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횡포에 맞서는 유쾌한 상상

2018-09-28     실뱅 르데르 | 경제사회학 교수, 르노 랑베르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기자

정부를 장악한 금융권에 대해 분석한 지난 기사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정부(18년 8월호)’에 이어, 이번에는 금융권에 맞서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심각한 위기에 부딪힌 프랑스가 시장과의 전투를 개시하게 되는 가상의 상황을 가정하고, 시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작전을 구상해본다. 물론 이에 수반되는 비용도 함께 고려할 것이다.

 
1997년 12월, 당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이었던 이냐시오 라모네는 ‘시장의 무력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융권과 국민주권 간의 반목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최근 이탈리아, 터키, 아르헨티나 등에서 나타난 경제적 혼란은 이를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1) 하지만 시장을 무력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메두사의 저주 같은 위험에 처하고 말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는 헛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살고 있던 코린토스를 떠나지만, 결국 친부를 죽이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오래전부터 좌파 경제학자들은 좌파진영이 정권을 잡아 정책시행을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곧바로 ‘시장권력’과의 전투를 개시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시장 불안정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그 결과에 대한 고민을 미룬다면 이는 운명을 피해 부질없이 도망치는 현대판 오이디푸스와 다름없다. 2015년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갑작스러운 항복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시도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뿐이다.
 
시장과의 전투, 완력은 불가피하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메두사의 저주에 빗대어볼 수도 있다. 용기를 내 메두사의 눈을 쳐다본 사람들은 결국 돌이 되는 저주에 빠지고 말 듯, 금융권이라는 메두사를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여러 정치 조직과 기관들이 전문성을 구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금융권을 무너뜨리려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그 순간 전부 무력화돼버리기 때문이다. ‘시민활동을 위한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은 그들이 ‘행동백서’로 제시하고 있는 『위기 이후 10년, 금융을 통제하라』(2018)를 통해 2008년 시장붕괴 당시 금융권이 어떻게 이 사회를 인질로 삼았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금융권의 방해요소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던 저자들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대책을 논하는 부분에 이르자, 돌연 손에 들었던 날카로운 메스를 내려놓고 빛나는 별 조각들을 흩뿌리기 시작한다. “현실적 유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잠시 꿈을 꿔보자”면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수동태 문장들을 늘어놓는다.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이 축소되고 (…) 헤지펀드가 금지되며 (…) 단기적인 금융시장전략이 포기되고 (…) 국제적 논의를 통해 채무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위협을 가하던 메두사가 갑자기 죽어버린 셈이다. 누가 어떻게 메두사를 죽였단 말인가?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오이디푸스처럼 도망치지 않는다면 어떨까? 메두사의 두 눈을 대담하게 쳐다본다면 어떨까? 물론 언제나 시장에 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기에, 역사 속 경험들을 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살펴보며 승리에 대한 기대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언제나 지금과 같은 역학관계를 재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투자자들도 과거 자신들이 일으킨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유해성을 키워온 듯하다. 결국 시장을 꺾었던 과거의 승리를 논한다고 해도 그런 승리가 아직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상력을 발휘해 시나리오를 그려보고자 한다. 각종 변수를 배제해 시장과의 전쟁이라는 논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보자. 즉,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배경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중대한 위기가 찾아오면 프랑스의 정치계는 크게 동요할 것이다. 국민들은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의지를 가진 결단력 있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총선에서도 해당 진영이 안정적인 다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 주위에는 의지할 수 있는 성숙한 정당들이 있고, 변화에 저항하는 고집 센 고위층을 대체할만한 유능한 관료들도 포진해 있을 것이다. 
또한 민중들은 거리로 나와 반대 세력의 음모를 비판하며 마치 축제를 벌이듯 집결할 것이다. 민영방송들은 신뢰를 잃어 제대로 된 반대파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정권에 대해 적대감을 보일수록 국민들의 결정을 더욱 확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군과 경찰 역시 원칙주의를 고수하며 쿠데타의 위험을 제거할 것이다. 비록 현실은 나이프로 그린 듯한 느낌일지라도, 그 취지와 배경은 수채화 같은 분위기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상상 속의 진보정권은 보기 드문 완력을 사용해 전투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공약을 지키겠다는 결의만으로도 전쟁을 선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2)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진보 지도자는 결의를 다지는 즉시 시장, 나아가 모든 자본 세력의 적대적인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라며, “이런 반발에 맞서 정부는 물러서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급진적인 대응책들로 구성된 에스컬레이션 전략으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같은 시장과의 전투는 비용을 수반한다. 하지만 분명 금융과두제가 막아온 여러 변화를 가능하게 바꾸어놓을 것이다. 이를테면 경제 불안정, 생산성 경쟁, 무분별한 천연자원 고갈, 광적인 소비,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으로 얼룩진 일상, 불균형 심화 등이 끝을 맺게 되는 셈이다. 로르동은 “문제는 반감의 정도를 잘 헤아려야 한다는 점이다. 반감을 직면해야 할뿐더러 한 번 전투를 시작하면 그 후에는 멈출 수 없다. 점진주의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시나리오를 더욱 끌어가기 위해 세 전문가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이들은 앞서 소개된 프레데리크 로르동과, 프랑스 현재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자 파리 8대학의 유럽학연구소 부교수이며 과거 미국 신탁은행 대표, 뉴욕에서 국고 재무관 등을 역임한 자크 니코노프, 그리고 파리 13대학의 금융경제학 교수 디모니크 플리옹이다.(3)
 
