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이상, 그리고 꿈을 향하여…

조나단 브롭스키 展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2008-10-29     김지연 | 미술평론가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의 '망치질하는 사람'과 국립현대미술관의 '노래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나단 브롭스키가 새로운 작품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전시 개막에 맞춰 강서구청 근처의 귀뚜라미 본사 앞에는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 설치된 바 있었던 그의 작품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설치된다.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하늘에 살고 있는 착한 거인의 이야기를 듣길 좋아했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하얀 뭉게구름으로 집을 짓고 사는 이야기 속 거인은 종종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 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다. 어린 소년의 꿈속에서 착한 거인은 땅 위로 내려와 살게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세상에는 힘든 사람도, 아픈 사람도 사라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따뜻한 세상이 되었다. 어린 소년은 매일 밤 그런 꿈을 꾸며 자라났다.
 어른이 된 소년, 조나단 브롭스키는 어릴 적 꿈에서처럼 착한 거인을 지상으로 불러내기로 했다. 그리고 거대한 인간 형상의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거인은 너무 커서 실내에 둘 수 없었다. 그는 공간의 한계에 자신의 작품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그것을 거리에 내놓음으로써 세상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하여 그가 가는 곳마다 망치질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거인들이 나타났다. 혹은 거인을 찾아 가기 위해 지붕 위를 걷고 기둥을 오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는 공간의 한계 속에 자신을 한정짓지 않고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영역과 더불어 세상의 한계를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이 시대 공공 미술의 거장이라 불린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작품의 제목과 같이 하늘을 향해 치솟은 기둥 위로 줄을 지어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그 길의 끝에 꼭 찾아야만 하는 것이 있는 듯 확신에 차 있다. 그들은 하늘 위에 살고 있다는 착한 거인을 찾으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 길 끝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찾으려 발걸음을 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습은 확실히 자신의 이상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의 소신 있는 걸음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그들의 모습을 올려다 보며 망설이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의 자화상일 것이다.
 시대를 앞서 가는 꿈과 이상을 지녔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오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천재 발명가나 과학자, 예술가 등이 그러했으며,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가진 꿈을 단순히 이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비전을 찾아내어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당시에 받아 들여지기 어려웠던 그들의 꿈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나 무의미한 시도로 간주되어 세간의 비웃음을 사곤 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상상력에 열정과 추진력이라는 엔진을 달아 결국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내곤 했다.
 안타깝게도 꿈을 향한 발걸음의 끝에 언제나 성공적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섣불리 도전한다면 태양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 이카루스처럼 허무하게 불타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비록 이카루스가 넘치는 호기심 때문에 인간으로서 넘보지 말아야 할 곳까지 날아올라 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그는 당시의 인간들 중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올랐다. 태양의 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실제로 느껴 보았고, 아폴론의 전차까지 만나본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이카루스는 날개가 모두 녹아 바다로 추락하는 순간까지도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카루스와 같은 극단적이고 위험한 도전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어렵거나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이상의 실체에 다가 가길 포기해 버리는 안일함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늘을 향해 걷는 길의 끝에서 정말 착한 거인을 만날 수 있다 해도, 그 끝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도착해 보기 전엔 그 곳은 단지 미지의 장소일 뿐이다. 도전해 보지 않고 그저 망설이고만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는 가치와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삶, 그리고 그 끝에 얻어낸 작은 결과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모두의 사회에 있어 커다란 한 발자국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지금 여기에 발을 딛고 설 수 밖에 없다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어차피 도달할 수 없다며 스스로의 한계를 쉽게 단정 지어 버리고 꿈과 이상을 지니길 거부한다. 그러한 결과, 삶의 주체가 되어 도전하는 것을 잊은 채 타인의 시계와 대중의 관습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직장인들과,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에 목을 맨 대학생들, 그리고 꿈을 먹는 나무가 아닌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지만 정작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현실에서 발을 뗄 수 없기 때문에 이상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용기 없음을 반증하는 변명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 다른 것이지만 공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함께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현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 부딪혀야만 하는 과제라면, 이상은 언젠가 칼 융이 언급했던 것과 같이 삶의 이정표 자체이기 때문이다.1)
 그렇기에 도달할 수 없음은 이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하루하루만을 해결하며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이정표만 바라보고 있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가 공존해야만 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매일 부딪혀 오는 과제를 해결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되, 그것이 언제나 스스로 품고 있는 이상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그 길의 끝에서 이상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던 이야기들도 지금은 우리의 눈 앞에 당연한 현실이 되어 있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은 언제나 꿈과 이상, 그리고 그 속에서 구체화된 비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인간은 익숙함에서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 동물이기에 새롭게 바뀌는 것에는 늘 저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항에 부딪혀 하늘을 향해 가는 길을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면, 다른 이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계속 맴돌게 될 뿐이다. 그러한 구성원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어쩌면 과거의 한 시점에서 정체되어 있을지 모른다.
 쉽게 이상을 노래하기에는 각박한 우리의 삶이지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이상과 적절히 조화된 현실 속에 살고 있어야 한다. 매일 다가 오는 현실 속의 과제에 충실하며 그 결과를 차곡차곡 쌓아 이정표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갈 때 비로소 자신만의 하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드높은 하늘을 향해서 확신에 찬 발걸음을 옮기는 브롭스키의 인간상 역시 그렇게 자신이 믿는 가치를 향해 소신 있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착한 거인을 찾아 각자 하늘을 향해 걸어갔던 브롭스키의 인간상들은 이제 손을 잡고 힘을 모아 하늘을 향한 탑을 쌓는다. 그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거인을 찾으려 함께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의 소신 있는 발걸음도 아름다웠지만 함께 손을 잡고 의지하여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이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네 삶 역시 이들과 같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이상이라는 삶의 이정표를 품은 채 하루하루 확신에 찬 걸음을 옮겨 가길, 시대를 앞서가는 꿈일지라도 따뜻한 이상과 바른 가치를 향한 것이라면 손을 내밀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지닐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

