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앞에 무너진 ‘스웨덴식’ 교육 모델

2018-08-31     비올렛 고아랑 | 프리랜서 기자

스웨덴 의료교육의 민영화는 1991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당의 60년 집권을 마감하고 소위 ‘부르주아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민영화의 기초는 좌파정부 시절부터 이미 닦여져 있었다. 1980년대 말, 정부는 민간기업에서 만들어낸 경영도구와 실행방법을 국가행정에 도입하고 강력한 지방분권화를 추진하면서 (공적 업무의 영리성을 강조한), 이른바 ‘신식 공영(公營)기법’을 실행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989~1991년 교육부 장관을 지낸 사회민주당 소속 예란 페르손이 발의해 1989년 통과된 지방자치단체 책임 교육제도로, 정부 주도형 공공교육서비스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 제도로, 교육예산 배분과 교육기관 관리 책임이 중앙정부에서 290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 당시 교사들은 파업으로 맞섰지만, 결국 그들은 정부 소속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으로 강등됐고 교사채용의 열쇠는 교육기관으로 넘어갔다. 스웨덴의 국가교육청인 스코베르케트(Skolverket)가 여전히 국가차원의 교육계획(레로플란)을 수립하고 전국연합시험의 주제를 결정하고 전국단위 통계를 내고 있지만, 교육기관 규모에 관한 기준이나 우선 지구 지원 등의 국가규정은 폐지됐다. 

한편, 1980년대부터 ‘선택의 자유’에 관한 논의가 줄곧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온건당(보수 성향)의 열혈당원이자 칼 빌트 당대표의 측근이었던 페예 에밀손은 굴지의 마케팅업체인 크레아브를 운영하면서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그리고 소위 ‘독립적’ 교육기관인 자율형사립학교의 장점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현 교육개혁안의 설계자로 알려진 에밀손은 1999년 쿤스캅스콜란 그룹을 설립했다. 그의 친구인 칼 빌트는 1991년 10월에 총리로 취임한 바 있다. 부르주아 정당(온건당) 연합의 수장인 빌트는 1992년 자율형사립학교 도입안(프리스콜레포르멘)과 거주지 중심의 학교 배정제도 폐지안을 표결에 부쳤다. 

1994년 가을, 다시 정권을 잡은 사회민주당은 교육기관의 자율성을 높은 강도로 규제했지만, 개혁안 자체를 재고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당시 재정부 장관이던 (그리고 1996~2006년 총리를 지낸) 요안 페르손의 지지에 힘입어 교육 바우처에 지출된 금액은, 공립학교에 지출된 교육비를 100%로 봤을 때 85%를 넘어섰다. 비영리재단이나 협회도 자율형사립학교를 운영할 수는 있었지만, 영리 목적의 자율형사립학교의 수가 증가했고 관련 분야의 대기업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자유당 소속 얀 비에르크룬드가 2011년 추진한 교육총괄계획에는 “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학교의 사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같은 해, 친기업 성향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SNS는 교육민영화가 교육의 품질과 효율성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1) 이 보고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SNS의 대표는 보고서 담당 연구원 두 명의 사직을 종용하는 등 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신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의 형편없는 결과가 다시 스웨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스베리예 우트빌드님스라디오(UR) 교육문화공영라디오방송은 ‘세계 최악의 학교’라는 연속기획물을 방송했다. 정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학교감독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방안을 내놓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프리스콜레포르멘을 적극 지지했던 환경당이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저희의 정책이 학교의 질을 추락시켰습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교육의 상품화가 금지 대상이 아니다?

2013년, 덴마크 벤처캐피털 회사가 운영하던 JB 에듀케이션 그룹이 파산하면서 학생 1만 1,000명과 교직원 1,600명 이상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그러자 공적자금이 투입된 자율형사립학교의 향방에 관한 논의가 수없이 이뤄졌고, 2014년 선거에서는 이 사안이 핵심 공약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공공기금이 투입된 의료·교육 분야에 대한 민간기업의 수익추구를 금지하는 안을 제안한 당은 좌파당과 극우성향의 민주당뿐이었다. 사회민주당과 우파연합은 여기에 반대했다. 선거가 끝나고 좌파당은 사회민주당이 환경당과 연합한 정부에 동참하지는 않겠지만 교육 민영화 관련 정책을 재고한다면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9월 선거를 앞두고서야 아달란 세카라비 공공행정부 장관(사회민주당)이 해당기업들의 수익상한선을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교육을 상품화하는 민영화의 흐름을 막으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수익추구 자체를 금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한을 두자는 거죠”라면서 “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수익제한제도 도입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로비가 이뤄지고 있어요. 심지어 이제는 극우당 사람들도 교육 분야에서의 수익추구를 옹호하고 나섰습니다”라고 세카라비 장관은 설명했다. 

