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섬들의 위기

2018-08-31     장아르노 데랑스 & 로랑 게슬랭 | 언론인
크로아티아에는 약 700개의 섬이 있고, 이 중 50여 개의 섬에 사람이 산다. ‘아드리아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 섬들은 매년 여름이면 상당수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반면, 원주민들은 섬을 떠나고 있다. 공공발전 정책으로 자리 잡은 단일 관광산업에 원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 쓰나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6월 말의 어느 저녁, 이 주제를 논의하려고 볼(Bol)의 주민 20여 명이 모였다. 바다를 향해 고깔 모양으로 나 있는 유명한 즐라트니 라트 해변에 인접한 브라치섬(달마티아 남쪽)의 볼 코뮌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 관광지다. 이곳에 1년 내내 거주하는 사람은 1천 명이 채 안 되지만, 볼은 7천 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으로 이어지는 짧은 관광 시즌에 수만 명의 관광객을 맞아들인다.

약 20여 년 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끝난 이후, 소나무 숲과 포도밭을 밀어내고 촘촘히 들어선 새 집들은 모든 언덕을 점령했다. 이 집들은 모두 임대용 숙소로,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온 수많은 피서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모임을 주최한 ‘섬 운동(Pokret Otoka)’의 마야 유리시치 대변인은 “관광 시즌이 시작돼서 모두가 일하는 중임을 고려하면 회의에 20명이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적이다”라고 말한다. 회의 주제는 이미 핫이슈가 돼 있다. 코뮌 측에서는 오래된 보라크 호텔의 확장사업 승인을 검토 중인데 확장사업이라 함은, 소유주 미공개의 투자 펀드가 국가로부터 매입한 이 시설의 숙소를 350명분에서 900명분으로 늘리기 위한 사업이다. 

회의에 참석한 사회민주당 소속 티호미르 마린코비치 코뮌 시장은 호된 질타를 받았다. 한 나이든 남성은 “당신들은 20년째 이 지역을 파괴하고 있는 도둑이다. 보라크 호텔에 머무는 관광객들은 호텔 내에서 숙식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관광객들이다. 따라서 마을에서 한 푼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마을의 물을 쓰고, 쓰레기도 마을에 내다버릴 것이다!”라며 격분했다. 한 여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회의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인민재판으로 변했다. 시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런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항상 불만을 가득 안고 있는 이들이다.”

2017년 봄 이후 즐라트니 라트 해변은, 연안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섬 주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당시에 정부는 크로아티아 해안 민간 개발 사업권을 개정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볼에서는 관행적으로, 소형 임시가판대를 설치할 수 있는 현지 기업들에 시장이 허가권을 주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법규에 의하면, 해변 전체를 장악하고 유료화하거나, 특정 호텔 투숙객에게만 해변 이용권을 줌으로써, 지역 주민이 해변을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기업에까지 허가권이 확장된다”고 유리시치 대변인이 설명했다. 

크로아티아 기업 ‘스포츠 비’가 이 사업권을 따내면서, 사업권 취득과 관련된 불투명한 조건들 때문에 큰 반발이 일었다. 수백 명의 섬 주민들은 강력한 구호와 함께 즐라트니 라트 해변을 점거했다. “우리 섬의 해변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줘야 한다”, “울타리도 경비원도 없는 섬과 바다, 그리고 해변”, “크로아티아, 수천 개 개발사업권의 나라”, “크로아티아의 해변들은 깨끗하다. 이를 오염시키는 것은 개발사업권이다.” 이런 결집은 금세 크로아티아 전역으로 번졌고, 돈벌이에 대한 국가의 욕망과 치밀하게 계획된 천연자원의 민영화에 맞선 대항의 상징이 됐다. 정부는 결국 한 발짝 물러났다.

2017년 7월 1일, 의회에서 아주 소란스러운 논의 끝에 채택된 법문에는 논란이 가장 많았던 규정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유리시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는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법이 사업권 취득을 바라는 대규모 투자자보다 현지 소규모 기업들에 명시적으로 우선권을 주길 바랐다. 그래도 이 결집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됐다.” 여하튼 사업권 관련 투쟁은 ‘섬 운동’을 크로아티아 정치 무대의 일선으로 이끌었다.

