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출구 전략, 자본 우위서 관리 우위로
[Spécial] ‘빈부’라는 초현실주의
그러나 그 원인 분석의 초점을 자본 이익(이자, 배당금, 주가 상승)의 증가에만 맞추면 신자유주의 과정의 일면만 보게 되고, 특히 미국처럼 고액 ‘임금’(성과급, 보너스 및 스톡옵션을 모두 포함한다) 급증을 묵과할 위험이 있다. 고액 임금의 상승은 대다수 월급쟁이의 구매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후퇴한 사실과 대조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지난 수십 년간, 고소득 경영진과 임금 노동자 간의 임금 불평등은 더욱 심화됐다. 경제평론가들은 고위 경영자의 연봉, 높은 퇴직금, 트레이더가 받는 고액 보너스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기업, 특히 금융기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통해 임원이 받는 성과급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났다. 이런 변화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금융위기 전인 2006년 스위스 포트폴리오 관리 은행인 UBS가 지급한 성과급 규모는 100억 달러에 달했다. 세전 급여나 수익과 거의 맞먹는다. 2007년에는 은행 적자가 50억 달러에 이르는 데도 성과급 액수는 그대로였다!
상위 5% 주소득은 이자 아닌 임금
그렇지만 금융 분야의 고위 경영자나 임원급의 연봉만 분석하는 것도 제한적이긴 마찬가지다. 사실 소득분배의 문제점은 특정 소수의 개인들이 아닌, 소득 피라미드의 상위 구간에 유리하게 왜곡됐다는 데 있다. 미국의 경우 대략 최상위층 5% 가구로 볼 수 있다. 이는 약 750만 가구 정도인데 실제는 이보다 약간 적을 수 있다. 이 5% 가구 소득의 70% 이상은 임금이다. 바로 이들의 임금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최고로 증가한 것이다(배당금과 이자는 이 계층 전체 소득의 11%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제1·2차 세계대전 뒤의 사회적 합의(1)를 신자유주의로 바꾼 정치 변화는 이런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전후 사회질서는 서민 계층과 상위 급여자 계층을 통합하는 합의를 토대로 세워졌다. 상위 급여자 계층은 여기서 (매우 광범위한 의미에서) 기업을 경영하거나 행정 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맡는 사람들을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고위 임원’이라 하고, 앵글로색슨 국가에서는 ‘매니저’라고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기초는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상부에 있는 임원과 자본가의 ‘결합’에 의해 수립됐다.
서민-임원-자본가 세 계층의 대결
1929년 대공황 위기, 뉴딜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민간 분야의 고위 임원과 고위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었고, 이 점이 주가 상승보다는 성장과 기술 개발 위주의 경영 방식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 금융 구조는 당시 주로 생산자본을 축적하는 역할에 그쳤다.(3) 국가기관은 경제 및 연구 정책과 관련해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서민 계층과의 사회적 합의로 사회보장이나 교육 체계 개선 같은 목표를 지향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면서 최고위직부터 시작해 고위 임원은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기준을 부과한 새로운 사회질서에 합류했다. 그것은 바로 ‘주주 최우선’이라는 논리였다. 동시에 고위 공무원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진행되며 ‘신정책’이 도입됐다. 즉 국제 교역과 자본 이동에 대한 개방, 규제 완화 또는 사회비용의 축소였다.
프랑스는 역사적인 연유로 ‘좌파’(4)로 구별되는 전후 사회 합의의 특징이 미국에 비해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민간 및 공공 분야의 고위 임원이 신자유주의와 결탁하기가 좀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결탁이 되었다. 그 중대한 정치적 결과로서, 특히 사회당마저 신자유주의에 합류하게 되었다(‘외부적 강요’와 ‘세계화’라는 핑계로). 전후 정치 제도의 한 주축이 그런 식으로 불안정해졌고, 좌파 사상은 쇠퇴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했다.(5)
1930년대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때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역사적 변화는 세 종류의 사회 주체인 서민 계층과 고위 임원 계층, 자본가 계층 사이의 대결에 따라 결정된다. (자본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립시키는 마르크스의 2항 도식은 너무 제한적이다.(6)) 오늘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신자유주의 결합(임원과 자본가 사이의)이 현 경제위기의 충격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는 1929년 경제위기 때 노동운동의 압력과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공포가 임원과 서민 계층 사이의 사회 합의를 야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반대로 상부 구조의 결합이 불안정해진다면 어떤 대안이 도출될 것인가?
1929년 경제위기 때와 비교하면 큰 차이점들이 드러난다. 가장 명백한 차이는 노동운동의 약화다(또는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민중 기반의 운동). ‘개혁 중국’이 강대국 반열에 오르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가 부상했지만 20세기를 지배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은 이제 사라졌다.