신속 대처해야 할 필수적인 세 가지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시장에는 제재가 형성될 것이다. 투자자들이 국채를 처분하려고 하면서 프랑스의 스프레드가 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4) 또한 프랑스 정부가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을 약속한 뒤에는 자산가들이 우려를 보이며 재산 일부를 해외로 빼돌리려고 할 것이다. 결국 투자자들과 자본의 유출은 프랑스의 지불능력을 위협하고 국제수지를 악화시키게 된다.
이쯤에서 유럽연합이 등장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프랑스에 대해 정치적 차원의 성명을 수차례 발표할 것이다. 실제로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지난 2015년 “유럽연합조약을 벗어난 민주적 선택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르 피가로>, 2015년 1월 29일 자). 유럽연합 조약에 어긋날 경우 각종 제재 위협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1997년 채택돼 재정적자와 공공부채의 규모를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3%와 60% 이하로 제한하고 있는 유럽의 ‘안정 및 성장 협약’의 행동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의 경우와 달리 프랑스의 위기는 곧 모든 유로존 국가들을 위협하게 된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프랑스는 마치 구멍이 잔뜩 뚫린 뜰채와도 같다. 모든 구멍마다 프랑스 안에 있던 유로가 새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유럽연합조약을 통해)되고 있는 만큼 프랑스 밖으로 화폐자산이 빠져나갈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정부명령을 사용해서라도 정상적인 법적 절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단기적 투기성 자본인 ‘핫머니’ 차원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이 돈은 투자 기회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여기서도 정부의 정치적 노선에 겁을 먹은 돈들이 전광석화처럼 프랑스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므로 결국 프랑스의 통화 보유량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로르동은 “1997~1998년 위기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용했던 것처럼 ‘예금’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프랑스로 들어오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본에 대해 담보성 예금(총금액의 약 1/3)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런 예금은 특정 조건에서만 인출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해당 자본이 프랑스 내에 최소한의 시간(1년 정도로만 설정해도 지금처럼 평균 몇십 분 동안만 머무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동안 머물러 있었어야 한다. 이는 생산투자나 수출입에 속박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투기 활동을 제한할 방법이다.
다음으로 최부유층 자산가들이 대거 프랑스 국경을 벗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자본 통제’의 도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 통제는 초안에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출혈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니코노프는 “자본 통제라는 장치는 이미 프랑스에서도 1939~1967년, 1968~1989년에 사용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도 2001년 위기 당시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자본 통제란 ‘규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이 은행 창구에서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이나 가계 차원의 자산요청도 사용처에 따라 통제할 수 있다.
프랑스 경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세 번째 자본 유출 요소는 국채 문제다. 니코노프는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국채에 대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플리옹은 “2014년에도 국민감사단(CAC)이 조직됐던 것처럼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국민 감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 국회의원 및 사회 주요 인사들로 구성될 감사단은 프랑스의 국가채무가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GDP 대비 60%에서 100%까지 급증한 데에는 금융위기의 영향이 크므로, 국채상환액의 많은 부분이 부당하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즉, 이런 채무를 상환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CAC도 프랑스의 국채상환액 중 59%는 상환할 필요가 전혀 없는 금액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어가기 쉽지 않은 시나리오다. 로르동 역시 “프랑스의 국가채무가 2조 유로를 넘어가고 있는 만큼 모라토리엄이 선언될 경우 거대한 구조적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의 소버린 리스크를 지게 된 해외(또는 국내) 투자자들은 불안정에 빠지게 된다. 이는 모든 분야에 혼동을 일으킬 것이고 은행들이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로르동은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프랑스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한 조건에 맞게 상환을 이행할 것이며 시장에 추가적인 채무를 지지 않을 것이라고 채권자들에게 미리 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 혼란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둔  뒤 이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힘을 잃고 파산하게 된 은행들을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이 선택지의 경우 시장과 맞서 싸우는 시나리오인 만큼 신용체제의 국유화 전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니코노프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관계가 순식간에 역전된다는 점이다. 더 이상 정부가 투자자들의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닌, 오히려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투자자들 사이에 선을 그으며 불확실성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투자자 간의 연합전선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채무를 상환받을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 기준도 정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금융권을 약화하려면, 중심축을 붕괴해야
 