마린코비치 시장이 속한 사회민주당은 2017년 6월 1일 회합을 거부했다. 그러나 볼의 시장은 관광객 수와 숙박일수를 늘리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이 없는 듯하다. 브라치섬에 상주하는 주민이 1만 4천 명에 불과한데도, 시장이 브라치섬 공항확장 계획을 반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은 “공항이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도록, 4~5천 명분의 숙소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활주로들은 유럽 대도시에서 출발하는 저가 항공과 연결될 것이고, 따라서 시장이 장려하는 ‘고품질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고객들이 유입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브라치섬은 크로아티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고, 주민의 수는 아주 적다. 여유공간이 아주 많다”며 안심시켰다.

브라치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카페리들의 주요 도착지인 수페타르 항의 이바나 마르코비치 시장 역시 사회민주당 소속이지만 좀 더 호전적인 모습이다. 마르코비치 시장은 현재 고립된 지역에 있는 코뮌의 묘지로 작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와테르만 스페트르브스 대규모 호텔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시장은 “도시계획과 관련된 권한은 코뮌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안이나 해양자산과 관련된 문제일 경우,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주 당국에 대규모 관광 로비에 대한 모든 권한이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자다르 군도의 실바섬. 이곳 주민들은 해변 집중개발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자동차 진입이 허용되지 않고 면적이 15㎢에 불과한 이 섬에는, 2011년 인구조사에서 292명의 원 거주민들만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과대평가된 수치로, 실제로는 100여 명이다). 그 유명한 베네치아 공화국 선원과 선장들의 중심지였던 18세기에는 이 섬의 주민 수가 1,700명이다. 하지만 여름이면 이 섬의 인구는 5,000명에 달한다. 

‘섬 운동’ 현지 활동가인 24세의 파울라 볼판은 “이곳에는 도로 청소부가 단 한 명밖에 없다. 주택가 인근에 쓰레기장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유고슬라비아 분열 이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분쟁 중인 영토에 있다. 겨울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섬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더위 때문에 악취가 기승을 부리는 성수기에는 쓰레기장은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한다”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볼판은 설명을 이어갔다. “문제를 해결하고 쓰레기들을 배출하려면 마을 외부, 북쪽 해안에 쓰레기장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쓰레기 수거용 배들이 정박할 새로운 부두도 건설해야 한다. 예상 사업비용은 수십만 유로에 달하는데 자다르 코뮌도, 주 당국도, 국가도 우리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볼판은 2년 전 마을 의회인 ‘몌스나 자예드니카(Mjesna zajednica)’ 의원으로 선출됐었다. 몌스나 자예드니카는 행정구역상 자다르 코뮌에 속하는 실바섬의 유일한 당국기관이다. 볼판은 지난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우리는 5석 중 4석을 차지하고, 전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생각해보시라! 소속정당 없이, ‘섬 운동’을 표방하는 젊은 여성 4명이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의(1) 원로 유력인사들을 이긴 것이다!” 하지만 선출된 이들은 바로 환상을 버려야 했다. 몌스나 자예드니카는 예산을 비롯해 활동을 위한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볼판은 재출마를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사람들의 기대는 상당했고, 자다르 시청이 실바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바섬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자다르에 가려면 카페리로는 4시간 걸린다. 그나마 빠른 교통수단은 1시간 15분 걸리는 쌍동선인데, 차량 운반이 불가능하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데, 특히 눈이 내리고 도로가 얼어붙는 겨울에 이 먼 거리를 오가는 것은 고역이다. 이렇다 보니, 섬 주민들을 위한 공공서비스는 본토 주민들이 누리는 것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섬 안에 초등학교가 1개 있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계속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고, 섬의 작은 보건소에서는 응급처치만 가능하다.

미오드라그 닌코비치는 실바섬의 마지막 목동이다. 해군 무선전신장교였던 그는 20년 전, 어머니의 고향인 이 섬에 정착했다. 닌코비치는 마을을 둘러싼 울창한 숲에서 낙농업을 한다. 그는 치즈를 팔기 위해 카페리를 끌고 자다르나 자그레브의 시장을 오간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치즈는 잘 팔린다. 내게는 좋은 고객들도 있다. 하지만 섬 내 농업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 휘발유 값과 물 값을 약간 할인 받는 것 외에는 이 먼 거리를 오가는 데 대한 그 어떤 공적 지원도 없다. 이 곳 어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해결책을 찾지 않고, 섬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질식시켜버리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닌코비치는 1990년대에 전쟁을 치르고, 세르비아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수개월 동안 수감됐었다. 그는 강경한 민족주의를 주장하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감추지 않는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실바섬에는 농업 협동조합, 어업 협동조합, 작은 통조림 제조 공장과 극장까지 있었다. 닌코비치는 “우리는 자그레브나 뮌헨 같은 대도시의 교외 주택지처럼 될 수밖에 없다. 섬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섬 주민들은 이런 소멸의 숙명을 거부하기 위해, ‘섬 운동’을 결성했다. 유리시치는 말했다. “나는 스플리트의 부동산업계와 자그레브의 정부 기관들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그리고 몇 년 전, 가족들의 고향인 숄타섬에 정착했다.” 유리시치는 2015년 섬 주민들이 유럽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협회를 만들었다. 크로아티아의 20여 개 섬 대표들이 모인 플랫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고, 이후 운동으로 발전했다. “우리의 목표는 섬 주민들의 네트워크다. 이들은 대규모 관광으로 인한 피해, 부족한 물, 불편한 교통 등 비슷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 우리는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않도록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리고 정부가 우리의 요구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싶다.”

