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급진화’됐나?

지하디스트, IS병사로 떠난 수천 명의 유럽 젊은이들

2018-08-31     로랑 보넬리 | 정치학자, 파비앵 카리에 | 연구원

프랑스와 유럽을 강타한 테러, 그리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라크-시리아로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논쟁의 한복판에 ‘급진화(Radicalisation)’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현상에 대해 기관들이 이례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 사법기관, 사회복지, 학교, 교도소, 외교는 물론 지역사회 및 종교단체 관계자들 및 지역단체의 시행규칙과 공문, 특별제정법 및 조직의 지침이 단시간 내에 등장했다. 


이제 수천 명의 경찰 요원들이 이들 활동의 일부 또는 전부를 알아내고, 고발하고, 통계를 내고, 감시하고, 추적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록에 따라 분류된 개개인의 행동, 태도, 활동들을 관리하는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한 정보관이 악의 없이 강조했듯,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급진적인 성향을 띌 것이다.”

급진화와 관련된 정치 및 언론의 관심과 전 기관의 결집으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규명하기도 힘든 저작물들과 기사들이 넘쳐나지만, 실제 조사에 근거한 내용은 거의 없다. 청소년보호법(PJJ)과 함께 제정된 협약 덕분에, 우리는 테러 사건에 연루됐거나 ‘급진화’라고 기록된 미성년자 133명(남자 96명, 여자 37명)의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먼저 68명은 프랑스 영토에서 테러를 시도했거나, 시리아 및 이라크로의 출국을 이유로 재판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이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65명은 ‘테러리즘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기소됐거나 형사 및 민사 소송에 걸려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회 및 사법기관 종사자들이 우려할 만한 발언이나 행동을 취했다는 점이다. 앞의 68명은 대부분 2012~2017년 테러리즘으로 기소됐다. 그리고 65명은 단순 사건과 관련되는데, 이런 부류의 문서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앞에서 언급한 염려스러운 상황 때문에, 이라크-시리아 분쟁에 가담하려 했거나 테러 계획을 세웠던 이들의 기록을 가장 먼저 살피게 된다. 이와 관련한 공통적인 진술들과는 달리, 이들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어린 범죄자들이 아니다. 테러에 연루된 청소년들의 부모는 대부분 (주로 마그레브 출신인) 1세대 이민자들이고, 다들 서민층 중에서도 안정적인 계층에 속해 있으며(단순기능공보다는 일반적으로 숙련공이나 장인 계층이 더 많다), 자녀들을 몰아붙여 학문적인 성공과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모욕에 시달리는 서민층 청소년들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실을 단속하고, 교육열을 더욱 드러내 보이고, 혼자만의 방이나 서재를 마련해주고 집안일을 시키지 않는 등 성공에 보탬이 될 만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했다. 더불어 범죄 및 마약을 접할 수 있는 동네나 그런 위험과 거리를 두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까지 엄격하게 통제했다. 푸에드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 “나는 내 아버지처럼 살아왔다. 아버지는 ‘너희가 학교공부만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돈 걱정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내 주변이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학부모회 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알기 위해 세입자 대표도 맡고 있다. 그리고 종교단체 협회에도 가입했다.” 

이런 부모의 보호막은 중학교까지는 제법 훌륭한 기능을 한다. 서민층 청소년들 대부분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는 모범생으로 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변한다. 거의 대다수가 일반계열에 진학하기 때문에, 거기서 그들은 중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우주를 만난다. 

