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파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

2018-09-28     아센 벨메수 | 도시사회학자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대도시들은 ‘매력, 이동성, 혁신, 탁월함’처럼 늘 뻔한 슬로건을 내세운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 덕분에 민간 건설업체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불평등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위험이 있다. 

 
2007년 11월 17일, 샤요 궁에 모인 도시계획 관련 인사들은 ‘프랑스 건축·문화유산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프랑스공화국의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이들 앞에서 ‘대도시 파리의 미래를 위한 협의회’를 발족하고, 파리의 대대적 정비를 위한 새 계획인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구상 의지를 밝혔다. 1965년에 ‘대런던 계획(Greater London)’으로 탈바꿈한 현재의 런던이나 ‘뉴욕 대도시권’(New York Metropolitan Area)을 시행한 뉴욕처럼,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도 경계 구획을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설명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파리는 “도시 공동체가 없는, 프랑스 유일의 인구 과밀 도시”다. 또한 1970년대에 신도시가 건설되고 수도권 고속철도(RER)가 개설되면서 파리와 일드프랑스를 대상으로 다양한 투자들(도시 재개발, 교외 철도 시스템의 현대화, 전철 노선 연장 등)이 있었으나, 지역 차원에서 개발계획이 시도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파리와 그 주변 일대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려면, 이후 6개월이 아니라 다가올 한 세기를 생각”해야 했다. 이것은 “파리 교외에 공공장소나 공공서비스, 말하자면 사회적 공간들을 갖춘 건실한 도시들을 건설하는 데 전념함으로써 (…) 과거에 저지른 과오들을 고쳐나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공약이 발표된 후 1년, 협의 결과가 공개됐고 여러 방면에서 10개 팀이 조직됐다. 늘 그렇듯이 리처드 로저스,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 장 누벨, 이브 리옹 같은 유명 건축가들이 주로 선정됐다. 나머지 6개 팀은 미디어에서 많이 거론되는 팀들은 아니었지만, 이런 종류의 협의회에서는 꽤 익숙하게 볼 수 있다(자멜 클루슈, 앙투안 그룸바흐, 비니 마스, 롤랑 카스트로 등). 이들이 바로 대도시 프로젝트의 ‘전략’을 결정했다.

 

역사가 긴 프로젝트, ‘그랑 파리 메트로폴’

파리 외곽을 포함하는 ‘그랑 파리’라는 구상이 2007년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이미 서쪽의 생제르맹앙레에서 동쪽으로 지금의 마른라발레에 이르는 수도 확장을 계획한 바 있었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여하튼 나폴레옹 3세는 1860년에 티에르 성벽과, 20여 개의 코뮌과 인접 코뮌 일부를 파리에 병합했다. 1907년에는 법률가이자 언론인인 조르주 브누아-레비에 의해 새 확장 계획이 세상에 나왔다. 그는 파리 지역을 통합하기 위해, ‘전원도시(Cité-jardin)’ 개발을 제안했다. 

25년 후에는 불로뉴 쉬르 메르의 상원의원이자 시장인 사회주의자 앙드레 모리조가 이 계획을 이어받아, 성공적인 ‘그랑 파리’의 건설을 위해 ‘여론을 움직이는’ 임무를 맡았다.(1) 보다 최근인 1988년에는 ‘75021 연합’ 내에서 15명의 건축가들(이브 리옹과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까지 포함해)이 따로 모여 ‘파리와 파리 권역’의 새로운 개발을 지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세계적인 수도 파리에 대한 열망과, 사람들이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의 특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정책들에 호소했다.(2)

