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중 - 미 무역 전쟁의 진짜 이유는?
2018-09-28 마르틴 뷜라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트럼프가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더 나아가 유럽과 반중 연합전선을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경제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실크로드’ 등 새로운 판로개척에 힘쓰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을 막을 길이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것을 훔쳐 간다”(2017년 4월 18일)며 먼저 중국을 협박했고, 이에 맞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우리가 자국에 손해가 되는 쓴 열매를 삼키리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할 것”(2017년 10월 18일)이라고 경고했다(1). 언쟁은 순식간에 보복관세로 번졌다. 미국은 중국제품에 대해 관세를 10%에서 25%로 인상했고, 중국도 맞불 작전에 나섰다.
봄에 시작된 무역전쟁 드라마는 여름 내내 이어졌고,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8월 말, 미국은 1,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철, 알루미늄, 화학제품, 섬유, 전자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서 중국은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콩, 돼지고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다. 복수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중국제품 1,300개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규모가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참고로 2017년 중국 대미 수출액은 5,056억 달러). 이에 중국은 미국제품 150개를 대상 품목으로 정했는데, 그 규모는 600억 달러다(참고로 2017년 미국 대중 수출액은 1,280억 달러).
“중국은 미국 엘리트층의 반중감정이 고조될 가능성을 간과한 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급습에 허를 찔렸다”고 익명을 요구한 중국 및 홍콩 관계자들이 말했다. 한 미국 정치인은 “중국이 미중 수교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같은 정치엘리트와 월스트리트만으로 미국 정치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상 이들은 트럼프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고 지적했다.(2)
“무역전쟁을 원치 않지만,
맞설 힘은 있다”
시진핑 주석 측근인 류허 부총리가 중국 교섭단을 미국에 보낼 때만 하더라도 5월이면 합의를 볼 것이란 기대감에 중국은 에너지 및 농산물 수입을 늘렸고, 외국기업(물론 미국기업)의 중국시장 진출 장려를 약속했다. 그러나 대처는 너무 미약했고, 너무 늦었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는 “트럼프는 합의하길 멈췄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가 중국의 부상을 멈출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인상을 중국에 심어주기 충분했다.(3)
이 같은 감정이 중국 엘리트층에 확산됐고, 다들 쉬쉬하며 ‘우리 미국 친구를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논의했다. 베이징 인민대학의 스인홍 미국학과장은 두 국가가 대립하게 된 데는 “수년간 손을 놓고 있던 중국의 탓이 크다”며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조언했다.(4)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다음과 같이 논설했다. “미국은 당분간 중국에 대한 견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저자세를 취하고 외교적, 공적 입장을 바꾼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5) 그리곤 중국 개혁의 아버지 덩샤오핑의 원칙을 인용,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릴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시진핑 주석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하게 국제사회 전면에 나서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양국 간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8월 말, 왕서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협상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무런 기대도, 결과도 없었다. 왕 부부장은 미국 관계자들에게 ‘무역 깡패’ 취급을 받더니, 결국 협상에서도 이렇다 할 역할을 못 했다.
시진핑 주석의 경제고문인 위판딩은 “현재 미국의 공격적 태도를 보면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이 당시 세계 2위 강대국 일본에 공격적이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산 TV, VCR 등에 100% 가까운 관세를 물리는 등 터무니없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금리 상승을 부추긴 결과, 결국 일본의 무릎을 꿇려버렸다. 일본이 경기침체에 빠져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시나리오다. “우리는 무역전쟁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위판딩 경제고문은 확신했다.
