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8     홍 천 | 이달의 ‘감성 에세이’ 당선작

해는 매일 어김없이 뜬다. 지금이 밤이라고 해서 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다시 해가 솟을 것이다. 내 성욕도 그렇다. 성욕을 열심히도 숨겨왔지만, 그 와중에도 성욕은 항상 존재했다.

 중학교 시절, 이불을 뒤척이다 “유레카”를 외치게 됐던 날을 기억한다. 첫 자위의 경험이었다. 그 간지럽고 짜릿한 느낌을 알고 나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자위를 했다. 물론,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부모님은 어떤 낌새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자위를 하는 동안 나는 고등학생이 됐고, 대학생이 됐다.
 문제는 내가 생리를 아주 불규칙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걱정이 됐는지, 내가 기숙사에서 오랜만에 집에 올 때마다 생리를 했냐고 물어봤다.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엄마는 나를 산부인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주 두려웠다. 내가 생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자위를 하는 데 있을 것만 같았다. 병원에 가면 그 모든 사실이 밝혀질 것만 같았다. 
 나는 때로 반항을 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착한 딸이었다. ‘착한 딸’과 ‘자위’는 별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엄마 앞에서 모든 사실을 실토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결국 산부인과 진료실을 들어가기 직전 엄마에게 자위 사실을 밝혔다.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해 문자를 보냈다. 
 문자의 내용은 이랬다. 내가 생리를 불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자위를 해서일 수도 있다고. 내 몸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엄마가 준 몸을 이렇게 함부로 써서 미안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엄마가 문자를 읽는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나는 공포를 느꼈다. 내 삶에서 손에 꼽히는 공포였다. 문자를 다 읽은 엄마는 의외로 차분했다. 괜찮다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보자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상담과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했다. 다행히도 내 자궁은 안녕했다. 생리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주기일 뿐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을 개선해보라고. 또, 청결한 상태라면, 자위는 얼마든지 계속해도 된다고 했다. 사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 울었던 것 말고는 구체적인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날 난 아주 큰 숙제를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자위를 하고 난 뒤 밀려오는 죄책감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것이었다. 아무도 자위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기에, 네이버에 검색하면서 내 자위가 괜찮은 것인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짐승으로 여겨졌다. 사춘기쯤 되면 남자애들의 성욕은 그러려니 하고 당연시되는 반면, 여자애들의 성욕은 어디서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내가 이상한 애인 줄 알았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성교육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었다. 성교육에는 늘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남자들을 여자들이 이해해라’는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한창 성욕이 왕성한 여자들을 남자들이 이해해라’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한 선생님은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아주 강조했다. 여자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남자의 머릿속엔 온통 섹스만 가득 차있다고 했다. 반 친구들 모두가 웃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나는 여자고, 성욕이 넘쳐났다. 
 거론되는 것 자체가 권력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거론되지 않은 대상은 스스로 자신이 정상인지 의심하기 마련이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내 ‘비정상적인’ 면을 드러낼 수 없었다. 성욕이 많고, 더군다나 자위도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여자의 성욕은 야동 속에서만 자리를 잡고 있다. 뒤틀린 형태로 말이다. 특히 자위를 하는 여자는 문란한 여자이며, 여자가 자위를 하는 장면에서는 늘 시선이 느껴진다. 야동 속 인물의 시선이던, 카메라의 시선이던 결국은 남성을 상정한 시선이다. 여성의 자위가 남성을 흥분시키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매우 역겹다. 
 여자의 성욕과 자위는 야동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내가 쓴 글 하나를 공유했다. 그동안 자위를 하면서 느낀 감정을 쓴 글이었다. 친구들은 내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며 불안감을 겪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데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 나 혼자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성욕은 내게 괴물이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되는 괴물.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성욕이 해라는 것을 안다. 하늘에 매일 해가 뜨듯, 내게도 계속 해가 찾아온다. 해는 기분 좋은 에너지다. 해를 제대로 환대하지 못한 꼬마 홍천이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해를 부정하고 있을까. 그러나 해는 매일 어김없이 뜬다.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려 애쓰지 말자. 더구나 그 해가 여자 남자를 골고루 비춘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글·홍천
글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 쓰는 것은 어려워하지만, 최선을 다해 씁니다. 두려움과 열등감이 제 글의 동력입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