사르코지 대통령이 시작해 그의 후임자들이 실행한 이 프로젝트는 역사가 길다. 정식 명칭은 ‘그랑 파리 메트로폴’(MGP)이고, 2016년 1월 1일 코뮌 간 공동 협력체 기구의 형식으로 공식 출범했다. 사르코지 정부의 한 부통령이 최초로 명명한, ‘코뮌들 간의 코뮌(Intercommunalité d’intercommunalités)’은 행정 구조를 그나마 가장 덜 애매하게 표현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구조는 지방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회의(코뮌을 대표하는 20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메트로폴 위원회), 시장 회의, 지역단체장 회의, 그랑 파리 도시 공공서비스 회의 등으로 세분된다. 2017년 7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구조를 단순화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됐던 ‘국토 회의’는 여전히 보류 중이다. 게다가 어떻게 주민들의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보장할 것인지, 파리 제1 도시권에 속한 도(département)들은 폐지되는 것인지, 지역권-수도권(région-métropole) 혹은 수도권-코뮌 연합체가 혜택을 받게 될지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아직도 답보 상태에 있다. 

그랑 파리 메트로폴은 6개 도를 재편하고 131개 코뮌과 7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로,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며, 사실상 서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계획이다. 2010년 190억 유로로 추산한 이 프로젝트의 예산은 계속해서 증가했고, 감사원의 최신 보고서는 2030년까지 385억 유로의 예산이 수립될 것으로 전망한다. 독단적으로 결정된 프로젝트로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이런 식의 공사는 개정 권한이 없는 주민들이 국가의 사업들을 검토하는 것 말고는, 따로 공공 차원에선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알토란같은 사업의 요체는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GPE, 파리 광역급행철도망)로 흡수될 예정이다.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는 파리 순환도로를 중심으로 기획된 대중교통망으로(지도 참조), 이 사업의 구상과 실행은 그랑 파리 공사(Société du Grand Paris)가 맡아서 운영한다. 기업 성향이 짙은 이 상업적 공공기관은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국가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다. 마크롱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에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국가가 지원하고,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 지지할 만한 국가적 우선사업이다. 따라서 나는 이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3)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는 규모 200km 노선에, 4대의 무인 지하철을 신설하고 2개의 기존 노선을 확장하는 사업으로, 이는 현재의 지하철 노선과 맞먹는 규모다. 이 사업은 ‘경쟁력 있는 거점’ 혹은 전문용어로 ‘클러스터’(산업집적지)를 연결함으로써, 각 지역의 특수성을 강화할 것이다. 혁신 및 연구 중심지인 사클레(박스기사 참조), 국제무역 중심지인 루아시, 창조 중심지인 생드니 플렌 코뮌 등이 바로 이런 성격의 클러스터들이다. 신규 노선이 생기면 사클레 고원의 연구원들은 오를리공항까지 40분 가량(원래 56분에서 18분으로 단축)을, 라데팡스의 비즈니스센터까지 15분(원래 56분에서 40분으로 단축)을 절약할 수 있으며, 라데팡스에서는 직통 노선을 이용하면 거의 30분 안에 루아시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이 노선들을 운행하려면 60개 이상의 전철역을 신설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곳(어떤 전철역 부지들은 현재 반경 800m 내에 거주자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이라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거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전철역이 생기면 고용 창출을 위해 적절한 공공 서비스(학교, 보육시설 등)를 갖추고 상업시설이 활발하게 생겨나는 새로운 지역들이 형성돼 분명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런던과 뉴욕이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개발은 일드프랑스 구역에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 사업으로 신설되는 전철역 주변(현재 주로 11호선과 14호선 연장노선 주변)의 첫 번째 부동산 개발계획들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애초에 공표된 사업 목적(주택 접근성을 개선하고, 부유한 서부와 빈곤한 북동부의 빈부 격차를 줄이는 등)에서 멀어진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공공건설(BTP) 대기업들(전철역 건설, 터널 굴착 등), 부동산 개발업자(전철역 부지 주변에 여러 사업들을 확장시키는), 재무 투자자들에게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암탉과 같다. 

