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단 혁명의 쟁점

2018-10-31     윌리엄 이리고엔 William Irigoyen

2018년 초, 극좌파는 베를린의 거리에서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카를 리프크네히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극좌파는 매년 극좌 혁명단체 스파르타쿠스단을 창시한 이들 두 지도자가 암살당한 날인 1919년 1월 15일을 추모는 행사를 연다. 새로운 국가를 꿈꿨던 두 지도자를 암살한 것은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가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한 자유군단이었다. 두 지도자를 추모하는 행사 100주년을 앞두고 유럽의 지식인 여러 명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1)

 

앙드레 토젤, 미카엘 뢰비, 피에르 뮈소를 포함해 스물 두 명이 기고한 글을 엮은 모음집을 공동기획한 철학가 마리 클레르 칼로즈 촙은 제국주의가 강요한 ‘부메랑 효과’ 이론에 관심을 갖는다. 부메랑 효과 이론은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민중들에게 혼란을 일으킨 후 출발점으로 돌아와 새로운 생존방식을 강요하며 팽창한다는 논리를 설명한다. 역사학자 장 뉘마 뒤캉주는 룩셈부르크가 아나키스트 성향이자 극좌파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권위주의 성향을 지녔으며,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성향으로 룩셈부르크는 레닌과 부딪치게 된다. 철학가 앙드레 토젤은 룩셈부르크가 당을 지나치게 이론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야당인사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자유를 보장받아야 진정한 자유라며 민주주의를 주창했던 원래의 생각과 달리 정작 민주주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본다.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의견대립은 위원회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룩셈부르크 지지자들은 민중자치 조직을 새로운 정부조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력을 나누어 가진 혁명 정부 안에 위원회와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정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일부 독일 주는 일찌감치 방향을 결정했다고 세실 퐁세 교수가 또 다른 공동 저서(2)에서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1918년 11월 8일,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인들이 처음으로 자유국의 시민으로 깨어난다. 자유국은 연정 정부와 병사, 노동자, 농민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다스린다.’ 초기 몇 주 동안에 새로운 법률(여성의 참정권, 노동시간 8시간, 종교계로부터 교육 분리)이 생겨났다. 1919년 4월, 바비에르 위원회는 단독으로 지방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들고 일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정부에 패배했다.
이 같은 패배로 독일 북부 킬(Kiel)에서 시작된 대규모의 해방 운동도 종말을 고했다. 1918년 10월 말 킬 군항의 수병들이 영국 해군과의 최후전투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수병들은 이미 전쟁에서 패배한 마당에 영국군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이다.(3) 역사학자 마르탱 라크비치는 수병들이 일으킨 반란을 에피소드별로 자세히 설명한다. 킬 군항에서 일어난 수병반란은 빌헬름 2세의 양위와 호엔촐레른 왕가의 정치적 몰락을 몰고 온 대중의 봉기에 불을 붙인 진정한 기폭제로 평가받는다.
역사의 아이러니일지 모르겠지만, 아나키즘은 거부하면서 사회공화국을 원했던 불만에 찬 수병들이 신뢰한 인물은, 사태진압을 위해 파견된 사회민주당 소속의 국방부 장관 구스타프 노스케였다. 킬 군항에서의 학살을 막은 노스케는, 훗날 베를린에서 일어난 스파르타쿠스단 혁명을 진압하는 인물이 됐다. 일부 좌파세력과 반란세력 사이에 이루어진 결탁을 상징하는 부분이다.


글·윌리엄 이리고엔 William Irigoye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arie-Claire Caloz-Tschopp, Romain Felli, Antoine Chollet, 『Rosa Luxemburg』(로자 룩셈부르크), Antonio Gramsci actuels, Kimé, 파리, 2018
(2) Alexandre Dupeyrix et Gérard Raulet, 『Allemagne 1917~1923 - Le difficile passage de l’Empire à la république』(1917~1923년 독일 -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가는 어려운 여정), Éditions de la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파리
(3) Martin Rackwitz, 『Kiel 1918: Revolution』(킬 1918년: 혁명), Wachhol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