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경제 지표, 전혀 다른 평가는 왜?
경제 프레임 전쟁의 진실
2018-09-28 최배근 | 건국대 교수
경제 양극화 및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정치세력의 정책과 견해의 차이가 점점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도 일상화되고 있다. 경제 양극화에 따라 중간 소득층이 감소하고, 이들 중 대부분이 저소득층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정치도 각 지지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의 확립을 국정운영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에 따라, 불공정과 불의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시켰던 적폐세력들의 반격도 예상된 것이다. 북미관계의 변화로 단골 메뉴였던 북한 이슈를 활용할 수 없었던 수구보수진영에게 경제 이슈는 반격의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들은 ‘저소득층의 빈민화 및 중산층의 저소득층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비슷한 경제지표, 전혀 다른 평가
본격적인 반격의 불은 5월 29일 공개된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일 오후 청와대에서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최근 1/4분기 가계소득동향조사 결과 하위 20%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보수진영은 저소득층 가계소득 강화를 목표로 한 소득주도성장과 저임금노동자의 임금 강화를 위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잘못된 정책이자 공약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10년 인구 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 총조사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60세 이상 가구주와 1인 가구 비중이 증가한 통계표본의 변화에 대한 보충설명(?)이 필요했지만, 여하튼 하위 50% 가계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충격이었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일부까지 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일부 중산층 소득감소의 기본적인 원인은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이 아니다. 소득감소는 2016년부터 진행된 것이다. 다음 그래프를 참조하면, 2016년 1분기 하위 40% 가계의 소득이 줄기 시작해 4분기에는 하위 60%까지 소득이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진영의 공세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며 가열됐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7월 27일 ‘2분기 0.7% 성장, 그 뒤에 드리운 더 암울한 전망’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 경제가 2분기에 0.7%(수정치 0.6%) 성장하는 데 그쳤다”며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은 무려 4.1%(연율 환산) 성장을 내다본다”고 보도했다. ‘연율 환산’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악의(?)가 가득한 기사였다. 먼저, 3개월분 증가율과 1년간 증가율을 대비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계절적 요인과 기저효과 등으로) 통상 1분기 성장률이 낮고 2분기가 높다. 반면, 한국은 1분기가 높고 2분기가 낮다. 올해 1분기에 미국은 0.5%, 한국은 1.0%였다.
그런데 조선일보 논리대로라면 1분기에는 우리 경제의 성과를 칭찬해야 마땅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올해 한국은행 성장률 전망치 2.9%(상반기 기준으로 2.8%)도 지난 정부 성장률과 비교할 때 나쁘지도 않다. 우리 경제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이래 사실상 2%대 성장률이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설정한 잠재성장률(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한 국가의 경제가 보유한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성장률)이 2.8~2.9%(2016~2020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성장률이 3.1%였는데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2.8%로 하락했다고 수구보수언론에서는 경제폭망(?)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수구보수언론은 (연평균 7% 성장률을 공약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연평균 성장률이 3.2%로 하락하고, (4%대 잠재성장률을 공약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연평균 3%도 안 나오자 정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자본수익성 하락,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른) 잠재성장률이 하락한 결과라며 방어했다. 즉 우리 경제의 체질 및 산업구조 등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향후에도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다.
‘고용참사’의 실상,
고용률과 고용의 질 개선
수구보수진영은 8월 17일 발표된 7월 고용지표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또 다른 도구로 활용했다. 5천 명 증가에 불과했던 취업자 수 그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고,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고용참사’, ‘고용대란’이라고 몰아붙였다. 취업자 수만 보면 참사가 맞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수의 비중인 ‘고용률’이다. 예를 들어, 1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이고 이 중 취업자가 600만 명이면 고용률은 60%다.
그런데 1년 후 15세 이상 인구가 2,000만 명으로 증가하고, 취업자도 400만 명이 증가해 1,000만 명이 되면 고용률은 50%가 된다. 반면 15세 이상 인구가 200만 명만 증가하고, 취업자는 120만 명이 증가하면 고용률(=720만/1,200만)은 60%가 된다. 전자의 경우 10명 중 5명이 취업한 것이고, 후자는 10명 중 6명이 취업한 것이다. 취업자 수 400만 명 대 120만 명으로 비교하면 후자는 ‘참사’인 것이지만, 고용률로 보면 전자가 ‘대참사’인 것이다.