가령 2017년에 부이그는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 남부의 15호선에서 1차 구간을 차지했는데, 예상수익은 8억 유로에 달한다. 2차 구간은 스파이 바티뇰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뱅시에 할당됐으며, 9억 2,600만 유로의 수익이 예상된다. 3차 구간은 에파주 사가 획득했고, 7억 9,500만 유로의 수익이 예상된다. 그러니 뱅시의 최고경영자(CEO) 자비에 윌라르가 2017년 1월 신년사에서 이렇게 감격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잇장에 불과했던 이 프로젝트가 땅 위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팽창하는 도시, 압축되는 메트로폴

몇 달 뒤 파리가 2024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자 그랑 파리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고, 이것은 또 다른 축제 분위기를 선사했다. 바클리스 은행은 “뱅시와 에파주는 이 프로젝트의 최고 수혜자다. 총예산 60억 유로에서 인프라 구축 비용이 30억 유로를 차지한다”고 직설적으로 평가했다.(4)

공공건설 기업들과 개발업자들은 고속도로, 공항, 스포츠 경기장 등 모든 대형 공사들의 건설과 운영에서 이미 주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개발 예정 지역들, 개발 허가 계약, 토지 환매를 이용해, 이들은 이제 ‘도시의 건설자’ 역할을 도맡으려 한다. 그랑 파리 기업 단체(Club des entreprises du Grand Paris)는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향후 사업 순위에서 선두에 서고자” 하는 기업들을 위해 설립됐는데, 여기에는 주로 탈레스, 지멘스, GDF(프랑스 가스공사) 수에즈 같은 기업들이 모여 있다. 

이 단체 대표인 자크 고르동은 2014년 4월 4일 <라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메트로폴(수도)은 단순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가 아니라, 대도시의 고급 일자리, 즉 우수한 ‘창조적 계층’이 밀집한 ‘중심지(Pôle)’다. (…) 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고, 메트로폴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간이다. 도시는 2차원적으로 계획되지만, 메트로폴은 3차원 공간이다. 도시는 중심에서 벗어나 밖으로 뻗어 나가지만, 메트로폴은 중심으로 모여들어 위로 뻗어 올라간다. 도시는 팽창하지만 메트로폴은 압축된다. 도시 거주자는 한적한 빌라를 꿈꾸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임금노동자는 56층의 오픈스페이스에 열광한다.” 

최근 일부 공공건설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끌고 가기 위해,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칠만한 연구소에 투자했다. 2007년 에파주가 도입한 ‘미래 연구 실험실’ 포스포어(Phosphore)는 “엔지니어, 건축가, 도시계획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전문가들의 고지식한 시각들을 자극해 가까운 미래인 2030년까지 지속가능한 도시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여백 같은 공간으로 기능한다.”(5) 뱅시도 2010년에 ‘도시 제작소’를 설립했는데, 이 연구소는 “도시 혁신에 관한 견해들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도록 장려하는 선구적 시도들에 가치를” 두고자 한다. 

2017년 5월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던 부동산 개발회사 넥시티는 요컨대 “우리 모두의 삶을 결정하고 조직하는 도시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이런 조직들은 대체로 명망 있는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포스포어 실험실의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로 보르도 시장인 알랭 쥐페, 스트라스부르 도시 공동체 부의장인 카트린 트로트만, 천체물리학자 위베르 리브, 사회학자 장 비야르가 있다. 마찬가지로 매년 도시 제작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는 지방의회 의원, 대학교수, 기자, 건축가, 도시 조성 관련 기업 대표들(베올리아, 프랑스 국유철도(SNCF), 코피루트,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이 참가한다. 이렇게 많은 관계자들이 집중되다 보니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편 그랑 파리 프로젝트에 연루된 개인들에게는 정부가 둘도 없는 아군이다. 2016년 6월에 공표된 법령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그랑 파리 공사가 시행하는 토지 수용의 보상금 결정 절차를 파리 토지수용 심사원으로 단일화했다. 이런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마뉘엘 발스 총리는 “주택 거주자들 및 수용된 토지 소유주들의 보상 문제와 관련한 분쟁”과, “보상판결 집행의 어려움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겠다”(6)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법률 자문회사 헬리안은 자사 웹사이트에서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의 신규 노선 중에 파리 시를 통과하는 노선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파리 토지수용 심사원은 이 소송들과 무관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여러 곳(노트르담 데랑드, 시방스 등)에서 도시계획이 저지된 경험으로 배운 바가 있기 때문에, 일드프랑스에서 비슷한 저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즉, 정부는 가시적으로 그랑 파리 공사와 업자들에게 신속하게 일 처리를 하고, 골칫거리들을 피할 수단을 제안했다. 도시 제작소의 한 의견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토지 수용 시에 생길 수 있는 부정적 충돌을 막고자 반응을 예상하고 해결책을 찾아야”(7) 하기 때문이다.

