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콘크리트 도시의 거품
과거의 위기를 어찌 반면교사 삼지 못 하는가
2018-10-31 마농 드니오 | 언론인
2008년 금융위기로 아일랜드 공화국만큼 극심한 타격을 받은 나라도 드물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2010년 재정 적자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30%대를 넘어섰다. 몇 년 뒤, 다시 한번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신이 난 사람들도 있지만,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유리창이 깨지고 입구가 폐쇄된 건물. 아일랜드 서쪽 로스코몬 현에 있는 발라가데린(Ballaghaderreen) 마을의 유령건물 이야기다. 지금 이 건물엔 쥐들이 드나들 뿐, 10년 전부터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이 유령건물은 아일랜드가 ‘켈틱 호랑이(Celtic Tiger: 1980년대 서유럽 변방의 가난한 농업국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고성장을 거듭한 아일랜드에 붙여진 별명-역주)’라는 명성에 걸맞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2005년에 짓기 시작한 주택이었다. 1985~2010년 아일랜드에는 실수요를 훨씬 웃도는 76만 2,600여 세대의 주택이 조성됐다.
그런데도 아일랜드의 주택 가격은 1995~2007년 액면가 474% 상승이라는, 다른 도시들보다 한결 가파른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시기 영국은 222%, 스페인은 199%, 미국은 107% 증가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주택 가격은 폭락했다. 2009년에는 주택 5개 중 2개가 실거래가 이하로 가격이 내려갔다. 다른 많은 부문들과 마찬가지로 발라가데린의 분양업체는 도산했고, 굴착기도 가동을 멈췄다.
그 후로 10년이 흘렀다. 경제위기 이후 앞장서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던(1) 언론은 이제 주택 미분양 현상을 놓고 연일 탄식을 쏟아낸다. 반면 한편에서는 부동산 거품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새롭게 들려온다. 임대료는 2011년 이후 65% 상승했는데, 이런 추세는 2008년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더블린의 신규 주택 평균가는 35만 유로를 넘어섰다. 2012년 대비 3배 증가한 액수다. 아일랜드 경제사회 연구소(ESRI)가 2017년 11월에 발표한 한 보고서는 경제성장률이 현행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2020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약 20% 더 오를 것이란 예측을 내놨다. 이는 2014년 이후 연간 국내총생산(인플레이션 포함)의 4%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런 가격 급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도심의 주택난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미분양 주택들은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로넌 라이언스는 2017년 6월 28일에 열린 주택문제 관련 의회 합동위원회에서 “아일랜드에는 매년 약 5만 호의 주택이 필요하다. 특히 더블린의 연간 주택 수요는 1만 5천에서 2만 호에 이른다”라고 발표했다. 코크, 리머릭, 골웨이 및 다른 주요 도시들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2011~2016년에 지어진 주택은 33,436호인데, 그중 수도 더블린 및 교외에 들어선 주택은 6,598호뿐이다. 이는 아일랜드 전체 주택의 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런 건설경기 하락(주택 공급 미달)은 첫째, 2008년 금융위기와 직결되는 긴축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다.(2) 한 예로 2008~2013년 공공주택 관련 예산이 80% 삭감됐다. 둘째, 건설 분야를 민간 부문에 맡기기로 한 정부의 장기적 선택도 건설경기 하락에 한몫했다. 1980년대 말 경기후퇴의 여파로, 당시 공공주택의 주요 공급자였던 정부는 지자체가 이용하던 (임차인이 지불한 임대료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식의) 은행 대출을 중단했다. 정부가 주택건설에 필요한 대출을 막고 중앙보조금만으로 지역의 건설경기를 뒷받침하다 보니, 예산 삭감은 공공주택 공급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과 영국처럼 아일랜드 정부도 임대보다는 자가(自家) 소유를 장려한다. 공공주택 임차인은 자기가 거주하고 있는 공공주택을 매입해 자가 소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가 소유자가 되면 사회복지 수혜 가구에 집을 임대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 입장에서도 세금 인센티브가 주택 건설에 뿌리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니 이제 시장이라는 유일한 나침반을 따라, 더블린의 하늘 위로 크레인들이 사무실, 상점, 호텔, 혹은 학생 기숙시설(원룸)들을 짓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유서 깊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학생 원룸의 경우, 임대료로 주당 349유로(한화로 약 46만 원)까지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일랜드 최대의 부동산 소유주로 자리매김한 ‘아일랜드 부동산투자신탁(Hibernia REITs)’의 최고경영자 케빈 놀런은, 주택이란 짓기도 힘들고 수익을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더블린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도클랜즈에서 월세 2,400유로에 세놓을) 아파트 14세대를 지었는데,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오피스 단지 신축 허가를 내준다고 해서 이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그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3)
그렇다면 해결책이 있을까? 경제학자 라이언스는 비어 있는 주택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최근 조사(2016)에 따르면 더블린에는 2만 호의 빈 주택이 있고, 현재 수요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수치는 상가 위층의 비거주 층들(혹은 창고용 공간)의 공실률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빈 주택이 이렇게 남아도는데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임대나 매도를 장려해야 할까? 부동산 거품으로 자산 가치가 부풀려지면 부동산 소유주들은 매도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몫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도를 강요한다면, 부족해 보이는 주택 물량을 정부에 요구할지 모른다. 더구나 이들은 우파인 통일아일랜드당(Fine Gael, 피너 게일) 출신의 리오 버라드커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지지 세력이기도 하다.
2016년 아일랜드 정부는 통일아일랜드당(12명)-무소속(3명) 연립내각의 소수정부로 출범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정권을 공유한 적 없는 중도우파 성향의 아일랜드공화당(Fianna Fáil, 피아나 파일, 제1야당)이 총리 신임투표에 찬성했고, 주요 법안표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고 기권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연립내각은 곧 임기가 끝날 것이고, 이 합의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투명하다.
더블린 기술 연구소(DIT)의 주거 및 도시경제 분야 연구원인 로컨 시르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주택문제는 서민층에게만 해당됐지만, 이제는 언론에서 중산층을 점점 더 많이 거론한다. 중산층이 주택문제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집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부모 곁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이 벌어지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런 현상이 기업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청년들은 선거판을 뒤바꿀 영향력을 지닌 세력이다.” 따라서 주택문제는 차기 국회의원 선거운동에서 주요한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마농 드니오 Manon Deniau
기자
번역·조민영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Julien Mercille, 『The Political Economy and Media Coverage of the European Economic Crisis: The Case of Ireland』, Routledge, London, 2014 참조.
(2) Renaud Lambert, ‘Les quatre vies du modèle irlandais(아일랜드 모델의 네 가지 생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0년 10월호(한국어판 제목 ‘이론 대신 신화가 된 아일랜드 모델’).
(3) Paul O’Donoghue, “We’re renting out Dublin apartments for €2,400 a month and not making any profit”, Fora.ie, 2017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