그런데 프랑스라는 거대한 뜰채의 구멍을 메우고 나면 유로의 유출을 막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채워 넣을 수도 없게 된다. 자본을 회수해갈 수도 없는 곳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모라토리엄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재정적 유동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이것으로 본원적 재정적자(정부 세수에서 지출을 뺀 금액)를 메우기는 역부족이다. 2017년 기준 채무상환에 쓰인 금액만도 420억 유로를 넘고 있으며, 150억 유로에 달하는 본원적 재정적자가 추가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 급여 지급, 학교 시설 유지보수 등을 위해서는 더 큰 유동성을 갖춰야 한다. 즉, 로르동은 묶여있던 시장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장이 아닌 정부에 의한 자금조달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면서 “시장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이는 매우 기본적인 논리”라고 강조했다.
플리옹은 “프랑스 정부는 가장 먼저 유럽중앙은행(BCE)에 국채매입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헛된 시도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 중앙은행의 결정과 상관없이 독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는 “이 경우 프랑스는 유럽중앙은행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국의 중앙은행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니코노프 역시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국의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왔다. 은행들은 정부에 시장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줬고 때로는 제로금리를 적용했다. 심지어는 비상환 채무를 지급하기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앙은행 총재가 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정부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플리옹은 “이때는 권력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최소한의 걸림돌도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로르동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제경제와 국내경제의 구조는 연계돼 있으므로 금융권의 힘을 조금이라도 굴복시키려면 중심축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고 이는 과격한 조치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지금까지 오로지 금융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변적으로 적용되던 독립성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정부는 국내저축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리스에는 없었던 충분한 저축액은 정부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제2의 재원이 된다. 실제로 경제전문기자인 장-미셸 카트르푸앙은 2010년 기사(<라 트리뷴>, 2010년 12월 27일 자)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가계의 금융자산(부동산 제외)만도 3조 8천억 유로에 달하며, 그중 1조 3천억 유로는 생명보험의 형태다. 국가의 금융자산(부동산 제외)은 8,500억 유로, 주택자산(기업 제외)의 총액도 4조 6,500억 유로 수준이다. 반면 부채의 경우 가계부채는 1조 3천억 유로로 그 중 3/4이 부동산 대출이고, 정부의 공공부채는 1조 6천억 유로다. 합계를 내봐도 충분히 남는 규모다.” 
최근 공공부채가 2조 유로까지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논리는 바뀌지 않는다. 이 저축분을 끌어오기 위한 방법으로 니코노프는 양도불가능한 채권 발행을 제시했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사용했던 방법인데, 당시 디폴트(지불포기) 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단기차용증(IOU, ‘나는 당신에게 빚을 졌다(I owe you)’의 줄임말)으로 공무원 월급을 지급한 바 있다. 이렇게 지급된 단기차용증은 일반 국민들도 사용할 수가 있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정권을 잡고 있었던 때였다. 
니코노프는 다음과 같은 방법도 제시했다. “은행이나 보험사에 강제공채를 시행할 수도 있다. 즉, 해당 기관들이 국채 발행량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몰수적인 제도라고 봐야 할까? “현재 15개의 국내 및 국제 은행이 ‘국채전문딜러기관’(SVT)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프랑스 국채관리청과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국채전문딜러기관의 의무 중에는 국채 발행물량 중 최소 2%를 매입해야 한다는 사항이 있다. 각 기관이 2%씩을 매입하면 전체 국채의 30%에 해당한다. 이 의무를 전체 은행으로 확대하기만 하면 되는 셈이다.” 최종적으로는 강제공채의 대상 범위를 일반 가계에까지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플리옹 역시 “최악의 가뭄이 있었던 1976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는 국민들에 대해서는 타협불가능한 조건으로 정부의 채권을 매입할 의무를 부과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공공기관인 프랑스 신탁은행(CDC)이 자금을 유인하고 관리하기 위한 이상적인 역할을 제공할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얻은 재정 유동성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여러 사회정책을 시행할 수 있게 된다. 임금노동자에 대한 보호망 확대, 퇴직자 처우 개선, 그리고 추가 지출이 필요 없는 생활조건 향상(대중교통 무료화, 무상급식, 공공주택 공급 등)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책들이 바로 시행될 수는 없다. 상황이 안정되기까지는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실현할 효율적인 도구를 이미 쥐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금이다. 프랑스 정부는 비록 1970년대 이후 부유층 가구와 자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 제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여러 보수 정권이 높은 세율을 부과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었다면 각종 경제전문지에서 몰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법한 세제였다. 
미국의 경우도 1950년부터 1963년까지 백악관을 차지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케네디가 모두 90% 이상의 한계세율(가장 높은 세율로 부유층 가구의 최상위 소득 구간에만 적용)을 유지한 바 있다. 정권을 잡은 이가 레닌이나 체 게바라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프랑스 정부 역시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세제 개편을 통해 모든 소득 구간에 누진세를 적용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모든 조세지출과 세금 구멍들을 막을 것이다. 또한 사회연대세(ISF)도 누진적 성격을 띤 보다 강력한 제도로 개혁해, 국가자산의 47%를 보유한 상위 10%의 최고부유층의 경우, 자산 일부를 팔아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제, 은행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로르동 역시 “사실 이 모든 것이 사회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불안정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분명 일부 금융기관은 정부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투기 활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해 힘을 빼앗기고 마침내 존재이유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프랑스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정부가 필요로 하는 기관들을 국유화할 수 있게 된다. 플리옹은 “국유화 후에는 1981년의 사례처럼 금융기관을 정부가 직접 관리할 경우 사기업처럼 운영하게 되는 맹점을 피하기 위해 은행 이용자와 직원들로 이뤄진 집단에 운영권을 넘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원활한 화폐 유통을 위해 정부가 우체국망 등을 이용해 전국의 화폐보유량을 조절하는 권한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단일화폐제도도 흔들릴 것이다. 유럽연합조약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가로막는 그 어떤 구속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만큼(반면 이런 구속은 시장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의 신조나 다름없다) 프랑스는 이를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프랑스에서 시작된 경제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로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비교적 낙관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
먼저 비교적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프랑스의 정치적 변화가 다른 나라들에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비슷한 위기를 맞으면서 동일한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고 프랑스의 사례가 다른 정부를 자극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여러 국가들이 차례로 동요하게 될 것이다. 이 국가들과 함께 시장 장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각국 시장의 화폐를 보호할 ‘공동 화폐’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5)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프랑스의 결정을 보고, 모두 같은 속도로 영향을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프랑스 정부가 고립될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유로존에서 축출될 수도 있고(프랑스 중앙은행이 자국 정부 명령에 따라 화폐를 찍어내는 그 순간부터 즉각적인 개입이 이뤄질 것이다), 단일화폐가 아예 붕괴될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결국 자국 화폐인 프랑을 다시 사용해야 하게 될 것이다(유통되고 있던 유로화는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교환될 것이다). 니코노프는 이런 방안을 덧붙였다.
“초기만이라도 일반 가계와 기업의 경우 유로를 교환할 수 없도록 한다면 프랑 사용이 국제무역에 악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화폐 사용이 필요한 기업들은 은행에 프랑화를 요청할 것이고, 해당 은행이 다시 중앙은행에 요청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인데, 이는 자본유출을 효과적으로 막고 시장에 풀려있는 화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 후에는 우선순위에 따라 정책적으로 프랑 대비 유로의 환율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화폐 가용성에 신뢰할 만한 틀을 부여한다면 여러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다.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연대하는 세상으로
 