7월 고용률 61.3%는 박근혜 정부 시기(60.4~61.2%)보다 높은 것이고, 16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한 미국의 고용률 60.5%보다 높다. 15~64세 인구를 기준으로 한 고용률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고용의 질도 박근혜 정부 시기에 비해 개선됐다.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상용노동자의 비중(7월 기준)은 68%로 박근혜 정부 시기에 비해 2.3~3.7%p 높았다.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 등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일자리의 비중은 박근혜 정부 시기보다 같은 크기만큼 감소했다.
세금폭탄?
“나도 종부세 좀 내보고 싶다”
경제지표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 한 후 증오의 정치에 활용하는 수구보수언론은 극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이 침해될 경우에는 극소수의 피해를 전 국민 피해로 등식화시키며 ‘정책 헐뜯기’를 한다. 9·13 부동산대책으로 “빚을 내서 세금을 내야 할 정도”,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 내야 할 세금이 폭탄 수준”이라며 국민 불안을 부추겼다.
그런데 종부세 개편 적용 대상자는 주택분의 경우(2016년 기준) 27만 1,000명으로 전체 주택소유자 1,331만 1,000명의 2%에 불과하고, 게다가 무주택자 45% 정도를 포함하면 종부세 적용 대상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중산층은 해당 사항이 없다. 종부세를 납부하려면 (주택분의 경우) 실거래가 기준 18억 원 이상이 되는 주택을 소유해야만 가능하다. 즉, “나도 종부세 좀 내보고 싶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실거래가 18억 원 주택의 소유자가 이번 종부세 개편으로 올해보다 추가납부할 세금은 10만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7월 정부의 세제개편에 따라 18억 원 주택 소유자의 세금은 원래 내년에 5만 원 증가할 예정이었다. 5만 원 증세의 결과가 부동산 투기 광풍이었고, 정부는 대책으로 종부세를 5만 원 추가 증액한 것이다. 18억 원 1주택 소유자가 이번 개편으로 내년에 낼 종부세는 104만 원이다. 그런데 매일 담배 1갑을 피우는 사람이 1년에 내는 세금은 121만 1,070원이다. 배우 김의성 씨가 SNS에 “집이 없는 나는 담배로 1년에 121만 원 푼돈 세금을 낸다”며, 종부세 강화에 대한 수구보수언론의 불평에 불편한 심정(?)의 글을 올린 배경이다.
야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에 준해서 올리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로 상향하면 서울 시내 대부분 집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시가격을 실거래가로 올리고, 현재의 공정시장가액비율 80%를 (정부가 발표한 대로) 2022년까지 매년 5%씩 인상해서 100%로 상향하더라도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되려면 9억 원 이상의 주택을 소유해야 하는데, 서울시내 대부분 집들이 9억 원이 넘는다는 가정하에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공시가격은 실거래가 수준으로 올릴 수도 없고, 정부가 그런 계획을 발표한 바도 없다. 이들은 이번 개편으로 종부세 부담이 증가한 181억 원 이상이 되는 1주택자나 총 176억 원 이상이 되는 다주택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공갈 마케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들은 종부세를 공격해 재미(?)를 봤던 참여정부를 끌어들여 이번 9·13 대책이 참여정부 이상으로 회귀한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남발했다. 한마디로 종부세 세수나 대상 인원 모두 참여정부 시기에 비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1주택자 기준으로) 종부세 과표기준을 6억 원(실거래가 9억 원 안팎)에서 9억 원(실거래가 13억 원 안팎)으로 대폭 완화시키고, 여기에 종부세를 추가로 줄여주기 위해 경제 논리도 뒷받침되지 않는 공정시장가액제도를 도입한 결과다.