초등·중학교에서는 그들에게 방패막이가 돼주는 폐쇄적 자아(entre-soi, 자신만의 소우주를 선택해, 거기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과는 접촉하려 하지 않는 상태-역주)가 형성돼 그곳만의 규범, 사회성, 존재방식들이 학교 안팎에서 사실상 원활하게 돌아간다. 반면 고등학교는 대체로 도심에 있고 사회집단들이 뒤섞이는 곳이기 때문에, 서민층 학생들에게 유리한 점이 별로 없다. 이들은 이제 집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더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게 되는데, 또래보다 경쟁에 유리한 상태도 아니다.(2) 이들에게 교사들은 낮은 평가를 한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이 새내기들을 사소한 이유로 놀리거나 모욕을 준다. 예를 들어 반에서 유일한 아랍인인 함자의 친구들은, 그를 ‘가미카제’라거나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비웃는다. 이처럼 희롱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넘쳐나는데, 이 희롱은 실제 사회적 판단이자, 인종적 판단인 경우도 종종 있다. 때로는 인신공격의 형태도 포함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수모를 겪다 보면 결국엔 학교의 지배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데, 아민은 이런 상황을 “나는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한마디 말로 요약한다. 사회학자 폴 파스칼리는 엘리트 과정에 등록한 서민층 청소년들을 연구했는데, 이들과 유사하게 앞서 살펴본 청소년들에게도 겉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사소한 요인들이 부족해 보인다. 즉 선생님의 지지와 격려, 반 친구들보다 약간 높은 성적, 같은 계층 출신의 다른 고등학생들과 뭉쳐서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이 청소년들에겐 없는 것이다.(3) 

이처럼 학교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부모가 부여한 신분상승이라는 사명을 다해낼 수 없다. 또한 이 신분상승이라는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학구열에 대한 본능을 키우는 등) 워낙 어릴 적부터 단련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가령 조직이나 범죄 혹은 마약 복용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그 사명을 부인(否認)할 수도 없다. 

절망 끝에 찾은 지하디즘이라는 ‘출구’

그러나 부모가 바라는 역할을 해낼 수 없고, 학교와 가정에 문제시되는 일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청소년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할 구실로 지하디즘(이슬람원리주의 무장투쟁 운동)을 찾게 된다. 지하디즘이라는 이념은 종교 및 정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하디즘은 이슬람 종교계 밖에서 활동하는 자들에게는 경전을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하지만, 지하디즘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세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몇몇 국가에서 벌어진 테러만 봐도 ‘이슬람’ 국가의 건설은 단순히 알라의 군림을 준비하기 위해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정부, 기관, 여러 집단들(‘신을 믿지 않는 자들’ ‘유대인들’ ‘동성애자들’ ‘악한 이슬람교도들’)을 상징적이고 물리적인 표적으로 삼는 정치적 계획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지하디즘은 부모라는 모델이나, 학교가 구현하는 공화주의 모델을 한꺼번에 단죄할 수 있는 편리한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부모들이야말로 교육에 대한 투자, ‘물질주의’, ‘(문화적이든 종교적이든) 뿌리를 거부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들을 수용해준 사회의 우선가치들에 의해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실패는 더 이상 하나의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가치나 관행의 관점에서 본래의 ‘순수성’을 구현하는 이상적인 사회에 충성하겠다는 단호한 선택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점진적이고 집단적으로 진행된다. 가정의 통제 때문에 거리에서 터득할 수 있는 사회성으로부터 단절되고, 또한 보통 고등학교 시기에 발달하는 사회성으로부터도 배제된 이 청소년들은 우선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 관계를 맺는다. 탐색에는 다양한 통로가 이용된다. 즉 학교나 동네에서 소그룹을 형성하거나, 친인척을 통해 인맥을 찾거나, 종교시설이나 문화·스포츠 협회를 통해 친분을 쌓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령 야민과 아이사는 스페인어 수업에서 친해졌으며, 몇 달 뒤 시리아로 함께 떠나자고 결심하기 전에 유튜브에서 퍼온 시리아 관련 동영상(‘고문당하는 민간인들’)을 공유했다. 메흐메트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두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메흐메트의 부모가 그를 내쫓았을 때 그들은 종교와 시리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니스린의 경우, ‘사회적 고립’과 인터넷에서 맺은 새로운 관계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관계는 종교적 관심사에 따라 선택된 것이다.

