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파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대도시들은 ‘매력, 이동성, 혁신, 탁월함’처럼 늘 뻔한 슬로건을 내세운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 덕분에 민간 건설업체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불평등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위험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설명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파리는 “도시 공동체가 없는, 프랑스 유일의 인구 과밀 도시”다. 또한 1970년대에 신도시가 건설되고 수도권 고속철도(RER)가 개설되면서 파리와 일드프랑스를 대상으로 다양한 투자들(도시 재개발, 교외 철도 시스템의 현대화, 전철 노선 연장 등)이 있었으나, 지역 차원에서 개발계획이 시도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파리와 그 주변 일대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려면, 이후 6개월이 아니라 다가올 한 세기를 생각”해야 했다. 이것은 “파리 교외에 공공장소나 공공서비스, 말하자면 사회적 공간들을 갖춘 건실한 도시들을 건설하는 데 전념함으로써 (…) 과거에 저지른 과오들을 고쳐나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파리 외곽을 포함하는 ‘그랑 파리’라는 구상이 2007년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이미 서쪽의 생제르맹앙레에서 동쪽으로 지금의 마른라발레에 이르는 수도 확장을 계획한 바 있었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여하튼 나폴레옹 3세는 1860년에 티에르 성벽과, 20여 개의 코뮌과 인접 코뮌 일부를 파리에 병합했다. 1907년에는 법률가이자 언론인인 조르주 브누아-레비에 의해 새 확장 계획이 세상에 나왔다. 그는 파리 지역을 통합하기 위해, ‘전원도시(Cité-jardin)’ 개발을 제안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시작해 그의 후임자들이 실행한 이 프로젝트는 역사가 길다. 정식 명칭은 ‘그랑 파리 메트로폴’(MGP)이고, 2016년 1월 1일 코뮌 간 공동 협력체 기구의 형식으로 공식 출범했다. 사르코지 정부의 한 부통령이 최초로 명명한, ‘코뮌들 간의 코뮌(Intercommunalité d’intercommunalités)’은 행정 구조를 그나마 가장 덜 애매하게 표현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구조는 지방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회의(코뮌을 대표하는 20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메트로폴 위원회), 시장 회의, 지역단체장 회의, 그랑 파리 도시 공공서비스 회의 등으로 세분된다. 2017년 7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구조를 단순화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됐던 ‘국토 회의’는 여전히 보류 중이다. 게다가 어떻게 주민들의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보장할 것인지, 파리 제1 도시권에 속한 도(département)들은 폐지되는 것인지, 지역권-수도권(région-métropole) 혹은 수도권-코뮌 연합체가 혜택을 받게 될지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아직도 답보 상태에 있다.
이 알토란같은 사업의 요체는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GPE, 파리 광역급행철도망)로 흡수될 예정이다.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는 파리 순환도로를 중심으로 기획된 대중교통망으로(지도 참조), 이 사업의 구상과 실행은 그랑 파리 공사(Société du Grand Paris)가 맡아서 운영한다. 기업 성향이 짙은 이 상업적 공공기관은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국가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다. 마크롱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에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국가가 지원하고,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 지지할 만한 국가적 우선사업이다. 따라서 나는 이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3)
이 노선들을 운행하려면 60개 이상의 전철역을 신설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곳(어떤 전철역 부지들은 현재 반경 800m 내에 거주자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이라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거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전철역이 생기면 고용 창출을 위해 적절한 공공 서비스(학교, 보육시설 등)를 갖추고 상업시설이 활발하게 생겨나는 새로운 지역들이 형성돼 분명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런던과 뉴욕이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개발은 일드프랑스 구역에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가령 2017년에 부이그는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 남부의 15호선에서 1차 구간을 차지했는데, 예상수익은 8억 유로에 달한다. 2차 구간은 스파이 바티뇰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뱅시에 할당됐으며, 9억 2,600만 유로의 수익이 예상된다. 3차 구간은 에파주 사가 획득했고, 7억 9,500만 유로의 수익이 예상된다. 그러니 뱅시의 최고경영자(CEO) 자비에 윌라르가 2017년 1월 신년사에서 이렇게 감격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잇장에 불과했던 이 프로젝트가 땅 위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팽창하는 도시, 압축되는 메트로폴
공공건설 기업들과 개발업자들은 고속도로, 공항, 스포츠 경기장 등 모든 대형 공사들의 건설과 운영에서 이미 주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개발 예정 지역들, 개발 허가 계약, 토지 환매를 이용해, 이들은 이제 ‘도시의 건설자’ 역할을 도맡으려 한다. 그랑 파리 기업 단체(Club des entreprises du Grand Paris)는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향후 사업 순위에서 선두에 서고자” 하는 기업들을 위해 설립됐는데, 여기에는 주로 탈레스, 지멘스, GDF(프랑스 가스공사) 수에즈 같은 기업들이 모여 있다.