과거 일본이 그랬듯, 중국도 오래전부터 성장 동력인 수출에 집중했다. 1970년대 말 마오쩌둥 시대의 침체기에서 벗어나고자, 공산당 지도층은 여러 수단을 재량껏 활용했다. 통솔하기 쉬운 저임금의 숙련된 인력들, 새로운 시장을 쫓는 외국자본들, 구세계의 보호주의 빗장을 벗겨버리고픈 국제기관들을 말이다. 2017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은 말했다. “중국이 2001년에 WTO 가입을 망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시장이라는 망망대해를 과감히 헤엄쳐가기로 했고, 결국 수영하는 법을 터득했다.”(6)
그렇게 중국경제는 신속하고 능숙하게 프랑스,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을 차례대로 넘어섰다. 2016년 중국 GDP는 11.2조 달러를 기록했다. 참고로 미국은 18조 5,690억 달러였다. 중국이 언젠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미국에서조차 들려온다. 트럼프도 “러시아에만 집중했던 모든 바보들은 이제 중국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7) 지난 8월, 트럼프가 선공을 날렸다. 미국 의회가 국방수권법안을 채택한 것이다(국방수권법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대응책을 주된 전략으로 삼고 있다-역주). 이로써 “중국은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됐으며, 이를 위해 여러 요소들, 특히 외교, 경제, 군대, 정보를 통합할 필요”가 대두됐다.(8) 이제 무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미국이 기술, 경제, 외교,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우월하단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하고 있더라도 1인당 GDP는 미국의 1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직은 미국의 담력을 시험하는 수준이다. 한편, 중국의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치인 2,760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무역흑자의 35~40%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국 산업은 수년 전, 아니 수십 년 전부터 ‘불공정 경쟁’의 공격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공장과 용광로가 폐쇄되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트럼프는 분개했다.(9)
중국이 세계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미국의 탈산업화가 시작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유럽과 아시아처럼 미국에서도 절망과 분노만 남은 국민들은 권위적인 정치인과 극우 후보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잘못된 진단을 내리면 안 된다. 중국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물론 WTO에 접수된 요청 사례들을 보면 전혀 아니진 않지만). 중국인 8억 명의 극빈층 탈출 등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길 좋아하는 중국은 미국을 선두로 한 강대국들이 만든 규정들을 유리하게 활용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서방국 지도자들에게 그들 국가의 시장을 전 방위로 개방하고, 오프쇼링을 확대하고, 다국적 기업들(현재 중국으로 몰려갔다)의 압력 하에 정부의 경제 개입 수단을 하나둘씩 없애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산 수출품의 42.6%는 외국기업이 생산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획에서부터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통제하며, 사상 최고의 수익을 긁어모으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애플사의 아이폰이다. 비록 공장은 중국에 있지만, 각국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미국이 28.5%인 반면 중국은 3.8%에 불과하다.
물론, 중국 지도층은 외국기업들에게 기술을 일부 이전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라고 압박했다. 특히 항공, 전자, 자동차, 초고속열차, 핵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말이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압력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값싼 인력을 마음껏 착취하고 환경오염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됐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중국정부가 심각해지는 격차와 오염 문제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반복해서 내비쳤던 불만들 중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은
무역으로 길들일 수 없다”
경제학자 브래드 W. 세스터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은 무역으로 길들일 수 없다. 국가의 유일한 정당인 공산당은 언제나 중국경제에 굳건한 통제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이 골치가 아픈 것이다.(10)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 대국들이 마음대로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철강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물론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 텐센트, 웨이보, 위챗 등 중국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했고, 공산당 지도층은 반대세력을 검열하는 데 그 기술을 사용했다.
8억 200만 명의 인터넷 사용자(중국 인구의 57.7%에 해당)와 관련 메타데이터는 GAFA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GAFA의 영향력을 벗어난 몇 안 되는 국가로 남았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보루인 실리콘 밸리가 트럼프 지지기반인 ‘러스트 벨트’ 및 거대 철강업체들과 공동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 정부의 “고위공직자들 여럿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11) 고위공직자 중에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 일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현 무역대표부 대표도 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성난 노동자들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비록 저가 수입품 반대시위의 이득을 본 노동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찬양하던 FTA는 전 세계 근로자 수백만 명을 위태롭게 만들었고, 전례 없이 심각한 환경쓰레기를 배출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주창하는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시민의 삶을 대폭 바꾸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무역전쟁이라는 힘겨루기의 승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다.
