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 “1인치도 동쪽으로 가지 않겠다”

2018-08-31     필립 데스캉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 거짓말을 했다. 비겁하게 우리 등 뒤에서 결정을 내렸고,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이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유럽으로 확장하고 우리 국경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이다.” 2014년 4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병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에서 서방 지도자들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나토 리뷰(NATO Review)>가 바로 대응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이 주장하는 소위 ‘약속’에 대한 변론을 냈다. 휠르 NATO ‘에너지 안보’ 담당 국장은 “서방에서는 통일독일의 국경을 넘어선 지역으로 NATO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또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썼다.(1) 그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이란 문구를 강조했다. 최근 비밀 해제된 문서(2)를 보면, 서구 국가들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냉전 종식 구상에 대한 대가로 제시한 정치적 약속의 범위를 알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직에 오르자마자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이 개혁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무력 사용 위협을 중단했다. 1989년 6월 13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국민 및 국가들의 자결권을 인정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환희로 가득 찬 순간이 지나자 동유럽 전역이 경제문제로 시름을 앓게 됐다. 동독인들은 서구 세계의 번영을 동경했다. 이들이 대거 동독을 빠져나가면서 지역 안정의 위협으로 대두됐다. 경제 개혁에 관한 논의가 급속히 두 독일의 통일에 대한 논의로, 그리고 이어 NATO 가입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 변화를 받아들였다. 유럽의 틀 안에서 민주적, 평화적인 방식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또 자신이 구상한 통화동맹 계획을 독일이 지지했기 때문이다.(3) 모든 유럽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구두로만 약속,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실책

미국 정부는 강행군을 펼치는 헬무트 콜 독일 총리를 지지했다. 1990년 2월 9일 모스크바에서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장관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수많은 약속을 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통일독일의 NATO 가입으로 유럽의 군사적, 전략적 균형이 깨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하나의 독일이 중립을 지키거나 NATO, 바르샤바조약에 모두 가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베이커 국무장관은 서독과 동독, 그리고 4대 점령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간 논의를 통해 NATO 확장을 막아야 한다고 확언하면서 ‘핵무기 보유능력이 있는 통일독일’이라는 잠재적 공포심을 자극했다. “NATO의 현재 군사관할권이 동쪽으로는 1인치도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세 차례에 걸쳐 거듭 강조했다.

“독일이 통일된다고 가정할 때, 어느 쪽을 선호하십니까?” 베이커 국무장관이 물었다. “완전히 독립적이며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즉 NATO를 벗어난 통일독일과, 혹은 NATO와 관계를 유지하되 NATO의 관할권이나 병력이 현재 독일국경의 동쪽으로는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통일독일 중에서 선택한다면 말입니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대답했다. “우리 지도부는 그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NATO 확장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서기장님과 저의 의견이 같군요.” 베이커 국무장관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인 1990년 2월 10일, 이번에는 콜 서독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NATO가 영향력을 확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또한 우리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저는 소련이 안보 문제를 우려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콜 서독 총리가 이렇게 말하자, 고르바초프가 “아주 심각한 사안입니다. 군사 문제와 관련해 어떤 의견의 대립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독이 없으면 NATO도 사라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동독이 없어지면 바르샤바조약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2015년 7월, 미국의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관계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이 사건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서면으로 약속된 것이 전혀 없어요. 고르바초프의 실책이죠. 정치에서는 모든 것이 서면으로 작성돼야 합니다. 서면 약속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도 말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서구 지도자들과 논의만 했고, 구두 약속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4)

“유럽 안보는 소련 없이 불가능하다”

