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의 악순환, 어디에서 오는가

2018-09-28     에마 영 | 기자

많은 사람들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이 세기의 불행에 대한 원인으로, 생활방식, 과체중, 염증 등을 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밤 11시 전에 잠이 든다. 밤 동안 완전한 수면을 취하고 자연스레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피곤하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인가? 이런 사람은 당신뿐만이 아니다. 네덜란드 네이메헌의 라드바우드 대학교 연구진들이 실시한 최근 연구에서는 응답자 2만 명 중 30%가 자신의 주치의에게 지속적인 피로를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사람들 중 20%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강도 높은 피로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런 피로는 금전적인 결과로도 이어지는데, 근로자의 피로에 따른 생산성 하락은 미국 고용주들에게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남긴다.
이런 자료에도 불구하고, 피로를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한 연구가 최근에야 이뤄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사람들은 피로에 대해, 그리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에서는 미국인 35%가 수면부족이라고 추산했다. 피로라는 것이 주관적인 느낌이기에 측정하기가 어렵고, 신체 및 정신과 관련된 연구가 아직 중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학자들이 왜 그토록 이 현상에 무관심한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피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질병을 동반한다. 노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피로의 원인을 좀 더 잘 이해한다면 전 세계 인구 중 대부분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현재 여러 연구자가 피로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 치료법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실마리는 그려지고 있다. 

만성피로는 반드시 수면부족 탓일까?

첫째로, 일상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피곤하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의 쉴 새 없는 메시지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상황 등은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 실마리일 수도 있다. 영국 켄트 대학교의 역사학자 애나 카타리나 샤프너에 의하면,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거 ‘좋았던 시절’의 평온함을 그리워하며 피로에 대해 불평을 해왔다는 것이다.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사람들은 피로를 행성들의 정렬, 신앙심 부족 또는 무의식적인 죽음의 욕구 탓이라 여기게 됐다고 샤프너는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우리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정신적 휴식에 대한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욕구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에는 신경쇠약증이라는 새로운 진단이 등장했다. 미국인 의사 조지 M.비어드는 이 질병이 신경계의 피로에서 기인하며 육체적·정신적 피로, 과민증, 절망감, 충치, 차가운 발, 모발 건조 등 여러 가지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비어드에 의하면, 신경쇠약증은 증기기관이나 전신 등 발명품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여성들의 교육도 몹시 피로한 일로 간주됐었다. 인쇄술의 등장은 모든 종류의 일간지와 잡지들을 개인들에게 퍼뜨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애나 카타리나 샤프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어드는 현대의 환자가 이런 만성적 감각 과잉을 감당해 내지 못할까 봐 염려했었다.”