하지만 공동화폐의 도입 여부와 상관없이 새 프랑은 분명 가치하락을 겪게 될 것이다.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점(환율이 하락한 통화로 표시된 수출품은 수입자 측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서 유리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프랑 이외의 통화로 표시된 상품, 즉 프랑스로 수입되는 상품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결과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정부가 각종 재화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석유처럼 필수적인 재화에 대해서는 각종 세제 혜택이나 경제유인책을 사용해 수요를 낮춰야 한다.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재화들도 있기 때문이다. 니코노프는 “수입대체를 위해서는 보호무역주의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유럽의 단일시장은 이미 붕괴됐을 것이므로) 관세장벽을 통해 신생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는 또한 “프랑스 정부는 국내에 없는 기술을 가진 해외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기술이전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각종 광고 등으로 필수품처럼 사용되고 있는 제품들(스마트폰, 청바지 등)은 국민들 스스로가 이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 또한 국민들에게 현대 사회의 과소비가 지속될 경우 지구 전체가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배경으로 삼고, 경제적 변화를 위해서는 소비 습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어차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면, 다수를 위한 사회를 위한 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로르동의 주장은 이렇다. “언젠가는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소비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와 단절할 수는 없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소비’에는 불평등, 보편적 불안정성, 노동의 고통 등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가. 하지만 신자유주의로부터 해방된다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논리를, 진정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긴축재정, 유로화, 시장의 압박에서 벗어나 다시 공공서비스를 구축하고 쓸 만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폐가치 하락과 합리적 보호무역주의를 통해서는 경쟁력 하락이 아닌 임금 상승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권이 항복하면서 주주자본주의의 권력도 무너져 보다 개선된 기업조직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경제 활성화, 사회민주주의로의 전환, 환경문제 통합, 제도 개혁 등 여러 대책들이 뒤를 따를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수단은 이미 존재한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방안 중 혁신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다. 결국 시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계획(화폐수단의 부활, 생산경로 변화, 소비습관 개선)들이 큰 문제 없이 집권당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미래가 고요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에도 그랬듯, 다음 폭풍이 몰아칠 때는 자유주의 진영이 또 다른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전투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글·실뱅 르데르 Sylvain Leder
경제사회학 교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출간한 『Manuel d’économie critique(경제비평교과서)』(2016)의 집필에 참여했다.
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미래 대예측』 등이 있다.
 