역사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동유럽의 모든 공산정권이 붕괴했다. 협상을 이끄는 데 있어 소련에 남은 강력한 담보는 포츠담협정(1945년)과 독일에 거주하는 소련인 35만 명뿐이다. 1990년 5월 18일 베이커 국무장관은 또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NATO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 우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새로운 유럽의 초석이 될 항구적 기구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포럼을 통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그 말을 받았다. “NATO가 소련의 적이 아니고, 단지 새로운 현실에 적합한 안보기구에 불과하다는 얘기라면 우리도 NATO에 가입하겠습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1990년 5월 25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모스크바에서 만나 이렇게 선언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군사 블록(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맺는 여러 나라 사이의 동맹이나 군사적 연합-역주)의 점진적인 해체에 찬성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유럽 안보는 소련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소련이 강력한 군대를 거느린 적국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파트너이기 때문이죠.” 미테랑 대통령은 이 회담 이후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통일독일의 NATO 가입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적대감은 내가 보기에 ‘속임수나 전술’이 아니다”라면서 “그의 ‘운신의 폭은 매우 좁다’”고 덧붙였다.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권력을 공고히 했다. 1990년 3월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고르바초프는 7월 초에 열린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보수파를 배척했다. 7월 16일, 코카서스 북쪽, 아라이스의 산골 마을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단의 장이 열렸다. NATO의 회원국인 통일독일 탄생에 대한 대가로 콜 총리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1945년에 정해진 국경선(오델-나이센(Oder-Neisse) 선)을 받아들이고 어떤 영토 주장도 하지 않을 것이며 독일 연방군의 병력을 절반 정도로 감축하고 종류에 상관없이 ABC 무기(핵(Atomic), 세균(Bacterial), 화학(Chemical))를 포기하고 소련군 ‘철수 지원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1990년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조인된 독일 통일 조약에서 이 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이 협정은 소련군의 철수 이후 구동독 영토로 NATO의 관할권이 확장되는 문제만 다뤘다. “독일의 이 지역에 외국군대나 핵무기, 외국 핵무기 운반수단이 주둔하지도 전개되지도 않을 것이다.”(5) 마지막 순간, 소련이 거부 의사를 내비치자 독일은 ‘전개라는 용어와 관련한 모든 문제는 (…) 통일독일 정부가 조약 당사국 각각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 책임감을 느끼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여타 바르샤바 조약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항은 전혀 없다.

1991년 초,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가 NATO 가입 의사를 전해왔다. 러시아 의회 대표단은 NATO 사무총장을 만났다. 만프레드 뵈르너 사무총장은 16개 NATO 회원국 중 13개국이 NATO 확장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련을 고립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고문을 역임한 안드레이 크라체프는 ‘소련의 지배를 막 벗어난’ 그러면서도 제정러시아의 ‘내정간섭’을 잊지 못하는 동유럽 국가들이 NATO에 가입하고자 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반면, 크라체프는 모든 구 바르샤바조약국들과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역주)에까지 NATO를 확장하려는 ‘구시대적 방역선(防疫線, sanitary cordon) 정치’를 개탄했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무지와 냉전의 이념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미국 강경파의 입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6)  


글·필립 데스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ichael Rühle, ‘L’élargissement de l’OTAN et la Russie: mythes et réalités(NATO 확장과 러시아, 허구와 현실)’, <Revue de l’OTAN>, Bruxelles, 2014년.
(2) ‘NATO expansion: What Gorbachev heard’, National Security Archive, 2017년 12월 12일, https://nsarchive.gwu.edu. Sauf mention contraire, 모든 인용 문구는 이 문서가 출처임.
(3) Maurice Vaïsse & Christian Wenkel, 『La diplomatie francaise face a l'unification allemande(독일 통일에 대처하는 프랑스 외교)』, Tallandier, Paris, 2011년.
(4) Oliver Stone, ‘Conversations avec monsieur Poutine(푸틴과의 대화)’, Albin Michel, Paris, 2017년.  2017년 6월 26일~28일 France 3 채널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푸틴 인터뷰를 방영했다.
(5) ‘Traité portant règlement définitif concernant l’Allemagne(독일과 관련한 결정적 규정을 담은 조약)’, www.cvce.eu
(6) Andreï Gratchev, 『Un nouvel avant-guerre? Des hyperpuissances à l’hyperpoker(새로운 아방게르(戰前)? 초강대국들의 포커판)』, Alma Éditeur, Paris,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