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결코 잠들지 않는 감각은?

2018-09-28     안느 드브루아즈 | 기자

[특집] 뇌가 리셋되려면…


우리는 일생의 약 1/3을 잠으로 소비한다. 그렇다면 잠은 어떤 기능을 할까? 수면이 기억과 망각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20세기 말에 밝혀졌지만, 이런 과정과 관련된 뇌의 메커니즘의 비밀은 이제 막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전날 학습한 내용이, 잠든 쥐의 해마에서 활성화되는 모습이 관찰됐으며, 해마에 가짜 기억을 이식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한 우리가 잠자는 동안 뇌의 시냅스는 ‘리셋’되고, 또다시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시냅스는 정리된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편집자 주, 관련기사 25~28면)



잠자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감지할 수 있을까? 여러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감각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잠들지 않으며, 정보를 여과하는 섬세한 메커니즘이 긴급 상황 시 우리를 깨워준다.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비행기가 우리 집 앞에 추락했다.’ 이는 수면 연구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 출신의 과학자 윌리엄 디먼트에게 보고된 꿈들 중 하나다. 수면연구의 피실험자가 묘사한 이 소음은, 피실험자 자신이 시카고 대학교의 의학 연구소에서 잠들었을 때 실제로 들었던 소음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이 수면 중에도 완전히 잠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1950년대에 이뤄진 연구들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주변의 잡담 소리를 들을 수 없고, TV 화면의 불빛도 볼 수 없다. 또한, 고통도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면 중에 정확히 어떤 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의학영상의 발달 덕분에 잠든 뇌 속에서의 의식의 흐름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기화학적 신호가 몇 단계의 여과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피질 영역에 도달하면, 우리의 의식세계로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무의식 상태에서도 우리의 뇌는 감각정보들을 처리할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수면 중에 우리의 감각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가 수면 중에 소음이나 고통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지 않는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감각들이 우리의 잠을 깨우는지도 밝혀내야 합니다.” 윌리엄 디멘트와 공동 작업을 수행했고 아델라이드의 남호주 대학에서 수면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정신의학자 메리 카스케이든은 말했다. 
실험대상이 된 감각들 중 우리의 잠을 깨울 가능성, 즉 의식세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은 후각이었다. 카스케이든은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1) 그녀는 6명의 피실험자들이 수면 중에 두 개의 매우 다른 냄새를 각각 농도를 달리해서 맡도록 했다. 한 가지는 대다수가 좋아하는 박하 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피리딘’이라는, 썩은 생선 냄새와 비슷한 아주 고약한 냄새였다.

자극 받은 시상

약 90분에 이르는 수면 주기를 경수면기, 심수면기, 그리고 대부분의 꿈이 나타나는 단계인 렘수면기 이렇게 셋으로 나눠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짙은 농도의 피리딘은 경수면 상태에서는 언제나 각성을 일으켰지만, 이 비율은 심수면기에서는 45%, 렘수면기에서는 33%로 뚝 떨어졌다. 박하 향의 경우 심수면기와 렘수면기에서는 전혀 잠을 깨우지 못했다. 따라서 후각은 청각보다 감각을 일깨우는 힘이 훨씬 더 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78~85데시벨(자동차 엔진 소리 정도의 소음)의 소음을 들려줬을 때 카스케이든의 실험용 쥐들 중 82%가 잠에서 깼기 때문이다.
반면, 통각은 의식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감각이다. 이는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 소속 의사 질 라빈의 실험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라빈은 촉각 자극(진동), 청각 자극(소리), 통각 자극(염도가 높은 식염수의 혈관 내 주입)에 따른 각성 횟수를 비교했다.(2) 통각이 감각을 일깨우는 비율은 다소 낮게 나타나, 통각 자극의 30%만이 경수면 단계의 잠을 깨웠다. 그러나 진동과 소음이 심수면기와 렘수면기에서 거의 아무런 각성도 일으키지 못한 반면(15%), 통각의 경우에는 수면의 단계와 상관없이 비슷한 정도의 각성을 가져왔다.
이 실험을 통해 감각정보가 수면상태에서 의식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 양상은 다양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모든 신호가 다 같은 운명을 지닌 것은 아니어서, 어떤 신호는 다른 신호들에 비해 의식에 이르는 비율이 확연히 낮았다. 그렇다면 신호가 뇌까지 도달하는 과정 중에 과연 어느 시점에서 신호들이 ‘여과’되는 것일까? (대뇌변연계에 직접 연결되는) 후각을 제외하면, 다른 감각들은 뇌의 가운데에 위치한 시상을 통해 중심 뇌에 도달한다. 
시상은 이 감각들을 일차감각 영역들(일차시각피질, 일차청각피질, 일차미각피질, 일차체감각피질)로 안내한다. 그리고 신경신호들은 심사숙고와 의사결정 등 상위의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에 위치한 안와전두피질로 이동한다. 학자들은 EEG(Electro-EncephaloGram, 뇌파도) 기술과 MEG(Magneto-EncephaloGraphy, 뇌자도) 기술을 이용해 감각정보들이 피질 안에서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간다.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피질의 활동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측정하는 기술들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감각정보들을 여과하는 것이 시상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리옹 신경과학연구센터의 미쉘 마냉이 설명했다. “수면 상태에서 시상은 특별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시상과 피질을 연결하는 뉴런은 규칙적이고 느린 속도로 약 4Hz의 주파수로 신호와 활동전위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런 특별한 상태가 수면 질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정보의 전달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렌 바스튀지와 저는 시상이 일부 정보를 은밀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잠든 상태의 피실험자에게 여러 가지 단어들을 들려줬는데, 오직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만 피질의 활동을 나타내는 EEG가 움직였던 것이다.
EEG 검사만으로 활동을 추적하기에는 시상이 너무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엘렌 바스튀지와 그의 팀은 시상에 대한 좀 더 심도 높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두개골 내 시상에 전극을 삽입한 상태인 간질 환자들의 협조를 구했다. 실험 자원자들은 수면 중에 약한 통각 자극을 받았다. “우리는 감각정보들이 시상을 통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깨어있는 상태와 비교하면 잠든 상태에서는 신호가 형태도 다르고 세기도 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신호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미쉘 마냉이 말했다.(3) 따라서 시상은 수면 중에 감각정보들을 차단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질이 여과를 담당한다

