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넘어진 곳, 문재인이 일어설 곳

2018-08-31     손석춘 | 건국대 교수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서라.”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에 나오는 말(因地而倒者 因地而起)이다. 새삼 지눌의 법문을 꺼내는 까닭은, 촛불정부를 둘러싼 세간의 논의를 차분히 짚어보고 싶어서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좌파의 길을 걷고 있어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따위의 ‘정치적 공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평가의 지표로 내세우는 경제 성장률이, 노무현 정부시기에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 때보다 높았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허구성 또는 잇속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우호적이었거나, 더 나아가 정권 창출에 기여까지 했던 사람들의 진단이다. 최근 나온 “문재인 정부, 촛불정부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사회경제개혁의 포기를 우려한다”는 제하의 지식인 323명 선언이 좋은 보기다.

이 선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한 현 집권세력은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비롯해 중요한 경제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정치세력이라서 재집권하면 훌륭하게 개혁을 수행해 낼 줄 알았”지만, 집권 1년 2개월을 지나면서 경제개혁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개혁 의지도 박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정권 실세들이 한반도 평화무드에 취해 뿌리 깊은 적폐구조는 좀처럼 건드리지 않은 채 약간의 인적 청산과 ‘개혁 시늉’만으로 다음 총선과 대선을 대비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하며 엄중히 경고했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의 길은 한참 멀어진다. 구태에 찌든 경제정책은 결코 정의로운 나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선언이 나온 날 정례 브리핑에서 “그분들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그 후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서 변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더 후퇴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소통이 안 된다는 뜻이다.   

지식인 선언을 두고 그나마 선언의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담아 새로운 여론을 형성해가야 할 신문마저 “좌우협공(左右挾攻)이라는 말이 있다”며 의도했든 아니든 지식인선언을 ‘좌파의 공세’ 쯤으로 논평하고 말았다. 

조선·동아·중앙일보가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비난하는 상황이기에, 지식인선언을 두고 ‘좌우협공’을 떠올릴 수는 있겠다. 실제로 그 말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나온 말이고,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문재인이 2011년에 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서도 언급됐다. 문제의 책에서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가 좌와 우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고, 그 때문에 제대로 개혁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나는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를 강조한다. 복기란, 정권을 운용한 우리뿐만이 아니다. 범야권,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진영 전체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극복해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가 끝날 무렵에는 뭐든지 ‘참여정부 탓’이나 ‘노무현 탓’으로 몰아치는 경향이 있었다. 제대로 된 성찰이 있을 리 없었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 분위기가 반전되고 좋아지니, 이제는 성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참여정부는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다. 보수진영으로부터 욕먹으면 진보진영으로부터는 격려를 받아야 하는데, 진보진영도 외면하고 욕했다. 그 ‘저항’과 ‘벽’이 지금은 없어지거나 크게 낮아졌을까? 이명박 정부가 워낙 못하고 지지받지 못하니 그런 듯한 착시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정권을 잡는 순간 그 ‘저항’과 ‘벽’은 다시 선명해지고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식인 선언을 두고 문재인의 ‘운명’을 떠올린 한겨레의 고위급 기자는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혜안이 번득이는 내용”이라며, “앞으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서더라도 좌우협공을 받으면 참여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이 책에서 강조한 주장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참여정부는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다”는 인식부터 짚어 보자.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반대쪽에서 참여정부에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 속성에서는 매한가지라는 주장은 과연 얼마나 정당한가. 

에둘러 가지 않고 묻는다. 과연 참여정부에 꼬투리 잡기로 일관한 수구언론이나, 그에 맞장구친 교수들의 비난과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동일 선상에 놓고 ‘좌우협공’으로 인식해도 좋은가. 노무현 정부에서 민중의 삶이 나아지지 않은 현실 앞에 과연 진지한 성찰이라도 있는지 의문마저 든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사안을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다고 인식한다면 또 하나의 ‘색깔론’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가 작금의 현실도 ‘좌우협공 국면’으로 인식한다면,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기대는 시나브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 문재인은 책에서 “나는 걱정이 된다. 지금 집권을 말하기 전에 진보·개혁진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3년 참여정부 집권 시기에 비해 현재 우리 진보·개혁진영의 역량과 집권능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진영 전체의 역량을 함께 모으는 지혜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물었다.
민망스럽지만 분명히 증언한다. 문재인이 2011년 ‘진보·개혁진영의 역량과 집권능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회의하던 바로 그 시기에 민중이 십시일반으로 세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진보·개혁진영이 집권할 때 어떤 경제정책을 펴야 옳은가를 연구해서 이듬해인 2012년 5월 책으로 펴냈다. 『리셋코리아』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을 바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제시한 이 책은, “진보의 정책대안은 ‘시장에서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개혁’과 ‘재분배 강화를 위한 사회적 복지 확대’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돼야 한다”며 각각의 세부적 개혁안을 제시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재벌’로 국제무대까지 알려진 수출 대기업 중심의 불공정한 경제구조와 열악한 분배구조를 개혁해 저임금 노동인들, 영세 소상공인들, 하청업체들에게 더 많은 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정하게 분배된 소득이 소비를 늘리고 그것이 투자와 생산의 확대로 이어지게 하는 정책이다. 단순히 최저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복지 확대가 중요한 까닭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민주당, 더 정확히는 ‘문재인 선거캠프’가 눈길을 돌린 것은, 그로부터 4년이 더 흘러서였다.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열린 2017년 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어 공론화되었다. 

