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실리콘밸리
2018-09-28 라파엘 고드쇼 | 기자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좋은 땅 중 하나다. 모든 경관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이 땅은 마치 스펀지처럼 비옥하다.” 에손과 이블린 양쪽 주에 걸쳐 있는 사클레 고원의 땅 244헥타르에 농사를 짓는 에마뉘엘 방담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당국은 토양의 품질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토지를 수용해 그곳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방담은 “집중 개발을 알리면서 최초로 이곳의 미관을 해친 것은 2002년에 들어선 다논 연구센터였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곧이어 탈레스, 프랑스 전기공사(EDF), 세르비에 연구소, 크래프트 푸드, 토탈이 들어왔으며 다수의 교육 및 연구기관이 입주했다.
당국은 이곳이 ‘프랑스의 실리콘밸리’가 되기를 꿈꿨다. 200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부터 국익사업이 법적으로 인정됐는데, 이로써 국가는 27개 코뮌에 걸쳐 7,700헥타르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의 개발과정 전체에 대한 감독권을 얻게 됐다. 이런 정책은 지방의원들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소외시킬 여지가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이 사업을 이어받아, 2008년에 과학 ‘클러스터’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건너온 클러스터는 동일 분야의 기업이나 기관들을 통합하는 개념을 말하는데, 이런 방식이 창의와 혁신을 북돋우는 경쟁심을 유발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이 구상은 6만 명의 대학생들과 1만 1,000명의 연구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상하이대학교가 발표하는 대학 랭킹(2003년부터 매년 상하이대학교에서 발표하는 세계 대학교 순위-역주)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기 위해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들과 연합하는 것”(1)이다. 파리이공과대학, 중앙고등공과대학(상트랄쉬펠렉), 카샹 고등사범학교, 고등 상업학교를 비롯한 23개 그랑제콜과, 파리-오르세, 베르사유-생-캉탱-앙-이블린 같은 대학교들이 사클레로 이전하거나 캠퍼스를 신설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이런 변동사항에 대해 이 기관들의 구성원들과 논의하는 과정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기관을 통합해 과학적 성과를 얻는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프랑스 연구 분야의 20%를 한 장소에 몰아넣는 프로젝트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클레 시민단체 회원인 클로딘 파레이르는 “정부는 모든 것을 집중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지역에 파탄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런 연구 및 고용 거점이 아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롱쥐모, 쥐비시, 오르세의 병원들을 한곳으로 통합하는 파리-사클레 첨단기술 병원 프로젝트 역시 같은 논리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병원 이용자 다수를 배제한 이 프로젝트는 900개의 병상을 철거하고 600명의 간호사를 해고하는 데 동의했다.(2)
감사원도 대단히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감사원은 2017년에 “정부가 계획을 실행할 수단들을 사전에 명확히 결정짓지 않은 채, 의욕이 앞선 파리-사클레 프로젝트에 돌입했다”(3)고 평가했다. 이런 비판은 특히 교통수단 같은 까다로운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2017년 3월 공공시설로 선포된 지하철 18호선은 베르사유와 사클레 고원을 거쳐 파리와 오를리를 연결해야 한다. 2025년 세계박람회 후보지 선정에서 파리가 기권한 뒤, 당초 2024년으로 예정됐던 이 프로젝트는 2027년으로 연기됐다.
그러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클로딘 파레이르에 의하면 “사클레 고원에 18호선이 개설되면 자연히 다수의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지하철은 수익성이 없다. 하루 이용객이 10만 명이 될까 말까 한다. 수익을 내려면 이용객이 수백만 명은 돼야 한다.” 국립농학연구소(INRA) 연구원이자 사클레 시민단체 회원이기도 한 시릴 지라르댕은 전체적인 고원개발 계획과 관련해 여론조사가 없었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정도 규모의 건설현장에, 비용이 투자 상한액인 3억 유로를 거뜬히 넘는데, 어떻게 국가 공개토론 위원회(CNDP)가 활용되지 못했을까? 이처럼 프랑스가 오르후스 (국제환경) 협약을 어긴 사실에 항의하고자 우리는 유럽 차원에서 호소했다.” 1998년에 40개 국가가 조인한 오르후스 협약은 대규모 국토개발계획에서 특히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규칙들을 확립해 ‘환경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이 단체가 제출한 청원은 수리 가능하다는 판결이 났고, 현재 검토 중에 있다.
지라르댕에 의하면 당국은 이 사업을 “세계적인 규모의 과학연구 중심지”라고 부풀려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산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과 도시화에 들여온 트로이 목마나 다름없다.
“고네스의 유로파시티 쇼핑센터 같은 프로젝트에 맞서 연합하기는 쉽다. 그러나 과학을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모으기가 훨씬 더 어렵다.” 혁신을 논하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을 논한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가 환경과 농업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반대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2010년 ‘자연, 농업, 산림 보호구역’(ZPNAF)을 지정했다. 그러나 이 보호구역에는 고원의 아주 극소수만이 포함될 뿐이고, 보호구역의 경계는 논쟁이 분분하다. 방담의 설명에 의하면 “ZPNAF 내에서는 콘크리트 사용이 금지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구역 밖에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보호구역이 지정된 뒤에도 도시화는 그만큼 많이 진행됐다. 당국은 보호구역의 경계가 그들의 개발계획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끔 경계를 주도면밀하게 설정했다.”
이들은 토지를 수용해 부지를 확보하고, 공공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농지와 생명다양성을 불가역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사클레 클러스터는 리옹-토리노 고속열차 사업이나, 시방스 댐 건설계획과 나란히 ‘쓸모없는 대공사’ 목록에 오르게 될 것인가? 이 개발 프로그램은 전체적인 계획이 전혀 공개된바 없는 데다, 세분화되면서 가뜩이나 비상식적인 계획이 더 두드러졌다. 일자리 창출과 국제적 영향력을 약속하면서, 뒤로는 공공건설 기업들끼리 이미 수익성 높은 계약을 나눠 먹고, 앞으로 들어설 역 주변을 근사한 신규주택들로 보강하겠다는 아이디어에 이들은 들떠 있다.
이제는 필요가 사업의 조건이 아니라, 사업이 필요의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라파엘 고드쇼 Raphaël Godechot,
팔레조 및 파리 사클레 공동체 지역신문 기자
사브리나 벨바키르 Sabrina Belbachir
Petit ZPL(자유 출판 지대) 회원.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Une opération urbaine pour un cluster scientifique et industriel(과학 및 산업 클러스터를 위한 도시 개발계획)’, Paris-Saclay, 2015년 3월, https://docplayer.fr
(2) ‘Essonne: 150 manifestants contre la fermeture de trois hôpitaux(에손, 3개 병원 폐쇄에 맞선 150개의 시위)’, France Bleu, 2018년2월 10일.
(3) ‘Le projet Paris-Saclay: le risque de dilution d’une grand ambition(파리-사클레 프로젝트: 원대한 야심이 약화될 위험성)’», Cour des comptes(감사원), Paris, 2017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