피질로의 감각정보 전달은 특별한 피질 활동에 의해 이뤄진다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줄리오 토노니는 말했다. “우리는 EEG를 통해 촉각 자극, 청각 자극, 또는 시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일차감각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대뇌 피질의 활성화는 제한적입니다.” 이는 경두개자기자극요법(TMS)으로 측정된 결과이다. 이 기술은 전자기 코일을 머리 위에 놓고 자기장을 통과시켜 뉴런을 자극하고, 그에 따라 생긴 신호가 확산되는 모습을 EEG를 통해 관찰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신호가 피질 안에서 몇 센티미터의 거리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되지만, 서파 수면 상태(slow-wave sleep)에서는 자극 부위(전운동피질)에만 머문다.(4) 토노니에 의하면, 감각정보가 광범위한 뉴런 다발 사이에서 공유돼야만 의식이 깨어날 수 있다. 서파 수면은 신호의 확산 범위를 피질 내부로 제한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의식 회복과 각성을 막는다. 줄리오 토노니는 서파 수면 상태에서 피질의 뉴런이 주기적으로 양전하를 버림으로써 자극에 반응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서파 수면에 들어간 뇌에서 정보의 확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정보는 시상에도 피질의 방대한 뉴런 네트워크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감각정보가 의식을 깨우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피질까지는 도달한다는 가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감각정보가 어쨌거나 인지적 처리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디먼트의 과거 실험에서도 잠든 자원자들에게 가해진 감각 자극의 약 1/4이 꿈으로 나타났다.
2006년, 아구스틴 아이바네즈를 중심으로 구성된 칠레 산티아고 디에고 포테일즈 대학교의 연구팀은 이 인지적 처리가 훨씬 더 고차원적인 수준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5) 연구팀은 수면 중인 피실험자들에게 문장을 듣게 하면서, 문장의 논리를 저해하는 단어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것은 엔진이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그것은 비행기다/그것은 새다/그것은 오토바이다/그것은 산이다’처럼 점점 더 논리에 맞지 않는 문장들을 들려줬다. 피실험자들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논리적 흐름과 무관한 단어가 삽입된 문장을 듣고 나서 약 0.4초가 지난 후에 전두피질에서 전기적 신호가 발생했다.
그러나 심수면 상태에서도 피실험자들이 이와 동일한 신호를 내보냈다는 사실이 EEG를 통해 밝혀졌다. 뇌는 수면 상태에서도 소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우리의 뇌가 수많은 감각정보들을 인지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후각, 소중한 메모

후각은 수면 중인 뇌의 인지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뵨 라쉬가 이끄는 독일 연구팀이 이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18명의 피실험자들에게 엎어져 있는 15쌍의 카드를 뒤집어 앞면을 확인하게 하고 각 카드의 위치를 기억하게 했다. 실험이 이뤄지는 방 안에는 장미향이 났다. 그날 밤, 일부 피실험자들에게 서파 수면 단계에서 같은 장미향을 맡게 했다. 그다음 날, 수면 중에 장미향을 맡은 피실험자들이 카드의 위치를 맞춘 성공률은 86%에서 97%로 증가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이 향을 맡은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장미향은 의식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뇌를 통해 ‘처리’된 것이다.  


글·안느 드브루아즈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 A. Carskadon et al., Sleep, 27, 402, 2004.
(2) G. Lavigne et al,, Pain, 110, 646, 2004.
(3) H. Bastuji et al., Hum. Brain Mapp., II 2638, 2012.
(4) M. Massimi, Cogn. Neurosci., I, 176, 2010.
(5) A. Ibanez et al., Brain and Language, 98, 264,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