 

개발과 더불어 진행 중인 양극화

그랑 파리가 완력을 사용해 토지를 수용했지만, 특히 지하철역과 그 주변에 ‘친환경 지역’, 즉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을 지은 것은 정부가 주민들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센생드니 주의 유명한 코뮌인 생투앙은 14호선이 연장되면 수혜를 입게 될 지역인데, 2014년에 생투앙 시장에 당선된 윌리엄 델라노이(민주당-무소속 연합)는 이제 생투앙을 ‘생투앙쉬르센’으로 즐겨 부른다. BNP(국립 파리은행) 파리바 부동산개발은 현재 ‘카레 가리발디’(Carré Garibaldi)라는 이름의 단지를 건설 중인데, 이곳의 거주자들은 ‘이동성과 평화로움이 결합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BNP가 보유한 고급주택 ‘벨 알뤼르’는 “생투앙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품격 있는 건축을 지향하는 달렌가(街)의 리노베이션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이 고급주택은 철저한 보안을 제공하는데, BNP 파리바의 설명에 의하면 “외부 현관문은 디지털코드와 비직(Vigik) 판독기로 통제되며, 로비는 인터폰으로 경비를 강화했고, 개인 휴대폰으로 직접 조작이 가능하다.” 센생드니의 다른 유명 도시 로맹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동산 개발업체 피맹코는 9헥타르의 빈 땅에 쇼핑센터, 사무실, 현대미술 재단을 건설함으로써 “도시를 보다 지적이고, 쾌적하며, 친근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피맹코는 “이곳이 그랑 파리의 중심에 우뚝 선 ‘제1의’ 도시형 할인점”이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인프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2012년, 그랑 파리의 건설 현장들이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도 않은 시점에,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일부 지하철역 예정 부지들의 가격이 6%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파리 지역을 덮친 저가 주택의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면서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당 1만 유로를 호가하는 파리의 땅값 때문에 공공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5년에 임대아파트(HLM)를 신청한 12만8,536가구 중 10%만이 당첨 혜택을 받았다.(8) 

다른 지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2016년 4월에 1만 4천 가구 이상이 ‘주거 대항권’(DALO, 서민주택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고 의무적으로 서민주택을 짓도록 한 규정-역주) 적용으로 주거권을 인정받았다. 2007년 의회를 통과한 주거 대항권의 원칙에 따라 일정 기간 내에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국가에 배상 판결을 신청할 수 있다. ‘비정상적  기간’이라 불리는 이 유예 기간은 센생드니, 발드마른, 이블린 같은 주에서는 3년, 오드센에서는 4년이다. 파리에서는 주거권 등급에 따라 T1을 취득하려면 6년, T2와 T3는 9년, T4 이상은 자그마치 10년이 걸린다(T1은 우리나라의 원룸 개념이고, T2는 거실과 방 1개짜리, T3는 방 2개짜리, T4는 방 3개짜리 주택을 말한다-역주).(9)