24시간 생체시계 고장에 따른 문제들

현대생활이 피로의 원인이 아니라면, 또 다른 가설이 존재한다. 피로의 원인 중 전부 또는 일부가 수면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수면의 필요성과 피로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이 두 현상은 매우 닮았지만 미묘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지 밝힐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수면 잠복기 반복검사다. 이 검사는 수면 클리닉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는데 원리는 다음과 같다. 만일 당신이 낮 시간 조용한 환경에 누워 있다가 단 몇 분 만에 잠이 든다면, 당신은 수면부족이거나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5분이 지나도 잠들지 않고, 여전히 피로를 느낀다면 당신에게는 피로로 인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면욕구와 다르다면 과연 피로란 무엇일까? 매사추세츠 노샘프턴 스미스 칼리지의 신경과학자 메리 해링턴은 피로의 생물학적 특징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소수 전문가들 중 한 명이다. 아직 연구자들은 환자들이 표현하는 피로감에 부합하는 아무런 독립적 지표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가지 후보들은 발견했다”고 해링턴은 말했다.
메리 해링턴이 연구한 가설들 중에는 주간 피로가 낮과 밤 동안 정신적 각성시간을 조절하는 24시간 생체시계의 고장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1) 두 개의 시교차 상핵이 이 각성을 책임지는데, 시교차 상핵은 호르몬과 뇌 활동을 통괄해 낮 동안 우리에게 활력을 선사한다. 평상시 시교차 상핵은 아침이 되면 각성상태를 최대로 끌어 올리고, 오후가 되면 각성상태를 낮추며 저녁에는 잠을 자고 싶게 만든다. 
해링턴에 의하면, 당신이 밤에 잠을 자며 보내는 시간은 이런 주기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당신의 활력은 사실 시교차 상핵이 발생시키는 호르몬·전기 출력 신호의 질에 달렸다. 시교차 상핵은 망막에 도달한 빛의 정도에 따라 자신의 시계를 조절하는데, 이것은 태양의 빛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태양의 빛이 아침에 너무 약하거나 밤에 너무 강하면, 시교차 상핵의 신호들이 고장 날 수 있고 낮 동안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 메리 해링턴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생체리듬의 교란은 꽤 빈번히 발생하고, 밤에 점점 더 많은 불빛을 사용하면서 더욱 악화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당신이 잠에서 말끔하게 깨어나지도, 취침시간이 됐을 때 자고 싶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잘못 조절된 시교차 상핵 때문이라고 해링턴은 말한다. 
해링턴이 추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매일 아침 적어도 20분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시교차 상핵이 주간 모드에 멈춰져 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밤 10시가 되면 모든 화면을 끄면 된다. 메리 해링턴은 시교차 상핵을 다시 제로 상태로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운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운동과 피로 감소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낸 바 있다. 
그녀는 말한다. “피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운동하라고 하면 싫어하겠지만, 운동이야말로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육체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잠을 더 잘 자는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연구에서는 실제로 이들의 수면시간이 특별히 길지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따라서 수면시간보다 수면의 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체중이 감소하면, 피로도 감소한다

운동은 시교차 상핵을 초기화할 뿐만 아니라 늘어진 살을 펴주기도 하므로, 체중이 감소하면, 피로도 감소한다는 이론도 일리가 있다. 지방은 렙틴을 더 많이 분비하게 만든다. 렙틴은 뇌에 우리 몸이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이다. 렙틴이 증가할 때 피로를 더 많이 자각하게 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발견이다. 몸에서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식량을 찾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규칙적으로 단식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단식 전보다 단식 후에 훨씬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비만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렙틴이 만성 피로감의 주요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현상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과체중인 사람들은 평균체중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염증을 보인다. 체내 기관의 일부 면역반응의 혈중 단백질, 사이토카인(혈액 속에 함유된 면역 단백의 하나-역주)을 방출시키면서 몸의 다른 부위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지방은 이 단백질들을 다량으로 비축하고 있는데, 이 비축된 단백질들이 이미 혈액 속에 순환 중인 단백질들과 만날 수 있다. 사이토카인은 신경계를 자극하며,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감기에 걸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다비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벤저민 하트는, 이런 피로감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공격에 맞서 싸우게끔 우리를 돕는 진화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때, 피로감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은둔형 생활, 스트레스…. 
만성 염증의 원인들

