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2018-10-31     최배근 | 경제사학회 회장

 지난 달 필자의 글에서 밝혔듯, 우리 경제의 심각성은 ‘저소득층의 빈민화와 중산층의 저소득층화’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고용상황에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없어지는 속도가 빠르며, 40대 일자리는 감소하고 65세 이상의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다.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가계소득과 고용문제는 기본적으로 (제조업 종사자가 줄어드는 탈공업화 이후 일자리와 소득 등에서 제조업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 역동성이 쇠퇴하는) ‘탈공업화 함정’에서 비롯한다. 최근 중산층의 몰락이나 3,40대 일자리 감소까지 치닫는 이유도 자동차와 조선업 등이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좀비화,
장기침체의 불가피성

경제는 하나의 생태계로 구성되는 네트워크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제조업은 핵심 노드(허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최근 부상한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2014년에 판매대수 800만을 달성한 후 15년에는 약 1만 대가 증가할 정도로 정체에 빠진 후 감소세로 전환돼 지난해까지 판매대수가 76만대 이상 줄었다. 게다가 자동차 산업은 신에너지 자동차와 차량공유서비스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2013년 미국 GM이 전기차와 차량공유서비스로 사업을 재편하기로 결정하고 14년 이후부터 유럽, 호주, 동남아 등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배경을 살펴보면, 한국GM의 철수도 예고된 것이었다. 또한,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하는 등 신에너지 차량의 약 절반을 중국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플랫폼사업 모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 차량공유서비스는 이제야 진입하고 있는 수준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을 주력사업으로 삼은 대기업의 성장약화는 중소기업이나 협력업체의 일감 부족과 임시직 일자리에 타격을 입혔고, 해당지역 상권을 위축시키며 영세 자영업종(도·소매·음식·숙박업)의 폐업과 상가수요 위축으로 이어졌으며, 사업시설관리·지원 사업서비스업 분야의(건물 청소와 경비 등) 일자리 축소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주력산업인 반도체산업마저 위협받고 있다. 최근 반도체 수출액이 증가했으나, 우리 반도체 수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반도체 양산체제로 진입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주력산업의 역할이 쇠퇴하는 가운데 3대 주력산업이 20년 이상 바뀌지 않을 정도로 산업생태계는 활력을 잃고 있다. 수익성이 낮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들의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정리하고,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높은 신사업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는 산업구조 조정이 없는 한 핵심 노동력의 일자리 축소와 중산층의 붕괴, 그리고 장기침체는 막을 수 없다. 이처럼 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산업생태계의 재구성은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노무현 정부의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 이명박 정부의 녹색산업 중심의 17대 신 성장동력 육성,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13대 미래 성장동력의 육성 등 역대 정권들이 추진한 미래 먹거리 만들기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도 현재의 청사진으로는 실패할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점이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육성이 실패한 이유

그렇다면 역대 정부들의 산업구조 조정은 왜 실패했을까? 기본적으로 각 산업이 요구하는 과제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행정부의 ‘그린뉴딜’ 전략을 모방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은 녹색산업과 기존의 제조업이나 심지어 IT 산업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 개발은 대부분 높은 선행투자비와 낮은 운영비, 그리고 장기적인 내장수입 흐름을 특징으로 하기에 ‘고수익-고위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국이 그린산업에는 벤처자본 모델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다. 즉 약 2,500만 달러의 규모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구글이나 아마존 등이 벤처자본으로 해결됐던 것과 달리, 차세대태양광전지, 디지털조명, 전기차 배터리 등은 수십억 달러의 인내심을 가진 자금을 요구하기에 엔젤투자로 구성된 벤처자본으로는 어렵다.
새로운 산업들은 자신에 적합한 금융모델을 요구하는데 우리 사회는 벤처자본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육성이 실패한 이유도 제조업과 창조산업 간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일본은 90년대 초 자산시장 거품이 붕괴한 후 기업 구조조정보다 금융 지원 등으로 기업들을 연명시켰다. 좀비기업들이 양산된 후인 90년대 말 일본은 뒤늦게 창조산업 육성을 추진했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1999~2012년간 전체 산업의 매출액, 고용규모, 기업체 수는 각각 7.8%, 22.9%, 6.5%가 증가한 반면, 창조산업의 경우 각각 -14.3%, -14.0%, -26.9%로 후퇴했고, 특히 제조업 부문의 창조산업은 각각 -45.6%, -50.5%, -50.3%로 크게 후퇴했다. 창조산업을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였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전략은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도 못한 것이다.

