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속 도넛은 미 자본주의의 상징”

2018-10-31     조은영 | 원광대 교수, 미술사

 케니 샤프는 일상의 온갖 사물과 공간을 미술로 변환하는 작업을 통해 팝아트 개념을 극한까지 실험하면서, 1980년대에 뉴욕 이스트빌리지 아트 혁명을 친구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와 함께 주도한 작가다. ‘슈퍼 팝’을 주창한 그는 ‘살아있는 팝 아트의 전설’이자 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대중문화와 공상과학만화 캐릭터, 사이키델릭한 초현실적 소재를 접목시켜 독자적 예술세계를 펼친 그는 기존 규범 파기와 미술의 경계 확장에 앞장서 왔다.
가전제품, 생활도구, 텔레비전 콘텐츠, 힙합, 펑크, 클럽문화를 포함한 동시대 현상을 자신의 회화, 조각, 설치, 그라피티, 패션, 행위예술에 혼용했다. 갓 20세였던 1970년대 말부터 샤프는 냉전기 미국에 확산된 극우사상의 여파, 전쟁에 대한 불안감, 우주개발 경쟁, 핵전쟁과 마약과 에이즈 공포, 생태환경 파괴 등 지구의 종말과 구원 같은 심각한 주제를 화려한 색채와 경쾌하고 재미있는 이미지로 포장해 다루면서, 유토피아적 신세계의 구축을 제시해왔다.
특히 전자제품과 자동차에서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획일적인 일상품을 색다른 이미지와 의미로 재창조하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으로 20대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폐기물들을 모아서 생명력 있는 탈지구적인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설치 공간 <코스믹 카반 Cosmic Cavern>을 세계 도처에 이어, 이번에 서울 롯데뮤지엄에 설치했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표상하는 <젯스톤(Jetstone)> 연작, 슈퍼팝 시리즈, 상업주의의 폐해와 열대림 훼손을 막고자 마돈나를 비롯한 연예계 스타들을 대동해 그가 진행한 환경 캠페인과 병행한 정글 연작, 거대한 그라피티 작업 등을 통해 그는 미술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남북한 비무장지대에 놀이동산 만들기를 드림 프로젝트로 꼽는 샤프는 이번 서울 전시에서 태극기 패턴과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10미터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달 3일부터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 전시회를 진행 중인 그를 조은영 원광대 교수(미술사학과)가 인터뷰했다.


1980년대 이후 예술계는 어떻게 변했나요? 현재 예술계에 만족하시나요?
“일단 예술계의 규모가 커졌죠. 1980년대 뉴욕에는 10여 개의 갤러리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기껏해야 100명 정도 됐을까요, 눈에 띄는 작가는 20명 정도였죠. 작은 사회였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아주 거대해졌고, 다양한 예술의 범주가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쫓아가면서 탐구할 수도 없어요. 이렇게 예술계는 커졌고 관람객도 역시 많아졌죠. 좋은 일이죠. 관람객의 증가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달갑지 않은 변화도 있습니다. 내가 처음 예술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누가 어떤 그림을 팔았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야기했죠. ‘그 그림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왜 그렇게 높은 가격이 나갈 정도로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이야기의 주제는 그 작품이 우리의 역사라든가 시각문화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로 확장됐죠. 그러니까 우리는 예술에 대해서 토론한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가격에 대해서만 말하죠. 예술가로서, 대단히 애석한 일입니다. 숫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죠.”

 

선명한 색으로 만화나 그라피티의 맥락에서 핵 재난, 환경 문제, 종말론 등 매우 심각한 주제를 20대 초반인 1980년대 초부터 다뤘는데 어떤 이유로 시작한 건가요?
“1950년대 미국 SF물과 일본 SF물을 보면 반복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방사능 문제죠. 내 주제와 연결되는 접점입니다. 핵폭탄이 터져서 방사능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고질라(Godzilla)’가 태어나는 거죠. 오늘날을 보세요. 후쿠시마 사태가 있습니다. 벌써 몇 년째입니까? 거의 10년이 다 됐죠. 아직도 누출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후쿠시마 방사능은 현재 태평양 전체에 퍼져 있어요.
이곳 LA에서 먹는 생선도 그 방사능에 오염돼 있음을 추적한 바 있죠. SF 스릴러의 공포는 더 이상 신화나 우화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이죠.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서는 아이들이 매주 또는 격주 훈련을 받았습니다. 책상 밑으로 숨는 훈련이었는데, 핵폭발 이후의 방사능 낙진에 대비한 것이었죠. 그런데 과연 책상 밑에 숨는다고 안전할까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생각해봅시다. 세계 종말은 한순간에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1970년대 말 이스트 빌리지를 몰려다녔어요.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었고 정치적 긴장이 지속됐습니다. 세상이 곧 폭파될지 모르니 바로 지금 정말로 열심히 파티를 즐기자는 생각에 경도됐죠. 매우 허무주의적인 태도였지요. 현실에서 우리는 다른 폭탄을 맞았습니다. AIDS 폭탄 말입니다. 언젠가 폭탄이 터질 것을 예상했지만, 그것이 어떤 폭탄인지를 몰랐던 거예요.”