사실, 사회체제 및 국가질서의 유지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진정한 보수라면 극소수의 사익 추구에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사회의 토지소유 불평등은 조선시대 말 가장 토지소유가 집중된 지역의 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다. 자산불평등은 상·하위 10% 가구의 자녀가 상·하위 10% 가구로 살 확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사실상 신분제 사회가 돼 버렸다. 이런 사회와 국가가 지속 불가능함은 역사가 보여줬다.
혁신이 없는
한국경제의 침몰, 시간문제
사실, 대다수 국민들을 불안케 하는 고용과 분배 악화의 근본 원인은 제조업 기반 경제생태계의 약화에서 비롯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둑과 제방이 무너져 범람한 물에 마을이 잠기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먼저, 물에 빠져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일로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자리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전까지 필요한 경우에는 공공부문 일자리도 늘려야 하지만 저소득층과 청년층 등 취약계층의 자활에 한국은행의 저리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의 금융시스템 하에서 취약계층은 채무노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둑과 제방을 재건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생태계의 혁신과 재구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나 4인 이하 종업원이 근무하는 사업장 등의 어려움은 ‘을’의 고통을 완화해주기 위한 공정경제(경제민주화) 조치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즉 카드 수수료 인하, 상가 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이 가능해져 자영업자의 월 순 수입이 200~250만 원 보장된다면 자영업자 문제는 해결될까? 단기적 효과로 그칠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일자리 단기화와 더불어 제조업 일자리 등을 잃은 잠재적 자영업자가 자영업에 진입할 것이고, 그 결과 과당경쟁 심화와 상가 수요 증가에 따른 상가 임대료 상승 등이 재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최소한 일자리가 축소되지 않도록 산업생태계가 활력을 띄고 진화할 경우에는 공정경제 강화가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지만 산업생태계가 정체 혹은 위축되는 상황에서 공정경제 강화는 지속되기 어렵다. 즉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몸통이 움직이려면 공정경제라는 왼발과 보완관계를 가진 혁신성장이라는 오른발이 교대로 움직여야 가능하다.
제조업 기반의 약화가 한국 경제 전체에 충격을 주는 이유는 우리 경제의 생태계가 제조업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은 하나의 생태계, 즉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노드(절점)와 링크(선)로 구성되는 네트워크에서 특히 핵심 노드(허브)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리먼 파산이 금융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이유다. 즉 한국의 경제 및 산업생태계의 특성으로 제조업에 대한 과잉의존을 얘기할 정도로 제조업이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즉 제조업이 재벌 대기업의 주력 사업이자 수출의 주력 산업이듯이 ‘한국식 산업화 모델’(박정희 모델)의 핵심 요소인 제조업-재벌 대기업-수출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한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가계부채 축소 및 세계 경제의 저성장에 따른 소비 둔화로 글로벌 교역이 정체하며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제조업이 역성장했는데 대기업 제조업의 역성장이 주도했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제조업의 역성장은 청년 일자리와 저소득층 일자리 상황을 악화시켰다. 청년들은 급여와 복지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기업이나 신기술과 관련된 혁신기업들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새로운 수익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 주력사업의 성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자연감소분을 충원할 뿐 새로운 인력 확보는 소극적이 됐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청년 일자리 악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업체 및 중소기업 등의 일감 축소에 따른 저소득층 일자리인 임시직 및 일용직 일자리 축소가 동시 진행된 것이다.
제조업의 위축 및 역성장에 따른 기업 부실화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보다 금융 지원 및 신용 보증으로 연명시키고, 제조업 사업재편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성동조선에서 수십억 원을 받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건넨 대가로 성동조선이 수조 원의 지원을 받은 거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수조 원 지원, 그리고 (완성차 사업에서 친환경 및 차량공유서비스 등으로의 전환이라는) 자동차산업의 사업 재편(예: 미국 GM 2013년 말 사업 재편 결정과 해외 생산기지 철수 시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 실패 등이 그것이다. 제조업 위축과 제조업 관련 일자리 감소는 제조업 도시들인 창원, 울산, 거제, 군산, 구미 등의 상권 위축과 자영업 타격, 그리고 지방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이어졌다.