로렌스 커들로 백악관 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중국이 결국 트럼프의 명령에 굴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에 의하면, 중국 경제는 현재 폭발 직전이다. “중국 소매업과 투자시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국무회의에서도 말했다.(12)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을 뒷받침할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의 2018년 7월 수입액이 전년 대비 27.3% 증가한 것만 봐도 교역이 여전히 활발한 것을 알 수 있다. 수출도 전년 대비 12.2% 증가했는데, 이전보다 상승세가 낮지만 여전히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국 간의 충돌은 역시나 상처를 남겼다. 중국 수출의 20%를 미국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미 수출의 급격한 감소는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전자, 섬유뿐 아니라 철강, 화학 등 설비과잉 상태였던 분야의 생산량이 감소했다. 이 때문에 이미 진행 중이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막대한 피해와 함께 사회운동이 발발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8월 말, 리커창 중국 총리가 무역제재로 피해를 본 기업에 1,0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경제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 위험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질적 경제성장과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중국의 2018년 2/4분기 성장률은 6.7%로, 공식 예상치였던 6.5%보다 높다. 이는 매우 정치적인 수치로, 노동시장에 밀려드는 인력을 흡수하고 대규모 사회갈등을 모면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한편, 수출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의 성장동력 역할을 못 하게 됐고, 대신 국내소비와 투자가 그 바통을 이었다(각각 GDP의 43.4%, 40%). 시진핑 주석에게는 사업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기계를 재가동시킬 수단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2007~2008년 경제위기 때 전임자가 예산을 대폭 쏟아부었던 것과 같은 방법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당시 심각한 혼란과 과도한 채무가 발생해, 현 정권이 여전히 뒷수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1980년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13억 인구의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트럼프와 그의 고문들은 이를 절대 망가뜨릴 수 없다”고 한 중국 경제학자는 강조했다.
시진핑의 두 번째, 세 번째 무기는?
시진핑 주석에게는 불경기를 타파할 두 번째 무기가 있다. 바로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다. 혁신산업을 육성하고 10대 분야(IT, 로봇공학, 항공·우주학, 해양공학, 전기자동차, 생물의학, 신소재, 에너지 등)의 자립성을 키우기 위해 3년 전 발표했다. 여기 투자된 연구개발비만 현재 GDP의 2.3%를 넘어섰다. 중국 정부는 해외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미래기술의 습득 기한을 앞당기길 바랐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표를 던졌고, 독일을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들은 제재조치를 발동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유지할 자금은 충분하다. 떠들썩한 발표는 없었지만, 위판딩 경제고문의 설명에 의하면 그렇다. “전기제품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는 중국 지도층에게 일종의 경고였다. 중국은 미국산 반도체의 세계 최대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중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최고로 좋은 가격에 말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자국 경제를 재활성화한다는 계획 이외에도 사실상 두 가지 목표가 더 있다. 아무 구속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율성과 세계의 지지, 특히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특허 기술과 “달러의 과도한 특혜”(1964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이용해서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들을 제재하고 고립시키고 있다. 이 방식은 결국 기업들이 의존관계의 덫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양자금융협정에 따라 위안화를 사용해서 이란과 계속 교역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위안화의 세계화 정책 없이는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 출신 국제관계 전문가는 말했다.(13)
그러나 중국의 거대 은행들 대부분이 여전히 달러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이 반대하는 국가에 수출하는 제품의 경우, 트럼프의 제재를 피하려면 미국산 부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중국 통신업체 중신통신(ZTE)도 이란, 북한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당하곤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미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14) 중국의 애국주의 지도자들 입장에서 이런 제한적인 주권은 용납하기 힘들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십중팔구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미국은 이 프로젝트에서 중국의 위험한 “자급자족을 향한 의지”와 “미국이 주창하는 국제적 가치와 기준에 도전하는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미국외교협회 아시아연구책임자인 엘리자베스 C. 이코노미는 말했다.(15) 단순한 무역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왕룡 북경대 국제경제정책연구원장은 그녀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중국의 발전모델과 철학이 미국에 반한다는 주장은 큰 의미가 없다. 중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외부에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각국의 자체적인 성장모델을 추구할 권리를 지지한다.”