경험을 공유하고 공통점을 모으면 비관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집단을 형성하기에 유리하며, 생각을 깨우치기 쉽다. 테러를 시도하고 시리아로 출국한 혐의로 기소된 소녀 파비엔은 “나는 나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의논했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고 페이스북에서 만난 두 청소년은 자신들이 어떤 계층적 박탈감을 공유한다고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념적 설명이 되기는커녕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념적으로 더 잘 단련된 제3자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여기서 제3자는 (역사에서 국제관계에 이르는) 여러 다른 사건들과 그들을 연결해주고, 그 관계를 설명할 인과관계의 연결 고리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학교 및 가족과 틀어진 관계를 정치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기록에서 오마르 옴센나 라치드 카심으로 알려진 이름들과 마주쳤는데, 이들은 프랑스어권에서 주요 신병 모집원으로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그들은 지하디스트라는 불분명한 집단의 어수선한 흐름에서 건진 설명을 통해, 그들에게 문의를 해온 프랑스 젊은이들의 생생한 경험담(학교, 가족, 사회, 인종차별, 이슬람 공포증과 관련한)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푸에드는 옴센에 대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답해줬다”고 말했다. 그들은 보안기술에서 출국 경로, 접선 방법, 하물며 재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한 말이나 현실적인 조언을 뒷받침해줄 연설, 서적, 영화, 브로슈어 등에도 접근할 수 있게 해줬다. 

적대적인 대우는 테러를 계획하게 한다

물리적으로나 수적으로 관계들이 촘촘해지면서, 작은 집단들이 생성될 때 점차 응집력이 생겨난다. 가장 온건하고 신념이 약한 미온적인 집단들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지만, 반대로 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점점 더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러 오는 이들도 있다. “나는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니스린은 나중에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에서 ‘Dine Al-Haqq’ 채널의 여성 관리자가 됐다.

연속선상에서 보면 집단은 더 응집력 있게 축소되고,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점점 유사한 개인들끼리 집단을 형성한다. 각 집단끼리 단절되면 집단 내에서는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강화된다. 청년대원 모르간의 말마따나 동료는 ‘또 하나의 나’가 되며, 이들에 대해 충성심이나 때로는 우정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친밀감으로 뭉친 이 작은 집단들의 힘은 개개인의 행동 변화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된다. 카심이나 옴센 같은 개인들이 마련한 지적 토대, 혹은 그들이 설파하는 지식만으로는 청소년들이 지하디스트에 가담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어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들을 ‘절대 권력을 가진 꼭두각시 조종사’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조사한 청소년들과 이들이 맺은 관계는 단속적이고, 물리적으로 거리감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행동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들이 가르친 이념대로 행동하도록 통제할 수도 없다. 이들은 행동의 이유와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청소년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소화해내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아에서 ‘헤지라(이슬람의 땅으로의 망명)’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진정한 이슬람교도’인 그들의 선도자가 정한 계율과 규율에 따르는 사회·정치적 조직의 건설을 현실화함으로써, 그들이 참여하고자 하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 그것을 진정한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4) 예를 들어 나짐은 “그것은 바로 거기서 이뤄지도다!”라고 열정을 다해 말한다. 