즉 제조업 중심의 경제 생태계에서 제조업의 위축이 경제 모든 부문의 악화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의 고충이 해당 산업(제조업)에서 일자리 감소, 특히 2~4차 협력업체의 물량감소에 따른 임시직 및 일용직 감소, 해당지역 상권이 입은 타격과 자영업의 폐업 증가(도·소매업과 숙박·외식업) 및 상가의 수요 감소(건물 환경미화원, 경비원), 실직한 이들의 외부 이주와 해당 지역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부동산업 종사자 감소, 그리고 저소득층-중산층의 일자리 및 소득 감소는 교육서비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고용위기 속에서 직격탄을 맞은 연령층이 40대와 30대인 것이다.
사회혁신 없는 경제생태계 복원은 불가능
제조업 기반 경제생태계 약화는 (제조업 종사자가 줄어드는) 탈공업화와 더불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일자리 증가율이 감소하고, ‘일자리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고 내수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내수 약화는 공격적 시장개방의 추진으로 이어졌고, ‘수출에 목을 매는’ 대외의존적 경제가 됐다. 기업은 수출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고용 선호, 생산자동화,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 노동비용 절감으로 대응했고, 정부는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고환율 등 친기업 정책으로 기업을 지원했다. 특히, 대기업은 제조업 중간재를 해외 외주화시키며 중소기업 협상력을 약화시켰고, 제조업 관련 서비스를 국내 외주화시키며 비정규직 노동력을 증가시켰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제조업-서비스업 종사자 1인당 소득 격차, 임금노동자-자영업 1인당 소득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임금불평등은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 고령화 등 인구구조를 악화시켜 내수와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켰다. 즉 비정규직, 중소기업 취약성 등에서 비롯한 임금불평등은 낮은 결혼율의 핵심요인이다. 압축적 탈공업화의 결과로 고령화도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배경이다.
한편, 수출 주도 성장은 해외경제 상황에 의존적이기에 세계 경제 침체 때마다 인위적 부양 혹은 부채 주도 성장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의 구조적 정체로 수출주도 성장전략도 파산을 맞이한다. ‘한국식 산업화 모델’이 수명을 다한 시점에 ‘박정희 시스템의 부활’을 상징하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것은 ‘하나의 역설’이자 박근혜 정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4% 잠재성장률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474공약)의 출범 첫해 성장률이 2%대에 불과하자 부동산시장에 대한 인위적 부양과 가계부채에 의존한 ‘나쁜 정책’을 선택한다. 박근혜 정부부터 가계부채가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수출과 내수의 연관성이 약화된 가운데 수출 의존적 성장 방식은 내수 취약성을 구조화시킨다는 점에서 부채 주도 성장 방식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문제는 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앞서게 되면 부채주도성장 방식, 즉 미래소득 끌어쓰기 방식은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7년 5월호의 “‘채무노예’없앨 중앙은행의 민주화”에서 소개한)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조치 없이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역성장도 불가피할 것이다.
역대 정권들이 미래성장동력 만들기를 추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IT 산업과 녹색산업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제조업과 창조산업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구현 실패 역시 예고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4차 산업 육성도 기술개발에 매몰돼 있고 플랫폼 경제 구축의 목적도 불분명해, 결과적으로 혁신성장의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이 기술 개발에만 매몰될 경우 ‘일자리 대충격’과 ‘초양극화’를 수반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면서 데이터가 새로운 핵심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기에 데이터 확보를 위한 전 산업 및 사회의 플랫폼화를 전제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대혁신이 요구된다. 즉 플랫폼 독점의 해결과 데이터 활용 역량을 갖춘 인재의 확보, 그리고 사회 및 경제 운영원리의 근본적 변화 등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형과 정치경제 질서의 혁명적 변화 등 사회혁신을 의미한다.
즉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사회혁신을 수반할 때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과 사회경제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가 허락된다면 소개하고자 한다.
글·최배근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안경제 이론과 대안경제 시스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교육·지역자치·통일운동 분야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높다. 현재 경제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