최근 일부 공공건설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끌고 가기 위해,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칠만한 연구소에 투자했다. 2007년 에파주가 도입한 ‘미래 연구 실험실’ 포스포어(Phosphore)는 “엔지니어, 건축가, 도시계획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전문가들의 고지식한 시각들을 자극해 가까운 미래인 2030년까지 지속가능한 도시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여백 같은 공간으로 기능한다.”(5) 뱅시도 2010년에 ‘도시 제작소’를 설립했는데, 이 연구소는 “도시 혁신에 관한 견해들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도록 장려하는 선구적 시도들에 가치를” 두고자 한다.
한편 그랑 파리 프로젝트에 연루된 개인들에게는 정부가 둘도 없는 아군이다. 2016년 6월에 공표된 법령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그랑 파리 공사가 시행하는 토지 수용의 보상금 결정 절차를 파리 토지수용 심사원으로 단일화했다. 이런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마뉘엘 발스 총리는 “주택 거주자들 및 수용된 토지 소유주들의 보상 문제와 관련한 분쟁”과, “보상판결 집행의 어려움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겠다”(6)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법률 자문회사 헬리안은 자사 웹사이트에서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의 신규 노선 중에 파리 시를 통과하는 노선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파리 토지수용 심사원은 이 소송들과 무관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여러 곳(노트르담 데랑드, 시방스 등)에서 도시계획이 저지된 경험으로 배운 바가 있기 때문에, 일드프랑스에서 비슷한 저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즉, 정부는 가시적으로 그랑 파리 공사와 업자들에게 신속하게 일 처리를 하고, 골칫거리들을 피할 수단을 제안했다. 도시 제작소의 한 의견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토지 수용 시에 생길 수 있는 부정적 충돌을 막고자 반응을 예상하고 해결책을 찾아야”(7) 하기 때문이다.
그랑 파리가 완력을 사용해 토지를 수용했지만, 특히 지하철역과 그 주변에 ‘친환경 지역’, 즉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을 지은 것은 정부가 주민들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센생드니 주의 유명한 코뮌인 생투앙은 14호선이 연장되면 수혜를 입게 될 지역인데, 2014년에 생투앙 시장에 당선된 윌리엄 델라노이(민주당-무소속 연합)는 이제 생투앙을 ‘생투앙쉬르센’으로 즐겨 부른다. BNP(국립 파리은행) 파리바 부동산개발은 현재 ‘카레 가리발디’(Carré Garibaldi)라는 이름의 단지를 건설 중인데, 이곳의 거주자들은 ‘이동성과 평화로움이 결합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프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2012년, 그랑 파리의 건설 현장들이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도 않은 시점에,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일부 지하철역 예정 부지들의 가격이 6%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파리 지역을 덮친 저가 주택의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면서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당 1만 유로를 호가하는 파리의 땅값 때문에 공공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5년에 임대아파트(HLM)를 신청한 12만8,536가구 중 10%만이 당첨 혜택을 받았다.(8)
수입이 변변치 못한 수천 가구가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매년 파리와 제1 도시권을 포기하고, 제2 도시권이나 일드프랑스(몽타르지, 보베 등)의 인접 코뮌들로 이사를 해야 한다. 프랑스 국립 통계경제연구소(Insee)에 의하면 2003~2007년 1만 5,952명이 여전히 일드프랑스 지역에 일터를 둔 채, 파리 지역을 떠나 상트르-발드루아르로 이주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공사가 시작되자 이런 과정은 더 빨리 진행됐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추가로 4,474가구가 이런 수순을 밟았다. 이처럼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메트로폴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곳에 살던 서민가구들은 직장에서 먼 곳이나 공공주택에서 사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 ‘Appel pour une Métropole nommée Paris(파리라고 명명된 수도를 위한 호소문)’, 75021, <Urbanisme>, n° 226-227, Paris, 1988년 9월.
(4) Agence Option Finance, 2017년 9월 18일.
(6) <Journal officiel de la République française(프랑스공화국 관보)>, n°0142, Paris, 2016년 6월 19일.
(8) ‘L’accès au logement social à Paris, Partie 2 – Les attributions des logements sociaux en 2015(파리의 공공주택 이용, 제2부–2015년 공공주택 분양)’, Atelier parisien d’urbanisme(파리 도시 연구회), Préfecture de Paris – Mairie de Paris(파리 도청-파리 시청), 2017년 1월.
(10) ‘Métropole du Grand Paris: des écarts de revenus encore élevés malgré la redistribution(그랑 파리 메트로폴: 재분배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높은 소득 격차)’, Atelier parisien d’urbanisme(파리 도시 연구회), note n° 114, 2017년 2월; ‘Les niveaux de vie 2015(2015년 생활수준)’, <Insee Première(국립 통계경제 연구소 프리미어)>, n° 1665, Paris, 2017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