수입이 변변치 못한 수천 가구가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매년 파리와 제1 도시권을 포기하고, 제2 도시권이나 일드프랑스(몽타르지, 보베 등)의 인접 코뮌들로 이사를 해야 한다. 프랑스 국립 통계경제연구소(Insee)에 의하면 2003~2007년 1만 5,952명이 여전히 일드프랑스 지역에 일터를 둔 채, 파리 지역을 떠나 상트르-발드루아르로 이주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공사가 시작되자 이런 과정은 더 빨리 진행됐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추가로 4,474가구가 이런 수순을 밟았다. 이처럼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메트로폴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곳에 살던 서민가구들은 직장에서 먼 곳이나 공공주택에서 사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런 양극화는 특히 파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파리의 부유층 가구 상위 10%의 소득이 빈곤층 가구 하위 10%의 6.6배에 달한다(전국적으로는 3.5배).(10) 파리 서부의 중산층과 동부의 서민층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시장 법칙의 지배를 받는 중산층과 임대주택에 사는 빈곤층의 공존은 점점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리 13구에는 굉장히 매력적인 뷔트 오 카예와 ‘민감한 도시구역(Sensitive urban zone)’, 즉 열악한 주거지역인 잔다르크-클리송이 나란히 존재한다. 잔다르크-클리송은 빈곤율이 74.8%에 달하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낙후된 지역이다.(11) 그랑 파리의 시행 논리를 따른다면 이런 불평등 수준은 점점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글·아센 벨메수 Hacène Belmessous
도시사회학자, 저서로 『Le Grand Paris du séparatisme social. Il faut refonder le droit à la ville pour tous(사회적 분리주의의 그랑 파리. 모두를 위한 도시의 권리를 재정립해야 한다)』(Post-éditions, Paris, 2015)가 있다.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André Morizet(앙드레 모리제), 『Du vieux Paris au Paris moderne. Haussmann et ses prédécesseurs(과거의 파리에서 현대의 파리까지. 오스만 남작과 그의 전임자들)』, Infolio, coll. ‘Archigraphy’, Gollion (Suisse), 2014년 (초판 1932년).

(2) ‘Appel pour une Métropole nommée Paris(파리라고 명명된 수도를 위한 호소문)’, 75021, <Urbanisme>, n° 226-227, Paris, 1988년 9월.

(3) ‘Grand entretien-Emmanuel Macron(대대적인 보수-에마뉘엘 마크롱)’, <Grand Paris Développement(그랑 파리 개발계획)>, n° 18, Saint-Mandé, 2017년 봄호.

(4) Agence Option Finance, 2017년 9월 18일.

(5) ‘Des villes et des hommes. Contributions du laboratoire Phosphore d’Eiffage à la ville durable(도시와 인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에파주 포스포어 실험실의 업적)’, Eiffage, Vélizy-Villacoublay, 2013년.

(6) <Journal officiel de la République française(프랑스공화국 관보)>, n°0142, Paris, 2016년 6월 19일.

(7) ‘Vers l’adhésion citoyenne aux grands projets urbains(대형 도시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향해’, La Fabrique de la Cité(도시 제작소), note n°2, séminaire international(국제 세미나), Amsterdam, 2012년 8월 29~31일.

(8) ‘L’accès au logement social à Paris, Partie 2 – Les attributions des logements sociaux en 2015(파리의 공공주택 이용, 제2부–2015년 공공주택 분양)’, Atelier parisien d’urbanisme(파리 도시 연구회), Préfecture de Paris – Mairie de Paris(파리 도청-파리 시청), 2017년 1월.

(9) ‘L’effectivité du droit au logement opposable. Mission d’évaluation dans quatorze départements(주거 대항권의 효용. 14개 구 평가단)’, Marie-Arlette Carlotti가 Emmanuelle Cosse에게 제출한 보고서, ministre du logement et de l’habitat durable(지속가능한 주택부 장관), Paris, 2016년 12월.

(10) ‘Métropole du Grand Paris: des écarts de revenus encore élevés malgré la redistribution(그랑 파리 메트로폴: 재분배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높은 소득 격차)’, Atelier parisien d’urbanisme(파리 도시 연구회), note n° 114, 2017년 2월;  ‘Les niveaux de vie 2015(2015년 생활수준)’, <Insee Première(국립 통계경제 연구소 프리미어)>, n° 1665, Paris, 2017년 9월 12일.

(11) ‘Les dix quartiers les plus pauvres de France(프랑스에서 가장 빈곤한 10개 지역)’, Observatoire des inégalités(불평등 감시단), 2016년 7월 19일, www.inegalite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