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바뀌어도 골드만삭스는 남는다

[Horizon]

2010-08-06     이브라임 와드

‘대공황 이래 가장 광범위한 금융개혁법안’이 7월 15일 미 상원에서 통과됐다. 초안보다 내용이 다소 완화됐지만 이 법안의 통과로 버락 오바마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금융위기로 은행 로비스트의 입김이 약해지고, 골드만삭스 사건으로 금융계의 오랜 관행이 폭로된 덕분이었다.

미국 상원에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안(민주당 의원 크리스토퍼 도드와 바니 프랭크의 이름을 땄다)이 통과되던 바로 그날 다른 한쪽에서 벌어진 일은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미 연방의 ‘금융 감시인’ 역할을 하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와 골드만삭스가 합의에 이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합의금으로 5억5천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로써 이 투자은행은 금융상품 ‘애버커스’(Abacus)와 관련된 사기 혐의의 부담에서 벗어났다. 골드만삭스는 애버커스를 통해 모기지 담보 상품의 가치 하락에 대비하면서 고객에게 투자를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오랫동안 수동적 대응으로 지탄받아온 SEC는 이번 기회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골드만삭스로서도 자신의 정치적 노하우를 과시하는 기회가 되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상품 출시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임원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이로써 골드만삭스는 한숨을 돌렸다. SEC에 지급한 합의금은 얼핏 보면 큰 액수 같지만 이 투자은행엔 고작 2주 매출에 해당하는 돈이다. 또한 2009년 임원에게 제공한 보너스의 3%에 불과하다.

임원 보너스의 3%만 내고 ‘면죄부’

임원 보너스의 3%만 내고 ‘면죄부’

골드만삭스와 권력의 친밀한 관계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정계 진출은 예정된 절차 같은 것이었다. 정계와의 이런 밀착 관계는 골드만삭스가 그동안 대형 금융 사건에 연루돼왔음을 방증한다. 가령 골드만삭스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금융구제 과정에서 모호하지만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가 재정 상태를 조작하게 도와 유로화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골드만삭스는 원자재 시장에 대한 투기로 유가 상승을 유발했으며, 인위적으로 거품을 키워놓고는 거품 붕괴로 이익을 보기도 했다. 비옥한 땅에서 해마다 풍작을 거듭해온 셈이다. 그러나 사상누각이 무너지고 흉년이 들자 충격에 사로잡힌 여론은 거품 붕괴로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동안 골드만삭스가 웃는 이유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 남부 출신 유대인 이민자 마커스 골드만이 뉴욕에 설립한 작은 회사에서 시작했다. 그  뒤 사위 새뮤얼 삭스가 합류하면서 골드만삭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주로 기업어음(단기 채권)을 중개하던 이 회사는 당시 앵글로색슨 백인 청교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이끌던 주류 사회에 끼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골드만삭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본격적인 재기의 길에 들어선다. 1956년 이 투자은행은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가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골드만삭스가 꾸준히 명성을 쌓을 수 있던 것은 실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직원들이 합심해 일하는 튼튼한 기업문화 덕분이었다. 시드니 와인버그와 거스 레비 같은 이들이 회사를 이끌면서 이 합자회사는 차츰 전통적인 주류 사회의 주목을 끌다가 결국 그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거북이는 왜 탐욕의 문어가 됐나

골드만삭스는 다른 경쟁사와 차별성을 가졌다. 체계적이고 조심스럽기로 유명한 이 회사는 다른 회사와 ‘적대적’ 관계에 들어서는 일을 피했다. ‘천천히 서두르자’는 회사의 좌우명 덕분에 골드만삭스는 ‘거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이윤이 회사의 유일한 목표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임원이 타사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는 등 상대적으로 ‘검소한’ 태도가 회사 분위기를 지배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좌우명으로는 ‘장기적인 욕심’(Long-term Greedy)이 있다. 고객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범위에서 당장의 손해에 연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투자한다는 말이다. 골드만삭스의 기업문화는 ‘14계명’에 잘 드러나 있다. 그중 일곱 번째 계명을 보면 ‘회사와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이 회사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고 못박는다.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분위기를 고수하던 투자은행은 이처럼 직업윤리를 준수하고 약속한 말에 책임을 지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1)