이 현상은 동물 연구를 통해서 관찰할 수 있다. 메리 해링턴은 생쥐들에게 약한 강도의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이 생쥐들은 평소처럼 움직이고 먹이를 먹었지만, 우리에 있는 쳇바퀴를 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쳇바퀴를 돌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한 건강한 생쥐들과는 분명 달랐다. 생쥐들이 약한 염증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생쥐의 쳇바퀴 돌리기는, 산책 등 인간의 여가활동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다.” 
휴스턴 텍사스 대학교 MD 앤더슨 암센터의 로버트 댄처와 동료들은 뇌의 주요영역에서 나타난 변화를 발견했다. 동기결여를 설명해 줄 수도 있는 변화다. 이들은 염증이 동기부여와 연관된 뇌 부위, 이를테면 전두엽-선조체(보상으로 동기부여가 돼 결정을 내리는 것과 관련됨)와 섬피질(피로의 육체적 감각을 다룸)의 활동을 손상시키는 방식을 설명했다. 이런 변화들은 동기결여, 우유부단함 그리고 피로를 쉽게 느끼는 일 등 피로의 몇몇 측면을 설명해 줄 수도 있다.(2)
당신이 아프지 않거나 과체중이 아니더라도 염증은 강력한 피로의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외출을 하지 않는 은둔형 생활방식, 스트레스, 당분을 많이 섭취하고 과일과 채소는 적게 먹는 식습관 등이 약한 강도의 만성 염증과 결합한다. 게다가, 일부 기초자료들에 의하면, 생체리듬 교란은 뇌의 염증 상태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자주 에너지가 없다고 느끼는지, 우리의 생활방식과 연결된 염증이 답해줄 수 있을까? 로버트 댄처의 답은 단호하다. “그렇다.” 염증의 표지가 되는 인터류킨 6분자의 높은 비율과 피로 사이의 연관성을 여러 역학 연구에서 증명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관련 연구들은 이제 시작단계다. 하지만 낮은 수면의 질, 운동부족, 나쁜 식습관 등의 원인들과 피로 간의 연관성을 밝혀낼 공통적인 방법으로 염증이 점점 주목받고 있다. 만일 염증과 피로의 상관관계에 대한 가설이 맞는다면, 염증을 줄이는 생활방식을 통해 피로도 줄일 수 있다. 즉 운동과 폴리페놀이 풍부한 과채류의 섭취를 늘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신경과학 연구소의 신경과학자 애나 쿠푸스와미는 염증이 피로의 모든 원인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뇌졸중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뇌는 뇌졸중이 왔을 때 강력한 염증의 중추 역할을 했다. 애나 쿠푸스와미는 이렇게 말했다. “염증은 피로의 도화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환자들의 염증 표지가 정상화되고 한참 지난 후에도, 이들에게 여전히 피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사람에 따라 피로감을 일으키는 생체신호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염증과 피로의 상관관계에 대한 가설을 무너뜨리는 요소다. 애나 쿠푸스와미는 일부 환자들이 피로라는 현상을 극복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극복을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낮은 수준의 동기부여는 분명 피로의 중요한 측면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인다. 파킨슨병 같은 일부 질병은 도파민 비율의 감소를 유발하고, 그 결과로 생기게 되는 우울함이나 무기력은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도파민 비율이 낮은 것은 우울증과도 관련이 있다. 우울증은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가용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력한 피로의 시기를 겪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고, 일생 동안 5명 중 1명은 우울증에 걸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피로의 잠재적 공통요소들 중 하나임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쾌한 활동은 피로를 줄인다

텍사스 A&M 신경과학 연구소 신경인간공학 연구실의 란자나 메흐타는, 많은 이들이 피로를 느끼는 원인을 우울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란자나 메흐타의 연구팀은 최근 연구에서, 우울증을 동반하는 심리적 피로가 실제로 육체적 피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암산을 하며 아령을 들었던 실험대상자들이 아령만 들었던 실험대상자들에 비해 지구력이 떨어졌다(-25%)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실시된 단층 촬영에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강한 지능 활동은, 집중과도 관련되고 또 움직임의 방향을 관장하는 뇌의 앞쪽 부위 활동을 줄어들게 한다. 뇌가 움직이면 근육 역시 그 움직임으로 괴로움을 겪는 것이다. 이렇게 피로의 다양한 원인들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점점 더 많은 연구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역시 파악이 쉽지 않은 피로의 신체적 표지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메리 해링턴은 훌륭한 동물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과학자들이 합의된 노력을 기울여 피로가 의학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많은 작업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외로움을 느낀다.”
메리 해링턴은 피로 때문에 유쾌한 활동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을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무리해서라도 유쾌한 활동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인데, 큰 보상은 동기부여, 마음의 활기와 관련된 뇌 부위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반대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다. 아드레날린 분비는 졸음 극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와 유쾌함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다. 메리 해링턴의 말을 빌자면, “알프스 산을 여행하면서 누가 피로를 느낄 수 있겠는가?”   


글·에마 영 Emma Young
과학 및 건강 전문기자. 저서로 『Sane: How I shaped up my mind, improved my mental strength and found calm』이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D. Bonsall and M. Harrington, ‘Adv. Neuroimmune Biol.’, 4, 265, 2013.
(2) R. Dantzer et al., ‘Trends Nurosci.,’ 37, 39,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