 

사회혁명은 혁신성장의 성공조건

과거의 실패 이유를 파악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혁신성장 전략의 성공 가능성도 예측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100%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적 측면을 넘어 새로운 기술이 요구하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경제의 활성화가 성공하려면 IT 혁명으로 등장한 닷컴기업들이 왜 플랫폼(디지털 생태계) 사업모델로 진화했고, 왜 2010년경부터 갑자기 인공지능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열광이 불기 시작했는가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새로운 흐름이 지향하는 내용과 가치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산업구조 조정과 사회 구조조정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플랫폼 사업모델 등장 배경은 IT 혁명으로 등장한 디지털 경제의 핵심 특성인 ‘연결’과 ‘호혜성’에서 비롯한다. (음원, 앱 등 디지털 생태계에서 제공되는) 디지털 무형재는 (추가 공급에 따른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참여자나 판매량을 극대화할 때 최대 이익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IT(인터넷)의 ‘연결’ 속성을 기본적 베이스로 삼고, 참여자에게 이익을 만들어줌으로써 참여자 규모를 극대화시킨다.
즉 검색 및 SNS 서비스부터 시작해서 애플의 앱스토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공통점은, 호혜성에 기초한 가치의 공동창조다. 연결된 참여자들의 이익을 만들어줌으로써, 참여자의 협력과 자원을 끌어내 자신의 이익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참여자가 많아지면서 (호혜성의 원리를 활용한) 닷컴기업들은 플랫폼(디지털 생태계)으로 진화한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모델은 공유, 협력, 호혜

이처럼 플랫폼 사업모델은 연결이라는 토대 위에서 공유, 협력, 호혜 등을 가치창출의 새로운 원리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 혹은 사용하는 플랫폼 사업모델의 경쟁력은 확보한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수익 창출 가능성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우버가 창업 이래 계속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도 기업가치(예상)가 빅3(GM, Ford, Chrysler) 시장가치를 합한 것보다 큰 이유도 차량공유 사업을 통해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 때문이다.
게다가 플랫폼 사업모델은 (일관된 방향으로 가해진 힘이 누적돼 합쳐진 힘과 관성에 의해 회전운동에너지를 저장하는 효과인) 데이터의 ‘플라이휠 효과(fly-wheel effect)’로 서비스 개선을 부채질해 참여자를 확대시키고, 이는 다시 미래성장을 자극한다. 디지털 거인들의 등장과 데이터의 폭발적 증대 배경이다. 그리고 플랫폼 사업모델(디지털 생태계)의 확산은 인공지능(AI) 열풍의 원천이 된다.
즉 전자상거래나 전자정부 등과 더불어 플랫폼 사업모델 구축으로 이용가능해진 빅데이터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인) 머신러닝 접근과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과 관련된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술에 있어 실행 명령어들의 순서인) 알고리즘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원료를 제공했고, 이들은 보다 강력해진 컴퓨터의 역량과 더불어 AI의 발전을 가능케 했다. AI의 실수율이 2011년 26%에서 15년 3.5%로 빠르게 축소된 배경이다. 이처럼 AI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IT 혁명으로 상징되는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또한, 데이터의 중요성이 증대하면서 데이터가 가치창출의 핵심 생산요소인 데이터 경제를 부상시키고 있다. 데이터 경제는 출발부터 ‘연결’에서 시작됐기에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연결시키려는) 사물인터넷(IoT)과 5G 기술 그리고 데이터 저장과 관련된 클라우드 기술의 수요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원리가 됐다는 점이다. 산업사회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스스로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자유주의사상가들은 개인의 이기적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자조’(自助)를 강조했던 것이고, 경영학에서도 기업경영의 근간을 기업의 자원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즉 개인과 기업은 각자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면 됐기에 협력보다 경쟁이 경제운영 원리로 강조됐던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 경제와 연결 경제의 부상으로 경제운영 원리를 ‘협력’으로 대체시킬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새로운 사업모델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플랫폼 사업모델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산업사회의 인간형 및 제도의 지속과 새로운 가치창출 방식의 확산 간의 미스매치가 일자리 대충격과 초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조시키며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진보와 새로운 가치창출 방식에 부합하는 사회혁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숙련 노동력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2차 산업혁명이나 숙련 노동력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3차 산업혁명이 각각 미숙련 및 숙련 노동력의 수요 증가에 기여한 것을 근거로 4차 산업혁명도 없어지는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분야의 주요 연구들은 AI 주도의 자동화가 (노동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업무를 사회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일자리 대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율주행차의 등장이 전통적인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플랫폼 사업모델로 만들어진 우버 기사를 소멸시킬 수밖에 없듯) 특히 서비스 부문 일자리가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는 탈공업화 이후 (확장됐던)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완충장치 역할을 해체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우리의 경우 탈공업화 이후 질 낮은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가 많이 증가했는데, 인공지능 로봇은 이 부문의 일자리를 대부분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용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앱이나 플랫폼 기반 사업모델의 확산으로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약화되고 있다. 조건부임시노동자의 확산(Uberization), 이른바 ‘긱 경제(Gig economy)’의 부상이 그것이다. 즉 고용의 질을 급속히 악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산업사회에서 분류한 피고용자도 자영업자도 아니기에 노동자의 희생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들에서 배제되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 사업모델과 관련된 노동자들은 더 분산되고 원자화될 수밖에 없기에 노동자 교섭력은 더욱 약화되고 그 결과 노동소득도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현재 AI는 자신이 경험하는 새로운 데이터 속의 패턴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에 필요한 자체 규칙을 개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고, 그 결과 매우 적은 인력을 투입해도 문제해결과 학습이 가능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규교육을 25세 전후로 마치고 수십 년을 그것에 의존하려는 반면, 컴퓨터는 사람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얻는 지식의 대부분을 몇 초 만에 익힐 수 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 로봇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노동력이 얼마나 될까? 문제는 현재의 교육방식과 대학은 이런 변화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미국 국방성 산하 핵심 연구개발 조직 중 하나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진행하는 로보비(Robobees)를 비롯해 인공지능이 탑재된 곤충로봇들이 초래할 반인간적 행위들을 우려하고 있다. 공생과 협력보다는 대립과 경쟁이 점점 극단화되는 인간사회에서 인공지능 로보비가 획득하는 데이터와 그 데이터로 개발한 규칙은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담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승자독식 시장구조의 폐해