그러나 1980년대 규제 완화가 시작되면서 이 좋은 원칙도 차례로 무너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매출을 늘려야 한다는 지상 목표가 강요되면서 정직하지 못한 수법이 등장했다. 애버리지(빚을 통한 투기성 매입) 비율이 위험 수준에 이르고, 몇몇 규범은 무시됐다. 금융계에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법이 등장했다.(2) 정계와의 유착(이들은 공식적으로 시장지상주의를 찬양했다), 국제화, 광적인 이윤 추구 경쟁이 금융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3)

‘거북이’는 천천히 탐욕스러운 ‘문어’가 돼갔다. 문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금융 규칙을 새로 고쳐 쓰고 싶어했다. 골드만삭스는 당시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바람 속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해외의 정·재계 엘리트를 최고 연봉으로 모셔왔다. 프랑스의 자크 메이우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금융감독관이던 그는 한때 소시에테제네랄은행과 크레디아그리콜은행, 사실로르를 이끌었다. 그 뒤를 이은 샤를 드 크루아세 역시 금융감독관이었는데, 예전에는 크레디코메르시알드프랑스(CCF) 사장, 부이그, 르노, LVMH, 탈레스 등에서 이사를 지냈다.

1999년 골드만삭스는 합자회사에서 탈피해 주식시장에 상장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4) 동업자를 중심으로 한 합자회사에서 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공적’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당시 ‘시장 평가액’은 36억 달러였다). 회사 자본의 48%를 소유한 동업자 221명은 기업공개 과정에서 각자 6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5) 이제 금융 규범을 준수하는 ‘장기적인 욕심’의 시대는 끝났다.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당장 얼마나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느냐가 성공 기준이 되었다. 그 뒤 골드만삭스는 월스트리트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하는 투자은행이 되었다(2009년 순이익 134억 달러). 물론 직원은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다.

다른 사람 패를 아는 도박꾼 노릇

금융시장이라는 거대한 카지노에서 골드만삭스는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고객의 거래에서 수수료를 떼는 딜러 역할뿐 아니라 현금을 대가로 고객에게 투자 전략과 정보를 제공하는 상담인 역할도 했다. 고객은 각국 정부와 기관투자자, 상습 도박꾼(헤지펀드)이었다.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와 경제 전문가들은 말 한마디로 전세계의 시장 판도를 뒤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골드만삭스의 위치는 카지노에서 다른 사람들의 패를 알고 있는 갬블러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판돈까지 대신 걸어주는 처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골드만삭스의 이익 구조는 상당 부분 자기자본을 통한 트레이딩에 기대고 있었다. 골드만삭스는 자기자본을 부동산이나 잠재력 있는 기업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금융시장에 투자했다. 그리고 1981년 아론앤드컴퍼니를 매입하면서 원자재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덩치 큰 회사가 되었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세계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시장과 지구온난화로 부상한 새로운 시장에도 눈을 돌렸다. 황금알을 낳는 ‘탄소 배출권’ 시장에 뛰어든 것은 물론이었다.(6)

모든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의 슈퍼마켓’ 같은 투자회사는 항시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내재적으로 ‘이익 충돌’(Conflict of Interest·공익과 사익의 충돌-역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프랑스 출신 트레이더 파브리스 투르 부사장이 보낸 전자우편 내용이 밝혀지면서 불거진 애버커스 사건은 한 예에 불과하다. 골드만삭스는 2007년 부채담보부증권(CDO) 판매 과정에서 고객을 속였다는 혐의로 SEC에 의해 제소당한다. 골드만삭스가 시장 몰락을 예측했으면서도,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을 기초로 발행된 파생복합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골드만삭스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서브프라임 자산을 정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을 구성하기 위해 헤지펀드인 폴슨사로부터 15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기 자본가인 폴슨 사장은 골드만삭스의 금융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부실해 보이는 채권을 선별했다.