소득주도 성장은 집권전략이 됐고,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정부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집권 초기의 ‘황금기’가 시드는 지금 소득주도 성장의 공약은 마구 흔들리고 있다. 

물론, 정치는 현실이기에 이해할 수도 있다. 막상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 5천만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가 큰 부담일 터다. 언론이 집요하게 ‘경제 위기론’을 퍼트리고 그 원인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있다고 몰아가면 자신감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가. 경제 위기를 악머구리 끓듯 소리치는 언론과 그 언론에 기고하는 교수들은 20대들이 ‘3포, 5포, 7포’라며 좌절하는 ‘헬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다. 젊은 세대의 문제만도 아니다. 노인 자살률도 가파르게 늘어났다.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노동시간 최장, 청년실업,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현실은 무슨 보수나 진보의 시각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다. 그 나라를 조금이라도 ‘나라다운 나라’로 바꾸려는 사회운동에 소수 특권세력과 그들의 대변자 언론은 내내 ‘색깔’을 칠하거나 ‘포퓰리즘’ 딱지를 살천스레 붙여왔다. 

노무현의 현직 대통령 시절에 경제 성장률이 저조하다고 줄기차게 비난해대던 언론인과 교수들은 참여정부와 견줄 수 없을 만큼 낮던 박근혜 정부의 성장률 앞에선 딴전을 피웠다. 

따라서 모름지기 문재인 정부는 경제공약을 집요하게 흔드는 저들의 공격에 당당하고 치열하게 맞서야 옳다. 그 충정에서 노무현이 넘어진 곳을 새삼 증언한다. 고인이 대통령 퇴임 직후에 토로한 후회다.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 딱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경제지출 쫙 끌어내려. 여기에 맞추어서 숫자 맞추어서 갖고 와.’ 대통령이면 그 정도로 나가야 하는데, 뭐 누구는 몇 % 어디는 몇 % 깎고 어느 부처는 몇 % 깎고 어느 부처는 몇 % 올리고 사회복지 지출 뭐 몇 % 올라가고 앞으로 몇 10년 뒤에는 어떻고 20년 뒤에는…. 이리 간 거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거 뭐 그럴 거 없이 색연필 들고 쫙 그어 버렸으면 되는 건데…. ‘무슨 소리야 이거,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 후 내년까지 50% 올려.’ 쫙 그려 버려야 되는데, 앉아가지고 ‘이거 몇 % 올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래 무식하게 해야 했었는데 바보같이 해 가지고….” 

노무현 정부는 집권 여당 후보의 참담한 패배와 더불어 5년 임기를 마쳤다. 그 뒤를 이어 대한민국은 각각 ‘국민 성공시대’와 ‘국민 행복시대’를 내건 이명박과 박근혜가 9년을 집권했다. 그 결과다. 2016년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네 자부하지만 사회복지에 쓰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0.4%로 OECD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21.6%)의 절반도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도 어금버금하다. 대한민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32위(32.35%)로 OECD 평균(40.55%)을 크게 밑돈다. 

그나마 다행히 한국경제는 사회복지를 늘릴 주‧객관적 조건을 갖췄다. 조세 부담률이 20% 수준으로 OECD 평균 25%에 크게 떨어진다. 무엇보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산층을 비롯한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사회 복지가 확대된다면 세금을 더 낼 뜻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 비율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가 투지만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패러다임 전환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노파심이었을까, 일찍이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충고한 지눌은 그 말 바로 뒤에 한 문장을 더했다. ‘이지구기 무유시처야(離地求起 無有是處也).’ 무슨 말인가. 넘어진 그 땅을 떠나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노무현이 넘어진 곳, 바로 그곳이 문재인이 일어설 곳이다. 고려 시대의 한가한 법문이 아니다. 진보 진영이 참여정부에게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인 것은 반대쪽에서 참여정부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인 것과 매한가지라는 식의, 안이한 인식으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날 선 경고다.  


글·손석춘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1991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자리를 옮겨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