확실히 중국은 메시아적인 야망도 없거니와 중국의 정치모델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미국, 세계은행, IMF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정한 규칙들을 뒤집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 6월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개혁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이 점을 확실히 했다.(16)
여기에 중국이 미국의 금수조치에 대항할 세 번째 무기가 있다. 미국 이외의 다른 파트너들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특히 이웃국들을 우선적으로 말이다. 이들 대부분이 중국의 위력과 경제적 취향을 꺼리면서도 중국시장을 필요로 한다. 아시아 역내 교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43%에 달한다.(17) 게다가 트럼프가 일으킨 제재열풍 가운데 일본과 한국 제품(철강, 자동차 등)에 과세를 매김으로써 오랜 동맹국까지 건드린 것이다. 중국으로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재개할 좋은 기회다. 버락 오바마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트럼프가 철회시켜버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항할 수 있는 무역협정으로 아세안 10개국(18)은 물론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한국까지 포괄한다.
호주국립대의 시로 암스트롱 호주-일본 연구소장은 “아시아 동맹을 구축할 자연스러운 기회”라고 봤다. “이 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핵심적인 경제를 보유하고 있다. (대공황 때처럼) 글로벌 관세율이 15% 오른다 하더라도, RCEP 회원국들은 역내 관세를 폐지하면서 몸집을 키워나갈 것이다”라고 한 호주 연구결과를 토대로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호주가 5G 통신망을 설치하기로 했던 ZTE를 퇴출시킨 것을 보면, 모든 회원국이 준비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도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대화를 재개했고, 한국은 북한과의 협상의 지지자를 찾는 중이고, 인도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방글라데시, 베트남, 남아공으로 이전하기 시작한 것은 낮은 인건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금수조치와 높은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중국 기업이 자본을 투자했지만, ‘메이드인 방글라데시’, ‘메이드인 베트남’, ‘메이드인 남아공’이라고 찍혀서 나오기 때문에 미국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실크로드’는 육로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지나거나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를 거치면 유럽까지 이어지므로, 명실상부한 판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인프라 구축사업을 크게 벌일 수 있다. 수완이 좋은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해, ‘역사적’ 판로를 구축하는 다자간 협력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 한국 등 57개국이 AIIB 회원국으로 참여할 정도니, 중국이 재정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고립될 위험이 거의 없다. 중국은 무엇보다 구소련처럼 미국과 정면 대립하는 구조에 고착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중국은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미국산 곡물, 돼지, 소고기 등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미국 농가도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는 12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국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했다.(19) 때마침 중국은 방글라데시, 인도, 한국산 콩에 대한 관세를 전면 폐지했고, 브라질 및 호주산 소고기와 곡물을 수입했다. 알다시피 한번 놓친 손님은 다시 잡기 어려운 법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침략자 중국에 맞선 백악관의 십자군 원정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국 행정부에는 중국도 결국 멕시코처럼 굴복할 것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멕시코는 미국이 내건 제약적 조건들을 수용했고, 특히 자동차 수출기업의 최저임금을 16달러로 설정하는 데 동의했었다.(20) 그러나 아무리 적용범위가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자유무역협정에 이런 사회적 조항이 들어간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월마트는 미국 내에서 80% 가까이 자족하지만, 다른 유통업체들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8월 말, 미국에 회동한 유통업체 대표들은 “(중국산 소비재에 대한)관세가 우리 산업에 재정적 혼란을 초래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21) 진부한 주장이지만, 어쨌거나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결정들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미국의 구매력이 크게 상승하거나 특히 공장들이 미국 본토로 돌아와야 하는데, 둘 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섬유 및 의류 업체들은 이미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른 지역을 물색했다.(22) 다만, 특수강을 사용하는 등 특수한 경우에는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다.