가장 그럴싸한 시나리오는 우리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현 경제위기는 1929년 경제위기 때의 효과를 낳지는 못할 테고 ‘좌파로의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예측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지속만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다시금 경영에 새로운 경영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사회질서의 윤곽이 가시화되고 있다. 즉 규제, 경영 및 정책에 관해 관리 엘리트들의 단호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버락 오바마의 은행 관련 선언에서 이런 변화의 초기 단서가 발견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전후에 국가가 금융 이자를 통제한 것과 같은, 미국에서는 ‘금융에 대한 억압’으로 보기도 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후 사회 합의의 ‘사회적’ 특질은 재생산되지 않을 것 같다. 고액 급여자 계층과 자본가 계층 사이에 고액 급여자 계층이 주도하는 새로운 권력 균형이 확립될 것이다. 국가는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꼭 좌파 정부일 필요는 없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경제위기에도 좌파적 개혁 난망
전반적인 미국 상류층의 시각에서 보면 현 경제위기는 변화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고소득을 위한 과도한 경쟁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형태의 부작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바로 금융 행위의 지나친 발전과 미국 경제의 불균형 심화다(미국 경제는 항상 전세계 나머지 국가에 수입과 재원을 더 많이 의존해왔다).(7) 이로 인해 경제 영역에서 상류층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 사이에 ‘단절’이 생겼다. 상류층 소득의 근원이 세계화됐을 뿐 아니라 상류층은 자신의 생활수준(즉, 소비)을 우선시하면서 국가의 생산 투자를 등한시했다. 따라서 진정 현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보다 이런 부작용을 고치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사명이다.
국가주의적 개혁 가능성도
그러나 만일 그런 개혁 노력에 물꼬가 터진다면 분명 국가 요소(즉, 지배 계층의 이익에 즉각 손해가 오더라도 국가 이익을 수호하는 것)가 주요 동력이 될 것이다. 사회 고위층에서도 현 경제위기로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자각한 이들은 의외로 군(軍) 고위층인 것 같다. 이들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국가 요소’란 국가주의적 형태, 즉 우파 중에서도 가장 우파적 개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안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방향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뒤 첫 국면에서 나타난 담론과 대응 방식은 특히 피라미드 상부의 신자유주의 결합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다. 상류층의 경제 이익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성과급이 다시 급상승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제 변화할 때가 되었다. 그 변화는 경제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우파로의 변화일 듯싶다. 단, 극우가 되지 않길 빌어야 할 뿐이다.
글•제라르 뒤메닐 Gérard Duménil
경제학자, 전 CNRS(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소장.
도미니크 레비 Dominique Lévy
경제학자, 현 CNRS 연구소장.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국제단체 남극보호연합 한국지부 담당관. 주요 역서로 <녹색희망> 등이 있다.
<각주>
(1) 여기서 사회 합의의 용어는 케인스주의, 사회민주주의, 포디즘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해 딱히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 전후 번영은 노동 생산성 향상에 따른 급여 인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2) 여기서는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지난 수십 년간의 ‘생산제일주의’와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3) 이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조정에 의해, 또 일부 국가에서는 국영화에 의해 가능했다. 일본에서 은행과 비금융 기업의 관계가 극단일 경우였다.
(4) 좌파의 지속성은 뉴딜 정책을 실시한 미국보다는 전후 프랑스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두 나라에서 정치 정상화의 조건은 매우 달랐다.
(5)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사회질서다. 관련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있다.
(6) 자크 비데, 제라르 뒤메닐, ‘또 다른 세상을 위한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10월.
(7) ‘참을 수 없는 금융의 경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8월.
[박스기사] 미 국방부의 개입 국가주의
미국 패권의 약화를 우려하는 미 국방부가 속내를 드러냈다. 미 국방대학의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군사력 개진, 국제 외교 활동 및 경제와 인도적 원조를 포함해 미국의 국력이 미치는 전 범위에 걸친 국가 역량과 금융 서비스 분야 간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런 관계로부터 금융 서비스 분야의 활성화, 안정성 및 신뢰도와 관련된 모든 위협 요인이 미국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1) 금융 분야만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정부가 장기적인 안정과 미국 내 제조업계의 활력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조업은 군수산업이다.
미국 신안보전략연구소의 ‘21세기 안보전략의 틀’ 이라는 보고서에서도 같은 주장이 주를 이룬다. 한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국가 예산, 무역수지 및 국제 금융 교역에서 3중으로 대규모 적자가 빚어지면서 내부적으로 경제를 취약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의 경제 발전이 후퇴할 시점에 있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기술혁신을 가져온 것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의 적용을 통해 경제 선두를 지킬 수 있다.”(2)
이 두 보고서는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공공 개입, 보조금, 과세, 규제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정부의 경제 관리와 효과적인 경영제 도입을 주장한다. “자유시장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새로운 규제 감독을 시행해 금융 분야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금융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기능해야 한다.”(3)
<각주>
(1) ‘The Industrial College of the Armed Forces’, <최종 보고서>, 미 국방대학, Fort McNair, Washington, 2008.
(2) <전략 리더십: 21세기 국가 안보 전략의 틀>, 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Washington, 2008년 6월.
(3)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