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반사회적 얼굴

러시아의 야만적 연금개혁

2018-10-31     카린 클레망 | 사회학자

러시아 정부가 정년을 몇 년 늦추기로 결정했다. 총체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정부는 서민들에게 부담을 줄지언정, 대기업들의 주머니를 축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외적인 성공도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를 공고히 다지는 데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2018년 6월 중순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 당일, 강력한 연금제도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이 러시아를 점령했다. 러시아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월드컵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틈타 정부의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제부터 여성은 55세가 아닌 63세까지, 남성은 60세가 아닌 65세까지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당시 그의 지지율을 보면 긍정적인 여론이 80%에서 63%로 곤두박질쳤다. 러시아 전역에서 100여 건의 저항시위가 발생하자,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 진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여성의 정년을 60세로 조정하는 방안을 비롯해 법안완화 방침을 발표했고, 6년마다 연간 평균 1,000루블(약 13유로)씩 연금수령액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별 효과가 없었다. 거리에 모이는 사람들이 점점 뜸해졌음에도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지난 9월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 소속의 네 후보(전부 퇴임을 앞둔 주지사)가 결선에서 굴복하고 말았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블라디미르와 하바롭스크 지역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의 야당(러시아 자유민주당, LDPR)이 승리했다. 프리모르스키와 하카스공화국 지역에서도 공산당이 앞서자 여당은 선거 무효화나 당선 지연을 위해 손을 썼다.

러시아의 연금제도 개정은 다른 나라들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규모나 속도 면에서 충격적인 수준이다. 지금부터 2029년까지 노동자들이 퇴직 후 연금을 타려면 1년에 추가로 6개월씩 5년을 더 일해야 한다(가령 2019년에 55세인 노동자가 원래는 60세까지 5년만 더 일하면 됐지만 연금제도 개혁으로 65세까지 앞으로 10년 더 일해야 하는 셈이다). 1998년 한국 정부도 정년을 5년 연장했으나, 단계적 추진을 예고한 바 있다(1년에 3개월씩).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정년을 각각 1~2년 연장했는데(프랑스는 62세, 독일은 2029년까지 67세), 1년에 1~2개월씩 상향 조정했다.


‘하층민’을 위한다고?

개혁 지지자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논거들을 내세운다. 먼저 인구 고령화를 들 수 있다. 러시아 연방통계청(Rosstat)에 의하면 2017년 퇴직자는 3,650만 명, 경제활동 인구는 8,300만 명으로 집계됐는데, 퇴직자 1인당 현직 노동인구 2.3명의 비율이다. 반면 2002년에는 퇴직자 1인당 3명꼴이었다. 그런데 이런 경제 활력의 저하가 단기에 그칠 것 같지 않다. 혼돈의 1990년대 세대는, 수적으로 더 우세하고 경제적으로나 인구학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2000년대 세대와 곧 노동시장에서 합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혁 지지자들은 인구통계학적 근거를 내세운다. 정년은 1932년 이후 높아지지 않았으나 평균수명은 훨씬 늘었다. 메드베데프가 제시한 연방통계청의 수치들에 따르면,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1930년대 초 평균수명은 35세였으나 오늘날에는 72.7세다. 특히 1932년에는 극소수의 노인층만이 연금혜택을 받았다. 그러다 1956년 모든 도시민들로 연금혜택이 확대됐고, 1967년에는 집단농장의 농민과 노동자까지 혜택을 받게 됐다. 1967년 평균수명은 현재보다 기껏해야 3년 적은 69.3세였다. 2018년에 특히 남성들은 연금개시 연령과 현재의 평균수명이 1년 반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사실을 우려했다(남성의 기대수명은 66.5세, 여성은 77세). 즉 연금개시 연령이 65세로 정해지면, 평균의 러시아 남성은 고작 1년 반 연금을 받다가 죽는다는 의미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출생 시 평균수명이 아니라 퇴직자의 생존연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요즘 언론인들이나 개혁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러시아 고등경제대학교의 한 연구(1)에 의하면, 정년 이후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13.4년, 여성 21.7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구학자 아나톨리 비시넵스키는 평균수명이라는 지표가 사실상 1960년대 이후 거의 늘어나지 않았으며, 경제활동 기간이 길어질 경우 평균수명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2)