무역전쟁의 최대 패자는 미국과 중국 시민이다. 트럼프의 측근들은 중국이 약화되길 원하고, 시진핑 주석의 측근들은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미국이 협상테이블로 복귀할 것으로 믿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인 반고지고(盤古智庫, Pangoal Institution)의 안강 연구원은 양국의 알력다툼이 무역전쟁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분쟁은 군사적,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23)고 말했다.중국 지도층은 무역분쟁이 현재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남중국해 및 타이완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중국이 구축해온 생산의 국제화 및 전문화 모델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식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이들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이들도, 그리고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이들도 기존의 것을 대체할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에 문이 열린 셈이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Texte intégral du rapport de Xi Jinping au 19e Congrès national du PCC’, <Xinhua> 프랑스어판, 2017년 11월 3일, http://french.xinhuanet.com
(2) Wendy Wu, Kristin Huang, ‘Did China think Donald Trump was bluffing on trade? How Beijing got it wrong’,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 2018년 7월 27일.
(3) ‘China, unsure how to handle Trump, braces for “New Cold War”’, <Bloomberg News>, 뉴욕, 2018년 8월 17일.
(4) Ibid.
(5) <Éditorial de Global Times>, 베이징, 2018년 7월 15일.
(6) 시진핑 주석의 다보스 경제포럼 연설, <CGTN>, 2017년 1월 17일.
(7) Twitter, 2018년 8월 18일.
(8) ‘John S. McCain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for fiscal year 2019’, Congrès, 워싱턴, 2018년 8월 13일, www.congress.gov
(9) Twitter, 2018년 3월 1일.
(10) Gordon Watts, ‘China caught off guard as US trade war highlights Beijing’s dilemma’, <Asia Times>, 홍콩, 2018년 7월 31일.
(11) Jim Tankersley, ‘Steel giants with ties to Trump officials block tariff relief for hundreds of firms’, <The New York Times>, 2018년 8월 5일.
(12) ‘Transcript of 8/16 Trump cabinet meeting: economic policies matter’, <RealClear Politics>, 2018년 8월 16일, www.realclearpolitics.com
(13) Yifan Ding, ‘Bientôt des yuans dans toutes les poch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7월호.
(14) Ridha Loukil, ‘L’équipementier chinois ZTE placé sous tutelle américaine’, <L’Usine nouvelle>, Antony, 2018년 7월 17일.
(15) Elizabeth C. Economy, ‘China’s new revolution’, <Foreign Affairs>, 뉴욕, 2018년 5~6월.
(16) ‘Xi urges breaking new ground in major country diplomacy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Xinhua>, 2018년 6월 24일, www.xinhuanet.com
(17) ‘Examen statistique du commerce mondial 2018’, <WTO>, 제네바, www.wto.org
(18) 미얀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19) Jesse Newman, Heather Haddon, ‘US to pay farmers $4,7 billion to offset trade-conflict losses’, <The Wall Street Journal>, 뉴욕, 2018년 8월 28일.
(20) 자동차 부품의 40%를 최저 시급 16달러 이상을 주는 사업장에서 생산해야 한다.
(21) Owen Churchill, ‘US trade panel hears harsh criticism of proposed new tariffs-and praise for Chinese craftsmanship’, <South China Morning Post>, 2018년 8월 21일.
(22) ‘Fashion retailers turn to Cambodia and Vietnam as tariffs hit China’, <Bloomberg News>, 2018년 8월 20일.
(23) ‘China, unsure how to handle Trump, braces for New Cold War’,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