비윤리가 모두 불법은 아니다

요컨대, 골드만삭스는 서브프라임 몰락을 예견하면서 고객에게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돈을 걸도록 부추기고, 뒤로는 헤지펀드와 공모해 가치 하락에 베팅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 부동산 채권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이중 게임을 눈치채지 못한 고객은 총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날렸다.(7) SEC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쿠자미는 골드만삭스에 대한 제소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골드만삭스는 채권시장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고객사(폴슨-역자)가 다른 투자자의 투자 대상에 포함된 부동산 채권을 표적으로 선택하도록 방조했다. 그러나 투자자에게는 제3자에 의한 객관적인 선택이라고 선전했다.” 처음엔 SEC의 제소에 대해 ‘근거 없는’ 고발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던 골드만삭스는 나중에 ‘실수’를 인정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스의 경우도 비슷한 예를 보여준다.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정부의 금융자문회사 역할을 하면서 정부 부채로 투기를 벌였다.

법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골드만삭스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윤리적인 것이 항상 불법은 아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저축은행 스캔들에 연루된 은행 직원 1500명이 감옥살이를 했다. 처음엔 마피아와 조직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도입된 ‘부정이윤행위방지법’(Anti-racketeering)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 그러나 금융인들은 이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법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보호받는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신용위험에 대한 보험 성격을 띠는 신용부도스와프(CDS)가 한 예다. 금융시장은 이제 매수자 위험 부담 원칙(Caveat Emptor)이 지배한다. 골드만삭스는 자신의 고객 중에는 투자 대상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하지 않는 노련한 투자자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한다. 더욱이 약관에 경고 문구와 유보 조항을 실어놓았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금융시장에서는 극단적인 투명성이 오히려 불투명성을 조장한다. 각각의 금융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수백 쪽, 때로는 수천 쪽에 이르는 약관이 제공된다. 고객으로서는 응당 읽고 숙지해야 할 서류지만 그것들을 모두 읽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당수 고객이 신용평가회사의 평가에 의지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수도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 컬럼비아대학 금융연구센터장 라마 콘트 교수는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부실채권이 최고점인 AAA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정보는 제공됐다. 그러나 각각의 서브프라임 채권에 50~60쪽의 서류가 포함됐으며, 작성한 법률가에 따라 내용도 달랐다. 파생상품 애버커스와 관계된 5700쪽에 달하는 서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해야 했다.”(8)

미 금융개혁 맞설 그들의 무기는?

오랫동안 금융계 선망의 대상이던 골드만삭스는 이제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게 되었다. 골드만삭스는 세 금융위기를 촉발한 장본인이면서 그 와중에도 임원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줘 세간의 분노를 샀다. 또한 이런저런 스캔들이 불거지자 지금까지 금융위기 여파를 상대적으로 잘 헤쳐나올 수 있던 이유가 전 사장들이 곳곳의 요직에 포진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냈다. 한때는 이 회사로부터 덕을 봤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고든 브라운, 앙겔라 메르켈 같은 정치 지도자도 나중에 자신에게 임원 자리를 제안할지 모르는 이 회사에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어쨌든 골드만삭스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금융 시스템 개혁 작업에 돌입할 수 있게 되었다. 도드-프랭크법은 몇 가지 중요 원칙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앞으로는 납세자의 돈으로 파산 위기의 거대 금융회사를 구제할 수 없게 된다. 은행은 자기자본 투기를 최소화하고 장외 파생상품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금융 소비자는 적대적 주식공개매입이나 폭리를 취하는 방식의 거래에서 보호돼야 한다. 미 상공회의소가 제시한 숫자가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도드-프랭크법은 앞으로 3개월에서 4년에 걸쳐 각기 다른 10개 국가기관에서 작성할 새로운 규제 조처 533개와 조사 결과 60여 건, 보고서 94개를 포함하게 될 것이다.

은행 로비스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상황에 맞설 것이다. 이들은 예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이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상황을 불 보듯 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글•이브라임 와드 Ibrahim Warde
주요 저서로 <두려움의 대가: 테러와의 금융 전쟁 뒤에 감춰진 진실>(I. B. Tauris·Londres·2007) 등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Charles D. Ellis, <The Partnership. The Making of Goldman Sachs>, Penguin, 뉴욕, 2009.
(2) Suzanne McGee, <Chasing Goldman Sachs. How the Masters of the Universe Melted Wall Street Down. And Why They’ll Take Us to the Brink Again>, Crown, 뉴욕, 2010.
(3) ‘규제 완화로 흔들리는 금융 시스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1년 1월.
(4) Lisa Endlich, <Goldman Sachs: The Culture of sucess>, Simon and Schuster Touchstone, 뉴욕, 2000.
(5) Nomi Prins, <It Takes a Pillage: Behind the Bailouts, Bonuses and Backroom Deals from Washington to Wall Street>, Wiley, 뉴욕, p.88, 2009.
(6) Matt Taibbi, <The Great American Bubble Machine>, Rolling Stone, 뉴욕, 2010년 4월 5일.
(7) 이브라임 와드, ‘천재 파이낸셜 키즈가 남긴 대재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7월호 참조.
(8) Sylvain Cypel, ‘애버커스의 이익 충돌’, <르몽드>, 2010년 5월 4일자.