또한 55세에 노동시장에서 은퇴한 여성들이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맡아온 제한적 역할의 문제도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 사회학자 엘레나 즈드라보미슬로바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축의 여성들이 이중의 역할을 하는 ‘샌드위치 세대’(3)라고 본다. 이들은 자녀세대가 일할 수 있도록 손주들을 돌보는 동시에, 국가조직이 등한시하는 노년의 부모세대를 부양하고 있다.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들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특히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제안하는 다른 해결책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음으로 개혁 지지자들은 몇 가지 경제적 근거들을 내세웠는데 그중 한 가지 이유는 연금 수준을 높일 가능성 때문이다. 개혁 지지자든 반대자든, 현행 연금수준이 일하지 않고 노년을 버티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연금수령액은 평균 월 1만 3,300루블(약 220유로)로, 평균 임금의 34% 수준이다. 연금 제도 개혁이 시행되면 남성 40%, 여성 66%가 자신들의 연금 결산액에 맞춰 5년 동안 급여를 받으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소련시절에도 이런 비슷한 관행이 존재했으나, 당시 퇴직자들은 더 나은 사회보호(1976년 평균수령연금은 급여의 52%)(5)와 보건 시스템의 혜택을 누렸다.

최근 퇴직한 여성들은 여전히 주로 초등학교 교사나 병원, 또는 사회복지 및 문화관련 분야 등 전통적으로 ‘여성적’이고 급여가 낮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남성들도 어쩔 수 없이 거의 돈벌이가 안 되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TV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2024년까지 평균연금으로 2만 루블(약 260유로)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는 그리 후한 금액이라고 할 수 없다.

러시아의 대통령은 수직적 권력을 회복하려는 국가 관리주의적 지도자의 이미지에 도취해 있다. 처음 두 번의 대통령 임기(2000~2008) 내내 푸틴 정부는 탄화수소 연료를 비롯해, 소수의 지배자들이 독차지했던 전략적 경제 부문들의 통제권을 되찾아왔다. 또한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다시 정기적으로 임금과 연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성과들에 힘입어 푸틴은 서민층 및 중산층은 물론 그가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하층민’의 지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러나 그가 크렘린에 입성했을 때 사회국가를 ‘현대화’하고, 공공지출을 억제하고,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세제 도입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많은 평론가들이 놓치고 있다. 그는 소득에 13%의 단일세율을 적용하고(2002), 효율성과 성과기준에 따라 (삭감된) 연방재정을 집행하는 보건 및 교육 시스템 개혁을 실시했으며(2006~2012), 경영자에게 유리한 새 노동법을 채택했다(2002).

연금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2002년 정부는 인하된 연금 납입금 기준표를 작성했는데, 굉장히 불합리한 기준임에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2018년 기준 소득으로 6만 7,900루블(약 900유로)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국가가 관리하는 연금기금에 총 보수액의 약 22%를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상위 15%의 고소득 노동자들은 이들보다 고작 10% 더 많은 납입금을 냈을 뿐이다. 같은 해 정부는 기존 연금 제도에 강제적인 자본화 시스템을 접목했다. 이제 연금 납입금의 6%는 연금기금과 현행 연금 재정이 아니라 금융 중개기관이나 개인연금펀드로 들어간다.