이 미성년자들에게 시리아라는 지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풍요를 약속하는 것 같다. 경험은 전부 미덕으로 미화되고, 경험만 있으면 그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문제들이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이들은 부모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주거 문제나 급여 같은 물질적 문제들(서민계층은 언제나 이 문제들에 민감하다), 삶의 의미(공동체와 대의를 위한 희생은 그에게 또 다른 능력을 부여한다), 사회 집단들끼리의 관계(신기하게도 종교 안에서는 기적처럼 모두가 형제가 된다)뿐 아니라, 성적인 것(이제 이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까지 포함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업 준비를 감안해, 이 청소년들은 사이드(Saïd)를 본받아 지적인 소년병들이 될 생각에 완전히 들떠 있다. 사이드는 스스로를 ‘키보드의 무자헤딘(아프가니스탄의 반군 게릴라-역주)’이라 정의하며, 자신이 믿는 대의를 전파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들에겐 공격을 실행할 뜻이 별로 없어 보인다. 프랑스 영토에서 자행된 테러를 즐기고, 자기들도 테러를 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의 재판 기록을 조사해보면 몇 가지 예외 말고는 그들의 계획이란 것이 대부분 준비가 미흡하고 비현실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찍 범죄에 발을 들여놓은 일부 동년배들과 달리, 그들은 사회화를 통해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는커녕, 어디서 무기를 입수해야 할지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린이 사람이 가장 붐비는 장소를 선정하고,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과 폭약 띠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진술을 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서로 똘똘 뭉친 소그룹 내에서는 항상 ‘자기 자리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며 충성심을 입증해야 한다. 이처럼 소그룹 내에서 관찰되는 이런 파급 효과들 덕에 청소년들이 실제 시리아로 떠나는 것처럼 테러 지시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서 잘못된 제도적 대응은 청소년들의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촉발함으로써 원치 않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중학생인 마티스의 경우를 보자. 교사들과 교직원들은 그가 신입생이나 망상증 환자처럼 군다고 판단해 마티스에게 점점 더 적대적으로 대했다. 그뿐 아니라 가택수색에 이어 거주지 제한까지 겪고 나자, 그는 실제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테러를 계획했다. 또한 야민은 한 경찰관이 사소한 학교폭력에 대해 10년 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시리아로 떠났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두 번째 결과를 보면, 불안만 조장하는 전문가들의 악의적인 해석에 익숙한 독자들은 아마 놀랄지 모른다. 앞에서 조사한 사례들을 제외하고, 사법 전문가들이 ‘급진적’이라고 작성한 목록에 따라 분류된 행동들은 본질적으로 지하디즘과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고발된 미성년자의 압도적 다수는 어떤 이념적 계획을 전달하거나, 그들이 따르는 질서를 대체할 사회적, 정치적, 상징적 질서를 만들어낼 생각이 추호도 없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테러와 대중의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는 오해를 받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그들은 가족, 동료, (청소년 선도 기관, 사회복지 및 사법제도뿐 아니라 경찰에서 학교에 이르는) 조직과 상호작용하면서 지하디스트의 레퍼토리에서 빌려온 입장과 화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습성 때문에 특히 이들을 대해야 하는 어른들이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나는 IS보다 지독하다!”

범죄 행위로 재판 전 보호관찰(LSP)을 선고받은 미성년자 브라이언이 이런 맥락을 잘 보여준다. 보호관찰 중인 브라이언은 주간(晝間) 교육시설(UEAJ)에서 ‘소년소녀 사이에 서로 존중해야 할 것’이라는 주제로 동영상을 제작하는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극장에 들어서면서 그는 “여긴 딱 바타클랑 극장(2015년 11월 테러가 발생한 장소-역주)이네”라고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촬영 팀의 준비회의에서 수업에 참석한 여성들을 향해 ‘부적절하고 무례한’ 말을 늘어놓더니, 느닷없이 “이 극장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UEAJ의 책임자인 아르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쨌든 마지막에 그 아이가 오긴 왔어요. 극장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단편영화 제작 때문에 전문가팀에 합류한 한 여성 감독을 괴롭혔죠. 그 애는 분명히 ‘내가 당신 목을 따버릴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러더니 또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진심이 아니에요’라고 했죠. 하지만 그 애랑 있으면 그 여성 감독은 절대 안심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브라이언은 우리와 함께 프로젝트를 끝냈어요. 그 애는 행동이 좀 이상했죠. 사람을 피하는가 하면 또 도전적인 구석도 있었거든요. 그 애는 자기 자신을 알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한테 ‘S’(Secondary Security Screening Selectee, 미국교통안전국이 항공기에 탑승할 때 정밀 보안검색 대상인 승객에게 붙이는 표시-역주)가 붙어 있고, 자기는 테러리스트이며, 미쳤다고도 했어요….” 

이런 기록은 첫째, 양성평등에 관한 수업에서 여성을 위협하고 비하한 것처럼, 브라이언이 기관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이런 기록은 잠재적 위험성(‘네 목을 따버리겠어’ ‘나한테는 S가 붙어 있어’ ‘나는 테러리스트야’)에 의혹을 드리움으로써, 그 위험성에 아무런 구체적 근거가 없고 또 그것을 철석같이 믿기에는 다분히 부풀려진 측면이 있는데도 이 미성년자를 ‘대단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황은 그에게 유리해진다. 어쨌든 그는 수업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했으니 말이다. 