●조나단 브롭스키 개인전

- 10.31~11.25 / 표 갤러리
- 문의 02-543-7337 / www.pyoart.com


 

이달의 풍경


 플랫폼 서울 2008
10.25 - 11.23 / 아트선재센터 외 12곳
문의 02-739-7067 / www.platformseoul.org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현대예술축제. 재불 작가 김순기 참여.
 
유토피아 - 이상에서 현실로
09.25-12.28 / 금호미술관
문의 02-720-5114 / www.kumhomuseum.com
20세기 초 독일 디자인을 통하여 현대 주거문화의 원류를 살펴볼 수 있다.
 
디오니시오 곤잘레스 -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진실일까?
09.19-11.29 / 더컬럼스 갤러리
문의 02-3442-6301 / www.columns.co.kr
빈민촌 풍경을 디지털로 재구성한 사진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대해 말한다.
굧 강운구 - 저녁에
09.27-12.06 / 한미사진미술관
문의 02-418-1315 / www.photomuseum.or.kr
강운구의 7년 만의 개인전. 흙과 땅에 각인된 사람과 노동의 자취에 밀도 있게 접근한다. 
 
 정재철 - 뉴 실크로드 프로젝트
10.11-11.02 / 금산갤러리
문의 031-957-632 / keumsan.org
문화적 부산물인 현수막이 타지인들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두 번째 프로젝트.
 
 정연두 - 핸드메이드 메모리즈
10.17-11.15 / 국제갤러리
문의  02-733-4879 / www.kukje.org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영상 작업을 해온 정연두의 개인전. 과거에 대한 향수에 주목한다.

 primaryblue0423@ilemonde.com

 


 1) C.G.융, 한국융연구원 C.G.융 저작위원회 역, <인간과 문화>, 솔,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