로써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은 말할 것 없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 이들이 극 중 리베지 포르노의 공범 관계에 연루돼 있음을, 은근슬쩍 내포적으로 내비친다. 영화가 불편을 넘어 불쾌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감독이 의도한바 예정된 길이다. 이 얼마나 효과적인 자기반영성이요 비판성이란 말인가! 그래서일까, 라미가 동성의 시몬(기탄잘리 당)을 만나 쓰레기 터 시몬의 거처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예외적으로 적잖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렇듯 <가비지>에서의 폭력과 섹스는 철저히 수단이다. 

그렇다고 <가비지>가 여-남 이야기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유구한 카스트 제도, 힌두교로 대변되는 인도의 종교문제 등 인도사회의 숱한 난맥상을 향해서도 신랄한 칼을 들이댄다. 교주 바바를 향한 파니슈와르의 헌신이나 그 두 남자 사이의 성적 교접은 충격이라는 말로 형용키 불가능한 영화체험을 안겨준다. 고백컨대 영화 보기 이력 50년에 이런 극한의 인도영화를 본 것은 난생처음이다.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만큼, 인도에는 주류 영화인 발리우드 영화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쯤은 알고 있다. 지난 2013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인도영화 특별전을 기획하고, 그에 맞춰 “인도영화는 곧 발리우드라는 편견을 깨고 인도영화, 더 나아가 인도문화 전체에 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향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발리우드 너머의 영화들』(2013)을 출간했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게 됐지만 말이다. 

일찍이 ‘인도영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사티야지트 레이(1921∼1992)는 1950년대에 인도의 대다수 상업 주류영화에 맞서 인도 뉴웨이브를 개척했으며, 개인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해 사회 문제와 보편적 인간성을 표현한 작품들로 높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길의 노래>부터 <아파라지토>, <아푸의 세계>에 이르는 ‘아푸 3부작’이 그 대표작들이다. 그들은 비주류적 사회(비판·고발)성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들인 바, 1990년대에는 셰카르 카푸르 감독의 <밴디트 퀸>(1994) 등이 그 맥을 잇는다. <가비지>는 조국 인도에서 상영금지되는 등 여러모로 <밴디트 퀸>과 비교·연결되나, 그 스타일이나 주제의식 등에서 훨씬 더 급진적이며 극단적이다. 

<가비지>가 그토록 비관적·절망적 상황에서도 변화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갈라선다. 라미가 고난의 와중에도 자신의 성적 선택 및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파니슈와르와 나남 사이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임이 명백하건만 연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으며, 파니슈와르(와 라미)가 예상치 못한 파격적 결말을 맞이하게 하는 설정 등은 <가비지>의 목표가 결코 선동 영화나 센세이셔널리즘이 아님을 웅변한다. 

고백건대 살해 위협이라는 고강도 위험을 무릅쓰고 영화를 만든 이들이 용기를 낸 결단·실천을 인정·지지하지 않을 도리 없다. 이쯤이면 내가 왜 <가비지>를 내 인생의 단절적 영화로 수용했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을까? 나는 감독의 차기작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고, 그의 전작들도 찾아볼 참이다.  


글·전찬일
영화 평론가를 넘어 문화콘텐츠 비평가로 활동을 확장 중이며, 조선대 초빙교수로 출강도 병행 중이다.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를 표방하며 다채로운 종합 문화 기획을 추진 중이다. 저서로 평론집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과 『전찬일의 세계영화사조론 1/2』(인터넷 및 CD 버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