 
 
(1) Renaud Lambert & Sylvain Leder, ‘L’investisseur ne vote pas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정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7월호·한국어판 2018년 8월호. 본 기사에서 전개하고 있는 논리의 첫 번째 단계다.
(2) 공약 제안자들은 역설을 벗어날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정권을 잡기도 전부터 국민들에게 아직 준비 중인 전투를 대비하게 하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시장의 분노나 경제적 재앙을 피하면서 수고를 이어가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3) 프레데리크 로르동, 자크 니코노프, 도미니크 플리옹의 대표 저서는 각각 『Jusqu’à quand? Pour en finir avec les crises financières(언제까지인가? 금융위기와의 결별을 위해)』(Raison d’agir, Paris, 2008), 『Sortons de l’euro! Restituer la souveraineté monétaire au peuple(유로를 벗어나자! 국민에게 화폐주권을 돌려주다)』(Mille et une nuits, Paris, 2011), 『La Monnaie et ses mécanismes(화폐 그리고 화폐 매커니즘)』(La Découverte, Paris, 2017)이 있다.
(4) 스프레드란 한 국가에서 발행한 채권의 수익률과, 수익률이 안정적인 국가(독일 등)가 발행한 채권 수익률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5) Laura Raim, ‘De la monnaie unique à la monnaie commune(단일화폐에서 공동화폐로)’, 『Manuel d’économie critique(경제비평교과서)』, Le Monde diplomatiqu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