이처럼 대부분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은 크게 후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승자독식 시장구조를 가지는 현재의 플랫폼 사업모델은 시장집중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이른바 ‘플랫폼 독점’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디지털 무형재는 기본적으로 추가공급 비용이 제로라는 특성으로 제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의 경제성을 만들어내 시장집중을 초래해왔는데 플랫폼 모델로 진화하면서 데이터 독점과 집중이 더해지고 있다.
즉 시장집중이 더욱 심해지며 경쟁의 장벽을 만들고, 그 결과 후발 진입자의 기회를 축소시키면서 혁신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민간기업 중 1년 미만의 신생기업 비중이 70년대 후반 16% 이상에서 최근 절반 정도로 추락한 배경이다. 문제는 시장집중의 심화로 크게 증가한 수익의 대부분은 주주, 투자자, 최고 경영층, 핵심 관리자 등에게 배분되고 평균 노동자나 플랫폼 참여자 등은 분배과정에서 소외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는 기술혁신들은 사회혁신의 공진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지속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일자리 대충격과 초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경제와 플랫폼사업 모델이 일자리 창출과 소득분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재설계해야 한다.
우선, 지식의 전수 및 습득에 기반한 현재의 교육방식에 대한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데이터경제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데이터를 활용해 문제를 찾아내고, 활용가능한 기술들의 결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일부에서 ‘4C 역량’(창의성, 비판적 사고, 소통, 협업 역량)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즉 ‘새로운 레시피를 찾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같은 재료(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똑같은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이치다.
구글이 원하는 인재상의 기준으로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제시하는 배경이다. 즉 업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 비해 아이디어(문제발굴 능력)도 많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협업이 중요한 이유는 문제해결을 위해 여러 기술 및 숙련의 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저 습득한 지식의 양에 초점을 맞추는 찍어내기나 줄 세우기 교육, 극단적 경쟁논리, 그리고 (풍부한 아이디어의 원천인) 차이를 차별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등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학교와 직장에서, 플랫폼 사업모델, 연결경제, 데이터 경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누구나가 이용 가능하도록 데이터에 대한 개방이 필요하다. 핵심자원으로 부상한 데이터의 접근에서 제약을 받는다면 가치창출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분산과 공유를 특성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플랫폼 독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조건을 제공하는 의미를 지닌다. 즉 블록체인 생태계는 중심(중개자)이 없기에 개인이 더 많은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무엇보다 상호 간에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도 않는 참여자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취약점인 ‘무임승차 문제’를 거래의 투명성 확보로 해결함으로써 네트워크의 지속성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블록체인 생태계는 분산화된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플랫폼에 비해 분명히 진일보한 플랫폼으로 ‘플랫폼 공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문제는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플랫폼 독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데이터를 활용해 가치창출에 기여할 수 없다면 데이터에 대한 접근만으로 ‘플랫폼 공유’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교육혁명은 절대 과제다. 세 번째로 분배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산업구조의 이행 과정에서 일자리 대충격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 경제에서 핵심 생산요소 중 하나인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노동력의 공급처럼 일상적·정기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 즉 최소한의 생계조건 확보가 과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배당)의 도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협력은 호혜적일 수밖에 없기에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유’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 절제하는) ‘자율’을 요구한다. 즉 분산된 개인 간에 공유와 협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 대신 ‘자율’이 새로운 사회 규범이 돼야 한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의 침해에 대한 우려, 공유경제가 범죄에 악용되는 문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제기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윤리적 책임 문제, 그리고 협력의 원리로 사회와 경제를 운영할 때 발생 가능한 ‘무임승차 문제’나 ‘집단행동의 딜레마’ 등을 해결하고 동시에 연결 사회의 지속에 필요한 신뢰 확보 등을 위해서 자율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인간적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공생과 협력이 체화된 인간형과 사회질서는 절대적이다.
요약하면, 플랫폼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전체 산업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를 블록체인에 기반한 플랫폼 생태계로 재구성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산업사회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와는 다른 자율형 인간(호모 데우스)을 만들어내는 교육혁명, 협력과 공유에 기초한 호혜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배당)의 도입 등 사회혁신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실패 가능성을 100%라고 지적한 이유는 플랫폼 경제가 요구하는 사회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육성이 실패한 배경과 동일한 맥락이다.


글·최배근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안경제의 이론과 시스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교육·지역자치·통일운동 분야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높다. 현재 경제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