 

당신의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가벼운 만화나 공상과학 캐리커처, 또는 과도기적 스트리트 아트로 간주하는 비평가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작업에 대해서 견해를 갖고 있고, 만화 스타일의 그림에 대해 종종 순간적으로 보고 재미있지만 유치하다고 생각하지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측면들도 작품에 분명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내 작품을 봐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품 안에 있는 많은 층위와 깊이를 찾아내기를 원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표면일 뿐이죠.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계획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사탕 같은 존재죠. 일단 시선을 끌면, 그 사람이 그냥 지나치든, 사탕을 먹든 상관없어요. 모두 좋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깊이를 봐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죠. 이것이 그들의 견해에 대한 나의 주장입니다. 제대로 알기 전에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라디오, 전화기, TV, 차, 심지어 비행기까지 일상의 사물을 예술 작품으로 바꿔 놓으셨죠. 이 커스터마이징 작업의 동기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호화로운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오프닝에 100명이 왔다고 합시다. 한 달에 500명쯤 방문할까요?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은 누군가의 집이나 창고로 들어가겠죠. 더 이상 아무도 그 작품을 볼 수 없습니다. 차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교통 체증이 심한 지역에 벽화를 그리면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죠. 나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싶습니다.
커스터마이징은 이런 지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반응하도록 만듭니다. 커스터마이징은 사용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도 예술일 수 있습니다. 예술은 물론, 갤러리와 미술관의 벽에도 존재하지만 평범한 우리 생활에도 존재합니다. 나는 매일 차를 타고,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만듭니다. 이런 일상의 물건에 그림을 그리고, 공룡 장난감이나 싸구려 보석으로 장식을 하면 블렌더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현실을 바꿀 수 있죠. 평범한 일상이 환상적으로 변할 겁니다. 이것이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적인 것을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죠.”

 

작품에 도넛과 핫도그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넛과 핫도그는 미국의 소비문화와 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유사한 상징물로 1959년형 캐딜락 이미지도 사용합니다. 차는 석유 산업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자본주의와 관계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복제하고 있는 이런 산업 발전이 지구 온난화의 대혼란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도넛, 핫도그와 같은 소비주의적 이미지에 집착합니다.
이것들은 인위적인 것으로, 내게 도넛은 궁극적으로 판매 도구를 의미합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예술의 한 측면입니다. 실질적으로 예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사람들에게 예술을 소유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광고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죠. 광고는 심지어 우리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물건마저 구매하도록 사로잡죠.
도넛은 영양가가 전혀 없습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맛있죠. 달콤하고 반질반질하고, 외관은 유혹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만듭니다. 나는 오브제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에 빠져 있습니다. 왜 어떤 오브제는 유혹적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갖고 싶도록 또는 먹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외부 세계에 팔려나갔던 아메리칸 드림은 그 점에서 매우 유사합니다.”

 

플라스틱을 미국의 소비주의와 같은 것으로 지칭하셨죠.
“우리의 바다가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진정한 이유가 바로 소비주의 문화 때문입니다. 가볍고 간편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상품을 판매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이 같은 문화 전체가 우리의 바다 오염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직도 시장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나요? 그렇다면 미친 짓입니다. 가방 안에 가방 하나를 더 챙겨 넣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가방을 하나 더 들고 다니세요. 거북이들이 먹고 있는 그 양 만큼이면 됩니다. 모든 것이 부조리합니다. 기업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서 파괴로의 길로 곧장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최초 개인전입니다. 한국에서도 거리 미술이나 설치 작업을 진행하실 계획입니까?
“벽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최대한 영구적이고 교통량이 많은 장소여야 합니다. 그런 곳에 하고 싶습니다. 벽 전체에 벽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 벽화 작업을 한다면 좋겠지요.
나는 공공미술을 최고로 칩니다. 공공미술이야말로 한국에 제대로 영향을 미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 전시만큼 훌륭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뉴욕의 휴스턴(Houston)과 보워리(Bowery) 거리에 벽화 작업을 했을 때 하루에 최소 3만 명의 사람들이 벽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벽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글·조은영
미 델라웨어대에서 박사를 했다. 중국 연변대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현대미술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스미소니언 미국미술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