[박스기사1]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는 ‘금융 천재들’

금융공학은 1973년 옵션의 권리행사 가격과 자산 변동성의 관계에 대한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스의 연구로부터 탄생했다. 블랙·숄스 공식은 곧 로버트 머턴에 의해 확장돼- 블랙·숄스·머턴 모델(BSM)- 수많은 파생상품을 개발하는 기초가 되었다.

블랙·숄스 모델은 프랑스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가 1900년 앙리 푸앵카레의 지도 아래 쓴 한 논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랙과 숄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른 두 인물을 들자면, 시카고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밀턴 프리드먼과 역시 시카고대학 교수이던 유진 파머가 있다. 순수하고 철저하게 자유주의를 신봉한 프리드먼은 금융 예측 모델이 반드시 현실적 데이터에 근거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측이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유진 파머는 1960년대 말, 시장 자체가 ‘효율적’이라는 가설을 제출했다. 이 가설은 곧 정설로 굳어져 동어반복적인 경제적 관점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국가 개입은 원칙적으로 비효율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다.

금융공학은 1997년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머턴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그보다 2년 전 사망해 상을 받지 못한 피셔 블랙도 기여도가 인정됐다). 그러나 이 두 노벨상 수상자의 참여로 화제를 모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년도 채 안 돼 도산하고 만다. LTCM의 도산으로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휘청거리자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한다. LTCM를 창업한 전설적인 트레이더 존 메리웨더는 ‘시장이 스스로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듭니다.”(1)

 ‘금융 천재’들이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예는 수없이 많다.(2) 그러나 ‘금융혁신’은 항상 새로운 얼굴을 하고 다시 등장했다. 자유주의 도그마가 모든 금융회사와 경영학교, 정부를 지배했다.(3) 세계의 주인들에게서 후원을 받는 금융 천재들은 리스크를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도 이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들의 과학적 전비 관리 능력 때문이었다.(4)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 2000년 5월에 한 말을 들어보자. “예측 기술과 자산가격 결정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이 금융혁신을 가져왔다. 그 덕분에 리스크 부담 능력이 있고 그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리스크를 이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중략) 이러한 리스크 분산은 금융 시스템, 나아가 경제 전체를 강화한다. 21세기를 맞아 우리는 금융회사가 무한한 종류의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시장의 변화가 대부분의 미 국민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5)

사람들은 금융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유명한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도 그중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적용 불가능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이론- 1900년 바슐리에의 이론을 기초로 만든 머턴·블랙·숄스 모델- 에 현혹됐다. 나는 1960년부터 줄곧 그 사실을 지적해왔다. 이 모델은 갑작스러운 가격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요한 정보를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가격 변동의 예측 불가능성은 경제를 움직이는 법칙이다. (중략) 따라서 이 모델 때문에 심각한 일이 발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금융위기는 때로 가시적인 원인에서 발생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6)

우연을 탐구하는 과학철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뉴욕에서 오랫동안 트레이더로 일해왔다. 그는 “수학이라는 가면 뒤에서 벌이는 지적 사기 행각”에 분노한다.(7) 전문가들이 남발하는 온갖 수학 기호와 부호는 본래의 내용을 숨기고 금융 초보자를 소외시키는 연막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수학은 이제 예전의 라틴어처럼 새로운 사제들의 권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리스크를 키우는 자들이 리스크를 줄이겠다고 공헌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법칙을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은 곧잘 수포로 돌아간다. 금융의 법칙은 물리학 법칙과 다르다. ‘금융계의 이단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매니지먼트스쿨 교수 앤드루 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물리학은 세 개의 법칙만으로 물질 운동의 99%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에서는 99개의 법칙이 전체 시장 변동의 3%밖에 설명해주지 못한다.”(8)