2005년, 긴축적 개혁의 행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전무후무한 저항운동이 ‘사회적 특권’에 맞서 일어났다. 이에 따라,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국민에게 부여되는 사회복지혜택(교통, 진료 등)을 축소하려 했던 러시아 정부는 이와 유사한 정책들을 재검토해야 했다. ‘육아보조금(둘째 자녀부터 부모에게 지급되는 수당)’ 도입을 비롯해 연방차원의 교육·보건·주거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탄화수소 가격 급등에 힘입은 일시적인 선심성 정책이었다. 게다가, 적어도 일시적으로 교사 및 간호인력의 급여가 인상됐고, 부동산 경기회복을 위한 국가 재정 투입 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이 정책은 종말을 고했다. 배럴당 원유가 하락,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서구사회의 제재에 이어 2014년에는 러시아에 경기침체가 들이닥치면서, 러시아 정부는 공공지출, 교육, 보건 분야 재정을 우선 희생하는 긴축예산정책을 재개했다. 수익이 가장 높은 기업들 중에서도 석유회사 같은 대기업에 다양한 보조금과 세제혜택이 돌아갔고,(6) 부도덕한 기업인들과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이 세금감면 혜택을 받았다.(7) 회계감사원에 의하면 이런 세제혜택은 연방예산에 1만 1,000루블(약 1,300억 유로)의 손실을 끼칠 것이며, 이로 인해 2018년 세입은 1만 5,000루블(약 2,000억 유로)에 그칠 것이다.(8)

정년 연장, 부가가치세 인상(18%에서 20%로), 소득세율(언제나 단일로 적용되는) 증가 등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안은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세를 인상하고, 그 대신에 연금 납입금과 자본에 대한 과세를 줄이려는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는 러시아의 국제적 위신을 구실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연금이 국민총생산(GDP)의 7%에 불과한 나라에서는, 다른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면 정년을 유지하고 연금 액수를 높일 수 있다. 프랑스나 포르투갈, 폴란드는 연금이 국민총생산의 14%를 차지한다.

러시아 의회인 두마에서 중도좌파인 공정러시아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올레그 셰인 상원의원은 “면세 대비책을 마련하고, 연금 납입금에 대해 단일 기준을 적용하며, 실질 고용노동자 수를 숨기거나 속여서 국세청에 신고하는 기업들에 보복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 3,450만 명이 불법고용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들의 실질소득은 2014년 이후 10% 가량 곤두박질쳤지만,(9) 정작 정부는 대부호들의 자산보호에 더 신경을 썼다. 법안 발표로 저항세력이 주춤하는 효과를 거두긴 했지만, 정권은 상처 없이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역사가이자 광고제작자이며 좌파 정치운동가인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는 “국가 지도자의 지지 세력을 결속하기 위해 ‘여당의 전통적 가치와 정신적 단결’을 내세운들 민심을 끌어내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서민층’의 수호자라는 이미지에 현혹돼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줄 게 하나 있다. 바로 서민층 및 중산층의 이익이 경제 및 금융 엘리트들의 이익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2018년 여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비롯된 러시아 국민들의 만족감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글·카린 클레망 Karine Clément
사회학자.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Le contexte démographique de l’élévation de l’âge de départ à la retraite(정년 연장의 인구학적 배경’(러시아어), Higher School of Economics(고등경제대학교), Moscow, 2018년 6월 28일, www.hse.ru
(2) ‘L’allongement de l’âge de départ à la retraite: arguments et contre-arguments démographiques(정년 연장: 인구학적 주장과 반증)’(러시아어), <Demoscope Weekly>, n°775-776, 2018년 6월 18일~7월 31일, www.demoscope.ru
(3) The Village, 2016년 3월 8일, www.the-village.ru
(4) Rosstat, Moscow, 2016년.
(5) Hélène Yvert-Jalu, ‘Les personnes âgées en Union soviétique(소련의 노년층)’, <Population>, n° 6, Paris, 1985년 11~12월호.
(6) <Novye Izvestia(노비에 이즈베스티야)>, Moscow, 2018년 9월 6일, www.newizv.ru
(7) RBK TV, 2017년 3월 17일, www.rbc.ru
(8) Conclusions de la Cour des comptes de la Fédération de Russie sur l’exécution du budget fédéral de l’année 2017(2017년 연방예산 집행에서 러시아연방정부 회계감사원의 결론), www.ach.gov.ru
(9) ‘La situation économique et sociale de la Russie(러시아의 경제 및 사회 상황)’ (러시아어), Rosstat, 2018년.