2015년 1월(샤를리 에브도 테러)과 11월의 테러(바타클랑 극장 테러) 이후 학생들이 끔찍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논리다. 테러 희생자들과 연대하려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극단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을 배척한 제도를 거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육자인 신시아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다에시(Daech, 이슬람국가/IS의 다른 명칭)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는 도발 방식이 될 수 있어요. 요즘은 그게 가장 잘 먹히거든요. 한 청년이 인터뷰에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날 손톱만큼도 모른다. 나는 다에시보다 더 지독하다!’ 그러면 당연히 그 때문에 겁을 먹게 되는 거지요.”

물론 학업이나 가정을 통해 학교 어른들의 권위를 위협하려는 이 태도들의 전략적 성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 태도들은 청소년보호법, 혹은 ‘스톱-지하디즘(지하디즘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개설한 반 IS 웹사이트-역주)’의 무료전화, 사회복지 및 국가교육 관련 도청 및 결정기관에서 운영하는 ‘급진화 및 가족 동반 예방소(CPRAF)’에서 명시해둔 사례들과 굉장히 유사하다. 

‘급진화’라는 꼬리표가 가지는 문제

그러나 이런 태도들이 곧바로 폭력적인 행동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런 태도를 낳은 원인이 된 사회 제도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오늘날 프랑스에서 ‘급진화’라는 꼬리표를 단 행동들은 본질적으로 지하디즘을 의미하는 ‘미약한 신호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 제도를 향한 강렬한 불신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부모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이념적 참여 혹은 반란의 외침이라면, 이런 특정 행동들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제도를 되돌아볼 때 급진화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5)

젊은이들의 급진화 현상을 조사하면 급진화의 단어가 남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중등교육에서 지하디스트에 가담한 학생은 전체 550만 명 중 0.001%에 불과했다. 또한 젊은이들이 실제 이념적으로 급진화됐다기보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을 바꿔서까지 다시 태어나) 과거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과, 경찰 및 형사상의 기소를 피하고 싶은 마음, 친구들 간의 경쟁 스트레스, 존재의 보다 심오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들은, 전과가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리아나 이라크로 떠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다양한 요소들이다. 

(범죄자나 용의자에 대한) 프로파일링은 행동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주고, 사회과학은 적어도 그런 예측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결코 테러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나 ‘사회적 변명’이  아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에서 어부 삼 형제가 폭풍우에 갇히는데, 통에 몸을 묶고 소용돌이치는 바다로 뛰어든 한 사람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가 하루 만에 노인이 될 정도로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고 소용돌이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듯이, 젊은이들이 극단화의 위험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면,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작용의 논리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6) 제도의 효력을 밝히고, 제도가 막고자 하는 현상을 제도 자체가 되레 악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용의자’라는 범주를 함부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랑 보넬리 Laurent Bonelli, 파비앵 카리에 Fabien Carrié 
로랑 보넬리는 파리-낭테르 대학교 정치과학과 강사이며, 파비앵 카리에는 벨기에 과학연구재단(FRS-FNRS) 연구원이다. 두 사람은 『급진성의 제조. 프랑스의 젊은 지하디스트들의 사회학(La fabrique de la radicalité : Une sociologie des jeunes djihadistes français)』(Seuil, Paris, 2018년 9월 16일 출간 예정)을 함께 썼다. 

번역·조민영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관련 인물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가명 활용.
(2) Stéphane Beaud(스테판 보),『80 % au bac … et après? Les enfants de la démocratisation scolaire(바칼로레아에 합격한 80%의 학생들…. 그 이후에는? 교육 민주화의 아이들)』, La Découverte, Paris, 2002년.
(3) Paul Pasquali, 『Passer les frontières sociales. Comment les «filières d’élite» entrouvrent leurs portes(사회적 경계를 건너기. ‘엘리트 전문과정’은 어떻게 그들의 문을 반쯤 열었나)』, Fayard, Paris, 2014년.
(4) Laurent Bonelli, ‘Des brigadistes aux djihadistes, combattre à l’étranger(왜 그들은 이슬람국가조직(IS)으로 떠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8월호‧한국어판 2015년 9월호.
(5) Emile Durkheim, 『Le Suicide(자살론)』,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coll. «Quadrige», Paris, 2013년(초판 1930년).
(6) Edgar Allan Poe, 『Une descente dans le maelström et autres histoires extraordinaires(‘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와 다른 기이한 이야기들)』, Regards et lectures, Meudon,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