브라치섬의 대규모 관광으로 인한 문제와 실바섬의 불가피한 쇠퇴 위기. 숄타섬은 그 중간 쯤에 위치해 있다. 스플리트 해안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브라치섬의 이웃, 숄타섬의 원주민은 700명이며, 여름이면 5,000명의 관광객들이 온다. 고정 관광객들 중 상당수가 매년 같은 숙소를 활용한다. 최근 몇 년간 농업도 진전을 보여, 섬 안에서 양봉을 하거나, 올리브유 등 기름을 생산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도 어업 협동조합과 소규모 공장들이 자리했던, 멀지 않은 과거를 추억하며 산다.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29세의 톤치 칼레비치는 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학생은 120명이었는데 지금은 40명뿐이다. 나와 같은 세대 사람들은 본토로 떠났거나, 한철 노동자로 간신히 살아간다.”

역동적인 자국 홍보 캠페인 문구 ‘지중해의 또 다른 얼굴’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크로아티아는 다시금 인기 여행지가 됐다. 관광객 수는 2000년대 말에 전쟁 이전 수준을 되찾았다(1985년 휴양객 수 1,010만, 2005년 990만, 2010년 1,060만). 그리고 이후 관광객 수가 계속 늘어나, 2017년에는 1,740만 명(크로아티아인 180만 명, 외국인 1,560만 명)에 이르렀다.(2) 1985년 6,700만이었던 숙박일수는 1995년 전쟁과 함께 1,280만으로 떨어졌다가 최근 몇 년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5년 7,160만, 2017년 8,620만으로 몰타와 아이슬란드에 이어 유럽 내 최대 규모의 관광객을 받고 있다.(3) 전체 숙박일수 중 1/4이 독일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있다. 독일 관광객들의 수는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이탈리아에서 온 관광객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숄타섬은 다른 지중해 관광지들(터키, 이집트, 튀니지 등)의 인기가 시들해진 덕을 누리고 있다. 크로아티아 국립은행에 의하면, 숄타섬은 2017년 95억 유로의 수익을 올렸고 이는 국내 총생산의 19.6%에 해당된다(프랑스의 2016년 관광수익은 GDP의 1.7%였음). 하지만 이 화려한 수치 뒤에는 국내 경제의 황폐함이 숨어 있다. 2013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크로아티아의 실업률은 감소하고 있지만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연합 내에서 여전히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관광업으로 창출된 일자리의 대부분이 한철 노동인데다가 저임금이고, 고용신고 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활력을 잃어가는 크로아티아는 대규모 관광 성장률을 유지하고자 외국인 한철노동자에 점점 더 의존한다.(4) 일부 대기업들은 보스니아인들, 세르비아인들로는 노동력이 부족해 이집트, 필리핀에서 노동력 수입을 검토 중이다. 한편, 섬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여름휴가철 두 달 동안에는 관광객 쓰나미에 시달리고, 나머지 열 달 동안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는 것이다.  

 
글·장아르노 데랑스 Jean-Arnault Dérens, 로랑 게슬랭 Laurent Geslin
<르쿠리에 데 발캉(Le Courrier des Balkans)> 기자. 『바다들이 만나는 곳. 유럽의 끝, 발칸반도에서 캅카스까지(Là où se mêlent les eaux. Des Balkans au Caucase dans l’Europe des confins, La Découverte, Paris, 2018)』공저.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HDZ, 해당 코뮌과 전국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당
(2) ‘Turizam u brojkama 2017’, 크로아티아 공화국 관광부, 2018, www.min.hr
(3) 2016년 주민 1명당 제공한 관광 숙박일수, 유럽연합 통계청. 
(4) Jean-Arnault Dérens & Laurent Geslin, ‘Cet exode qui dépeuple les Balkans 발칸반도를 떠나는 대규모 엑소더스 물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6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