그러나 금융 ‘반혁명’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사실상 금융시장 분석가의 성공은 두 가지 요소의 조합에 달려 있다. 하나는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각 주체의 이해관계, 다른 하나는 연금술에 대한 약속이다. 다시 브누아 망델브로의 말을 인용하면 “금융인은 이 놀랍도록 간단한 모델에 쉽게 매료된다. 단 몇 주 동안 배워서 평생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9) 연금술에 관해서라면 인간은 늘 유혹될 준비가 돼 있다. 납에 불과한 부실채권을 평가점수 AAA의 ‘황금’ 채권으로 둔갑시킨 것도 이 방정식과 알고리즘의 연금술 덕택이었다. 때로는 거짓말도 쓸모가 있다. 가령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혁신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창조된 가치는 보너스로 지급된다.        

<각주>
(1) ‘상상을 뛰어넘는 LTC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11월호.
(2) ‘신금융상품의 일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4년 7월호.
(3) Scott Patterson, <The Quants: How a New Breed of Math Whizzes Conquered Wall Street and Nearly Destroyed It>, Crown Business, 뉴욕, 2010.
(4) ‘맥나마라와 그의 계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5년 5월호.
(5) 앨런 그린스펀이 2000년 5월 4일, 시카고에서 행한 연설.
(6) 브누아 망델브로, ‘심각한 일들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르몽드>, 2009년 10월 18일자. <프랙탈 시장 분석>, Odile Jacob, 파리, 2004.
(7)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Les Belles Lettres, 파리, 2004(차익종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 2008).
(8) Pablo Triana, <Lecturing Birds on Flying: Can Mathematical Theories Destroy the Financial Markets?>, Wiley, 뉴욕,  p.7, 2009.
(9) 브누아 망델브로, ‘심각한 일들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르몽드>, 2009년 10월 18일자. 


[박스기사2] 골드만삭스 공화국

골드만삭스 그룹 회장이던 로버트 루빈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경제회의(NEC) 보좌관(1993~95)과 재무부 장관(1995~99)을 지냈다. 그는 규제 완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금융계의 ‘환영’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두 명의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 각기 다른 곳에서 요직을 맡았다. 둘의 소속 정당이 달랐던 건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 헨리 폴슨은 2006~2009년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금융 구제안의 기본 골격을 다듬었고, 존 코자인은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뉴저지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코자인은 선거전에 자비로 6200만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이 든 상원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 뒤 2006~2010년에는 뉴저지 주지사를 역임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골드만삭스 고위 간부 출신 중에도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꽤 많다. 특히 최근의 금융위기에서 그들의 활동은 빛을 발했다. 폴슨은 재무부 장관이 되면서 자신이 아끼던 닐 카슈카리를 금융안정 담당 차관보 자리에 앉혔다. 불과 35살의 이 젊은이는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을 추진하며 금융계에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스티븐 프리드먼은 금융위기 기간에 세 개의 요직을 거쳤다. 골드만삭스의 공동대표이던 그는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골드만삭스의 후견기관이나 다름없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의장을 지냈다. 그러나 2009년 5월 골드만삭스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의장직을 사임했다. 그는 2008년 12월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당시 골드만삭스의 주식을 매입해 300만 달러의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어 뉴욕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된 윌리엄 더들리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이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골드만삭스 특유의 시스템을 두고 언론은 ‘비밀집단’(Firm) 혹은 ‘골드만삭스 공화국’(Government Sachs)이라고 부른다. 골드만삭스가 정계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건 미국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총리 로마노 프로디는 한때 골드만삭스 유럽지사 자문위원이었고, 중앙은행 총재가 된 마리오 드라기는 부회장을 지낸 바 있다. 골드만삭스 영국지사 회장을 지낸 올루세군 아강가는 나이지리아에서 ‘경제 차르’로 군림하고 있다. 반대로 정계 쪽에서 골드만삭스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전 아일랜드 법무부 장관 피터 서덜랜드가 그 예다. 그는 유럽연합 경쟁위원회 위원직과 관세무역일반협정(GATT·WTO의 전신) 사무총장을 거쳐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회장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