2018년 6월 7일, 자연스럽게 이 자율형사립학교 도입안은 의회에서 부결됐다. 환경당과 사회민주당, 좌파당은 139표로 법안에 찬성한 반면, 극우당과 연합당(우파 성향)은 162표의 반대표를 던졌다. 페르손은 “이런 교육모델을 선택한 국가는 없다”면서 “스웨덴의 교육제도가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입니까?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라고 SNS에서 분노를 토했다. 그러나 요나스 셰스테트 좌파당 대표는 “사회민주당이 정권쟁탈전을 벌이면서 ‘신식 공영기법’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해 시장에 힘을 실어줬다”라고 사회민주당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사회민주당의 이중적인 태도는 2015년 처음 드러났다. 그해 봄, 마르고 발스트룀 외교부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세식 독재국가”로 폄훼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외교 분쟁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오스카르 스텐스트룀 외교부 사무차관이 군수업체 사브 AB, 중장비업체 볼보, 쿤스캅스콜란 등으로 구성된 기업대표단을 이끌고 리야드를 방문했다. 그는 “스웨덴이 혁신과 지식을 수출한다”면서 뿌듯해했다. 그리고 이듬해, 쿤스캅스콜란 그룹은 지다(사우디아라비아 중서부 도시)에 첫 번째 학교의 문을 열었다고 발표했다. 

세실리아 카르네펠트 쿤스캅스콜란 그룹 CEO는 “쿤스캅스콜란 에듀케이션(KED)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홍보하고 있다”면서 “파트너십 형성을 위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그룹은 영국에 진출한 뒤, 뉴욕에서는 실패한 데 이어 인도와 네덜란드에도 학교를 열었다. “지다와 리야드에 학교 세 곳을 추가로 열게 될 것”이라면서 “벨기에에서도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카르네펠트 CEO는 전했다. 

쿤스캅스콜란 소속 외국인 학생 수는 벌써 5,000명에 이른다. 카르네펠트 CEO는 쿤스캅스콜란의 영리성 교육모델을 비판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몇 백 크로나(스웨덴 화폐, 1크로나=0.09유로)로 더 많은 학생들이 쿤스캅스콜란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 왜 비판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공적자금 “몇 백 크로나” 덕분에 쿤스캅스콜란은 2016년 순수익 200만 스웨덴 크로나(약 20만 유로)를 올렸다. 

드로트닝-블란카 고등학교가 속한 아카데메디아 그룹의 경우에도 노르웨이에 에스피라 초등학교, 독일에 요시 초등학교와 스테프셰 초등학교를 소유하고 있고 해외시장을 확장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학교와 성인교육기관 ‘브랜드’ 36개에 소속된 학생 수 약 6만 6,000명을 자랑하는 아카데메디아 그룹은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게다가 2016~2017년 총매출액 10억 유로, 영업이익 약 4천만 유로를 기록하며 점차 편중돼가는 이 분야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상황에서, 쿤스캅스콜란의 모기업 망노라의 이사진에 칼 빌트가 있다는 사실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의 친구인 에밀손은 교육개혁의 아버지로서 1992년 교육분야에서의 수익 추구에 반대한다고 밝혔으나, 2017년 3월 전국지 <다옌스 니헤테르>에 “교육기업은 자연스러운 스웨덴식 모델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2)을 실었다. 그의 발언에서 복지국가라는 명목으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전통을 지닌 스웨덴에 시장논리가 침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글·비올렛 고아랑 Violette Goarant
기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1) ‘Privatiseringar i välfärden har inte ökat effektiviteten(보건복지 분야 민영화, 효율성 개선 효과 미미)’, <Dagens Nyheter>, 스톡홀름, 2011년 9월 7일.
(2) Peje Emilsson, ‘Aktiebolagsskolor naturlig del av svenska modellen(교육기업은 스웨덴식 모델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Dagens Nyheter>, 2017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